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청년 시절, 서기 8년 9월 – 22년 4월 (4B)

4B. 126 편 – 129 편 예수의 청년 시절 (서기 8년 9월 – 22년 4월)
8년 9월 → 22년 4월

나사렛, 가버나움

126 편부터 129 편까지, 이 네 편의 논문은 예수가 성전에 다녀온 다음, 아버지 요셉이 돌아가신 때(8년 9월)부터 22년 4월에, 두 인도인(고노드와 가니드)과 함께 로마 세계의 여행을 떠나기 직전까지 일어난 사건들을 묘사한다.

오늘날의 나사렛 마을

8년 9월에 아버지 요셉이 세포리스에서 일하다가 다쳐 갑자기 돌아가셨고, 예수는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랍비들 밑에서 공부하려고 예루살렘에 갈 필요가 없어졌다.

11년에는 열심당이라는 민족주의 당파가 생겨서 예수에게 입당하라는 압력이 사방에서 있었으나, 예수는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그의 첫째 의무라는 구실을 대어 겨우 곤경을 면했다.

12년 9월에 엘리자벳과 요한이 찾아 왔고, 대중에게 봉사하며 만날 때까지, 예수와 요한은 서로 만나지 않기로 하였다. 레베카라는 여인의 사랑 고백을 들은 뒤에, 예수는 순수한 친구 관계 외에 다른 관계를 가질 수 없다고 정중하게 설명하였다.

예수는 자기가 인간의 성품을 가진 것을 확실히 알았지만, 세례를 받기까지 신성(神性)의 자각은 느렸고, 자연스럽게 천천히 생겼다.

서기 16년부터 예수는 가족을 떠날 준비를 시작하였다. 가족 회의를 열고 식구들의 직업을 다양화하여 건물 전체를 세우는 계약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자고 합의를 보았다. 또한 세포리스로 가기 전에, 가족 회의에서 야고보를 임시 가장으로 임명했고, 나사렛으로 돌아왔을 때 예수는 가족의 지휘를 다시 맡지 않았다.

17년에 예수는 알렉산드리아를 능가할 종교 철학 학교를 다마스커스에 세우고 싶어하는 어느 다마스커스 상인 및 유지들을 만나고 그들의 계획을 도왔지만, 이를 지도하는 책임을 질 수 없다고 하였다.

19년에 예수는 아우 유다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갔으나 유다가 사고를 저질러, 나사로와 유월절 저녁 약속을 못 지켰을 뿐 아니라, 유다를 대변하려고 군대의 판사 앞에 서야 했다. 예수가 사과하고 분별 있는 말로 변호함으로 유다는 풀려났다.

21년 1월에, 아무런 절차 없이 예수는 가족을 떠났다. 1년 남짓하게 세베대와 함께 일하면서, 예수는 판자를 증기로 쪼이는 방법으로 우수한 배를 만들기 시작했다.

22년 3월에 예수는 가버나움을 떠났다. 살로메의 편지를 가지고 전직 대사제 안나스를 방문했는데, 안나스는 그에게 별 조언을 줄 수 없었다. 겉보기에 우연히, 예수는 어느 부유한 여행자와 그의 아들을 만났다. 이들은 함께 여행하자고 하면서 1년 동안의 임금을 선불하였다. 이 돈으로 요한은 예수를 위하여 부동산을 샀고, 거기에서 나오는 수익을 예수의 아우 야고보에게 보냈다.

  126편, 고난의 두 해
1. 서기 8년 예수의 일생 동안에, 열네 살과 열다섯 살 때가 가장 어려웠던 해였다.

성전의 현자들 사이에서 예수가 공훈을 세운 이야기는 나사렛에서 흐뭇한 이야기였다.

서기 8년, 예수는 회당 선생들 밑에서 상급 독서 과목을 공부해 나갔다.

