제 5 편, 하나님과 개인의 관계

글쓴이: 유버르사에 있는 어느 신성한 조언자

1934년

사람에게 깃드는 조절자는 영원한 신의 일부이다.

하나님은 동급의 여섯 절대자의 실존적 실체를 통해서 그의 무한성을 분배했으나, 선(先)인격 분신을 통해서, 창조의 어느 부분과도 친히 연락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성격을 수여하는 특권, 그리고 성격 회로를 통해서 부모로서 성격 존재와 연락하는 특권을 유보하였다.

1. 하나님께 다가가는 법

하등의 지적 존재들을 아버지 앞으로 데려간다 하더라도, 인간은 우주의 아버지가 앞에 계신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 앞으로 가까이 가는 것은 네가 최고의 유한 수준에 이르기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너는 아버지가 수여한 영과 언제나 즉시 교통할 수 있다.

필사자들은 지적ㆍ사회적ㆍ경제적 기회, 아니 도덕적 기회에 차이가 있어도, 똑같이 조절자의 계심을 누린다.

정직하게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바라면, 어떤 세력도 그러한 혼이 파라다이스 입구까지 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너희 하나하나가 하나님께 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나님 앞에 이르는 데 방대한 시간이 들지만,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을 의심하지 말라.

조절자와 영원히 합친 자는 누구나 이 영적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아버지의 마음이 자식들의 탄원 소리가 듣기 싫어 닫힌 적은 없다.

너희가 영적 세력의 인도하심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이 예정한 운명을 꼭 달성할 것이다.

2. 하나님의 계심

영에게서 태어난 아들은 누구나, 그 속에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
인격자는 누구나 아버지의 품에 다가갈 수 있다.

창공에 멀리 떨어져 있는 하나님을 꿈꾸는 것은 얼마나 큰 잘못인가!

신다운 조절자와 사귀는 사실은 개별 신자의 일생에서 영의 열매가 얼마나 좋은가, 얼마나 열리는가 이것이 증명한다.

신과 교통한다는 증거는 영의 열매를 맺음으로 장차 나타난다.

3. 참된 예배

예배를 받는 분은 아버지이다.

온갖 간청은 영원한 아들 및 아들의 조직에 속한다.

이러한 기도(祈禱)는 보통 한 창조 아들의 관할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예배는 그 자체가 목적이다.

기도는 자신이나 인간의 이익 요소를 담고 있으며, 이것이 예배와 기도의 차이이다.

예배는 아무것도 요청하지 않고, 예배자를 위하여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일상 생활의 실무는 무한한 영의 대리자들을 통해서 처리된다.

"너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아들에게 기도하고, 무한한 영의 지적 존재들과 일생의 세부를 해결한다."

하나님을 찾는 필사 지성과 불사의 조절자가 함께 혼을 창조한다.

4. 종교에 나타나는 하나님

진화 종교에 담긴 도덕은 (벌을 받을까 하는) 두려움의 추진력으로 사람을 앞으로 민다.

계시 종교는 하나님을 찾으라고 사람을 끌어당긴다.

다신교에서 일신교의 싹이 튼다.

철학과 예술은 인간의 비종교 활동과 종교 활동 사이에 끼어 있다.
어떤 종교도 신을 예배하라, 인간이 구원 받는다는 교리를 가르친다.

불교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약속한다.
유대교는 사람이 올바르면 번영할 것을 약속한다.
종교는 아름다움의 실현을 가르친다.

기독교는 죄에서 구원받는 것을 가르친다.
모하메드교는 유대교 및 기독교의 도덕 기준을 벗어나게 한다.
예수의 종교는 자아를 벗어나는 것이다.

히브리인의 종교는 선에, 그리스인의 종교는 아름다움에 기초를 둔다. 한편 두 종교가 진실을 추구했다.
조로아스터교는 도덕률을 가르쳤다.
힌두교는 형이상학의 종교요, 공자는 추종자에게 윤리를 가르쳤다.

예수는 봉사하는 종교를 실천했다.


그리스인의 종교: 너 자신을 알라.
히브리인의 종교: 하나님을 알라.
기독교인의 종교: 예수 그리스도를 알라.
예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라.

한 종교의 영적 지위는 신자가 어떤 성질의 기도를 드리는가로 측정해도 좋다.

