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죽음

Walter는 미국의 거시경제학의 대가인 터노프스키(Turnovsky)의 제자였다. 가끔 학회에서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러던 어느날 학회에 갔는데, 오스트리아의 엷은 녹색 신사복을 입고 나타난 Walter를 만났다. 한복의 동정이나 카토릭 신부의 옷처럼 가느다란 칼라를 한 오스트리아 전통 정장이 아주 멋이 있었다. 언젠가 오스트리아에 가면 그 나라의 신사복을 한 벌 사 입어 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Walter는 Austria의 남자 정장의 디자인은 다 같지 않고, 지역마다 옷에 붙이는 술 같은 장식이 조금씩 다르다고 했다.

그는 비에나의 경제 대학원(Institut für Hohere Studien)에서 교수 자리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고 했다. 그가 돌아가게 된 것을 축하해 주고, 가더라도 앞으로 학회에 자주 나타나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한 번 고향에 돌아간 월터는 그 후에 다시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이렇게 헤어진 지가 20여년이 되었다. 그래도, 월터는 내가 담당하는 학술지에 국제 경제학이나 거시 경제학 분야에 속하는 논문을 여러 편 발표하기도 했다. (지금은 작고한 Paul Samuelson 교수도 논문을 세 편이나 실었다.)

그런데 지난 해 가을, 그와 같이 연구하던 마르첼로(Marcello, 이태리인)한테서 걱정스러운 소문이 들렸다. 월터가 뇌에 종양이 생겨서 갑자기 수술했는데, 경과가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매해 연초에 미국경제학회(American Economic Association)는 대도시에서 학회를 여는데 관련된 50여 학회가 함께 참여하고 한미 경제학회도 그 중에 하나이다. 지난 20년 동안 이 종합 학회에서 해마다 나는 조그만 칵테일 파티를 열었다. 와인과 비어, 그리고 다른 음식은 호텔에서 주문하면 된다. 유럽에서, 그리고 홍콩, 중국, 일본, 인도에서 사람들이 몰려 오고, 그 동안의 소식을 나눈다. 이번에도 수십 명이 몰려 왔는데, 마르첼로가 칵테일 룸으로 들어왔다. 인사를 대강 여러 사람과 나눈 뒤에, 마르첼로가 입을 열었다.

Marcello: Thank you for accepting our paper.

Kwan: You are welcome.

Marcello: You know what? I was telling you about Walter before. He had a brain surgery, but it was a terminal case and he passed away.

Kwan: I am sorry to hear that. He was still very young!
Marcello: While I was revising the paper, I did try to get some feedback from him. But I never got any response.
Kwan: I also sent him an e-mail, but he did not respond. Anyway, it was very nice of you to complete the paper alone.

다른 사람들이 방에 들어오고 중간에 말을 걸고 해서, 마르첼로와 더 이야기를 계속하지 못했다.


살즈버그 성. 영화 “Sound of Music”에도 나온다.

죽으면 어찌 되는가?

하던 일을 모두 그만두고, 떠나야 한다.

나도 아직 그 지경에 다다르지 않았지만,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

나는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니다. 벌여 놓은 일도 많고, 마무리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구경하고 싶은 곳도 아직 많다.

우리가 준비 되어 있든 그렇지 않든,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죽음이 일찍 올 수도, 늦게 올 수도 있지만, 누구나 죽어야 한다. 그래서 서양인은 사람을 mortal (죽어야 하는 자, 필사하는 자)이라 부른다.

이 세상에 혼자 왔다가, 갈 때도 혼자 간다. 억울한 듯 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가야하니, 억울할 것도 없다. 신(神)은 우리에게 빚진 것이 없을 터이니.
타향에서 내가 죽는다고 해도 나를 기억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都是我的錯! (모두가 내 잘못이다.)

최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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