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 안젤리코 (Fra Angelico)

1.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c.1395-1455)의 생애 원래의 이름은 Guido di Piero (c. 1395-1455)인데, 천사와 같은 수도사라는 뜻으로 프라 안젤리코로 불렀다. 투스칸 지방의 피에솔레 근방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당대의 사람들에게 그는 Fra Giovanni da Fiesole(피에솔레 출신의 수도사 조반니)로 알려졌다.

바사리에 따르면, 프라 안젤리코는 처음에 책을 장식하는 화가로서 그림 훈련을 받았다. 도미니카 수도회의 수도승이었다. 영국의 작가 윌리암 로세티에 따르면 열심히 기도하지 않고는 붓을 들지 않았다 하고, 십자가 처형을 그릴 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자신이 영감을 받은 대로 그림을 그렸고, 따라서 한 번도 그림을 고치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예수의 시신 안치(Grablegung Christi)”를 보면 그런 느낌이 든다. 영감을 얻어 시신 안치 그림을 그린 듯하다. 물론 이런 그림은 사실적이 아니고, 시신이 안치될 당시에 옆에 아마도 적이나 친구나 여인들이 있었을 터이지만 이들은 생략했다. 니고데모도 자리에 있었을 터인데, 빠져 있다.

1408년부터 10년 동안 프라 안젤리코는 코르토나의 도미니카 수도원에 있으면서 벽화들을 그렸다. 1436년부터 10년 동안 피렌체의 수도원에 있으면서 산마르코 제단화를 그렸다. 1445년부터 10년 동안 성베드로 성당에서 벽화를 그렸다. 1455년에 로마에 있는 도미니카 수도원에 머무르는 동안에 죽었다.

안젤리코는 금색과 푸른 색을 많이 썼다. 바사리는 안젤리코가 겸손하고 내세우는 것이 없어 극찬도 부족하다고 평했다.

2. 프라 안젤리코의 작품


시신을 나르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아리마대 요셉. 여인들이 시신을 만졌다는 이야기는 복음서에 없지만, 예수의 시신 처리를 남자들이 대강 해치운 것에 여인들이 마음에 흡족하지 않아 일요일 새벽에 무덤을 찾아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