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과 오순절 이후 (4J)

4J: 188 편 – 196 편 ‘부활과 오순절 이후’ 요약 (30년 4월 8일 – 1935년)
  이 여덟 편의 논문(188 – 195 편)은 예수가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안치되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고 사도 및 신자들에게 40일 동안 열아홉 번 나타나서 이들을 격려하고 승천한 체험, 오순절에 일어난 사건들, 그리고 오순절 이후에 지난 2천 년 동안 기독교가 어떻게 진화되었는가 설명한다. 196 편은 예수의 믿음에 대한 중도자들의 의견을 적은 논문이다.

30년 4월 7일(금)에 아리마대 요셉은 니고데모를 동반하고 돈을 두둑히 가지고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요청했으나 그는 돈을 받지 않고 요셉이 시체 소유하는 것을 허가한다는 명령서에 즉시 서명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은 유대인 공동 묘지에 묻힐 수 없었기 때문에, 아리마데 요셉과 니고데모는 요셉의 새 가족 무덤에 예수를 묻기로 작정했다. 요셉ㆍ니고데모ㆍ요한ㆍ로마인 백부장이 예수의 물질 몸을 요셉의 사립 무덤까지 날랐다.

안식일이 막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시신은 성급히 처리되었고, 무덤가에서 지켜보던 여인들은 시신을 다시 손 보려고 일요일에 돌아오기로 하였다. 한편 예수의 적들은 빌라도에게 요청하여 얻은 경비대 군인 10명과 자체 경비대에서 확보한 10명으로 하여금 예수의 무덤을 지키게 하였고, 시체 훔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예수의 무덤에 빌라도의 봉인을 하였다.

금요일 오후 3시부터 일요일 새벽 3시까지, 예수가 죽었다고 생각된 이 시간에, 미가엘이 몇 하늘 존재들과 교통한 증거들이 있다. 하늘의 아버지는 조상(아담)의 잘못 때문에, 그 자식을 벌하는 불의는 생각지도 않는다 (예수가 아담의 원죄를 씻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이론은 말이 안 된다.)

일요일 새벽 2시 45분에, 파라다이스 육신화 위원 7명이 나타났고, 17분만에, 상물질 모습으로 예수의 인격이 무덤에서 나왔다. 천사장의 우두머리가 예수의 시체를 즉시 분해해도 좋다는 허락을 가브리엘로부터 받았다.

2차 중도자들이 무덤 입구에서 돌들을 옮겼는데, 커다란 돌이 무덤 입구에서 구르자, 유대인 경비병과 로마 군인들은 황급히 달아났다. 새벽 3시 경에 다섯 여인이 방부 처리 로션과 붕대를 많이 가지고, 예수의 무덤까지 갔는데, 주의 모습이 바뀌어, 그들은 예수를 처음에 알아보지 못했다. “마리아야” 하는 목소리를 듣고 마리아는 예수를 알아보았고,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은 주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 여인들이 마가의 집으로 가서 열 사도에게 주를 만났다고 이야기했으나 이들은 믿지 않았고, 오직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을 찾아보았다.

필사자들은 예수가 부활했을 때 입었던 상물질 몸으로 살아날 터인데, 이 몸은 속에 피가 돌지 않고 물질 식품을 소화하지도 않는다.

다윗과 요셉은 마가의 집으로 가서 열 사도와 회의를 열었다. 다른 사람들이 말렸는데도, 다윗은 사자들을 불러 모으고 예수가 부활했다는 소식을 전하라고 이들을 신자들의 중심들로 파견한다.

예수는 베다니에서, 요셉의 집에서, 그리고 그리스인들에게 나타나고, 또한 엠마오로 가는 두 형제에게 나타나서 말을 걸기도 한다.

4월 9일(일)에 베드로에게, 그리고 열 사도가 문을 잠그고서 위층 방에 있는 동안에 예수가 나타난다. 15일에, 토마스 사도들에게 돌아온 뒤에, 예수는 이들에게 두 번째로 나타나서, 갈릴리로 가라고 지시한다.

4월 21일에 예수는 벳세다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던 사도들에게 나타났고, 사도들과 둘씩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날 사도들을 임명했던 산에서 모여서, 주는 이들을 임명하는 장면을 다시 연출하고서 눈앞에서 사라졌다.

4월 29일(토)에 가버나움 근처에서 5백 명이 넘는 신자들이 모였는데, 베드로의 설교가 끝나자 주가 상물질 모습으로 나타났다.

5월 5일(금)에 니고데모의 집 안뜰에서 예수가 나타났는데, 이때, 열한 사도, 여인단 및 동료, 그리스인들을 포함하여 제자가 약 50명 있었다. 이것은 주가 육체를 벗은 이후에 가장 대표적인 신자들의 무리였다. 이후에 시카, 페니키아, 예루살렘에서 마지막으로 나타났다.

5월 18일(목), 예수는 열한 사도를 거느리고 올리브 산 비탈까지 올라가서 사도들에게 하늘나라 복음을 온 세상에 선포하라는 마지막 훈시를 주고 (40일 만에) 승천한다.

베드로가 모임을 소집하여 30년 5월 27일(토)에 (아마도 마가의 집에서) 기도하고 있는 동안, 모두가 이상한 것이 방에 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고, 베드로가 이것이 진실의 영이라고 선포한다. 이들은 성전으로 가서 설교하였고, 그 결과로 2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다.

오순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날 이후로, 진실의 영이 모든 성실한 신자에게 수여되었다.

로단의 생도 2명의 노력으로 헬라파 사이에서 많은 사람이 개종되었는데, 이들 중에 스테반과 바나바가 있었다. 스테반이 첫 순교자로서 죽고나서 한 달이 되어, 신자들이 유대교 안에 더 이상 존속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예루살렘 교회가 조직되었고, 예수의 아우 야고보가 우두머리가 되었다. 유대인들 사이에서 기독교인의 박해가 시작되자, 그리스인이 첫 선교사가 되어 로마 제국 전역에 기독교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베드로는 기독교회의 창시자였지만, 바울이 기독교를 이방인에게 가져갔고, 그리스인 신자들은 이를 온 로마 제국에 퍼뜨렸다. 바울은 훌륭한 조직가였고, 기독교가 철저히 헬라화되고 미트라교와 타협하여 그 신자들을 흡수했으며, 후일에 기독교의 지도자들이 이교도와 타협함으로 기독교는 로마 제국에서 성공했다.

