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노소스 궁전과 생명나무의 꽃

크노소스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 된 도시이다.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토스는 (기원전 484 -425년) 페니키아인(Phoenician)이 페르시아 만에서 살다가 지중해로 이주했다고 한다.

크노소스(Knossos) 궁전은 지중해에 그림처럼 아름다운 푸른 바다 한 가운데, 크레테(Crete) 섬에 지은 궁전이다. 궁궐은 2만 평방미터의 부지에 자리를 잡았다. 땅의 소유권 문제로 이 궁의 발굴이 오랫동안 지연되었으나, 옛 유적은 국가 소유가 되고 Arthur Evans가 발굴을 관리하게 되었다.

이 궁전은 미노스인 시대(기원전 1700-1450년)의 궁전들 중에서 가장 크다. 첫 궁전은 기원전 1900년에 지었는데, 당시에는 7천 명 이상 궁전 근처에서 살았다고 한다. 궁전은 기원전 1700년에 지진이 일어나서 파괴되었으나, 더 크게 재건하였다고 한다. 기원전 1350년 경에 불에 타서 파괴된 후에 사람들이 궁전을 떠났다. 그러니까 지금 발굴한 유적은 늦어도 기원전 1350년의 궁전을 복원한 것이다. 이 미노스인들은 건축 기술 뿐 아니라, 생명나무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1. 구조와 하수도
이 궁전은 크레테의 왕 미노스(Minos)가 전설의 괴물 Minotaur (인신우두)를 가두려고 지었다고 한다. 궁전에는 방이 1300 칸이나 있었다. 가운데 장방형의 너른 뜰이 있고, 네 날개가 이를 둘러싸고 사방으로 뻗는 구조로 되어 있다. 동쪽 날개는 주로 집과 작업장이고, 서쪽 날개는 창고이다. 뜰 동쪽에는 대기실 (anteroom)이 있고, 밑으로 내려가면 보좌와 연회실이 있다. 북쪽 대문 바깥에는 세금 징세소와 정화 예식 웅덩이가 있고, 남쪽 날개에는 웅장한 대문 (Propylon)이 있다.

전기나 촛불을 쓸 수 없는 시대에 궁전 같이 큰 건물을 지으려면, 햇빛을 최대한으로 이용해야 된다. 한 때 이 궁전 지역에는 십만 명이나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사방이 꽉 막힌 건물이 아니라, 가운데를 궁전의 뜰로 비워놓고 네 변에 건물을 올려서 다층의 건물을 지었다. 제일 낮은 곳은 2층, 높은 곳은 5층까지 올린 데도 있다. 처음에는 그다지 높지 않았으나, 자꾸 지어올려 기원전 1500년 경에는 4층 건물이 되었다고 한다. 미노스 왕과 왕비는 각자 자기 아파트가 있다. 경비원이나 사제들처럼, 궁에서 일하는 중요한 사람들은 궁 바로 바깥에서 2층 건물과 지하층이 있는 호화 주택을 짓고 살았다.

많은 사람이 도시에 모여 집단으로 살 때 제일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물 문제일 것이다. 먹거나 목욕할 물을 매일 길으려면 힘이 드니까, 크레테 사람들은 근처의 케팔라 언덕에서 흘러내려 오는 물을 이용하려고 그 언덕 밑에 궁전을 지었다. 빗물 처리는 직경 10에서 15센티미터나 되는 테라코타 도수관(導水管)을 지하에 연결하여 근처의 강으로 보냈다. 그러한 도수관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이 하수도 처리 방법은 현대 문명의 기초이다. 이 기술을 로마 사람이 배웠고, 이들은 다시 유럽 사람들에게 전했다. 한국에 현대식 하수도가 들어온 것은 20세기 초라고 한다.

생명나무 이야기는 창세기에만 잠깐 비치지만, 가나안 땅과 이란, 이락 지역에는 생명나무의 전통이 많이 남아 있다. 이 중동 지역에는 생명나무를 주로 궁전 벽에 돌로 새겼으나, 크레테 섬에, 특히 크노소스 궁전에는 그림으로, 천장과, 왕비의 침실과 항아리에 남아 있다.

 

2. 궁 지도
 

다음의 지도를 참조하면 장소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장소 번호는 지도에 있는 번호와 같다.

(1) 서쪽 뜰

궁으로 들어 가기 전에 서쪽 뜰에 담이 있고, 이 뜰에는 세 개의 큰 구덩이가 있다. 아마도 여러 가지 물건을 저장하는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4) 복도

이 복도에는 제사드리는 행렬의 벽화가 걸려 있었다고 한다. 제사 행렬은 이 길로 남쪽 대문을 통해서 중앙의 뜰로 간다. 크레테 사람들은 뱀을 숭상했다. 가운데 있는 여자는 뱀의 여신을 상징하는 듯. 뱀 여신상의 이라클리온(Heraklion) 박물관에 있는데, 온통 뱀에 감겨 있다. 창세기의 이야기와 관련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이라클리온 박물관에 있는 석관(sarcophagus)에 장식되어 있는,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는 그림이다. 이 석관은 크레테의 아이아 트리아다(Hagia Triada, Holy Trinity) 궁 지역에서 발굴되었다. 제사는 중앙의 넓은 뜰에서 행했을 것이다. 두 사제가 희생 동물을 가져오고 셋째 사제는 배를 드리는데, 이 배는 죽은 사람이 타고 저 세상으로 갈 배이다. 바른 쪽에 팔다리가 없고 꼿꼿이 서 있는 사람은 죽어서 미라가 된 사제이자 임금.

