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문명의 진화 (3HC)

  66편, 유란시아의 행성 영주

67편, 행성의 반란

68편, 문명의 시작

69편, 원시적 인간 제도

70편, 인간이 만든 정부의 진화

이 다섯 편의 논문은 네바돈의 한 멜기세덱이 쓴 것이다.

66편은 약 50만 년 전에 지구에 온 행성 영주에 관한 글이다. 여섯 인종이 나타난 것과 동시에, 행성 영주 칼리가스티아가 100명으로 구성된 유형 참모진을 거느리고 유란시아에 나타났다.

이 1백인은

(i) 인간의 모습이었으나

(ii) 초인간이었고, 후일에 1차 중도자를 낳았으며,

(iii) 수정된 안돈 족속 100명과 함께, 생명나무의 열매로부터 해독제를 흡수하였다.

이들은 10개의 위원회로 나누어 특정한 부문의 사업에 종사하였다.

67편은 행성의 반란에 관한 이야기이다. 30만 년 동안 별일이 없었는데, 20만 년 전에 루시파 반란이 일어나자 칼리가스티아가 가담하였고, 이 반란은 7년 동안 계속되었다. 1차 중도자 중에서 4만여 명, 그리고 1백인 중에서 60명이 반란에 가담하였다. 반은 아마돈을 비롯한 나머지 충성파를 이끌고 인도 북부로 피신하였다.

68편은 이후에 원시인의 수준에서 어떻게 문명이 진화했는가 설명한다.

혼자 사는 사람은 非命에 죽을 수도 있고, 관개나 방어 따위의 사업은 여러 사람의 협동을 요구하기 때문에, 사람은 문명화된 사회를 만들었다. 배고픔과 사랑은 사람들을 함께 살게 만들었으나, 사회의 진화에 큰 요인은 귀신 공포증이었고, 이것은 사람을 단결시켰다.

귀신 공포증은 원시인이 초자연적인 것을 상상하게 만들었고, 윤리와 종교의 발전을 돕는 요인이 되었다.

69편은 원시적인 인간 제도에 관한 글이다. 기근을 막는 보험으로서 원시 산업이 생겨났다. 원시 사회에서 노동자의 차이(남녀, 나이 등)로 분업이 생기고 노동이 전문화되고 물물 교역이 생겼다. 자본ㆍ노예ㆍ사유 재산 제도가 생겼다.

70편은 인간이 만든 정부가 진화된 것을 설명한다. 사유 재산이 생기자 이러한 재산권을 보장하는 정부가 필요했다. 지나간 시대에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는 데 장구한 시일이 걸렸을 터이나, 전쟁이 이러한 변화를 가속하였다.

첫 평화 집단은 가족이었고, 다음에 씨족ㆍ부족, 나중에는 민족이었으며, 민족은 영토를 가진 현대 국가가 되었다. 인간의 권리는 자연이 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주는 것이다. 행정부ㆍ입법부ㆍ사법부 사이에 권력의 균형이 유지될 때, 대의정치가 진화 민족들을 최선으로 규제할 수 있다.

71편은 국가의 발전에 대한 글이다. 민주주의는 이상이지만 문명의 소산이다.

경제ㆍ사회ㆍ정부는 살아남으려면 진화해야 한다. 이익 동기는 기독교의 이상과 양립할 수 없지만, (빛과 생명 시대에 도달하지 않은) 과도기에 이익 동기를 갑자기 없애서는 안 된다. (실패한 예: 공산주의)

국가는 12 단계로 진화해야 하며 21세기에 대부분의 문명화된 국가에서 처음 아홉 단계는 이루어졌거나 추구되고 있고,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단계는다음과 같다:

(x) 보편적 언어, (xi) 전쟁의 종결, (xii) 지혜의 추구.

72편은 유란시아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어느 행성에서 사는 민족들의 문화와 정부에 관한 글이다. 이 행성은 루시퍼 반란에 말려들었을 뿐 아니라, 물질 아들도 직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결과로 그 구체가 고립되었다. 게다가 심판관이나 수여 아들로서 오는 아보날을 받지 못했다.

  66편, 유란시아의 행성 영주
글쓴이: 네바돈의 한 멜기세덱

1934년

보통 세계에서 한 라노난덱 아들이 오는 것은 원시인의 지성 안에서 의지(意志)가 개발되었음을 의미한다. 유란시아에서는 행성 영주가 인간의 의지가 나타난 뒤에, 거의 50만 년이 지나서 도착했다.

약 50만 년 전에, 여섯 유색 인종이 나타난 것과 동시에, 행성 영주 칼리가스티아가 도착했다. 이때, 땅에는 거의 5억의 원시인이 있었고 이들은 유럽ㆍ아시아ㆍ아프리카에 잘 흩어져 있었다.

1. 칼리가스티아 영주 칼리가스티아는 라노난덱 아들이었고, 2차 계급, 9,344번이었다.

칼리가스티아는 예루셈에서 생명 운반자에게 자문하는 회의에 부속되었다.

칼리가스티아는 행성 영주로 임명받으려고 애썼지만 별자리 회의의 인가를 받으려고 요청했을 때, 번번이 별자리 아버지들의 찬성을 얻지 못했다.

칼리가스티아는 세상 통치를 책임지는 자리를 얻어 예루셈을 떠났는데, 그는 우주 복지에 충성했던 좋은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칼리가스티아가 체계의 서울을 떠났을 때, 나는 예루셈에 있었다.