이 해에, 요셉과 마리아는 맏아들의 운명에 관하여 자주 의심을 품었다. 무슨 초인간이나 기적 같은 일을 해내는가 기대했지만, 그런 희망은 물거품이 되었다.

2. 요셉의 죽음 9월 25일에 세포리스에서 달려온 한 사람이, 요셉이 총독의 저택에서 일하다가 몹시 다쳤다는 소식을 가져왔다.

요셉은 부상으로 죽었고, 마리아는 요셉을 나사렛으로 모셔 왔다. 그는 다음날 선조들과 함께 붇혔다.

예수는 14살이 되어서 신의 성품을 드러내라는 하늘 아버지의 명을 수행할 뿐 아니라, 어머니와 일곱 동생, 그리고 태어날 아기까지 보살피는 책임을 지게 되었다.

예수는 이 책임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랍비들 밑에서 공부하려고 예루살렘에 갈 필요가 없게 되었다.

요셉이 많은 돈을 남겨 두어서, 경제 사정은 순조로왔지만, 마리아와 아이들까지 슬픈 그림자에 덮여 있었다.

3. 서기 9년 서기 9년 4월에 아기 룻이 태어났다. 예수는 거의 20년 동안, 대중 봉사 이전까지, 룻을 딸처럼 돌보았다.

가족의 기도를 가르쳤는데, 이것은 나중에 “주의 기도”로 알려지게 되었다.

하늘 “아버지의 일”을 돌보아야 했지만, 땅에서 아버지의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추리하였다.

유대인 메시아 개념을 생각해 보았고, 예수는 그런 메시아가 되지 않으리라고 확신했다.

다니엘이 묘사했던 ‘사람의 아들’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에녹의 필사본에서, “사람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기로 했다. 이 “사람의 아들”은 만물의 아버지와 함께 하늘의 궁정을 거닐었는데, 빈곤한 필사자를 구원하려고 땅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직도 그가 유대인의 메시아가 된다는 생각을 고수했다.

아버지의 의견을 따라서, 예수는 자기가 다윗의 집 출신이 아니라고 결정했다.

예수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는 것을 배웠다.

4. 회당에서 한 첫 설교 열다섯 살이 되어, 예수는 정식으로 안식일에 회당 설교단에 설 수 있었다. 첫째 안식일에 예수는 아침 예배를 인도하였다.

“주 하나님의 영이 내게 다가오시니, 주가 내게 기름을 부으셨음이라…”

예수는 반반한 판자 두 개에 십계명을 목탄으로, 그리스어로 썼고, 마르다가 나중에 이 판자들을 색칠하여, 야고보의 작업장 벤치 위에, 오랫동안 걸려 있었다.

5. 재정 문제와 싸우다 보통 목수의 수입은 천천히 줄어들었다. 세리에게 뺏길까 두려워, 15살 생일에 성년 헌물로서, 예수는 나사렛 회당 도서관에 성서를 바쳤다.

죽기 전에 요셉이 받을 돈에 대하여 소송했으나, 요셉이 한 푼도 받을 돈이 없었다고 헤롯이 선포하였다.

집 북쪽에, 큰 땅을 빌려서 식구들에게 채소밭으로 나누어 주었다.

  127편, 청년 시절
1. 서기 10년 죄로 어지러워진 세상에서 청년기를 사는 실체 체험을 맛보았으니까, 사람의 아들은 네바돈의 모든 영역에 있는 젊은이의 생활 체험을 이해한다.

서기 10년이 되어, 몸이 완전히 성장했다. 사람과 신의 이중 성질이 나타나는 듯했다.

이 해에 시몬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고, 집 한 채를 팔 수밖에 없었다.

유대인 가정의 여자 아이들은 거의 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회당 학교가 여자 아이들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는 대신 가정 학교를 운영하게 되었다.

이 해가 저물 때가 되자, 예수는 식구들의 결혼을 본 뒤에, 진리 선생으로서 일을 시작할 생각을 가졌다.

