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죽은 뒤에 부활한다면 나사로의 몸처럼 육신 그대로 부활할 것인가, 아니면 부활하신 예수의 몸과 같은 새 몸을 입을 것인가?
예수의 부활은 나사로의 부활과 판이하게 차이가 있다.
(1) 예수는 부활한 뒤에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를 만지지 말라(noli me tangere)고 말한 것은 아마도 나사로의 몸과 다른 형태의 몸이었기 때문이다. 마리아가 손으로 만졌다면 예수의 몸을 뚫고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2) 부활한 뒤에는 시집도 안 가고 장가도 안 간다니, 자식을 낳는데 쓰이던 부분이 부활한 몸에는 없는 듯하다. 이것은 부활한 뒤에 입는 몸이 생전의 몸과 다르다는 증거이다.
(3) 부활한 모습이 생전의 모습과 어딘가 다를지도 모른다는 것은 막달라 마리아의 반응이 암시한다. 막달라 마리아는 몇 년 동안 주를 따라다녔어도, 부활하신 예수를 첫눈에 알아보지 못했다. 목소리를 듣고서야 겨우 주를 알아보았다.
Bronzino (1560-62년 경), 나를 만지지 말라.
(4) 사도들이 바깥에 나다니면 잡힐까 겁이 나서 문을 닫고 마가의 다락방에 틀어박혀 있었는데, 예수가 문도 열지 않고 그 방에 불쑥 나타났다는 말은 그의 부활한 몸이 물질을 통과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또한 문을 열고 나가지 않고 예수는 그들 앞에서 사라졌다.
(5) 다른 복음에는 예수가 부활한 뒤에 한번도 음식을 들었다는 기록이 없다. 오직 누가복음(24장)이 예수가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손과 옆구리를 보여준 다음에 먹을 것을 달라고 하시고, 제자들이 그에게 생선 한 토막을 드렸더니 잡수셨다고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는 이상하다.
아마도 같은 대목에서 요한복음(20장)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문을 닫고 숨어 있었는데 예수가 나타나서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었다고 하며, 전혀 음식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이때는 도마가 자리에 없어, 다시 사도들이 도마와 함께 문을 걸어 닫고 있었을 때 예수가 다시 나타났다 하고 이때도 전혀 음식이나 생선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요한은 직접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본 사실을 이야기했고, 누가는 자리에 없었다. 여러 신자들에게 얻어들은 이야기를 적은 것이니 누가의 말에는 정확성이 떨어진다. 게다가 아무도 먹지 않는데 예수 혼자만 먹을 것을 달라고 했다는 것도 이상하다. 요한복음(21장)에는 일곱 제자가 티베리아 바닷가에 있을 때 예수가 나타나서 빵과 물고기를 떼어 제자들에게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고, 이를 잡수셨다는 이야기는 없다.
이를 종합해 보면, 부활한 예수의 몸은 어떤 때는 물질을 통과하여 닫힌 방에 문을 열지 않고 들어갈 수도 있고, 때때로는 물질을 만질 수도 있었던 듯하다. 이 세상의 음식을 만질 수는 있어도, 음식은 드시지 않은 듯하다. 그럴 것이 예수의 부활한 몸은 음식을 소화할 내부의 기관이 없고, 있었다면 소변대변을 보아야 하는데, 그러한 물질 몸은 닫힌 방을 뚫고 제자들에게 나타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죽고나서 부활한다면, 나사로처럼 죽기 전의 몸과 같은 육체가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의 몸과 같은 새 몸을 입고 부활할 것이다.
Neff, 1948.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최은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