나는 유란시아가 경험 있는 찬란한 존재를 모실 것이므로 가장 운이 좋은 축에 속한다고 여겼다.

2. 영주의 참모진 유란시아의 영주에게는 보통의 경우와 같이 보조자와 행정 조수의 일행이 따라왔다.

영주의 부관 달리가스티아가 이 집단의 우두머리였다. 그도 2차 라노난덱 아들이었고, 그 계급에서 319,407번이었다.

너희의 관점에서 가장 흥미 있는 집단은 참모진의 유형(有形) 참모들이었고, 이들을 칼리가스티아 1백인이라고 불렀다.

다시 물질화된 이 100명은 유란시아 모험을 시작하기 위하여, 785,000명이 넘는 자원하는 예루셈 시민들로부터 칼리가스티아가 뽑았다. 선택된 1백인은 각자 다른 행성에서 왔고, 아무도 유란시아 출신이 아니었다.

천사들이 이 자원자들을 예루셈으로부터 유란시아로 수송하였는데, 이들은 피와 살로 되어 있지만 또한 체계 생명 회로에 맞춘 실질 몸이 마련될 때까지, 천사 몸에 실린 채로 있었다.

이 100인이 도착하기 전에, 유란시아에 거주하는 생명 운반자 2명은 안돈과 폰타의 혈통에서 선택한 100명의 생명질을 참모들의 물질 몸으로 옮겨 심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예루셈과 에덴시아에 탄원했고, 이것은 인가를 받았다.

따라서 운반자들은 안돈과 폰타 후손 가운데 남자 50명과 여자 50명을 선택하였다. 이들은 아발론으로부터 온 자원 위원회에 맡겨졌고, 이 위원회는 안돈 후손의 생명 물질을 뽑아서 참모진 100명의 물질 몸 속으로 옮겼다.

이 1백인을 위하여 특별한 몸을 창조한 것은 수많은 전설을 낳았고, 나중에 아담과 이브가 행성에 왔다는 전통과 범벅이 되었다.

자원자 1백 명을 실은 수송 천사들이 도착하고 나서 다시 인격화하는 작업은 꼭 열흘이 걸렸다.

3. 달라마시아―영주의 도시 행성 영주의 본부는 그 시절에 페르시아 만, 나중에 메소포타미아에 해당하는 구역에 자리잡았다.

유란시아인의 문화가 어떤 초기 수준까지 발전하도록 유리한 기후를 가지는 것이 필요했다. 이 시절의 큰 과제는 사람을 사냥꾼으로부터 목자로 변화시키는 것이었고, 이들이 집에서 사는 농부로 진화할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영주가 있는 촌락의 핵심은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도시였고, 높이가 12미터 되는 담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 문화 중심은 달라마시아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 도시는 10 구역으로 배열되어 있고, 참모진의 10개 회의 본주 저택들이 구역 중심에 자리를 잡았다. 한가운데는 보이지 않는 아버지를 모시는 성전이 있었다.

달라마시아의 건물은 모두 단층이었고, 예외는 회의 본부(2층)와 성전(3층)이었다.

건축 자재는 벽돌이었고 돌이나 나무는 거의 쓰이지 않았다.

근처에 있는 여러 부족으로부터 영주 학교의 첫 학생들이 모집되었다.

유형 참모진은 둘러싼 부족들로부터 우수한 사람들을 모았고, 이 학생들을 훈련한 뒤에, 각자 민족의 선생으로서 돌려보냈다.

4. 1백인의 초기 시절 영주 참모진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널리 퍼지는 데는 거의 1천 년이 걸렸다. 후일에 너희의 많은 신화는 이 초기 시절의 전설이 와전되어 생겨났다.

유형 참모들은 유란시아에서 3중 존재로서 사명을 시작했다.

(i) 그들은 인간의 형체를 가졌는데, 안돈의 생명질을 몸에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1백 명은 남녀 별로 수가 똑같이 나누어졌다. 유형 참모들은 행성 근무에서 은퇴하기 얼마 전에, 후계자를 낳는 것이 관습이었다.

이들은 남녀의 결합으로 어떤 인간이 태어날지 거의 몰랐다.

이 참모들은 안돈 종족의 피부색과 언어를 따랐다. 이들의 육체는 고기가 아닌 음식물로 충분히 만족되었다.

(ii) 1백인은 물질적이지만 초인간이었다. 예루셈에서 임시 시민이었으나 아직까지 조절자와 융합되지 않았다.

지시를 받은 대로 참모진은 성교(性交)로 번식을 시작하지 않았지만, 자기들의 몸 구조를 공들여 연구했다. 달라마시아에서 머무른 지 33년째 해에, 단 집단의 2번과 7번이 상물질 자아를 연결하여 1차 중도인을 낳았다.

이 중도자는 참모진과 그 동료들의 눈에 보이지만, 인간 부족 남녀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행성 영주의 허가를 받아서 참모진 전체가 단 쌍의 지시를 따라서 모두 성공하였고, 결국 50,000명의 1차 중도자 집단을 낳았다.

이 중간 종류의 인간은 세계 본부의 일을 수행하는 데 크게 쓸모가 있었다.

(iii) 1백인은 개인적으로 불멸한다. 체계의 생명 기류에 있는 해독하는 보충물이 몸 속에 돌았다. 반란을 통해서 생명의 기류와 접촉을 잃지 않았다면, 나중에 하나님의아들이 도착할 때까지, 아니면 행성에서 해방될 때까지, 무기한으로 살았을 것이다.