로마인은 기독교인이 “나라”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을 오해하여 처음에 기독교인을 박해했으나 기독교가 높은 도덕을 부르짖고 우수한 하나님 개념을 제시했기 때문에, 그리스인 및 로마인은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교회가 정치와 같은 편이 되었기 때문에 유럽의 암흑 시대에 교회도 같이 쇠퇴하였다. 르네상스가 밝아오자, 기독교는 수많은 종파로 갈라졌다. 현대에 기독교는 과학적 접근과 유물론적 경향에 도전을 받고 있다.

세속주의는 중세의 제도화된 교회의 압제에서 사람을 해방했으나, 세속주의는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주장하며, 사람을 전체주의(공산) 국가에서 노예로 만들고, (서양 국가에서는) 정치ㆍ경제적 노예로 만들었다.

기독교의 문제는 기독교가 예수에 관한 종교일 뿐 아니라, 대체로 남의 손을 빌려서 맛보는 종교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말로 아름다운 것을 묘사해도, 이를 구경하는 것처럼 사람을 기쁨에 떨게 만들 수 없는 것 같이, 깊은 교리의 말씀도 하나님이 앞에 계심을 깨닫는 체험처럼 사람에게 영감을 줄 수 없다.

“갈라져 서로 싸우는 집은 버틸 수 없다”는 예수의 말씀과 같이, 비기독교 세계는 무수히 갈라진 기독교 세계에 도저히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교회가 상업과 정치에 말려드는 데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유란시아의 큰 희망은 (이 책처럼) 예수의 말씀을 새로이 발표함으로 예수의 모습을 새로 밝히는 데 있다.

마지막 논문(196 편, 예수의 믿음)은 중도자들의 논평인데, 예수에 관한 종교를 말로 전파하는 것도 좋지만, 예수의 종교는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신약의 저자들은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는 나머지, 예수의 인간다운 모습을 기록에서 뻬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예수의 일생이 보여주다시피, 사랑을 주는 신다운 자가 사람 속에 살지 않으면, 사람은 사심 없이 사랑할 수 없다. 현대인이 당면한 큰 도전은 지성 안에 계시는 이 조절자와 의사 소통을 개선하는 것이다.

  188 편, 무덤에 있던 시간
서기 30년 4월 7일(금) – 9일(일)

예루살렘 교외

우리 중도자들은 금요일 오후 3시부터 일요일 새벽 3시까지, 약 36시간 동안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신빙성 있는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

유대인 권력자들은 예수의 시체가 게헤나의 노천 무덤에 던져지도록 전에 계획했다.

아리마대 요셉은 니고데모를 동반하고 큰 돈을 마련하여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요청했으나, 빌라도는 돈을 받지 않았고, 요셉이 시체 소유하는 것을 인가하는 명령서에 즉시 서명했다.

1. 예수를 무덤에 안치하다 요셉이 빌라도의 명령서를 백부장에게 내밀었을 때, 유대인들은 잠시 소동을 피웠으나 백부장이 로마 군인 4명이 시체 좌우에서 지키고, 두 도둑을 버려두라고 명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은 유대인 공동 묘지에 묻힐 수 없었다. 니고데모는 요셉의 새 가족 무덤에 예수를 묻기로 작정했다.

무덤까지 예수의 물질 몸을 진 사람들은 요셉ㆍ니고데모ㆍ요한, 그리고 로마인 백부장이었다.

백부장은 군인들에게 돌 문을 무덤 입구 앞으로 굴리는 일을 도우라고 신호했다. 여인들은 예수가 적절히 준비되었다고 생각지 않았고, 일요일 아침에 주의 몸을 적절히 준비하려고 다시 돌아오기로 합의를 보았다.

2. 무덤을 지키기 예수의 제자들이 훔치지 않도록 사흘이 지날 때까지 그 무덤을 지키는 명령을 내려달라고 유대인 지도자들의 대변인이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이들은 성전 경비대에서 10명을 확보하고, 빌라도에게서 얻은 로마 군인 10명과 함께 요셉의 무덤으로 갔다. 이들은 무덤에 또 다른 돌을 굴려 놓고, 빌라도의 봉인을 이 돌들 위에 눌러놓았다.

3. 안식일에 이 36시간 동안 우리는 예수의 인간 지위에 대하여 이렇게 생각한다.

(i) 미가엘의 창조자 의식은 이미 필사 지성을 벗어났다.

(ii) 예수의 생각 조절자는 이 기간에 땅에 계셨고, 하늘 무리들을 지휘하였다.

(iii) 예수의 영 실체는 부활한 인격의 일부라고 믿는다.

(iv) 예수의 인간 의식은 36시간 동안 잠들어 있다고 본다.

예수가 죽었다고 생각된 이 시간에, 미가엘이 몇 하늘 존재들과 교통한 증거들이 있다.

4. 주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의미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조상(아담)의 악행 때문에, 그 자식을 벌하는 따위의 상스러운 불의는 생각지도 않는다.

동물적 성질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을지 모르지만, 죄는 부모로부터 아이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아버지인 것을 믿는 사람들은 구원을 당연히 여겨야 한다. 개인이 구원받으려는 이기적 소망보다도, 예수처럼 동료를 사랑하려는 욕구를 가져야 한다.

5. 십자가로부터 얻는 교훈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기쁘게 버리는 것, 사람은 이보다 더 큰 사랑을 가질 수 없다.
  189 편, 부활
서기 30년 4월 9일(일)

예루살렘 교외, 골고다

금요일 오후에 예수가 묻힌 뒤에, 천사장의 우두머리는 부활 담당 회의를 소집하고 예수를 부활시키는 기법을 고려해 보았으나,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예수의 인격화된 조절자는 기다리는 구경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창조 아들은 자기가 창조한 아들 중 누구의 모습을 입고서도 수여될 수 있고, 생명을 버리고 다시 집을 힘이 몸 안에 있느니라.”

