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탄생과 어린 시절 (기원전 6년 – 서기 8년 9월)

4A: 120편 – 125 편 ‘예수의 탄생과 어린 시절’ (기원전 6년 – 서기 8년 9월)
  이것은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 중에서 120편부터 125편까지 여섯 편의 논문을 요약한 것이다.

120 편에는 미가엘이 유란시아로 떠나기 전에, 자신을 수여하는 사명에 아홉 가지 제한이 부과되었음을 상기시키는 이마누엘의 말씀, 그리고 그가 미가엘에게 주는 일곱 가지 조언이 담겨 있다.

121 편은 예수가 살고 접촉하게 된 시대에 지배했던 서양 문화의 배경과 그리스인의 사명을 설명한다. 예수가 태어났을 때, 지중해 세계는 하나로 통일되어 있었다. 세계 역사에서 처음으로 서양의 주요 도시들이 좋은 도로로 연결되었고 바다에는 해적들이 없어져, 전도사들이 여행하기가 쉬워졌고 지중해 세계 어디에나 복음을 전도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히브리 성서가 그리스어로 번역된 데 영향을 받아 유대인은 일찍부터 신학을 개발하였으나, 예수가 살던 시절에 유대인은 그들의 기원ㆍ역사ㆍ운명에 대하여 고칠 수 없이 고정된 개념을 가지게 되었고, 이스라엘을 구원할 정치적 메시아가 오기를 기다렸다. 이러한 믿음 때문에, 유대인은 하나님이 아버지요 사람들은 형제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대인은 하늘나라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사명을 잃었고, 그리스인이 대신 이 사명을 맡게 되었다.

122 편에서 125 편까지, 네 편의 논문은 예수의 탄생과 어린 시절에 자라는 과정, 그리고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의 성전을 방문한 경험을 묘사한다.

인류에 최대한의 영향을 미치려면 예수는 당시에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가장 발달한 나라에서 태어나야 했다. 또한 온 세계에 그의 가르침이 전파되어야 하니까 도로가 잘 발달되고 세계 공용어인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지역에서 자라야 했다. 따라서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카라반들이 지나던 길목이었던 지역, 나사렛이나 알렉산드리아가 예수가 성장하기에 적절한 후보 도시였다.

예수의 족보가 훌륭했음을 강조했던 신약의 저자들과 달리, 하나님은 예수가 평범한 유대인 가족에서 성장하기를 바란 듯하다.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는 그렇게 평범한 쌍이었고, 또한 나사렛에서는 전통적 율법이 다른 지역보다 자유롭게 해석되었다.

예수는 부모가 호적을 등록하려고 여행하던 중에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 헤롯 임금이 2 살 미만의 어린아이를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만, 요셉과 마리아는 사전에 이 정보를 받고서, 예수를 데리고 알렉산드리아로 떠난다. 예수와 그 가족은 알렉산드리아에서 2년을 지냈다. 헤롯은 기원전 4년에 죽었는데, 그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예수가 소년기를 나사렛이 아니라 알렉산드리아에서 보냈을 가능성이 있다.

어머니는 예수에게 아람어를 가르쳤다. 예수는 아버지 요셉으로부터 그리스어를 일찍부터 배워서 카라반 여행자들과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었고, 그 결과로 예수는 후일에 로마 세계를 여행할 생각을 품게 된다.

예수가 다섯 살 되던 해, 기원전 2년 2월에 생각 조절자가 왔는데, 그는 이전에 멜기세덱에게 깃들었던 조절자였다. 일곱 살이 되자 이 해 8월에 예수는 나사렛 회당 학교에 들어가서, 히브리어를 익히기 시작했다.

나사렛에서 많은 여행자와 접촉하면서 예수는 이방인을 이해할 준비가 되었다. 열 살이 되어, 서기 4년에 예수는 자기의 사명을 의식한다는 느낌을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표현했다.

열한 살 되던 해 (서기 5년), 예수는 스키토폴리스까지 출장을 간 아버지 요셉을 따라갔다. 노천 극장에 가 보고 원형 경기장에서 이방인의 전시를 보고 예수가 감탄하자, 요셉은 충격을 받았다.