이들은 해독하는 보충물을 생명나무의 과실로부터 얻었는데, 이 나무는 놀라시아덱의 최고자들이 유란시아에 보낸, 에덴시아의 떨기나무였다.

진화 종족에게는 아무 가치가 없지만, 이 나무의 영양은 칼리가스티아 1백인과 수정된 안돈 족속 1백 명을 계속 살게 하였다.

안돈 사람 1백 명이 생식질을 참모들에게 기여했을 때, 생명 운반자들은 이들의 필사 몸 안에 체계 회로의 보충물을 넣었다. 그들은 이처럼 세세로 죽지 않고 참모진과 같은 때에 계속 살 수 있게 만들어졌다.

이 안돈 사람 1백 명은 참모진의 개인 수행원으로서 본부에 남아 있었다.

5. 1백인의 조직 1백인은 각자 10명으로 이루어진 10개 자치 회의에서 근무하였다. 두 회의 이상이 합동 회의에서 만날 때, 달리가스티아가 집회를 주관하였다.

(i) 식품과 물질 복지 회의.

앙이 이 집단을 주관하였다. 이 집단은 먹을 것, 물ㆍ옷에 대하여 가르치고 관개와 천 짜기를 소개하였다.

먹을 것은 익히고 말리고 그을림으로 보존되었고, 이처럼 먹을 것은 최초의 재산이 되었다.

(ii) 동물 이용 위원회.

인간을 돕고 먹을 것을 제공하고 땅을 가는 데 적합한 동물을 사육하는 과제에 전념했고, 본이 지도자였다.

사람은 오랫동안 개와 함께 살았고, 소도 가치 있는 식품이 되도록 개량되었다.

소식을 전하는 비둘기가 처음으로 쓰였다.

(iii) 육식 동물 정복을 돕는 조언자.

원시인은 적대하는 동물에게 먹히지 않도록 자신을 보호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단이 이 집단을 지휘하였다.

고대 도시에서 담을 쌓는 것은 사람들의 기습을 막을 뿐 아니라 사나운 짐승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려는 것이었다.

(iv) 지식 전파 및 보존 교직원.

팟이 교육하는 노력을 조직하고 지도했다. 팟은 첫 알파벳을 만들었고, 이 알파벳은 25 글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청인은 알파벳 쓰기를 좋아했다. 홍인은 그림 글자를 더 좋아했고, 황인종은 오늘날과 비슷하게 관념을 대표하는 기호를 썼다.

(v) 산업 및 무역 위원회.

이 회의는 부족 안에서 산업을 촉진하는 데, 그리고 평화 집단 사이에 무역을 증진하는 데 이용되었고, 놋이 그 지도자였다.

달라마시아의 학교에서 교육받은 집단들 사이에 처음으로 상업 신용이 실해되었다.

(vi) 계시 종교 대학.

귀신을 숭배하는 대신에 창조자를 경외하도록 만들려는 시도가 상당히 진보했으나, 행성 이탈의 격변으로 이 수고는 중단되었다. 이 회의의 우두머리는 합이었다.

이 집단은 달라마시아 사람들에게 일곱 가지 찬송을 마련해 주었고, “아버지의 기도”를 가르쳤다.

“만물의 아버지여, 주의 아들에게 우리가 영광을 돌리오니 은혜로 우리를 내려다 보소서. 아버지 외에, 무서운 모든 것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하소서. 우리의 신다운 선생들이 우리를 기뻐하게 만드시고, 언제까지나 우리 입술에 진실을 담아 주소서. 폭력과 분노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며, 장로들을 공경하고 이웃에 속하는 것을 존중하는 마음을 주소서. 이 계절에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할 푸른 풀밭과 새끼 많이 낳는 양 떼를 주소서. 약속하신 개량자가 하루빨리 오기를 기도하오며, 저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 같이, 우리도 아버지의 뜻을 이 세상에서 실행하고자 하나이다.”

영주의 참모진은 새 종족, 아담을 받으리라고 약속하였다.

(vii) 건강과 생명의 수호자.

이 회의는 보건과 위생의 증진에 관심을 가졌고, 룻이 이를 지도하였다.

익히고, 끓이고, 굽는 것이 질병을 피하는 수단이며, 익혀 먹는 것이 유아의 사망률을 줄인다는 것을 가르쳤다.

룻의 건강 수호자들이 초기에 가르친 많은 것이 상당히 왜곡되었지만, 모세의 시절까지 부족들 사이에 지속하였다.

이 무지한 종족들에게 위생을 가르치는 데 큰 장애물은 병의 원인이 너무 작아서 맨 눈으로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있었다. 쓰레기를 태우라고 이들을 설득하는 데 수천 년이 걸렸다.

영주가 도착하기 전에, 목욕은 순전히 종교 예식이었다. 한 주에 한 번, 정오 예배에 정화 예식의 일부로서 종교 선생들은 물로 몸 씻기를 포함하였다.

이 건강 수호자들은 침을 교환하거나 피를 마시는 대신에 악수를 소개하려고 애썼다.

(viii) 예술 및 과학 회의.

이들은 산업 기술의 개량에 많이 기여하였고, 멕이 지도자였다.