임금 뒤에는 시체를 두는 (지하) 저장소가 있고, 이것은 생명나무의 꽃으로 장식되어 있다. 임금 앞에는 제단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고, 선인장 같은 나무가 임금 앞에 있다. S-자의 두 끝에 감긴 것은 생명나무의 꽃이다. 석관 전체가 생명나무의 꽃으로 장식되어 있다.

왼쪽에는 두 기둥 사이에 한 여인이 항아리에 황소의 피를 다른 항아리에 쏟고 있다. 기둥의 꼭대기에는 양날 도끼와 새가 있다. 관을 쓰고 있는 여인은 아마도 왕비(?)인 듯하고 소다리가 담긴 두 바구니를 들고 있고 머리에는 새가 앉아 있다. 그 뒤에 긴 옷 입은 남자는 고대의 칠현금(lyre)을 뜯고 있다. 뒷면에는 밧줄에 묶인 황소와 제단과 거룩한 나무가 있고 (생명나무인 듯), 옆쪽에는 지키는 스핑스 또는 그리핀이 그려져 있다.

(5) 궁 남쪽의 저택

이 집은 궁 남쪽 바깥에 2층과 지하실로 지어진 집이다. 아마도 궁에서 일하는 높은 사람의 집이었던 듯하다.

(6) 남쪽 대문 (South Propylon)

남쪽 입구로 들어가면 궁안에 남쪽 대문에 큰 흰 기둥이 있고, 여기서 “푸른 옷을 입은 여자들” 벽화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옛날 크레테/페니키아 여인들의 옷차림을 잘 보여 준다.

(7) 항아리 저장소


서쪽 날개 전체가 스무 줄이 넘는 저장소가 있고, 여기에 거대한 항아리들이 드문드문 있다. 꽉 채웠다면 400개의 항아리가 주판알처럼 나란히 저장될 수 있었다고 한다.

(8) 왕좌가 있는 방

왕좌가 있는 방은 장방형 뜰의 서북쪽에 자리를 차지한다. 곁방에는 빛이 많이 들어온다. 나무로 된 의자가 있고 벽에는 생명나무의 (장미처럼) 꽃잎 장식이 한 줄로 가로로 드리워져 있다. 왕좌가 있는 방에는 그리핀(griffin) 두 마리가 보좌를 지킨다. 그리핀 어깨 부분에 생명나무 꽃이 보인다. 보좌는 설화석고(alabaster)로 만들어졌다고 하나, 색이 검다. 보좌가 있는 방 위에는 더 높은 구조물이 있다. 여기에 황소 그림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11) 남쪽 입구

이 입구를 통해서 궁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 긴 복도에는 백합 왕자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고 한다. 왕자라고 하기보다는 제사와 정치가 혼용되던 당시에 사제인 임금이었던 것 같다. 크레테인은 그리스인과 달리 키가 컸다 (180센티미터 정도).

(12) 대계단

대계단은 중앙의 뜰에서 동쪽으로 바로 연결되고,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지하의 여러 방이 보인다. 트인 구조이기 때문에 지하이지만 충분히 밝다. 벽에는 8자 그림이 붙어 있는데 배경에는 수평으로 생명나무의 꽃 무니가 보인다.

(14) 왕비의 아파트 (Queen’s Megaron)

왕비의 아파트는 중앙의 뜰 서남쪽에 담 가까이에 붙어 있다. 조용한 곳을 찾은 듯. 이 방은 왕의 아파트와 제일 가깝다. 이제는 막아 놓아서 여행자는 더 들어 갈 수 없다. 위 사진은 예전에 찍은 것.
왕비의 아파트는 생명나무의 꽃으로 입구가 옆으로 엎어진 E-자로 입구를 장식하고 있고 그 위에는 아름다운 돌고래 벽화가 그려져 있다. 3천 5백년 전에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다니! 밑의 그림은 최근에 발굴된 조각들을 기초로 화가가 왕비의 거실을 그린 것이다.

여기서 발굴된 천장 조각에도 소용돌이 무늬 속과 사이에 생명나무 꽃이 있다.

참고로 대영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다음 청동판은 생명나무와 그 꽃을 잘 보여준다.