1. 상물질 모습으로 일요일 새벽 2시 45분에, 파라다이스 육신화 위원 7명이 나타났고, 새벽 3시 2분에, 상물질 모습을 입은 예수의 인격이 무덤에서 나왔다.

그의 육체는 무덤 벽감에 아직도 누워 있었다. 다음을 분명히 해둘 것:

(i) 예수의 물질 몸이 부활되지는 않았다.

(ii) 그는 영이나 미가엘로서 부활되지 않았다.

(iii) 상물질 인격 모습을 입고서 무덤에서 나왔다.

예수는 잠시 동안 상물질 생활의 입문 절차에 들어갔는데, 이것은 한 시간이 더 걸렸다.

2. 예수의 물질 몸 천사장의 우두머리가 예수의 시체를 즉시 분해하겠다고 예수의 물질 몸을 가브리엘에게 요구했고, 가브리엘은 허락을 내렸다.

유란시아의 2차 중도자들이 무덤 입구에서 돌들을 옮겼는데, 커다란 돌이 무덤 입구에서 굴러가는 것을 보고서 유대인 경비원과 로마 군인들은 황급히 달아났다.

유대인 지도자들은 달아난 경비원들에게 벌을 주는 대신에 뇌물을 스무 명에게 주면서, 예수의 제자들이 시체를 가져갔다고 소문을 퍼뜨리라고 지시했다.

미가엘이 부활한 것은 상물질로 부활한 예수를 만나보고 함께 이야기한 거의 1천 명의 증인이 입증한다.

3. 섭리 시대의 부활 일요일 새벽 4시 반이 조금 지나서, 가브리엘은 천사장들을 호출하고, 아담의 섭리 시대를 끝내는 일반 부활을 개시하였다.

상물질 미가엘은 가브리엘 앞에서 지시했다: “행성의 부활 점호를 시작하여라.”

천사장의 회로는 유란시아에서 그때 처음으로 가동했다.

첫째 저택 세계로 가브리엘의 목소리가 번쩍 날아갔다: “미가엘의 명령대로, 유란시아 섭리 시대에 죽은 자는 일어날지어다!”

아담 시절 이후로 잠든 인류의 모든 생존자가 저택나라 부활실에 나타났다.

가브리엘이 여기 있어야 했기 때문에, 필사자들의 집단 관리에 배치되었던 수호 세라핌들도 이 세상에 있었다.

이것은 행성 점호에서 셋째 부활이었다. 첫째는 행성 영주가 도착했을 때, 둘째는 아담 시절에 일어났다. 셋째는 예수의 상물질 부활을 가리켰다.

4. 빈 무덤의 발견 예수가 부활했을 즈음에, 열 사도가 마가의 집에서 묵고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토마스는 토요일 밤에 그들과 함께 몇 분 동안 있다가 벳바게로 가버렸다.

일요일 새벽 3시 조금 전에, 다섯 여인은 방부 처리 로션과 리넨 붕대를 많이 가지고, 예수의 무덤을 향해서 떠났다.

예수의 몸에 기름을 바르는 임무를 띠고 간 여인들은: 막달라 마리아, 알패오 쌍둥이의 어머니 마리아, 세베대 형제의 어머니 살로메, 추자의 아내 요안나, 에즈라의 딸 수잔나였다.

무덤 입구에 돌이 치워져 있어 그들은 깜짝 놀랐다. 막달라 마리아가 열려 있는 무덤으로 들어 갔다가 놀라서 비명을 지르자, 바깥에 있던 여인들이 황급히 달아났다. 얼마 있다가 그들은 다시 무덤으로 돌아갔다.

주는 모습이 너무 바뀌어서, 말씀해도 그들은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다.

주가 “마리아야” 하고 인사하자, 마리아는 예수를 알아보았고, 다른 여인들도 주 앞에 무릎을 꿇었다.

여인들이 마가의 집으로 가서 열 사도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으나, 사도들은 믿지 않았고, 오직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을 찾아 보았다.

5. 무덤에 간 베드로와 요한 요한은 베드로보다 젊었으니까, 빨리 달려서 먼저 무덤에 다다랐다.

베드로는 누가 무덤을 뒤졌구나 하고 처음에 상상했다.

베드로와 요한이 가버리고, 마리아가 서성거리는 동안에 주는 다시 마리아 앞에 나타나서 말했다: “내 사도들에게 돌아가서, 내가 살아났다, 내가 저희에게 나타나리라, 저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고 다시 이르라.”

마리아는 마가의 집으로 돌아가서 다시 예수와 함께 이야기했다고 말했지만, 사도들은 믿고 싶어하지 않았다.

  190 편, 예수가 상물질 모습으로 나타나다
서기 30년 4월 9일(일)

예루살렘 및 근처

필사자들은 예수가 부활했을 때 입었던 상물질 몸을 걸치고 살아날 것이다. 이 몸은 속에 도는 피가 없고, 물질 식품을 먹지 않는다.
1. 부활의 전령 예수가 떠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도들은 주가 죽고 다시 살아난다는 말씀을 모두 흘려들었다.

아리마대 요셉의 딸과 예수를 본 네 여인이 니고데모의 집으로 가서, 요셉ㆍ니고데모ㆍ다윗 세배대, 그리고 거기에 모인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난 사건들을 늘어놓았다. 요셉과 다윗은 서둘러 나가서 그 무덤을 조사해 보았는데, 이들은 시체 쌌던 천을 없애라고 대사제가 경비대 지휘관을 보내기 전에, 무덤을 마지막으로 본 사람들이었다.

다윗과 요셉은 마가의 집으로 가서 열 사도와 회의를 열었다.

다윗: “나는 이제 니고데모의 집으로 돌아가는데, 주가 부활하신 것을 알리는 전령으로서 사자들을 보내겠노라.”

