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프러스(Cyprus)의 생명나무 기록

  생명나무에 관한 이야기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살던 수메르인이 에덴 동산에서 살던 사람들로부터 물려받았고, 그러한 전통은 동쪽으로는 페르시아와 아라비아 반도에 살던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서쪽으로는 (아마도 아씨리아를 통해서) 지중해 동부에 있는 키프러스 섬과 중앙의 크레테 섬을 통하여 그리스인에게 전해진다. 그러한 생명나무 이야기는 다시 로마의 북부에 정착했던 에트루리아인에게 전해지며, 이들은 일찍부터 그리스인과 교류가 많았다.

크레테 섬의 크노소스 궁전이 생명나무의 전통을 간직한 것에 관하여 적은 것이 있으니 이를 참조하기 바란다. 이번에는 서향 길목에 있는 키프러스 섬의 생명나무 기록에 관하여 살펴 보기로 한다.

키프러스 섬은 기원전 1만년 경부터 사냥하고 채소나 과일을 수집하던 원시인들이 정착했다고 한다. 미케네의 그리스인들이 기원전 1400년 경부터 키프러스 섬에 드나든 데는 좋은 이유가 있다. 키프러스 섬에는 구리 광산이 있었고, 구리는 청동기 문화를 건설하는 데 필수인 금속이었다.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이 기원전 333년에 키프러스를 점령했고, 그가 죽은 뒤에 키프러스는 프톨레미(Ptolemy)의 지배를 받았다.

키프러스의 광산에서 주조된 구리판. 사람이 수송하기 쉽게 판대기 모양으로 구리를 주조하였다. Copper라는 단어 자체가 aes Cyprium (키프러스의 놋)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할 정도로 키프러스는 고대에 구리 광산으로 유명했다.
키프러스는 한때 베니스의 지배를 받았으나 오토만 제국의 손에 넘어갔다. 2차 대전 후에는 섬 북쪽의 터키인 지역과 남쪽의 그리스인 지역으로 갈라졌으나 분단하는 벽을 2008년에 없애 버렸다.

1. 건축물에 나타나는 생명나무 무늬


무덤의 기둥(stele), 기원전 5세기, 골고이에서 출토. “생명 나무”라고 적혀 있다. 생명나무 안에는 스핑크스 두 마리가 속 잎을 지키고 있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생명나무(arbre de vie) 무늬가 있는 기둥의 머리부분(capital).

2. 세공품에 나타나는 생명나무 꽃무늬

생명나무 꽃무늬의 상아 원반. 기원전 1450-1050년 경.

   

 

(머리에 두르는) 금띠. 생명나무 꽃이 양쪽에 있고, 그 사이에 생명나무 두 그루, 그리고 이를 지키는 동물이 있다.


금띠. 시체의 머리 부분에 놓아 둔 것. 아마도 엔코미(키르러스 북쪽의 도시)에서 출토. 기원전 1300-1200년 경. 미노스와 미케네 문명의 영향을 받은 듯.


시신의 머리띠. 기원전 1600-1050년 경. 엔코미에서 출토. 두 마리의 스핑크스가 생명나무를 지킨다 (발물관의 종려나무 설명은 오류)


일렉트럼으로 만든 컵. 키프러스 출토, 기원전 8-7세기. 그릇의 맨 바깥 줄에는 날개 달린 스핑크스, 사자가 적들에 대항하여 싸우고, 가운데 줄에는 스핑크스가 사람들을 누르고 있다. 맨 가운데에는 날개 달린 신 (수메르인의 조각에서 나온다)이 내려다 보는 가운데 한 정복자가 사람들에게 칼을 휘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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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토기와 석기에 나타난 생명나무 꽃무늬  

 


고대 키프러스 1,2기 (기원전 750-480년), 두 가지 도료를 쓴 토기. 생명나무 꽃이 옆에 보인다. 동심원 무늬를 즐겨 썼다.

생명나무 꽃 무늬가 있는 암포라 (항아리), 동물은 아마도 그리핀.


동심원이 그려진 항아리. 키프러스에서 제조 (기원전 800-750년 경).


티베리우스 황제가 찍은 동전 (서기 14-37년, 예수 시절의 황제). 키프러스에서 주조.


거대한 화병. 기원전 7-5 세기. 키프러스.

4. 키프러스인의 조각

아폴로 청동상. 키프러스의 타마소스에서 출토. 기원전 470-460년 경.

이달리온에서 출토, 기원전 3세기.


무덤에 세운 비석. 생명나무 꽃 밑에 스핑크스가 있다.





키프러스인, 기원전 6세기, 골고이에서 출토.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수염난 사람, 기원전 500-480년, 이달리온 출토, 아폴로이든지 시중드는 신자. 생명나무 꽃무늬가 있는 화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