2. 서기 11년 서기 11년이 되자, 열심당이라고 부르는 민족주의 당파가 생기고 있었다.

예수는 찾아온 열심당파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으나, 입당하지 않았다. 예수의 반응 때문에, 유대인 젊은이들 사이에 분열이 생겼다. 온건파는 예수가 지도자가 되기를 기대했으나, 그는 여기에도 가담하지 않았다.

이삭이라는 부자 유대인이 예수의 가족을 부양하겠다고 나섰지만, 예수는 첫째 의무가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거절했다.

3. 서기 12년 서기 12년에, 집과 뜰을 제쳐놓고, 모든 가족 재산이 처분되었다.

야고보가 일할 나이가 되어서, 전에 팔았던 수선 가게를 다시 샀다.

재정 압박이 줄어들어, 예수는 야고보를 유월절 예식을 치르러 성전으로 데리고 갔다.

야고보와 함께 베다니로 가서 예수는 유월적 저녁을 주관하였다.

시몬은 이미 선조들과 함께 묻혔다.

9월에 엘리자벳과 요한이 찾아 왔다. 대중에게 봉사하며 만날 때까지, 예수와 요한은 서로 만나지 않기로 결정했다.

12월에 꼬마 아모스가 고열로 앓다가 죽었다.

4. 서기 13년 악을 행하지 말라고 금하는 유대인 방법 대신에, 선을 행하라는 적극적 명령을 받아들이도록 예수는 어머니를 설득했다.

이 해에 유다는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고, 예수는 하프를 팔아야 했다.

5. 레베카 레베카는 자기의 열일곱 살 되는 생일에 예수를 초대했다. 레베카의 고백을 들은 뒤에, 순수한 친구 관계 외에 어떤 여자와도 관계를 가질 자유가 없다고 설명하였다.
6. 서기 14년 레베카가 예수를 사랑했다는 이야기가 퍼져서, 예수는 두 번 다시 다른 여인의 사랑을 물리치지 않아도 되었다.

예수는 나사로ㆍ마르다ㆍ마리아와 이야기하고 싶어서, 예루살렘으로 갔는데, 나사로의 어머니도 무덤에 묻혔다.

  128편, 어른 시절 초기
  미가엘이 유란시아에 자신을 수여하는 목적.

1. 네바돈의 통치권을 얻기 위하여, 인간의 일생을 끝까지 사는 것.

2. 우주의 아버지를 필사자들에게 드러내는 것.

1. 서기 15년 예수는 자기의 두 가지 성품을 깨닫고, 이를 하나로, 나사렛 예수로 통합하였다. 이러한 신성의 자각은 느렸고, 점진적으로 일어났다.

서기 15년, 동생 요셉과 함께,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4번 째 방문)

2. 서기 16년 가족 회의를 연 결과로, 직업을 다양화하여 건물 전체를 세우는 계약을 받을 준비를 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세포리스로 가기 전에, 예수는 정기 가족 회의를 열고, 야고보를 임시 가장으로 임명했다. 나사렛으로 돌아와서, 예수는 가족 일의 지휘를 다시 맡지 않았다.
3. 서기 17년 네 사람이 일하고 있어, 재정의 여유가 생겼다.

예수는 시몬과 함께, 예루살렘을 다섯 번째로 방문하였다.

스테반을 만나서 함께 아스모니아 궁전을 구경하면서, 생명의 길과 하나님에 관하여 4시간이나 토론하였는데, 이 스테반은 기독교의 첫 순교자가 되었다.

스테반이 죽는 태도를 보고서 바울은 감동하여 기독교의 지지자가 되었다.

4. 다마스커스 사건 다마스커스의 상인이 예수를 수소문하여 만났는데, 그는 알렉산드리아를 능가할 종교 철학 학교를 세우고 싶어 하여, 상인과 은행가 12명의 무리를 예수에게 데리고 왔다.

예수는 그 계획을 도왔지만, 이를 지도하는 책임을 질 수 없다고 말했다.