9시 반쯤에 다윗은 사자들을 모으고 연설했다:

“여러분, 나는 아직까지 너희 손에 거짓 정보를 한 번도 보낸 적이 없노라…

이 소식을 신자들에게 가지고 가라: ‘예수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그 무덤은 비었도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대다수는 다윗과 사자들을 말리려 했으나, 이들을 제지할 수 없었고, 이 주자 26명은 신자들의 중심들로 파견되었다.

이때부터 한 주쯤 되어 요한 세베대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벳세다의 자기 집으로 모시고 갔다. 다윗 세베대는 6월 초에 예수의 막내 누이 룻과 결혼한 다음 날에, 마르다와 마리아와 함께, 필라델피아로 길을 떠났다.

2. 베다니에 예수가 나타나다 예수는 신자들에게 19번 따로 나타났다. 무덤에서 다섯 여인에게 처음으로 나타났고, 두 번째도 무덤에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났다.

일요일 정오쯤에 예수는 베다니에, 나사로의 동산에서 아우 야고보에게 나타나서 거의 3분 동안 걸으며 이야기하였다.

2시 조금 전에 다윗 세베대를 포함하여 모두 스무 명 앞에, 주는 나사로의 집 뒷문에서 다시 나타났다.

3. 요셉의 집에서 아리마대 요셉의 집에서 여신도가 25명쯤 모여 있을 때, 오후 4시경에 나타나서 말했다:

“온 세상으로 가서 이 복음을 선포하고 신자들이 복음 믿는 것을 확인하여라.

4. 그리스인들에게 나타나다 4시 반쯤에, 플라비우스의 집에 모인 그리스인 신자 약 40명에게 예수가 나타나서 말했다: “온 세상으로 가서 이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라.”
5. 두 형제와 함께 예루살렘의 서쪽에 엠마오에는 두 목자 형제가 살았는데, 이들은 엠마오로 가고 있었다. 예수는 이들에게 다가가서 함께 걸으면서 말을 걸었다: 내가 너희에게 다가올 때, 너희는 무슨 이야기를 그리 진지하게 나누었느냐?”

예수가 부활했다는 소문을 클레오파스가 이야기해 주었다. 두 형제의 집에 들어가서 예수가 빵을 뜯어서 그들에게 넘겨줄 때, 그들은 손님이 예수인 것을 알아보았다.

두 형제는 당장에 사도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예수가 부활한 소식을 일러주었다.

  191 편, 사도와 다른 지도자들에게 나타나다
서기 30년 4월 9일(일)

예루살렘, 마가의 집

열 사도는 빗장을 지르고 위층 방에서 그날의 대부분을 보냈다.

주가 사도들에게 상물질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을 미룬 데는 2가지 이유가 있었다.

(i) 주의 죽음과 부활에 관하여 그가 일러준 것을 사도들이 생각해 볼 겨를을 주고 싶었다.

(ii) 주가 처음으로 나타날 때, 토마스가 자리에 있기를 바랐다.

요한 마가는 벳바게의 시몬의 집에서 토마스를 찾아냈고, 토요일 저녁에 베드로와 요한이 가서 그를 데리고 돌아왔다.

1. 베드로에게 나타나다 베드로가 의심을 이기자, 예수가 베드로에게 나타나서 거의 5분 동안 이야기했다.
2. 사도들에게 처음으로 나타나다 열 사도가 문을 잠그고서 위층 방에 있는 동안, 상물질 모습의 주가 나타났다. (토마스는 자리에 없었다.)
3. 상물질 인간들과 함께 4월 10일에 예수의 상물질 모습은 둘째 단계로 넘어갔다.

14일에 셋째 단계, 17일에 넷째 단계, 22일에 다섯째 단계, 27일에 여섯째 단계, 5월 2일에 일곱째 단계로, 그리고 7일에 예루셈 시민으로 이동하였고, 14일에 에덴시아 최고자들의 품에 들어갔다.

4. 열 번째 나타나다 필라델피아에서 4월 11일에 예수는 상물질 모습으로 열 번째로 나타났다. 아브너와 나사로와 그 동료 150명쯤이 자리에 있었다.

“온 세상으로 가서, 하나님이 아버지요 사람들이 형제라는 이 복음을 모든 나라와 민족에게 선포하라.

5. 사도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다 두 사도는 4월 15일에 토마스를 찾아내고 마가의 집으로 돌아왔다.

의심하는 사도가 말했다: “내 눈으로 주를 보고, 뭇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기까지 나는 믿지 않겠노라.”

예수: “비록 네가 내 손에서 아무 못 자국을 구경하지 못해도, 네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입을 모습을 입고 내가 살아났으니, 너는 형제들에게 무어라고 말하겠느냐?”

이튿날 아침, 주가 지시한대로, 열한 사도는 갈릴리로 떠났다.

6. 알렉산드리아에서 나타나다 4월 18일, 예수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로단과 약 80명의 신자들에게 나타났다.

예수: “이 복음을 전하면서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라.

  192 편, 갈릴리에서 나타나다
서기 30년 4월 10일(월) – 5월 3일(수)

갈릴리 →마가의 집

이때부터 박해로 인하여 사도들이 흩어지기까지, 베드로는 사도단의 우두머리로 인정되었다. 베드로가 사도들 중에 으뜸가는 설교자였기 때문이다.

예수가 갈릴리로 간 목적은 예루살렘에서 기가 죽어 지내던 기억을 떨어버리고, 훈련받고 사도로 임명받았던 기억을 새롭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후에 몇 사도가 떨어져 나갔지만, 사도들은 대체로 하나의 통합된 단체로서, 앞으로 닥친 전도 사명에 임하게 된다.

1. 호숫가에서 나타나다 4월 21일(금) 아침에, 열세 번째로 벳세다에 나타났다.

사도들이 밤새 동안 그물로 수고했지만, 아무 고기도 잡지 못했다가, 주의 지시대로 그물을 던지자 그물이 가득찼다.

요한 마가는 사도들을 맞이하려고 갔다가 열한 사람을 보고서, 알아볼 수 없는 사람이 예수라고 짐작했다.

잡은 물고기는 큰 물고기만 153마리가 되었지만, 이것은 선견 때문이었다.

