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서(Book of Jonah)에는 하나님이 요나에게 메소포타미아 북부에 있는 니느베로 가서 그 도시에 대적하여 예언하라고 명하지만 요나는 배를 타고 다른 곳으로 간다. 풍랑을 만나자 선원들이 그를 바다에 던지고 물고기가 그를 삼킨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번에는 니느베에 가서 니느베가 망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왕과 시민들이 당장 회개하니 하나님이 이들을 불쌍히 여겨 멸망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요나는 하나님에 대하여 불만이 가득하다.
하루는 박넝쿨의 그늘 밑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었는데 벌레가 박넝쿨을 갉아 먹어 요나는 더욱이나 화가 났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베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니느베는 아씨리아의 3대 주요 도시 중에 하나였고, 요나는 여로보암 2세(Jeroboam II, 기원전 786-746 년)에 이스라엘에서 활약한 선지자이다. 이스라엘은 기원전 721년에 아씨리아 군대의 공격을 받아 멸망된다. 첫째 이사야가 이 시절에, 남쪽 유다에 히스기아 임금이 다스릴 때(기원전 715-686년) 살았고, 아씨리아 임금 세나케립(Sennacherib)은 기원전 701년에 유다의 반란에 응하여 유다를 공격하나 중도에 철수한다.
테일러 기둥(Taylor Prism)에 세나케립은 이렇게 적고 있다.
테일러 기둥.
“유다의 임금 히스기야가 나의 통치에 굴복하려 하지 않으므로, 나는 그를 대적하려고 왔다. 군대의 힘으로, 그리고 내 권세로, 든든히 방어된 도시를 46개나 정복했고, 근처에 흩어진 작은 무수한 도시들을 약탈하였다. 이런 도시로부터 젊은이와 늙은이, 남자와 여자를 200,156명을 포로로 데리고 갔고, 말과 노새, 당나귀와 낙타, 황소와 양은 수를 셀 수 없이 많았다. 예루살렘 주위에 탑을 쌓고, 히스기야 왕이 새장 속의 새처럼, 도망갈 수 없도록 대문 앞에 둑을 쌓아서, 예루살렘에 가두어 두었다. … 히스기야가 내 군대의 세력에 겁을 먹고 예루살렘의 유지와 장로을 보내어 30탈렌트의 금과 300 탈렌트의 은과 다양한 보물을 바쳤는데 엄청난 전리품이었다. 이 모든 것을 내 권력의 자리 니느베로 가져왔다.”(위키에서)
사르곤 2세가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을 먼저 멸망시켰다. 아씨리아는 정복한 지역의 주민을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서 다른 민족들과 섞여 살게 하는 정책을 썼다. 성경에 따르면, 히스기야 왕이 공물을 바쳤는데도 세나케립은 군대 사령관을 보내 예루살렘을 포위하였다. (자신은 에집트를 침공했다.) 이사야의 예언대로 밤 동안에 천사가 185,000이나 되는 아씨리아 군대를 몰살하였다고 한다.
그러면 이 둘 중에 어느쪽 말이 맞는가?
아마도 절반씩 맞을 것이다. 히스기야 왕이 많은 공물을 바친 것을 양쪽이 다 인정하고 또한 많은 포로가 잡혀간 듯하다.
헤로도토스 (Herodotos)에 따르면(위키 참조) 세나케립의 군대에 재난이 닥쳤다고 한다. 에집트 군대와 세나케립의 군대가 펠루시움(Pelusium)에서 대치하고 있는데 밤 사이에 수많은 쥐들이 몰려와서 화살통과 활의 줄과 방패에 붙은 가죽 끈을 먹어치워서 아침에 싸움이 시작되었을 때 방비할 무기가 없어 몰살당했다고 한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바빌론의 역사가 베로수스(Berossus)는 아씨리아 군대에 질병이 돌아 185,000명이 죽었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아씨리아의 군대가 둘로 나뉘어, 펠루시움에, 그리고 예루살렘에 오랫동안 대치하고 있는 동안에 깨끗한 음식을 먹지 못하여 질병이 돌아 많은 아씨리아 군사가 병들어 본국으로 철수한 듯하다. 아마도 쥐가 이 질병과 상관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상당수의 유대인이 잡혀간 듯하다. 아씨리아는 후일에 (기원전 605년) 바빌론과 메데스의 침공을 받아 멸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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