인간답고 질투하는 하나님 개념은 다신교에서 일신교로 넘어가는 불가피한 과도기 현상이다.
신을 인격화하는 개념은 진화 종교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수준이다.

기독교의 하나님 개념은 세 가지 가르침을 통합한다.

(i) 히브리인의 개념: 하나님은 올바르다.
(ii) 그리스인의 개념: 하나님은 통일한다.
(iii) 예수의 개념: 사랑의 아버지이다.

기독교의 교리에 일관성이 떨어진다. 초기 기독교 교리가 알렉산드리아의 필로, 나사렛 예수, 타르수스의 바울의 종교적 체험에 기초를 두었기 때문이다.

예수가 죄 없다는 것보다 사랑으로 봉사한 것을 생각하라.

5.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

도덕은 동물 수준을 초월하지만 진화로 얻은 재산이다.
도덕은 이성의 가장 높은 분야에서 선택하기를 요구한다.

영적 체험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고 그를 닮으려고 애쓰기를 요구한다.

종교는 도덕이 생긴 뒤에 인간의 성장을 겉으로 드러낸다. 네 수준에 침투한다:

자아를 보호하는 물리적 수준
친교하는 사회 수준.
이성이 활동하는 도덕 수준.
신을 예배하고 우주와 친교하는 영적 수준.

과학자는 하나님이 첫째 근원이라고 본다.
예술가는 하나님이 아름다움의 이상이라고 본다.
철학자는 하나님이 우주를 통일한다고 본다.
종교가는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다.

사회에 봉사하는 것은 도덕적 생각과 종교적 생활에서 생기는 결과이다.

진화된 종교는 계시된 종교를 받아들이는 수준까지 사람을 이끌었다. 종교의 질은 다르지만, 전자는 생물학적 종교요, 후자는 시대적으로 계시되는 종교이다.

인간의 논리로 따지고 추리해도 신이 안에 계신다는 개념, 하나님이 모든 개인 안에 계시고 그 일부라는 개념을 신이 온 우주를 지배한다는 관념과 조화시키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도 필사자는 종교적 체험에서 세 가지 만족을 얻는다:

(i) 지적 만족: 인간의 의식이 조화된다.

(ii) 철학적 만족: 사람의 이상이 실현되는 것을 즐긴다.

(iii) 영적 만족: 신이 동반하는 체험을 맛본다.

하나님을 의식하는 세 가지 요소.

(i) 지적 의식: 하나님 관념을 이해하는 것.
(ii) 혼 의식: 하나님의 이상을 깨우치는 것.
(iii) 영적 의식: 하나님이 영 실체인 것을 깨닫는 것.

지성이 하나님을 믿고, 혼이 하나님을 알고, 지성과 혼이 하나님을 바랄 때, 인간이 살아남는 것이 보장된다.

조절자가 깃드는 것이 시작이며, 불멸의 혼이 살아남는 것을 보장한다.

6. 성격자인 하나님

하나님은 모든 성격을 부여한다 (개체의 자의식이 시작된다)
아버지는 마찬가지로 신의 뜻을 행하기를 택하는 모든 유한 성격자가 돌아갈 운명이다.

성격은 신비 중의 하나이다. 성격의 여러 요소는 잘 알아도 우리는 그 본질이 무엇인가 잘 모른다.
지성 자질만으로 인격이 아니요, 영이나 물리적 에너지도 인격이 아니다.

인격이란 물질ㆍ지성ㆍ영 에너지가 결합되고 조정된, 이 살아 있는 조직에 아버지 하나님이 혼자 수여한, 우주 실체의 그 질과 가치이다.

인격은 점진적으로 얻는 것도 아니다. 물질 인격이거나 영적 인격일 수 있지만, 인격은 있든지 아니면 없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인격이 아닌 다른 것들은, 파라다이스 아버지가 직접 행위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결코 인격을 가진 자의 수준에 다다르지 못한다.

물질적 자아는 인격과 신분, 현세의 신분이 있으며, 선(先)인격 영 조절자는 영원한 신분이 있다.
하나님은 모든 수준의 성격자를 친히 의식하고 연락을 가진다.
하나님은 너희의 아버지요, 너희는 모두 행성에서 낳은 자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