요한이 큼직한 물고기를 일곱 마리 가져왔고, 이것을 주가 불 위에 놓았는데, 고기가 익자 소년은 익은 물고기를 열 사람에게 드렸다. 예수는 빵을 떼어 요한에게 건네주었고, 그는 다시 사도들에게 주었다.

(주는 물고기와 빵 같은 물질을 만졌다.)

2. 사도들과 둘씩 이야기를 나누다 요한에게: “내가 너를 사랑한 것 같이 사람들 사랑하기를 배우라.”

베드로에게: “끝까지 내 뒤를 따르라.”

안드레에게: “육체로 내 아우인 야고보가 경험이 부족하여 무거운 짐을 지워줄 때, 야고보에게 지혜로운 조언자가 되라.

야고보에게: “신자들의 단체에게 친절히 하는 것이 너에게 도움이 되리라.”

토마스에게: “내가 너를 위해 수고한 것 같이, 육체를 입은 내 형제들을 위하여 수고하라.”

나다니엘에게: “비판을 줄일지니, 어떤 사람들에게는 많이 기대하지 말고, 그렇게 실망의 정도를 줄이라.”

빌립에게: “이방인의 땅으로 가서 이 복음을 선포하라.”

마태에게: “떠나서 이 하늘나라 복음을 모든 민족에게 가르치라.”

알패오 쌍둥이에게: “마치 하나님을 위하여 하듯 너희 일을 하라.”

3. 사도들을 세운 산에서 4월 22일 정오에, 열한 사도는 사도로 세움받은 산에서 (가버나움 근처) 약속대로 모였다.

주의 둘레에 동그라미를 지어 무릎을 꿇고서, 주가 임명하는 장면을 다시 연출하는 것을 보았다. 꼭 한 시간을 보냈고, 주는 작별을 알리고 눈앞에서 사라졌다.

4. 호숫가에서 모이다 4월 29일(토) 3시에, 가버나움 근처에서 5백 명이 넘는 신자들이, 베드로의 대중 설교를 들으려고 벳세다에 모였다.

베드로 설교를 이렇게 마쳤다: “주가 무덤에서 살아남았음을 선언하노라.”

베드로의 옆에 주는 상물질 모습으로 나타나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을지어다. 그리고 내 평화를 너희에게 두고 떠나노라,” 주는 이렇게 말씀하고 사라졌다.

목요일 밤에 사도들의 회의에서, 토마스와 열심당원 시몬, 알패오 쌍둥이를 제외하고, 주가 살아나셨다는 새 복음을 대중에게 전도하겠다고 서약했다.

하늘나라 복음을 예수가 부활했다는 선포로 바꾼 것에 대하여 나다니엘이 반대했지만, 베드로의 열변과 여신도들의 열심을 이길 수 없었다.

이렇게 주가 아버지께로 올라가기도 전에, 예수의 종교를 예수에 관한 종교로 바꿔치우는 과정이 시작되었다.

  193 편, 마지막 출현과 승천
서기 30년 5월 5일(금) – 5월 27일(토)

예루살렘

예수는 5월 5일(금)에 니고데모의 집 안뜰에서 밤 9시쯤에, 열여섯 번째로 나타났다. 이때 열한 사도, 여인단 및 동료, 그리스인들을 포함하여 주요 제자가 약 50명 있었는데, 예수가 나타나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육체를 벗은 이후에 내가 나타난 가운데, 이것이 가장 대표적 신자의 무리이라.

“너희는 이제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사람에게 이 하늘나라 복음을 선포하라.

1. 시카에서 나타나다 5월 13일, 주는 시카에서 야곱의 우물 가까이, 날다와 약 75명쯤 되는 사마리아 신자들에게 나타나서 말씀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을지어다… 온 세상으로 가서, 이 좋은 소식을 모든 종족과 부족과 나라의 모든 인간에게 이르라.

2. 페니키아에서 나타나다 투로에서 5월 16일, 열여덟 번째로, 주는 상물질 모습으로 나타나서 말씀했다:

“이 복음에 담긴 좋은 소식을 모든 나라에 전하려고 너희가 바깥으로 갈 때, 나는 너희 앞에 가겠고, 내 진실의 영이 너희 마음 속에 거하리라.

3. 예루살렘에서 마지막으로 나타나다 5월 18일(목) 아침에 예수는 마지막으로 나타났다. 열한 사도가 마가의 집 위층 방에서 아침을 먹으려고 앉았을 때, 예수가 나타났다.

시몬이 물었다: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서 나타나는 것을 우리가 보리이까?”

예수: “시몬아, 너는 아직도 유대인 메시아와 물질적 왕국에 관한 옛 관념에 달라붙느니라…

“너희는 영적 권능을 받을 것이요, 얼마 안 있어 온 세상으로 가서 이 하늘나라 복음을 전파하리라.

말씀을 마치고 주는 이들을 올리브 산으로 이끌었다.

4. 유다가 패망한 원인 작별 말씀의 첫 부분에서 유다를 잃은 것을 언급하였다. 왜 그가 패망했는가 원인을 살펴보자.

(i) 고립된 인간이었다.

(ii) 어릴 때 인생이 너무 쉽게 풀려 나갔고, 좌절을 분개하였다.

(iii) 실망에 부딪치는 기술을 터득하지 못했다. 남을 탓하는 버릇을 길렀다.

(iv) 불평 품기를 좋아하고, 복수할 생각을 품었다.

(v) 솔직하게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했다.

(vi) 동료들과 개인적으로 의논하기 싫어했다.

(vii) 고귀한 인생에 대한 보상은 영적인 것을 깨닫지 못했다.

유다의 주요한 문제는: 앙갚음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살아서 자기를 사랑한 자를 무시하였고, 죽어서 친구가 없었다.

5. 주의 승천 5월 18일(목), 예수는 열한 사도와 함께, 올리브 산 서쪽 비탈에 다다랐다.

예수: “금방 우리는 이 세상에 진실의 영을 보내리라.

“너희는 먼저 예루살렘에서, 다음에 세상의 가장 먼 구석까지, 하늘나라 복음을 새로이 선포할지니라… 잘 있거라.”

6. 베드로가 모임을 소집하다 베드로의 지시에 따라, 요한 마가와 다른 사람들은 주요 제자들을 마가의 집으로 부르려고 떠났다.

