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부활의 과학적 분석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서 사람들에게 돌아와 이야기한 예는 인류 역사상 꼭 두 번 기록되어 있다. 하나는 나사로를 예수가 부활시킨 것이요, 다른 하나는 예수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뒤에 사흘 째, 약 36 시간 만에 (금요일 오후 6시쯤부터 일요일 새벽 6시쯤 까지)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 여러 사람들에게 나타난 것이다. 그 외에는 부활했더라도 생전에 알던 사람들에게 돌아와 이야기한 적이 없다. [과학적 논리를 따지는 글이므로, 성자에 대한 존칭을 생략하니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출애급기는 모세가 지팡이를 던져서 뱀으로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오늘날 21세기의 현대인으로서 이런 요술 지팡이 이야기를 믿을 수는 없다. 모세가 에집트에서 나오던 때는 아마도 기원전 1250년 경이었고, 이 당시의 사람들은 과학과 마술을 구별하지 못하던 때였고, 또 사실이 아닌 것을 불려서 이야기하는 경향도 다분히 있었던 듯하다.

여호수아(10장)에는 여호수아가 아모리 족속을 죽이려고 여호와에게 해와 달을 멈추어 달라고 기도하니 여호와가 그런 기도를 들어주어 해가 중천에 머물러서 하루 종일 속히 내려가지 않았고, 그래서 이스라엘 족속이 원수를 갚았다고 한다. 여호수아가 원수를 갚기 위하여 (좋지 않은 의도로) 기도하였으니, 자연법칙을 만들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하나님이 그런 기도를 들어줄 리는 만무하다.

그런데도 구약에는 여호와가 45억년이나 나이 먹은 태양이 움직이는 것을 멈추었다고 적혀 있으니, 유대인의 과장 실력이 세계에서 제일인 듯하다. 그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쳤지, 원수를 갚으라 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1천년 사이에 마음을 고쳐 잡수셨을 리도 없다. 그러고 보면 구약의 여호와와 예수가 가르친 하나님은 전혀 다른 분이었는가 보다. 마시온(Marcion)이 처음에 신약 경전을 수집할 때, 누가복음과 바울의 편지만을 고르고 구약을 멀리한 것이 이해가 간다.

그러면 예수의 부활을 모세가 지팡이를 뱀으로 만든 것과 같은 수준의 마술, 아니면 초기의 신자들이 불려서 지어낸 이야기로 치부할 것인가?

1. 육신 그대로의 부활의 문제점
 

나사로는 죽은 지 사흘이 넘어서 시체에서 냄새가 났을 정도로 확실히 죽었는데, 죽기 전의 몸으로 다시 부활한 것 같다. 과학자랍시고 자기 눈으로 보지 않은 것을 안 믿는 태도는 상당히 위험하다. 과학은 관찰이 가능한 사실을 다루고, 되풀이하여 검증할 수 있는 사실에 근거를 두지만, 나사로처럼 육신 그대로 부활한 경우는 한 번밖에 없으니, 되풀이하여 시험할 수 없다.

자신의 부모가 정말로 부모라는 과학적 증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자신이 태어나는 것을 제 눈으로 확인한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많은 사람이, 개인적으로, 또 공동으로 나사로와 예수가 부활한 것을 증언하였으니, 양자택일할 경우에, 이것을 사실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사로는 부활한 뒤에 얼마 있다가 다시 죽었을 것이다. 몸이 되살아 났다가, 아마도 지병으로 다시 죽었을지 모른다. 이 나사로가 문을 잠근 방에 나타났다든가 하는 기록은 없다. 정상인으로서 생활하다가 다시 죽은 듯하다.

나사로의 부활은 임시 부활이었고, 그 문제점은 몇 년밖에 더 살지 못할 몸으로 부활한 것이다. 우리의 육체는 백년도 살기가 어렵다. 부활한다 해도 세월이 지나면 몸이 말을 잘 듣지 않을 터이니, 그런 몸을 끌고 다녀보았자, 다시 사는 기쁨이 크지 않고 고통이 많을 것이다.

