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漢字)의 기원

  기원전 1000년 경부터 (청동기에) 金文이 사용되었고 1300년 경에, 은나라 13대 왕 반경(盤庚)이 도읍을 은(殷)으로 옮길 즈음에 갑골문이 쓰이기 시작했으니, 갑골문을 한자의 기원이라 보아도 좋을 것이다. 하(夏) 시대에는 한자로 쓴 기록이 없다. 따라서 상대 이전으로 한자의 유래를 추적할 수 없다.

갑골문은 1899년에 왕의영(王懿榮, 1845-1900년)이 안양(安阳)시의 은허에서 발굴한 문자로서 거북이 배딱지와 짐승의 뼈(주로 소뼈)에 새겨진 상형 문자이다. 발견된 구갑과 수골(獸骨)은 기원전 1200-1050년이니 상대 말기에 해당한다.

금문에 쓰인 글자는 갑골 문자보다 물체의 모습을 더 사실적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다음의 도표는 갑골문과 현대 한자를 대조한 것이다. 많은 글자가 묘사되는 대상의 모습를 잘 그렸다.

1. 거북이 배딱지(龜甲)에 쓰인 글자  

 

 

안양 시의 은허(殷墟, 오늘날 허난 지방)에서 발견된 거북의 배딱지에 그림 글자가 있었다. 지금까지 갑골문에 적힌 글자가 약 3천자가 발견되었으나, 많은 글자가 인명이나 지명에 쓰인 것이고 (따라서 널리 쓰이지 않았다), 800 글자가 현재 한자와 어느 정도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어, 그 뜻을 짐작할 수 있다. 한자가 중국인 사이에서, 적어도 상류층에서 널리 쓰인 것으로 보인다.

점치는 외에, 장사 목적으로 비단이나 대나무 껍질에 갑골 문자를 기록했을 터이지만, 이것들은 거북이 배딱지나 소뼈처럼 오래가지 않으므로 그러한 기록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지 않다.

갑골문은 상대에만 쓰인 것이 아니라 주(周)나라 시대까지 계속되며, 간혹 춘추시대에도 쓰였다.

2. 소뼈에 쓰인 글자  
3. 갑골문의 주요 형식  

 

원시 사회가 홍수나 가뭄, 천재 지변에 심각히 영향을 받았으므로 갑골문의 목적은 원시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자연 현상, 특히 비가 올 것인가 점치는 것이었다.

갑골문은 순서대로 다음 네 가지 항목을 포함한다:

1. 서언: 점치는 시기와 점치는 사람의 이름.

2. 질문: 이 점치는 행사에서 던지는 질문.

3. 점괘에 근거하여 예언하는 말씀.

4. 확인: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질문자가 어떻게 되었는가.

갑골문에 서언과 질문은 항상 포함되지만, 예언과 확인은 흔히 빠져 있다.

아마도 문제가 해결되어, 사실이 예언과 같다고 적을 필요성이 없어졌기 때문일지 모른다.

갑골 문자를 상 시대에만 새겼으므로, 전설로 생각되었던 상나라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왕조였던 것이 입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