[이 부분이 편집 과정에서 삭제된 듯. 이날 5월 27일(토)이 오순절이다]

으뜸 제자 120명이 주의 작별 말씀의 소식을 들으려고 모였다.

시몬 베드로가 사도들의 대변자 역할을 맡았다.

오순절 뒤에, 쌍둥이는 집으로 돌아갔고, 열심당원 시몬은 얼마큼 은둔했다. 토마스는 한동안 근심하다가 다시 가르치기 시작했다. 나다니엘은 베드로와 의견이 갈라져서, 물러났다.

이처럼 열두 명 중에서 베드로ㆍ안드레ㆍ야고보ㆍ요한ㆍ빌립ㆍ마태가 초기에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주요 인물이 되었다.

  194 편, 진실의 영을 수여하다
서기 30년 5월 27일(토)

예루살렘, 마가의 집

1시쯤에 신자 120명이 (마가의 집에서) 기도하고 있는 동안, 모두가 이상한 것이 방에 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베드로가 일어나서, 진실의 영이 온 것이 틀림없다고 선언하였고, 그들은 성전으로 가서 좋은 소식을 선포하였다.

이들은 하나님이 아버지요 사람이 아들이라는 복음을 전하라고 가르침 받았지만, 주가 부활했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1. 오순절 설교 사도들은 40일 동안 [예수가 승천하기까지] 숨어 있었다.

이날은 오순절이었고, 수십만의 방문자들이 예루살렘에 와 있었다.

2시쯤에, 베드로는 주가 성전에서 마지막에 가르쳤던 자리에서 일어서서 열렬히 연설하였고, 그 결과로 2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설득하였다.

이들은 실로암 못으로 내려갔고, 거기서 베드로ㆍ안드레ㆍ야고보ㆍ요한은 주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

[스테반이 죽기까지] 예수 믿는 자들은 유대교의 한 종파였다.

2. 오순절의 중요성 진실의 영의 사명은 (i) 진실을 육성하고 (ii) 신자에게서 고아라는 느낌을 없애는 것이다.

진실의 영은 모든 신자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닫게 한다.

초기의 진화 종족은 일곱 보조 지성 영에 지배된다. 사람 속에는 위로 올라감에 따라서 다음의 일곱 영이 거하게 된다.

(i) 생각 조절자,

(ii) 아들이 계심,

(iii) 무한한 영의 계심,

(iv) 아버지ㆍ아들의 영 = 진실의 영,

(v) 무한한 영ㆍ우주 어머니 영 = 성령,

(vi) 지역 우주 영의 영 = 일곱 보조 지성 영,

(vii) 아버지ㆍ아들ㆍ영의 영 = 융합 이후에 최후 군단에서 필사자가 가지는 영.

3. 오순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진실의 영은 모든 성실한 신자에게 수여되었다.

하늘나라 복음은 어떤 특별한 민족이나 문화나 언어와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

오순절까지 종교는 하나님을 찾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오순절 이후에, 하나님이 사람을 찾고 있고, 찾은 후에 사람 안에 거하라고 조절자를 준다.

기도는 신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지만, 신이 내려 주시는 것이 흘러가는 경로가 될 수 있다.

4. 기독교회의 시작 예수가 그렇게 갑자기 붙잡히고 십자가에 달렸을 때, 그들은 예수의 가르침과 경고를 잊어버렸다.

오순절에 진실의 영이 왔는데, 하늘나라 복음을 전하라고 세움받은 사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들이 전하는 복음은 살아나신 주를 선포하는 것으로 갑자기 바뀌었다.

초기의 신자들은 동료 신자들과 나누려는 소망 때문에 공동체가 되었지만, 이 세상의 재산을 자진하여 나누는 것은 예수의 가르침이 아니었다.

이러한 형제 사랑을 실험해 본 결과는 비참했다. 수천의 신자들이 재산을 팔고 자본재를 처분해 버렸다. 시간이 지나자 “똑같이 나누는” 재산이 줄어들어 종말에 이르렀지만, 세상은 종말에 이르지 않았다.

예수의 종파가 급속히 성장하자 사두개인들은 예수 종파를 박해하기 시작했으나, 나중에 가말리엘의 조언을 받아들여 박해를 그만두었다.

로단의 생도 2명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헬라파 사이에서 사람을 많이 개종시켰는데, 이 중에 스테반과 바나바가 있었다.

스테반이 첫 순교자가 되고 한 달이 지나자, 예루살렘 교회는 베드로의 지휘 하에서 조직되었고, 예수의 아우 야고보가 우두머리로 임명되었다.

유대인들 사이에서 기독교인의 박해가 시작되었고, 그리스인이 첫 선교사가 되어 로마 제국 전역에 전파하기 시작했다.

  195 편, 오순절 이후 
  베드로는 기독교회의 진정한 창시자였다. 바울은 기독교를 이방인에게 가졌고, 그리스인 신자들은 이를 온 로마 제국에 퍼뜨렸다.

히브리 민족은 예수의 복음이나 베드로와 바울의 선포를 믿지 않았어도, 로마 제국의 나머지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잘 받아들였다.

예수의 가르침은 영적 호소였으나, 기독교는 종교 예식ㆍ교육ㆍ마술ㆍ의술ㆍ예술ㆍ문학ㆍ법률ㆍ정부ㆍ도덕ㆍ성(性) 규제ㆍ일부다처제, 그리고 어느 정도로 노예 제도에 대해서도, 분명한 태도를 취했다. 기독교는 새 종교가 아니라 새 체제의 인간 사회로서 나타났다.

기독교가 로마에서 성공한 이유 (i) 바울은 위대한 조직가였다,

(ii) 기독교는 철저히 헬라화되었다,

(iii) 기독교는 새로운 이상을 담았다.

(iv) 미트라교와 타협하여 그 신자들을 흡수했다.

(v) 후일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이교도와 타협하였다.

기독교가 주도권을 쥔 이유 (i) 기독교는 높은 도덕 기준을 부르짖었다.

(ii) 확대된 하나님 개념을 세상에 주었다.