열세 살이 되기 넉 달 전, 3월에 예수는 회당 학교를 졸업했고, 부모와 나사렛의 여행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축하하느라고 예루살렘에 가게 되었다. 가까이서 보니 성전은 예수가 기대한 것 이상이었으나, 입구에 들어서자 예수는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유월절 축제가 끝나고 첫째 날에 요셉과 마리아는 나사렛을 향하여 출발했는데, 예수는 성전으로 들어가서 천사들에 관한 토론에 몰두해 있었고, 부모의 출발 시간이 지난 것을 깨닫지 못했다. 성전에서 보낸 셋째 날에 성전의 토론 회의에서 예수는 다섯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 중에서, 다섯째 질문은 메시아가 정치적 임금이 될 것인가, 아니면 영적 나라를 세우는 사람인가 하는 것이었다. 넷째 날에 요셉과 마리아는 성전에 들렸다가 예수가 선생들 사이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120편, 미가엘의 유란시아 수여
  만투시아 멜기세덱 계시 위원장의 서론.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을 다시 진술하는 일을 감독하라고 “나는 가브리엘로부터 배치받은 게시 위원장이다.”

이마누엘의 당부하는 말씀으로부터 “나는 다음을 발췌하였다.”

1. 일곱째 수여 임무 이마누엘: “나는 너의 우주를 충실히 관리할 것을 서약하노라.”
2. 자신 수여에 주어진 제한 미가엘이 권좌를 비우고 지구에서 인간으로서 사는 동안, 이마누엘이 지역 우주를 충실히 관리할 것을 약속하며, 미가엘의 수여 생활에 9 가지 제한이 부과됨을 설명한다.

1. 너는 유란시아에서 어린아이로서 자라고, 사람으로서 일생을 살다가 체류가 끝나면 아버지께로 올라간다.

2. 사람의 아들로서, 루시퍼 반란을 종결시킬 것.

3. 유란시아 탈퇴 사건이 종결되고 나서, 유란시아 영주 칭호를 받아들일 것.

4. 진실의 영 섭리 시대를 시작할 것.

5. 선생의 신분으로 활동할 것.

6. 진실의 영을 퍼부을 것.

7. 지역 우주 전체를 가르치는 인생을 살 것.

8. 사람에게 하나님을 드러내고, 사람을 하나님에게 드러내려고 활동할 것.

9. 사람의 아들로서 살아도 너의 창조자 특권을 너의 인격과 분리할 수 없다.

또한 7가지 조언을 준다.

1. 이상적 생애를 추구하면서 인간에게 즉시 도움되는 일을 할 것.

2. 가족 관계: 민족의 관습을 따르라.

3. 사회 체제: 경제 및 정치의 개선에 상관하지 말라.

4. 유란시아 민족들의 정상적 발전에 간섭하지 말고, 적극적 종교 윤리를 남기라.

5. 조직된 종파나 집단을 세우지 말라.

6. 영구한 기록을 남기지 말라.

7. 수여 아들은 인간 자손을 남기지 말라고 금한다.

8. 모든 다른 세부는 조절자의 지시를 따르라.

  121편, 미가엘이 자신을 수여했던 시대
  “나는 한때 사도 안드레에게 부속되었던 2차 중도자이다.

“나는 안드레가 기록한대로, 나사렛 예수의 일생의 이야기를 기록하라고 허락받았다.

1. 그리스도 이후 1세기의 서양 예수가 태어났을 때, 지중해 세계 전부가 통일된 제국이었고, 세계 역사에서 처음으로 지중해 세계의 주요 도시가 좋은 도로로 연결되었으며, 바다에는 해적들이 없어졌다.
2. 유대 민족 기억할 수도 없이 아득한 시절부터, 카라반 길이 동양에서부터 이 지역을 거쳐서 지중해 동쪽의 몇 항구까지 연결되었는데, 이 카라반의 반 이상이 나사렛이나 그 근처를 지나갔다.

팔레스타인이 유대교의 고향이고 기독교가 태어난 곳이지만, 유대인은 바깥에 퍼져서 로마 및 파르티아에 퍼져서 장사하고 있었다.

3. 이방인의 형편 이 논문은 예수가 태어난 시대의 배경을 설명한다.

로마 시대에는 그리스어와 문화가 지배했고, 로마는 지중해 세계에 도로를 건설하고 제국을 통일하여 사람들의 안전한 여행을 보장했다.