달라마시아 사람들은 물리학과 화학의 기본을 배웠다. 도기(陶器)가 진보되고, 치장하는 예술이 모두 개량되었고, 아름다움에 대한 이상이 향상되었다.

선생들이 거듭 재촉했는데도, 이 원시인들은 증기력 실험에 찬성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금속과 불로 작업하도록 설득되었다.

멕은 안돈 족속의 문화를 진보시키고, 청인의 예술을 개선하였다. 여러 사람이 조각의 대가가 되었다.

(ix) 부족 관계의 관리자.

이 집단은 인간 사회를 국가 수준으로 올리는 일을 맡았고, 우두머리는 툿이었다.

이들은 부족들 사이의 결혼을 권장하였다. 군사적인 전쟁 춤을 다듬고 여러 가지 경쟁하는 놀이가 소개되었다.

이 회의는 부족 정부를 개량하려고 수고했고, 개량된 사회 관계는 멀리 있는 부족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데 도움이 되었다.

(x) 부족 조정 및 협동 최고 회의.

반이 이 최고 회의를 지도하였고, 이것은 다른 아홉 위원회의 상소를 처리하는 법정이었다. 이 집단은 에덴시아의 별자리 아버지의 승인을 받았다.

6. 영주의 통치 세계 문화의 발달 정도는 토착 존재들의 사회적 유산으로 측정되고, 문화가 확장하는 속도는 거주자들의 이해 능력에 따라서 결정된다.

칼리가스티아 1백인의 통치는 오래지 않아 중단되었다.

이 1백인은 그 시절에 원시 민족들을 갑자기 변화시키거나 대규모로 향상시키는 일에 착수하는 것이 좋지 않음을 알았다.

10개 행성 위원회는 맡겨진 일거리를 천천히, 자연스럽게 시작했다. 둘러싼 부족들의 최고 지성인들을 훈련시킨 뒤에, 사회를 향상시키는 밀사로서 그 민족에게 돌려보내는 것이 계획이었다.

1백인은 우주한 버릇이나 도덕 관습조차 다른 부족에게 부과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들의 옛 관습을 새 사회 관습과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우수한 지성인들과 관계를 가짐으로 그 관습을 향상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과정은 더디어도 아주 효과가 있었다.

달라마시아 선생들은 인간 사회를 어지럽히지 않았고, 그 사회의 정상 진화를 가속하였다. 그들의 동기는 진화로 진보하는 것이요, 계시로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었다.

인류는 보잘것없는 종교와 도덕을 얻는 데 오랜 세월이 걸렸다. 깨우친 존재들이 지나치게 계몽함으로 뒤떨어진 종족들을 향상시키려고 할 때, 반드시 혼란과 절망이 생긴다.

아프리카의 심장부에는 자식들이 계속 부모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기독교 선교사들이 거기에 가서 아이들이 21살이 된 뒤에 전혀 부모가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침으로 이 풍습을 갈아치우려고 애쓸 때, 모든 권한의 붕괴를 가져올 뿐이다.

7. 달라마시아 생활 영주의 본부는 아름다웠지만 검소했다. 도시의 담 안에서 지은 시설은 약 2만의 인구를 부양하기 위한 풀밭과 밭이 있었다.

성전과 10개 위원회의 저택 내부는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었다. 거주에 쓰이는 건물은 깨끗하지만 원시적이었다.

유형 참모진은 간단한 거처들을 주관했고, 학생으로 온 관찰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집으로 유지하였다.

질서 있게 한 가족이 한 주거에서 함께 사는 것은 이 달라마시아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주의 참모진은 아버지와 어머니로서 함께 살았다. 자신들이 낳은 아이는 없었지만, 이 50 모범 가정은 안돈과 산긱 종족들로부터 모은 어린아이를 5백 명이 안 되게 데리고 있은 적이 없다. 이 아이들의 다수는 고아였고, 영주의 여러 학교에서 3년을 보낸 뒤에, 결혼할 자격이 있었고, 필요한 부족들에게 영주의 밀사가 되었다.

팟은 달라마시아의 교육을 후원했다. 생도들은 실습으로 배웠고, 생각과 느낌을 무시하지 않았지만, 손으로 하는 훈련을 첫째로 쳤다.

메소포타미아에서 훈련받은 후일의 학생들 사이에는 홍인, 청인, 그리고 안돈 사람들이 있었고, 황인종도 얼마큼 있었다.

합은 이들에게 도덕률을 제시했다.”아버지의 길”은 다음 일곱 계명으로 이루어졌다:

(i) 만민의 아버지 외에 어떤 신도 섬기지 말라.

(ii) 통지자인 아버지의 아들을 거역하지 말고, 초인간 동료들에게 불경함을 보이지 말라.

(iii) 재판관 앞에 부름받았을 때, 거짓말하지 말라.

(iv) 남자나 여자나 어린아이를 죽이지 말라.

(v) 이웃의 물건이나 가축을 훔치지 말라.

(vi) 친구의 아내에게 손대지 말라.

(vii) 부모나 부족의 장로에게 불손하지 말라.

이것이 거의 30만 년 동안 달라마시아의 법이었다.

이 시절에는 음력의 달이었고, 28일로 계산되었다. 달라마시아 선생들이 7일로 된 한 주를 소개하였다.

그 도시에서 160킬로미터 반지름 안에 있는 시골은 잘 정착되었다. 그 도시 둘레에는 영주 학교 졸업생들이 동물 사육에 종사했고, 몇몇은 농사와 원예에 종사했다.