(iii) 불멸의 희망을 주었다.

(iv) 사람의 영혼에 나사렛 예수를 보여주었다.

1. 그리스인의 영향 그리스인과 예수의 가르침

그리스 철학과 예수의 가르침에 공통된 목표가 있었다. 이 두 가지가 개인을 중요시했다.

그리스인은 지적 자유를 가르쳤고, 예수는 영적 자유를 가르쳤다.

  기독교가 다른 경쟁하는 종교들에 이긴 이유:

(i) 그리스인은 유대인한테서도 좋은 관념을 기꺼이 빌렸다.

(ii) 바울과 그 후계자들은 경쟁하는 종파들과 현명하게 타협했다.

그리스의 예술과 철학은 커져 가는 제국을 위하여 충분히 좋았지만, 정치와 종교는 그렇지 않았고, 그리스인은 정말로 유일한 하나님을 찾고 있었다.

서방 어디에나 그리스 문화가 지배한 곳에 헬라화된 기독교가 뿌리를 내렸다.

2. 로마인의 영향 초기에 로마가 기독교인을 박해한 것은 불행하게도 그들이 “나라”라는 용어를 사용했기 때문이었고, 로라인은 예술이나 종교보다 정치에 민감했다.

로마는 그리스 문화를 자기 것으로 이어받았고, 그리스도를 도덕 철학으로 채용했다.

히브리 성서가 그리스어로 번역되고, 후일에 신약이 그리스어로 기록되었다.

그리스 문화와 로마의 정치가 연속된 것은 지중해 지역을 한 언어와 한 문화를 가진 제국으로 만들었다. 기독교가 유일한 하나님 개념을 제시했고, 그리스인은 이를 쉽게 받아들였다.

3. 로마 제국 밑에서 기독교인은 유일한 하나님을 가졌지만, 제국이 없었다.

그리스인과 로마인은 큰 제국이 있었으나, 이에 어울리는 하나님 개념이 없었다.

기독교 신자들은 제국을 받아들였고, 제국은 기독교를 채택하였다.

서기 2세기는 좋은 종교가 서양 세계에서 발전하기 좋은 때였다. 그러나 기독교는 로마에서 도덕 및 종족의 쇠퇴를 막을 수 없었다.

4. 유럽의 암흑 시대 교회가 정치와 같은 편이었으니까, 교회도 유럽의 암흑 시대에 함께 쇠퇴하였다.

암흑 시대에 종교는 남(사제들)의 손을 빌리는 것이 되었다. 르네상스가 밝아오자, 기독교는 수많은 종파로 갈라졌다.

예수의 종교가 예수에 관한 종교로 뜻하지 않게 변질됨으로 기독교의 역사가 시작된다.

종교는 과학적 지성과 유물론적 경향을 가진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세속의 것과 영적인 것 사이에 벌어지는 싸움에서, 예수의 종교는 궁극에 승리할 것이다.

5. 현대의 문제 종교는 다음과 같은 생각과 구별되어야 한다.

(i) 물질적 현실에 대한 논리적 태도.

(ii) 아름다움의 이해.

(iii) 사회적 책임과 정치적 의무의 윤리적 인식.

(iv) 도덕 감각.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고, 진실을 추구하고, 의무에 충성하며, 선한 신을 예배함으로 하나님을 발견하는 통찰력을 얻는다.

6. 유물론 종교는 과학과 어떤 논쟁에도 말려들 수 없다.

영적 통찰력이 없이 지식만 추구하는 것은 궁극에 비관과 절망으로 이끈다.

유물론 시대의 최악의 고비는 지나갔다.

현대 생활에서 큰 문제는 사람이 너무 바빠서 영적 명상과 종교적 예배를 위하여 틈을 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이 (혼이 없고) 겨우 기계라면, 물질 우주에 대하여 획일적으로 반응할 것이요, 인격은커녕 개성이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진실ㆍ아름다움ㆍ선의 진지한 추구는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한다.

7. 유물론의 취약성 참된 과학은 참된 종교와 오래 다툴 일이 없다.

“과학적 방법”은 물질적 성과를 재는 척도일 뿐이요, 영적 실체와 종교적 체험의 평가에는 쓸모없는 도구이다.

(i) 우주를 기계로 보는 개념 그 자체는 지성의 비물질 현상이다. 모든 지성은 비물질 기원을 가진다.

(ii) 생명과 우주에 대한 기계론적 철학은 과학일 수 없으니, 과학은 오직 물질과 사실만 다루기 때문이다.

(iii) 사람이 기계라면, 이 사람이 자기가 겨우 기계라는 것을 어떻게 안다고 주장하는가?

(iv) 기계 작용은 나빠질지 모르지만, 결코 진보하지 않는다. (이와 반대로, 생명은 진보할 가능성이 있다.)

우주는 과학자가 발견하고 과학으로 여기는, 불변하는 기계적 작용이 아니다. 오히려 우주는 이러한 우주 현상을 지켜보는 과학자와 같다.

8. 세속적 전체주의 세속주의의 아버지는 19세기와 20세기의 무신론적 과학의 태도였다.

현대 세속주의의 어머니는 중세의 전체주의적 기독교회였다.

제도화된 교회의 압제에서 사람을 해방하자마자, 세속주의는 사람을 전체주의 (공산) 국가의 노예로 만들었고 (서양 국가에서) 정치ㆍ경제적 노예가 되는 처지로 팔아넘길 뿐이다.

20세기의 세속주의는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 사회에서 아무것도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

서양 문명의 전례 없던 물질적 진보는 세속주의의 반란 덕분이다. 이 반란이 지나쳐 하나님을 간과했기 때문에, 세계 대전과 국제적 불안이라는 수확을 거두었다.

최근에 얻은 이익은 세속주의뿐 아니라,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의 기여 때문이다.

너희는 단지, 하나님이 아버지인 것을 무시하고 사람들 사이에 형제 정신을 이룩할 수 없다.

9. 기독교의 문제 예수의 가르침은 수정되기는 했어도, 태어날 때의 신비 종파, 암흑 시대의 무지와 미신을 견디고 살아남았고, 지금도 20세기의 유물론ㆍ기계론ㆍ세속주의를 천천히 이기고 있다.