서기 1세기에 지중해 세계에는 다섯 계층이 있었다.

(1) 귀족

(2) 상인

(3) 중류 계급

(4) 자유 노동자

(5) 노예

4. 이방인의 철학 이방인에게는 4가지 철학이 성행했다:

(1) 쾌락주의자

(2) 금욕주의자

(3) 견유학파

(4) 회의파

5. 이방인의 종교 이방인에게는 4가지 종교가 있었다:

(1) 이교도

(2) 황제 숭배

(3) 점성술

(4) 신비종파

6. 히브리 종교 알렉산드리아에서 히브리 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데 영향을 받아서 서양과 레반트는 서부 학파(헬라파)를 채택하였다.

그리스 철학과 히브리 신학은 바울이 세운 기독교 종파의 기초가 되었다. 필로는 그리스 철학과 히브리 신학을 조화시키려고 애썼다.

바울의 원죄 교리는 미트라교에서 빌려왔고, 히브리 신학이나 필로의 철학이나 예수의 가르침과 공통점이 없다.

요한 복음은 서양 민족을 대상으로 쓴 글이고, 알렉산드리아 기독교 신자들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엮었으며, 이들은 또한 필로의 가르침을 따랐다.

예수가 살던 시절에 흩어진 유대인은 250만에 이르렀고, 축제 때가 되면 예루살렘으로 오곤 했다.

동부(바빌로니아파)와 서부(헬라파) 유대인이 철학 및 신학에 차이가 있어도, 모두가 예루살렘이 예배의 중심인 것을 인정하고 메시아가 오기를 기다렸다.

7. 유대인과 이방인 예수가 살던 시절에, 유대인은 그들의 기원ㆍ역사ㆍ운명에 대하여 고정된 개념을 가졌고,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가 언젠가 온다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 때문에 유대인은 하나님이 아버지이고 사람들은 형제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이러한 태로로 인하여 유대인은 하늘나라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사명을 맡는 민족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민족(그리스인)이 부름받았다. 이들의 신학은 그리스인의 철학, 로마인의 법, 히브리인의 도덕, 예수의 가르침에 기초를 둔 복음이었다.

8. 이전에 쓴 기록 예수의 일생에 관하여 이전에 쓴 기록은

(1) 마가 복음, 베드로가 죽은 뒤에 마가가 썼고 이것은 서기 68년에 완성되었다.

(2) 마태 복음, 마태는 자기 노트를 아람어로 썼고, 나중에 이사돌은 그리스어로 썼다.

(3) 누가 복음, 누가는 바울 및 여러 신자를 회견하여 82년에 이야기를 적었다.

(4) 요한 복음, 3복음에서 누락된 부분을 적었다. 서기 101년에 요한은 나단에게 기록을 부탁했다.

  122편, 예수의 탄생과 어린 시절
1. 요셉과 마리아 요셉의 직계 조상들은 기계공이었고, 마리아의 족보도 마찬가지로 보통 사람이 주류를 이루었다. 땅에서 보통 사람으로 나타나는 것이 미가엘의 계획이었다.
2. 가브리엘이 엘리자벳에게 가브리엘이 엘리자벳에게 기원전 8년 6월 말에 나타났다.

“아들의 이름을 요한이라 부르라. 그가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리라. 내가 또 마리아에게 나타나리라.”

3. 마리아에게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예수가 태어날 것을 예고하였다.
4. 요셉의 꿈 또한 요셉의 꿈 속에서, 눈부신 하늘 사자가 나타나서 세상에서 큰 빛이 될 아들에 관하여 일러주었다.

5. 예수의 지상 부모 요셉이 마리아의 아버지에게, 집에 덧붙인 건물을 짓는 일에 고용되었고, 마리아를 만나게 되었다.

요셉의 집안에서 반 이상이 예수의 가르침을 믿는 사람이 되었으나, 마리아의 집안 사람들은 주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거의 아무도 그를 믿지 않았다.

요셉은 메시아가 영적 인물이라는 개념을 고수했고, 마리아의 가족은 메시아가 정치적 통치자라는 개념을 지지했다.

6. 나사렛에 있던 집 예수의 가족은 나사렛의 교외에서 살았다.