이 청동판은 옛날 솔로몬을 찾았던 시바의 여왕이 다스리던 시바(지금의 예멘 지역)에서 발굴된 것인데, 맨 윗줄에 생명나무가 있고 스핑크스 두 마리가 생명나무를 지키고 있다. 그리핀은 스핑크스가 와전된 듯.

(15) 왕의 아파트 (Hall of Double Axes or King’s Megaron)

왕의 아파트는 왕비의 아파트와 제일 가까운 건물이고, 뜰의 서쪽에 담 가까이 붙어 있다.

왕의 아파트 또는 양날 도끼실은 아주 듬직한, 검은 색 칠한 둥근 기둥들이 떠받든다. 그 윗층에 건물은 무엇인지 모르지만 日자 모양으로 돌벽의 흔적만 조금 남았다. 이 둥근 기둥들은 그리스의 다른 건물과 달리 아래보다 위쪽이 더 굵게 만들어져 있다. 이후에 서양의 은행이나 정부 건물, 특히 이탈리아의 교회 건물은 이러한 크레테의 원주(圓柱)를 이용하여 지었다.

(17) 큰 항아리 저장소

이 큰 항아리 저장소는 궁 바깥, 동북쪽에 있다. 이 항아리들은 여러 사람이 들기 위하여 고리를 사면에 붙인 듯하다.

(19) 북쪽 대문

북쪽 입구에는 원주 뒤에 황소 벽화(bull fresco)가 그려져 있다.

(21) 정화(淨化) 예식 웅덩이

에반스에 따르면, 이곳은 정화 예식에 쓰였고, 방문객들이 궁전에 올 때 여기서 몸을 씻었다고 한다.

이것은 이라클리온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는 항아리. 첫째 줄은 생명나무 가지에 꽃 봉우리가 열리는 무늬이다. 둘째는 물론 생명나무의 꽃이다. 셋째 줄은 가지 사이에 피려고 하는 꽃을 위에서 본 것. 넷째 줄은 가지 사이에 아직 열리지 않은 생명나무 꽃봉오리를 옆에서 본 무늬이다. 다섯째 줄은 피고 진 꽃을 점으로 표현하고 열매가 생기는 것을 위에서 본 것일지 모른다. 여섯 째 줄은 생명나무의 열매이다. 이것으로 보아 생명나무는 관목(shrub)인 것 같다.

이라클리온 시청 회의실 (Venetian Loggia)

베니스 스타일로 지은 시청 회의실. 창문의 무늬는 물론 생명나무의 꽃을 옆에서 본 것이다.

3. 생명나무의 전통
 

생명나무에 꽃이 피었을까? 물론이다. 꽃이 피지 않고 열매를 맺는 나무는 없다. 그러나 구약 어디에도 생명나무의 꽃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생명나무는 창세기에 에덴 동산 이야기에 잠깐 나오고, 그 뒤에 모세가 유대인을 에집트에서 데리고 나오는 이야기가 나오므로, 생명나무와 이스라엘 사람을 연결시키기가 쉽다. 그러나 이스라엘 전역에 어디에도 생명나무의 그림이나 조각은 찾아볼 수 없다. 혹시 발견된다고 해도, 생명나무의 전통은 유대인에게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던 듯하다.

그러니 창세기의 생명나무 이야기는 유대인이 직접 조상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남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인지 모른다. 유대인이 지금 이스라엘 땅에 정착한 것은 기원전 1200년이니, 구약의 생명나무 이야기는 알파벳과 마찬가지로, 가나안 땅에서 페니키아인으로부터 빌려온 이야기인 것 같다.

크레테의 아이아 트리아다 궁에서 발견된 석회석 관은 많은 생명나무 꽃으로 장식되어 있고, 동물을 희생하는 과정과 신성한 나무(생명나무?)와 동물을 바치는 제사가 그려져 있다. 이 석관의 연대는 기원전 1370-1320년이니, 아케나톤(Akhenaton) 왕이 에집트를 다스리던 시대요, 모세가 이스라엘에서 유대인들을 데리고 나오는 것보다 1백년이나 앞선다. 이 때 이미 생명나무는 크레테 사람의 일상 생활, 종교 생활에 중요했다.

생명나무의 꽃은 크노소스 궁에 널려 있다. 윗 사진에 보는 파이스토스(Phaistos) 디스크 맨 가운데도 있고, 여왕 침실의 입구에도 있다. 보좌를 지키는 두 마리의 그리핀도 생명나무 꽃을 어깨에 달고 있다. 정화 예식을 거치는 두 젊은이도 허리띠에 생명나무 꽃장식을 달고 있다. 푸른 옷을 입은 여인들의 옷자락에도 가지 무늬가 있다. 천장에 있는 소용돌이치는 가지 무늬 속에, 또 그 사이에도 생명나무의 꽃이 있다. 항아리에는 생명나무의 열매와 꽃과 열매와 가지가 다 있다. 다시 말해서 생명나무의 꽃은 미노스인을 포함하여 페니키아인의 일상생활에 크게 중요한 것이었다.

최은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