5. 서기 18년 예수는 알렉산드리아의 저명한 유대인 5명을 만나려고 케자리아로 갔다. 이들은 팔레스타인에서 반란이 있을 터이고, 그리해도 로마의 철권이 석 달 안에 반란을 진압하고 성전은 파괴되리라고 장담하였다. 예수는 주요 회당에서 조수가 되라는 초청을 거절하였다.
6. 서기 19년 요셉의 재산이 없어진 이후로, 가족의 재정이 좋아졌고 예수는 유다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갔다. 유다가 로마 경비병이 무례한 말을 유대인 여자에게 던진 것에 분통을 터뜨렸기 때문에, 예수를 동반하고 군대의 감옥으로 끌려 갔다.

셋째 날 아침이 되어 예수는 유다를 대변하려고 군대의 판사 앞에 섰다. 예수는 동생이 나이 어린 것을 사과하고 분별 있는 말로 변호하여 유다는 풀려 났다.

7. 서기 20년 예수는 야고보를 수선 가게를 경영하도록 훈련하였다. 유다는 결혼한 뒤에 어부로서 일했다. 11월에, 야고보와 에스타, 그리고 미리암과 야곱이 결혼하였다.

쌍 결혼식이 있은 뒤에, 예수는 수선 가게의 권리를 야고보에게 주며, 그를 “내 아버지 집의 가장이자 보호자”로 세우고, 예수는 더 이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적었다.

  129 편, 예수의 어른 시절 후기
  예수는 집안 식구를 지도하는 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었고, 예수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온 집안이 천천히 깨달았다.
1. 서기 21년 1월에 아무런 절차 없이 예수는 가족을 떠났다.

가버나움으로 가서 아버지의 친구였던 세베대를 찾아 보았는데, 세배대는 개량된 배를 만들고 싶어 했다. 1년 남짓하게 그와 함께 일하면서, 예수는 판자를 수증기로 쪼이는 개량된 방법으로 우수한 배를 만들기 시작했다. 5년 안에, 호수에 있는 거의 모든 배가 세배대의 작업장에서 건조되었다.

10월에 마르다가 결혼하였다.

예수는 한 주에 한 번, 집ㆍ작업장ㆍ호숫가의 조수들 전체와 회의를 열었고, 일꾼들 사이에서 예수를 처음으로 “주”라고 일컬었다.

2. 서기 22년 3월에 예수는 가버나움을 떠났다. 예수는 요한 세배대에게 나사렛 가족에게 달마다 돈 보내는 일을 대신 해달라고 부탁했다. 예수가 받을 돈은 큰 돈이었기 때문에, 이 돈으로 부동산(두 칸 방의 집)에 투자하고 요한은 그 집의 관리를 맡았다.

예수는 살로메의 편지를 가지고 전직 대사제 안나스를 방문하였다. 안나스는 친히 그를 데리고 여러 학원을 방문했으나 별로 조언할 말이 없었다.

겉보기에 우연히, 예수는 어느 부유한 여행자와 아들을 만났는데, 그 아버지는 함께 여행하자고 하였고, 1년 동안의 임금을 선불하였다. 예수는 찬성했고, 이 돈으로 요한은 부동산을 살 수 있었다.

3. 서기 23년 이 해는 지중해 세계를 여행하는 데 쓰였다.

로마 세계를 둘러보는 여행에서 예수는 다마스커스 서기관으로 알려졌다. 돌아오는 길에 고린도와 기타 정박지에서 그는 유대인 가정 교사로 알려졌다. 지중해 여행의 목적은 유란시아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고 생계를 이어가는가 배우는 것이었다.

4. 사람인 예수 후일에 제자들과 대중에게 봉사한 것과 달리, 이 지중해 여행에서 예수는 개인으로서 봉사하던 기간이었다.

예수는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필사자의 생각과 느낌, 욕구와 충동을 알고 있다.

완전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에게 나타날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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