돌로 지은 한칸방이고 지붕이 평평했다.

7. 베들레헴 여행 케자 아우구스투스는 기원전 8년 3월에 로마 제국의 인구를 세라는 칙령을 내렸다. 팔레스타인에서는 1년 연기되어, 기원전 7년에 인구 조사가 실시되었다.
8. 예수가 태어나다 베들레헴에서 기원전 7년 8월 21일에 마리아는 사내아이를 낳았다.

기원전 7년 5월, 9월, 12월에 토성과 목성의 合이 세 번 일어났다.

9. 성전에서 아기를 보이다 정화 예식을 치르려고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데리고 나타나자, 시인 안나가 미리 써 둔 詩를 낭독하였다.

헤롯은 예수를 수소문하여 소득이 없자, 베들레헴에서 2살이 안 된 남자 아기를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려, 베들레헴의 아기 16명이 이슬로 사라졌다.

학살이 있기 전날 밤에,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를 데리고 알렉산드리아로 떠났다.

  123 편, 예수의 어린 시절 초기
  알렉산드리아에서 2년 머물렀고, 예수는 정상으로 자랐다.

이크나톤의 후손인 몇 친구들의 작별회를 열고, 히브리 성서의 그리스어 번역판을 예수에게 바쳤다.

헤롯이 죽은 뒤에, 배를 타고 알렉산드리아를 떠나서 기원전 4년 8월에 요파에 도착했다. 9월 한 달을 베들레헴에서 보냈다. 10월 초에 베들레헴을 떠나서 나사렛으로 갔다. 마리아와 아기는 짐승 위에 올라탔고, 요셉과 친척 남자 5명은 걸어갔다.

1. 나사렛으로 돌아와서 기원전 3년 동생 야고보가 태어났다.

7월에 악성 질환이 나사렛에 번져서, 마리아는 두 아이를 싸들고, 동생의 시골 집으로 달아났고, 예수는 농가에서 사는 경험을 즐겼다.

2. 다섯 살 되던 해 기원전 2년 2월에 생각 조절자가 예수에게 왔는데, 그는 전에 멜기세덱과 함께 봉사한 적이 있었다.
3. 여섯 살 되던 해 (기원전 1년) 예수는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아람어의 갈릴리 방언을 통달했다. 아버지는 그에게 그리스어를 가르쳤다. 그리스어 교과서는 히브리 성서의 사본이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받은 것이다.

여섯 살 되기 직전, 초여름에 사가리아와 엘리자벳이 아들 요한을 데리고 나사렛 가족을 방문했다.

4. 일곱 살 되던 해 (서기 1년) 서기 1년, 7월에 모래 폭풍이 닥쳐, 예수는 계단에서 굴러떨어졌다. 중도자들과 수호 천사가 지켰으나, 이 사고는 이들의 책임이 아니었다.
5. 나사렛에서 보낸 학교 시절 예수는 7살이 되어 8월에 나사렛 학교에 들어가서, 히브리어를 익히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수선 작업장에 드나들면서, 예수는 사방에서 온 사람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예수와 이웃 소년 야곱은 도공 나단의 친구가 되었다.

6. 여덟 살 되던 해 서기 2년에 예수는 동생 야고보에게 알파벳을 가르쳤다.

셋째 동생 시몬이 태어났다.

나호르가 예루살렘으로 예수를 데려가려고 했으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이야기”하고서, 부모가 그에게 더 도움이 되리라는 믿는다고 대답하자, 나호르는 돌아갔다.

  124편, 예수의 어린 시절 후기
  나사렛에서 살면서 예수는 이방인을 이해할 준비가 되었다.
1. 예수가 아홉 살 되던 해 갈릴리에서는 알렉산드리아보다 예수가 최소의 교육을 받고서 생활 문제를 해결하면서, 세상의 여러 종족의 사람들을 만나는 장점이 있었다. 나사렛에 살면서, 예수는 이방인을 이해할 준비가 되었다.

서기 3년에, 예수는 목탄으로 교실 바닥에 선생을 그리다가 들켜서, 요셉과 마리아는 학교에 불려갔다.

2. 열 살 되던 해 서기 4년에, 아버지와 함께 시골길을 걷는 동안, 예수는 자기의 사명을 의식한다는 느낌을 처음으로 표현했다.