인류가 벌을 받아서 농사 짓는 신세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땅을 경작하는 것은 진화 세계에서 진보된 문명을 세우는 데 기본적이다.

흙을 가지고 일하는 것은 저주가 아니다. 그렇게 허락받은 모든 사람에게 주는 가장 고귀한 축복이다.

반란이 터졌을 때, 달라마시아의 인구는 거의 6천 명이었고, 방문자와 관찰자들이 늘 1천 명 있었다.

8. 칼리가스티아의 불운 칼리가스티아의 오랜 생애를 돌이켜보건대, 우리는 한 가지 뚜렷한 모습을 발견한다. 그는 극도로 개인주의자였다.

그는 권한에 지배받을 때 불안해하고, 감독받는 것을 얼마큼 분개하는 경향이 일찍부터 나타났다. 그런데도 시험이 있을 때는 언제나 우주 통치자들에게 충성한 것이 입증되었다.

루시퍼와 칼리가스티아는 경고를 받아 왔으나, 친절한 조언자들이 나쁜 동기를 가졌다고 뒤틀린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루시퍼 반란 및 칼리가스티아의 배반이 있기까지, 유란시아는 흡족하게 진보했으나, 이러한 실수로 인하여 행성의 역사는 크게 바뀌었다.

유란시아의 영주는 루시퍼 반란 당시에 어두운 길에 빠졌고, 아담의 생명력을 주입하여 종족들의 개량하려는 계획을 유산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미가엘이 육신을 입고 살던 시절에 이 영주는 모든 권한을 빼앗겼다.

“악마”가 정상 인간의 정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르침은 통째로 허위이다.

생각 조절자조차 사람의 의지에 반대하여 무엇을 강제하지 않는다.

이 모반자는 옛 부하들을 해칠 권력을 다 빼앗기고서,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의 최종 판결을 기다린다.

   
  67편, 행성의 반란
글쓴이: 네바돈의 한 멜기세덱

1934년

과거에 행성에 반란이 일어났다는 것을 모르면, 유란시아에서 인간의 존재와 관련된 문제들을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다.
1. 칼리가스티아의 배반 루시퍼의 조수 사탄이 정기 검열로 방문했을 때, 30만 년 동안 칼리가스티아는 유란시아를 책임지고 있었다. 사탄은 눈부신 라노난덱 아들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이 검열 중에 사탄은 루시퍼가 그때 제안한 “자유 선언서”를 칼리가스티아에게 알려 주었다. 창조 아들은 이 영주를 경멸하여 이렇게 말했다: “너는 루시퍼와 같으니, 그는 죄가 가득하여 불의를 지속하였느니라.”

한 지역 우주의 행정 사무에서 영주에게 맡긴 것보다 더 신성한 직무는 없다. 깊이 숙고하여 죄를 저지르면서 성격이 비뚤어졌기 때문에, 칼리가스티아는 정신의 균형을 찾지 못했다.

죄는 알면서 현실에 저항하는 성격자의 태도이다. 잘못은 현실을 오해하는 것이라 여길 수도 있다. 악한 것은 현실에 그릇되게 적응하는 것이다. 죄는 멀쩡한 정신으로 영적 진보를 반대하는 것이요, 불의는 현실에 대하여 끈질기게 항거하는 것이다.

잘못은 지능이 날카롭지 못한 것을 가리키며, 악은 지혜가 모자라는 것, 죄는 지나친 영적 빈곤을 가리킨다. 하지만 불의는 성격자의 통제력이 없어진 것을 가리킨다.

죄를 여러 번 선택하고 되풀이할 때, 버릇이 될 수 있다. 습관으로 죄를 저지르는 자는 쉽게 불의하게 되고 신다운 실체에 모반할 수도 있다.

2. 반란이 터지다 사탄의 검열이 있은 뒤에 조금 있다가, 칼리가스티아는 동료 달리가스티아와 오랫동안 회담을 가졌고, 달리가스티아는 10개 위원회의 특별 회의를 소집했다.

그는 행성 정부가 다시 조직될 때까지, 모든 행정 집단이 권력을 달리가스티아에게 넘겨주고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최고 회의의 의장, 반은 칼리가스티아의 제안이 행성의 반란에 가깝다고 공격하고, 루시퍼에게 상소가 올라갈 때까지, 참여를 삼가라고 호소하였고, 참모진 전부가 이를 지지했다.

상소에 대하여 당장에 칼리가스티아가 유란시아의 최고 군주이고, 그의 지시에 충성할 것을 지시하는 명령이 내려왔다.

이에 대하여 반은 달리가스티아ㆍ칼리가스티아ㆍ루시퍼가 네바돈 우주의 통치권을 멸시하는 것이라고 정식으로 고발하였다.

그동안에 체계의 회로들이 단절되었고, 행성에 있던 하늘 무리들은 모두 고립되었다.

달리가스티아는 칼리가스티아가 “유란시아의 하나님”이라고 선포하였고, 각 집단은 물러나서 자기네끼리 심의를 시작했다.

세라핌ㆍ케루빔 및 기타 존재들이 이 투쟁에 말려들었다.

7년이 넘도록 싸움이 이어졌다. 관련된 모든 성격자가 결정을 내릴 때까지, 에덴시아 당국은 간섭하지 않았다.