새 몸을 입고서 영원히 산다고 해도 나사로와 같이 죽을 때 모습 그대로 부활한다면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젊어서 죽는 것이 나을 것이다. 늙어서 죽고나서 늙은 모습으로 다시 부활한다면 곤란한데, 주름살이 많은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기도 싫을 것이다. 그런 모습으로 영생한다면 더군다나 곤란하다.

2. 부활한 예수의 몸
우리가 죽은 뒤에 부활한다면 나사로의 몸처럼 육신 그대로 부활할 것인가, 아니면 부활하신 예수의 몸과 같은 새 몸을 입을 것인가?

예수의 부활은 나사로의 부활과 판이하게 차이가 있다.

(1) 예수는 부활한 뒤에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를 만지지 말라(noli me tangere)고 말한 것은 아마도 나사로의 몸과 다른 형태의 몸이었기 때문이다. 마리아가 손으로 만졌다면 예수의 몸을 뚫고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2) 부활한 뒤에는 시집도 안 가고 장가도 안 간다니, 자식을 낳는데 쓰이던 부분이 부활한 몸에는 없는 듯하다. 이것은 부활한 뒤에 입는 몸이 생전의 몸과 다르다는 증거이다.

(3) 부활한 모습이 생전의 모습과 어딘가 다를지도 모른다는 것은 막달라 마리아의 반응이 암시한다. 막달라 마리아는 몇 년 동안 주를 따라다녔어도, 부활하신 예수를 첫눈에 알아보지 못했다. 목소리를 듣고서야 겨우 주를 알아보았다.

Bronzino (1560-62년 경), 나를 만지지 말라.

(4) 사도들이 바깥에 나다니면 잡힐까 겁이 나서 문을 닫고 마가의 다락방에 틀어박혀 있었는데, 예수가 문도 열지 않고 그 방에 불쑥 나타났다는 말은 그의 부활한 몸이 물질을 통과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또한 문을 열고 나가지 않고 예수는 그들 앞에서 사라졌다.

(5) 다른 복음에는 예수가 부활한 뒤에 한번도 음식을 들었다는 기록이 없다. 오직 누가복음(24장)이 예수가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손과 옆구리를 보여준 다음에 먹을 것을 달라고 하시고, 제자들이 그에게 생선 한 토막을 드렸더니 잡수셨다고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는 이상하다.

아마도 같은 대목에서 요한복음(20장)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문을 닫고 숨어 있었는데 예수가 나타나서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었다고 하며, 전혀 음식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이때는 도마가 자리에 없어, 다시 사도들이 도마와 함께 문을 걸어 닫고 있었을 때 예수가 다시 나타났다 하고 이때도 전혀 음식이나 생선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요한은 직접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본 사실을 이야기했고, 누가는 자리에 없었다. 여러 신자들에게 얻어들은 이야기를 적은 것이니 누가의 말에는 정확성이 떨어진다. 게다가 아무도 먹지 않는데 예수 혼자만 먹을 것을 달라고 했다는 것도 이상하다. 요한복음(21장)에는 일곱 제자가 티베리아 바닷가에 있을 때 예수가 나타나서 빵과 물고기를 떼어 제자들에게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고, 이를 잡수셨다는 이야기는 없다.

이를 종합해 보면, 부활한 예수의 몸은 어떤 때는 물질을 통과하여 닫힌 방에 문을 열지 않고 들어갈 수도 있고, 때때로는 물질을 만질 수도 있었던 듯하다. 이 세상의 음식을 만질 수는 있어도, 음식은 드시지 않은 듯하다. 그럴 것이 예수의 부활한 몸은 음식을 소화할 내부의 기관이 없고, 있었다면 소변대변을 보아야 하는데, 그러한 물질 몸은 닫힌 방을 뚫고 제자들에게 나타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죽고나서 부활한다면, 나사로처럼 죽기 전의 몸과 같은 육체가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의 몸과 같은 새 몸을 입고 부활할 것이다.

Neff, 1948.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최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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