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 시대의 도기와 옥기(玉器)

춘추 첫페이지. 아마도 1656년 출판.

1. 춘추 시대의 역사적 중요성
춘추시대는 예수가 탄생한 시기를 제외하고, 인류 역사에서 정신적, 영적으로 가장 중요한 시기로 보인다.

중국 역사에서 춘추 시대는 기원전 771년부터 476년까지 계속되는 기간이며 (어떤 학자들은 403년까지 본다), 대체로 동주(東周) 시대의 전반부로 볼 수 있다. 이 이름은 공자가 지은 춘추라는 책에서 유래하는데, 이것은 노(魯)나라의 역사를 적은 책이다.

춘추 시대에 중국에서는 노자가 (기원전 6세기) 일어나 만물이 하나의 도(道)에서 태어난다고 설파하였다. 이 뿐 아니라, 노자의 무위(無爲) 사상은 아담 스미스 등이 주장한 자유방임주의를 2천년이나 앞선다. 공자는 (기원전 551 – 479년) 젊은이로서 노자를 만나 본 적이 있다. 공자는 문명의 기본이 가족임을 깨달았고 삼강오륜을 가르쳐 동양 사회를 평화롭게 만드는 데 기여하였다.

논어 첫 페이지 (아마도 1779년 출판), 공자의 말씀을 모아 제자들이 지은 책.


예기 (禮記, Book of Rites), 홍콩 城市大學 도서관, 메이레키 2년 (1656년 에 1판), 안헤이 8년 (1779년 2판)

춘추 시대는 동양에서만 중요한 시기가 아니었다. 인도에서는 석가모니(또는 고다마 싯달타, 기원전 563년 경 – 483년)가 일어나 팔정도(八正道)를 통해서 해탈하기를 가르쳐 동양에까지 그 가르침이 퍼졌다.

조로아스터는 기원전 580년 경에, 다신교를 믿던 페르샤인들에게 유일신 아우라 마즈다(Aura Mazda)를 가르쳤다. 그는 하늘과 땅의 창조자요, 물질과 영 세계의 창조자이며, 신은 윤리를 지킨다고 가르쳤다.

아테네 학교, 라파엘 (1509년). 바티칸 박물관.
별이 많이 묻어 있는 하늘 공을 쥐고 있는 이가 조로아스터이다.

유대인은 야웨가 다른 종족의 신들보다 힘이 더 세다고 믿었다(henotheism). 기대와 달리 유다 왕국은 기원전 586년에 바빌론에게 정복당하여 망해 버렸고, 예루살렘은 황폐해지고 5만 명이나 바빌론으로 끌려갔다고 한다. 이들은 끌려 가면서 하나님에게 버림받았다고 느꼈다. 둘째 이사야는 타향에서 이렇게 고아 처지의 유대인들을 위로하며 부족신보다 훨씬 더 높은 하나님을 가르쳤다.

서양 세계에서는 춘추 시대의 끝에 소크라테스가(기원전 470- 399년) 태어나 서양 사람들에게 윤리와 철학을 가르쳤다. 그는 글을 남기지 않았어도 훌륭한 제자 플라톤을 두었다.

소크라테스의 반신상, 카피톨리움 박물관, 로마.


소크라테스의 죽음 (Jacques-Louis David 작품, 1787년)

이렇게 인류의 정신 문화에 지대하게 기여한 여섯 사람이 춘추시대에 일어났다는 것은 우연으로 보기가 어렵다. 그렇게 위대한 사람이 천년에 한 번 한 민족에게 태어나는 것도 이상하고 드문 일인데, 여섯 명이나 거의 동시에 사방에서 일어나 인류를 가르친 것이다.

 

2. 춘추 시대의 옥기(玉器)
 

춘추 시대의 사람들 사는 모습이 어땠을까? 요즈음의 1인당 국민 소득으로 따지면, 1년에 $500이 안 되었을 것이다. 철기 시대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고, 제사에 쓰는 그릇은 청동기로 만들어졌다. 서민들이 청동기 그릇을 널리 쓴 것 같지는 않다.

옷가지나 나무로 만든 것은 천년은 커녕, 몇 백년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물건은 대체로 도기와 옥기이다.


춘추 시대의 중국의 판도, 공자는 기원전 497년에 제자들과 함께 魯나라를 떠나 14년 동안 주유열국 후에 488년에 돌아온다.


푸른 옥(靑玉, green jade)으로 만든 펜단트. 홍콩 역사 박물관
여러 가지 옥패나 펜던트가 사람의 온화한 인품을 상징한다고 생각되어 귀족들이 이용했다.


구름 무늬의 옥패(玉佩)

이것도 녹색 옥으로 만들었고 궁중에서 쓰인 초롱의 모양이다. 위와 아래에 2개씩 구멍이 뚫려 있는데 귀족들의 옷에 실로 걸기 위한 것이다. 북서쪽의 진나라(秦國) 펜단트는 용의 머리가 네모나고 꼬리가 뾰죽한 특징이 있다. 용 두 마리가 서로 꼬리를 문 것을 추상적으로 새긴 듯.


옥벽. 대영박물관


춘추 시대 옥벽(玉璧)

제사 지내는 데 쓰인 옥벽. 주나라 예식에는 청옥벽(green jade)이 하늘에 제사드리는 데 쓰였다고. 귀족들 사이에 선물로, 또 장례에 쓰였다. 춘추 시대 옥벽의 무늬는 대체로 간단하나 전국 시대에 이르러 이 무늬는 곡식의 낱알이나, 구름이나, 풀잎 모양(蒲紋)이나 뿔없는 용(리,?) 무니도 있다. 민 무늬 옥벽은 신석기 시대, 양저 문화에 나타난다.


이 옥벽에는 곡식 낱알 모양이 볼록 튀어 나와 있고, 가장자리에는 풀인지 용인지 꿈틀거리고 있다.


옥 손잡이(玉柄, 옥병), 구름 무늬 손잡이.


석경(石磬)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거나 축제가 있을 때 청동 종과 함께 뚜드려 함께 연주(?)했다고 한다. 제사 드리는 사람의 권위를 나타낸다고.

3. 춘추 시대의 도기(陶器)
 

옥기에 비해 도기는 오지그릇이라 대체로 투박하고 두툼하다. 옥기는 귀족들이 쓰는 장신구요, 도기는 보통 서민도 쓰는 도구이다. 아직 자기(瓷器)가 발명되지 않아서 그릇은 오늘날의 그릇처럼 얇고 정교하게 만들 수 없었다. 당나라 시대가 되기까지는 여러 색깔도 넣을 수 없었다.


동주(東周)에서 제사에 쓰였던 정(鼎), 산프란시스코 박물관



제사에 쓰이는 술 항아리.


홍콩박물관
이런 그릇에 중국인은 찌개를 끓였을지 모른다.


춘추 시대 청색 도기(陶器) 항아리 (Xibaolou Museum of Celadon). 전국 시대의 것보다 무늬가 대체로 단순하다.


손잡이 달린 토기 항아리. 무늬를 참으로 잘 만들었다.


이 항아리(罐)는 이미 만든 도기 위에 눌러서 무늬를 넣은 것같이 보인다. 도공이 청자 위에다 S-자 무늬를 덧붙이려다가 잘 안 된 듯하다. 서툰 솜씨는 당시에 정교한 도구가 많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청색 오지 그릇. 공자 시대에 중국인은 이런 그릇에 밥이나 반찬을 담아서 먹었는지 모른다.

이것은 무엇을 끓이는 데 썼을까? 손잡이는 속에 액체를 넣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주의 항아리. 빗살 무늬가 보인다.

최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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