3. 중대한 7년 예루셈에서 반란이 터진 것을 멜기세덱 회의가 방송했다. 비상시 멜기세덱들이 즉시 예루셈에 파송되었다. 사타니아 체계는 자매 체계들로부터 고립되었다.

1백인의 유형 참모진 가운데 (반을 넣어서) 40명이 반란에 가담하기를 거절했다.

많은 세라핌과 케루빔이 분실되었고, 행성에 배치되었던 행정 및 과도기 세라핌 가운데 거의 절반이 루시퍼의 운동을 지지하였다.

1차 중도인 중에서 40,119명이 반란에 가담하였다.

배반한 영주는 불충한 중도인과 기타 모반자들을 조직하였고, 한편 반은 충성하는 중도자 및 기타 무리를 모으고 전투를 시작했다.

이 시기에 충성파는 달라마시아의 동쪽에, 잘 보호되지 않은 촌락에 거주했다. 중도인들이 낮에도 밤에도 경계했고, 이들은 생명나무를 가지고 있었다.

충성하는 케루빔과 세라핌들은 충실한 중도자 3명의 도움을 받아 생명나무를 관리하였고, 참모진의 충성파, 그리고 관련된 필사자들이 이 식물의 열매와 잎을 먹게 하였다. 안돈 족속은 56명이 있었는데, 불충한 참모진에서 안돈 수행원 16명이 반란에 가담하기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반란이 터졌던 7년 동안, 반은 사람ㆍ중도자ㆍ천사로 이루어진 그의 충성스러운 군대를 보살피는 일에 전념하였다.

이 7년은 혼을 단련하는 기간이었다.

아마돈은 루시퍼 반란에서 뛰어난 영웅이 되었다. 아마돈은 영주의 참모진에게 생명질을 기여한 1백인 중에 하나였고, 반에게 인간 조수로서 부속되었다.

최대의 지능과 광대한 체험을 가진 칼리가스티아는 잘못된 길에 빠졌다. 최소의 지능을 가지고 체험도 전혀 없는 아마돈은 굳게 견디고 동료에게 충성하였다.

이 비극의 시절에 술렁이던 사건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끝이 없다. 마지막 성격자가 최종 결정을 내리자, 에덴시아의 최고자 한 분이 권한을 몰수하려고 긴급 멜기세덱들과 함께 도착했다. 칼리가스티아의 군림 기록은 예루셈에서 지워졌고, 행성을 회복하는 시대가 막을 열었다.

4. 반란 이후의 칼리가스티아 1백인 마지막 점호 때 참모진의 상태는 다음과 같았다.

반의 법정 전부가 충성파였다.

앙과 식량 회의에서 세 참모가 살아남았다.

동물 사육 위원회와 동물 정복 고문들은 반란에 가담하였다.

팟과 교육 직원에서 다섯 참모가 구제되었다.

놋과 산업 및 무역 위원회는 반란 편이었다.

합과 계시 종교 대학 전부가 충성파에 속했다.

룻과 건강 위원회 전부가 분실되었다.

예술 및 과학 회의는 충성한 채로 남았다.

툿과 부족 정부 위원회는 반란에 휩쓸렸다.

이처럼 40명은 구제되고 나중에 예루셈으로 옮겨 가서, 파라다이스로 가는 여행을 다시 시작했다.

반란에 동조한 60명은 놋을 지도자로 뽑았다. 열심히 일했으나, 생명 회로의 영양을 빼앗긴 것을 곧 발견했고, 그들이 필사 존재로 강등된 사실을 깨달았다.

달리가스티아는 최초의 60명과 안돈 족의 동료 44명이 죽을 것을 알았기 때문에 성교로 자식을 낳으라고 명령했다. 이들의 후손은 놋 족속으로 알려졌다.

이 비범한 남녀들의 존재는 신들이 필사자들과 짝지으려고 내려왔다는 전설을 낳았다.

모반한 참모들은 결국 자연사로 죽었다.

참모진의 1백 명은 유란시아에 왔을 때, 생각 조절자로부터 분리되었다. 반을 제외하고, 충성한 인격자들은 (자식을 낳지 않고) 예루셈으로 돌아가서 기다리던 조절자와 다시 뭉쳤다.

죄에 빠진 자들은 자기 상관들에게 잘못 끌려갔다.

루시퍼 반란에서 희생된 인간 및 초인간의 대다수는 어리석은 짓을 뉘우친 지 오래다.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이 반란의 재판을 최근에 시작했는데, 판결이 끝나면, 회개한 존재들의 지위가 어떤 방법으로 회복되리라 우리는 믿는다.

5. 반란의 직접 결과 반란이 있은 뒤에, 달라마시아와 그 근처에서 거의 50년 동안 큰 혼란이 휩쓸었다. 절반 진화된 원시인은 자유를 재빨리 방종으로 풀이하였다.

반란 직후에, 참모진 전부가 반 야만인의 떼에 대항하여 그 도시를 방어하게 되었고, 이 반 야만인들은 가르침받은 자유주의의 결과로 그 담을 포위했다. 이들은 탈퇴한 참모진과 그 동료들을 북쪽으로 몰아냈다.

개인과 집단에게 자유를 주자는 생각으로 인간 사회를 개조하려는 칼리가스티아의 계획은 완전한 실패였다.

반란이 있은 지 162년이 지나서 해일(海溢)이 달라마시아를 휩쓸었고, 행성의 본부는 바닷물 밑으로 가라앉았다.