예수는 권리를 찾으려고 싸우기 싫어하는 성질을 보였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예수는 목수가 되었고, 나중에는 종교 선생이 되었다.

3. 열한 살 되던 해 서기 5년에, 아버지가 스키토폴리스까지 출장을 갈 때 예수는 따라갔다. 예수가 노천극장을 보고 원형 경기장에서 이방인의 전시를 보고 감탄하자, 요셉은 충격을 받았다.
4. 열두 살 되던 해 서기 6년에,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의 사명에 대하여 다른 의견을 가진 것을 의식하게 되었고, 예수가 아버지의 영적 관점으로 기울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차츰 마음을 상하게 되었다.
5. 열세 살 되던 해 서기 7년에 남동생 아모스가 태어났다.

이해 3월 20일에, 나사렛 회당의 학교에서 예수는 6년의 과정을 졸업하고 “계명의 아들”이 되었다.

6.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행 회당 학교를 졸업했으니까, 예수는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유월절 축하에 참여하러 갔다.

103명의 무리가 4월 4일에 떠났다.

베다니라고 부르는 마을에서, 요셈의 가족은 시몬이라는 사람의 집 가까이서 머물렀는데, 그 집에는 마리아ㆍ마르다ㆍ나사로가 있었다.

임마누엘의 사자가 구원자별로부터 와서 말했다: “때가 왔나이다. 당신의 아버지의 일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이다.”

  125편, 예루살렘에 가신 예수
  예수의 생애에서 예루살렘 방문보다 더 가슴 설레게 하는 사건은 없었다.

마리아가 가기로 결정하자 다른 여인들도 많이 따라왔다.

가까이서 보니 성전은 예수가 기대한 것보다 더 좋았으나 일단 입구에 들어서자 환멸이 시작되었다.

성전은 한꺼번에 20만 명이 넘는 군중을 수용할 수 있었다.

1. 예수가 성전을 구경하다 이방인의 구역에 경박한 창녀들이 누비고 다니는 것을 보고 예수는 분개하였고, 사제들이 동물을 도살하고 피묻은 손을 씻는 것을 보고 역겨워했다.

이러한 인상을 상쇄하려고, 요셉은 예수를 이끌고 美門을 보여 주었다.

2. 예수와 유월절 나사렛에서 온 다섯 가족이 시몬의 집에서 유월절을 축하하였다. 7일 동안 치르는 유월절 축제의 시작이었다.

예수는 수요일 밤에 베다니에서 밤을 지내도록 허락을 받았다.

요셉과 마리아는 나사렛 선생을 동반하여, 예수가 15 살이 될 때, 어느 랍비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하도록 주선하였으나 예수는 무관심하였다.

예수는 150명이 넘는 사람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로마 지방의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가 배우려 하였다.

3. 요셉과 마리아의 출발 예수는 토론을 들으려고 성전으로 들어가서, 천사들에 관한 토론에 몰두해 있었고, 부모의 출발 시간이 지난 것을 깨닫지 못했다.
4. 성전에서 첫째 날과 둘째 날 예수는 오후에 성전 토론에 참석했으나 토론에 끼지 않았고, 베다니로 가서 시몬의 집에서 묵었다.

이튿날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갔고, 둘째 회의에서 질문을 던졌다. 어느 선생이 예수의 나이를 묻고 어찌하여 예수가 그 자리에 있는가 물었으나, 예수가 나사렛 학교를 졸업하였으니 계속해도 된다고 판결이 낼렸다.

 

5. 성전에서 보낸 셋째 날 성전에서 보낸 셋째 날에 예수는 다섯 가지 질문을 던졌다.

다섯째 질문은 메시아가 정치적 임금이 될 것인가, 아니면 영적인 나라를 세울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6. 성전에서 보낸 넷째 날 넷째 날에 요셉과 마리아는 성전에 들렸다가 예수가 선생들 사이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들이 예수가 부모를 어찌하여 버렸는가 묻자, 예수는 대답했다: “어머니는 내 아버지의 집에서 나를 찾기를 기대하지 않으시나이까?”

마리아는 예수를 정치적으로 이방인의 멍에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하는 메시아로 키우려고 결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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