종교는 새로운 지도자, 예수의 가르침만 따를 영적인 남녀가 필요하다.

형식이 된 종교가 열매 없는 것을 알아차린 뒤에야, 사람은 하늘나라 복음으로 향할 생각을 가질 것이다.

세상은 (남/사제들의 손을 거치지 않고) 직접 체험하는 종교가 더욱 필요하다. 기독교조차 예수에 관한 종교일 뿐 아니라, 대체로 남의 손을 빌려서 맛보는 종교이다.

아름다운 것을 묘사하는 말씀은 이를 구경하는 것처럼 사람이 기쁨에 떨게 만들 수 없고, 교리의 말씀도 하나님이 앞에 계심을 직접 깨닫는 체험처럼 사람에게 영감을 줄 수 없다.

10. 앞날 기독교는 이 세상에 크게 기여했지만, 이제 가장 필요한 것은 예수이다.

항상 기억하라―하나님과 사람은 서로 필요하다. 우주의 최종에 이르는 신성한 운명을 마침내 성취하는 데 하나님과 사람은 서로 필요하다.

기독교는 지금도 기꺼이 처음 십리를 가지만, 진정하게 십리를 더 가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인류는 시들고 넘어진다.

예수는 이른바 기독교를 세우지 않았지만, 그의 성품과 일치되는 한, 최선의 대변자로서 교회를 육성해왔다.

“갈라져 서로 싸우는 집은 버틸 수 없다.” 비기독교 세계는 여러 종파로 갈라진 기독교 세계에 도저히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교회가 상업과 정치에 말려드는 데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유란시아의 큰 희망은 예수의 말씀을 새로이 발표함으로, 예수의 모습을 새로 밝히는 가능성에 있다.

기독교는 즉석에서 만들어진 종교이며, 따라서 저속 기어에서 작용해야 한다. 고속 기어의 성과는 예수의 종교가 드러나고 널리 퍼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한 목수의 평범한 제자들이 3백 년 안에 로마 제국을 정복하고, 로마를 멸망시킨 야만인들을 설득한 것을 보면, 기독교는 막강한 종교이다.

현대 기독교의 희망은 서양의 사회와 산업 정책의 후원을 그만두고, 십자가 앞에서 겸손히 머리를 숙이고 하나님이 아버지요 사람은 형제라는 복음을 다시 배우는 데 있다.

  196 편, 예수의 믿음
중도자들의 논문 이 세상 및 다른 세계들은 땅에서 사신 주의 일생에서 새 종교를 발견하며, 이것은 아버지와 개인적으로 가지는 관계에 기초를 두는 종교이다.

기도와 종교 생활의 측면에서 주의 생애를 연구할 때, 그가 무엇을 가르쳤는가가 아니라, 무슨 일을 했는가 보라. 주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데 인생을 거룩히 바쳤다.

1. 인간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인가 신인가 토론하면서, 예수가 신앙으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한 인간이었다는 진실을 놓치지 말라.

예수의 살아 있는 종교가 예수에 관한 신학적 종교를 갈아치운다면, 기독교 문명에서 사회ㆍ경제적 변화는 철저할 것이다.

인간의 모든 지식 중에서 가장 값진 것은 예수의 종교적 일생과 그가 어떻게 그런 일생을 살았는가를 아는 것이다.

예수가 자아를 각성한 일곱 단계가 있다:

(i) 생각 조절자의 도착

(ii) 12세에 이마누엘의 사자가 예루살렘에서 그에게 나타난 것

(iii) 세례에 뒤따른 여러 표시

(iv) 변모산에서 겪은 체험

(v) 상물질 부활

(vi) 영으로서 승천한 것

(vii) 최후에 아버지의 품에 안긴 것

2. 예수의 종교 너희는 예수에 관한 종교를 (말로) 전파해도 좋지만, 예수의 종교는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

신약(新約)의 거의 전부가 예수의 종교 생활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바울의 종교적 체험을 토론하고 그의 종교적 확신을 그리는 데 바쳐진다. 신약은 훌륭한 기독교 문헌이지만, 예수다운 모습이 빈약하다.

신약의 저자들은 부활한 예수의 신성을 믿었을 뿐 아니라, 하늘나라를 완성하려고 그가 즉시 돌아오리라 믿었고, 이러한 믿음은 주의 인간다운 모습을 기록에서 빼버리는 경향을 부추겼다.

어렵게 보이는 주의 말씀 가운데 많은 것은 추종자에게 내린 명령이 아니라, 믿음의 고백이었다.

사람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예수는 인류에게 끊임없이 봉사하였다.

3. 종교의 우월성 종교는 인간의 걱정거리를 없애지 않지만, 이를 분해하여 해결할 안목을 준다.

조절자가 인간의 지성에 깃든다는 세 가지 증거가 있다:

(i) 오직 영이 깃든 지성이 사심 없이 이타적 성질을 드러낸다.

(ii) 영이 깃든 지성만이 우주가 개인에게 친절한 것을 이해한다.

(iii) 영이 깃든 지성만이 신이 계심을 깨닫고 그와 함께 충만한 체험을 얻는다.

사랑을 주는 신다운 자가 사람 속에 살지 않으면, 사람은 사심 없이 사랑할 수 없다.

너희는 영적 기쁨을 현미경 밑에 놓을 수 없고, 사랑을 저울로 달 수 없고, 도덕적 가치를 자로 잴 수 없다. 영적 예배의 질을 수치로 어림할 수도 없다.

사람이 가장 높은 객관적 실체인 하나님과 접촉하는 것은 순전히 주관적 체험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진화하는 지성(知性)은 법칙ㆍ도덕률ㆍ윤리를 발견할 수 있지만, 깃드는 조절자는 인간 지성에게 참되고 아름답고 선한 모든 것의 아버지 근원을 드러낸다.

현대인이 당면한 큰 도전은 지성 안에 거하는 훈계자와 의사 소통을 개선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종합하건대, 아버지 관념은 여전히 인간의 가장 높은 하나님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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