세계의 첫 서울이 물에 잠겼을 때, 거기에는 가장 낮은 부류의 산긱 종족들만 살고 있었다.

6. 반―신념이 굳은 자 반을 따르는 자들은 인도 서부의 고지로 일찍 물러났고, 거기서 낮은 땅 민족들의 공격을 면했다.

멜기세덱 관리자들이 도착하기 전에, 반은 인간사의 행정을 각자 4명으로 된 10개 위원회의 손에 맡겼고, 이것은 영주의 체제와 똑같았다.

거주하는 선임 생명 운반자들이 이 40인의 회의를 지도하는 일을 맡았고, 충성한 참모 39명이 예루셈으로 돌아갔을 때, 아마돈 족속의 집단이 이 책임을 맡았다.

이 아마돈 족속은 (아마돈이 속했던) 충성한 안돈 족속의 144명의 집단에서 비롯하였고, 이들은 아마돈 족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남자 39명과 여자 105명으로 구성되었고, 이 중에 56명은 불사의 지위를 가졌는데, (아마돈을 제외하고) 충성한 참모들과 함께 옮겨졌다. (남은 자는 필사자 88명+아마돈)

반은 아담의 시절까지 지구에 남아 있었다. 반과 아마돈은 15만 년이 넘도록 생명나무의 기법으로 목숨을 유지하였다.

12명의 멜기세덱 회의가 유란시아 사무를 오랫동안 관리했다. 한 자문 회의가 이를 보조하였고, 이렇게 구성되었다:

영주의 충성스러운 조수 1명,

거주하는 생명 운반자 2명,

삼위일체를 체험한 아들 1명,

자원하는 교육 아들 1명,

아발론의 찬란한 저녁별 1명,

세라핌의 우두머리와 케루빔의 우두머리,

두 이웃 행성에서 온 고문들,

하위 천사 생명의 총독

중도인의 사령관, 반.

멜기세덱 관리자 12명은 문명의 잔재를 보존했고, 반은 그들의 행성 정책을 충실히 집행하였다.

멜기세덱 관리자들의 감독 하에, 반과 아마돈은 인류의 진화를 돌보았다.

반과 아마돈은 아담과 이브가 도착하고 나서 얼마 안 되기까지 땅에서 남아 있었다. 이후에 그들은 예루셈으로 옮겨졌고, 거기서 반은 기다리던 조절자와 다시 합쳤다.

루시퍼가 칼리가스티아를 지지한 뒤에, 반이 에덴시아의 최고자들에게 상소했을 때, 별자리 아버지들은 반을 지지하는 결정을 보냈으나, 이 판결은 그에게 미치지 못했다. 이것은 행성의 통신 회로가 두절되었고, 이 통신문은 에너지 송신자의 수중에 있었다. 이들은 정보를 받고 보낼 수 있으나, 통신을 시작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사고가 생겼다.

7. 멀리 미치는 죄의 영향 한 생물이 빛을 끈질기게 물리침으로 생기는 구심적 결과는 개인에게 일어나지만, 외부에 미치는 비성격(원심적) 결과는 불가피하게 집단에게 생긴다.

죄의 결과는 결코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주의 행정 구역들은 유기적이며, 모두가 한 성격자의 곤경을 어느 정도 함께 짊어져야 한다.

악과 죄의 결과는 물질 및 사회적 영역에서 쏟아지며, 때때로 어떤 수준에서 영적 진보를 늦출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존재가 죄를 짓더라도, 결코 남의 성격이 살아남는 것을 막지는 않는다.

유란시아에서 죄는 생물학상의 진화를 늦추지 않았지만, 아담의 유산을 필사 종족들에게서 빼앗도록 작용했다.

칼리가스티아는 모반했고, 아담과 이브는 실패했지만, 이러한 실수 때문에 어떤 필사자도 영적 손해를 보지는 않았다. 그러한 혼들의 미래 복지는 조금이라도 영원 속에서 위태롭게 되지 않았다.

어째서 그런 대재난이 일어나도록 버려두는가 우리는 헤아릴 수 없으나, 그런 소동이 유익하게 해결되는 것을 헤아린다.

8. 반란 중의 인간 영웅 사타니아의 여러 세계에서 용감한 사람들이 루시퍼 반란에 저항했지만, 구원자별의 기록은 아마돈을 체계 전체에서 뛰어난 인물로 묘사한다.

이 보고서들이 작성될 때, 나는 에덴시아에서 주둔하고 있었는데, 구원자별의 방송을 읽으면서 맛본 흥분을 아직도 의식하고 있다. 이 준(準) 야만인이 보인 충성심을 그 방송이 하루하루 알려 주었다.

모든 하위의 하늘 생명들이 던진 첫 질문은 이와 같았다: “아마돈이 무엇을 가졌기에, 아직도 끄떡하지 않고 버티는가?”

루시파 반란이 여러 세계에 지장을 주었고 놀라시아덱 별자리의 진보를 일시 방해했다면, 아마돈과 그 전우 143명의 굳센 행위를 발표한 효과를 저울로 재어 보아라.

이 모두가 파라다이스에서 필사 최후 군단을 동원하고, 아마돈과 같은 필사자를 보통 진흙에서 모집하려는 아버지의 계획이 얼마나 슬기로운가 보여준다.

   
  68편, 문명의 시작
글쓴이: 한때 유란시아에 주둔했던 멜기세덱

1934년

이 글은 동물 존재와 비슷한 지위로부터 인류의 고등 민족들 사이에서 문명이 진화한 시절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투쟁한 이야기의 시작이다.

문명은 종족이 얻는 것이요, 생물학적으로 타고나지 않는다. 따라서 아이들을 문화가 있는 환경에서 길러야 한다.

달라마시아 선생들은 협동하는 사회 체제를 개시하였고, 청인은 누구보다도 많이, 홍인은 어느 정도, 흑인은 가장 적게, 이 초기의 교육을 받음으로 이익을 보았다.

1. 사람을 보호하는 사회 생활 원시인은 우정이나 사회적 접촉을 가지고 싶은 욕구가 거의 없었다. 이 초기 종족들은 슬픈 체험을 겪음으로 “뭉치는 가운데 힘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유대 관계는 일찍부터 살아남기 위해 치르는 값이 되었다.

문명은 사람이 비명(非命)에 죽지 않게 하는 보험이 되었다.

이렇게 고립을 두려워한 결과로서, 또 마지못해 협동하는 수단으로, 인간 사회는 진화해 왔다.

원시인은 일찍부터 집단은 개별 구성원의 단순 합계보다 강력하다는 것을 배웠다. 영리하게 협동하는 자들을 조직한 결과로서, 사회가 태어났다.

이렇게 원시 사회로 조직한 민족들은 방어 뿐 아니라, 자연을 이용하는 데도 성공하게 되었다. 사람이 많은 실수를 저질렀어도, 인간의 문명이 파괴되지 않은 것은 사람과 관계를 가짐으로 살아남는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오스트랄리아의 원주민처럼 원시 조건 하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현대의 문화 사회가 최근의 현상인 것을 보여 준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현대의 표현은 망상이다.

2. 사회 발전의 요인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을 피하려고 노력한 결과로 문명화된 사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서로 사랑함을 뜻하지는 않는다.

지능의 수준은 문화가 진보하는 속도를 높이지만, 사회는 개인 생활의 위험 요인을 줄이도록 설계되어 있다. 자아 유지는 사회를 일으키며, 한편 지나친 자아 욕구의 충족은 문명을 파괴한다.

사회는 자아의 영속(永續), 자아 유지, 자아 욕구의 충족에 관심을 가지지만, 인간의 자아 실현은 문화 집단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자연인(自然人)의 군집 본능은 지구에서 사회 조직이 발전한 것을 설명할 수 없다. 배고픔과 성욕은 사람을 사교적 동물로 만든다. 인간들을 한데 모여 살게 만든 다른 두 가지 감정은 허영과 귀신 두려움이었다.

원시인은 배고플 때에야 겨우 생각했다. 그러나 배고픔은 교제의 유일한 동기가 아니었다. 수많은 다른 욕구가 인간들이 가까이 교제하도록 이끌었다.

배고픔, 허영, 귀신 공포증은 계속 사회를 이루도록 압박하였지만, 성욕의 만족은 일시적인 것이었다. 성욕만으로 원시인 남녀가 가정을 이루지는 않았다.

초기의 가정은 성욕의 불만과 여자의 모성애에 기초를 두었다. 아기 때문에 여자는 안정된 거주를 유지해야 했고, 일찍부터 여자가 있는 곳을 집으로 여겼다.

먹을 것의 필요 때문에, 여자는 발달하는 사회에 빠질 수 없는 존재였다.

여자는 자아의 유지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여자는 먹을 것을 마련하고 짐을 싣는 동물이요, 혹사를 견디는 동반자였고, 이 위에 성욕을 만족시키는 수단이었다.

가족은 처음으로 성공한 평화 집단이었다.

결혼은 단지 개인의 행복을 실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종족을 살아남게 만드는 보험이었다.

허영이 확대되어 자만ㆍ포부ㆍ명예까지 포함한다면, 허영이 어떻게 인간을 단결시키는가 헤아릴 수 있다. 앞에 나서서 뽐내 보일 청중이 없으면 이런 감정이 쓸데 없다. 이러한 감정 때문에, 모든 예술ㆍ의식(儀式), 그리고 온갖 형태의 운동 경기 및 경쟁이 시작된다.

허영심은 사회의 탄생을 가져왔다. 먹고 살기 위한 활동은 사회를 건설하지만, 고삐없이 자아 욕구를 충족하는 것은 어김없이 문명을 파괴한다.

3. 사회를 만드는 귀신 공포증의 영향 귀신을 두려워하는 것은 사회를 단결시켰다.

사회의 진화에서 가장 큰 단일 요인은 귀신 꿈이었다. 이것은 영 세계의 상상하는 위험에 대비하여 사람들이 서로 결합하게 만들었다.

모든 사회는 근본적 필요와 욕구에 기초를 두었지만, 귀신 공포증은 문명의 새로운 요인이었다.

죽은 사람의 영을 무서워하는 것은 초기의 허술한 사회를 잘 통제된 집단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진화로 생긴 두려움은 신을 경외하는 느낌으로 바뀌도록 고안되어 있다. 귀신이 두려워 드리는 초기의 제사는 사회의 단결을 낳았다.

배고픔과 사랑은 사람들이 함께 살도록 만들었으며, 허영심과 귀신 공포증은 사람을 단결시켰다.

초인간 근원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사회의 긴장은 어떤 한계에 이르고 나서 폭발하며, 사회를 동원하는 바로 이 영향―배고픔ㆍ사랑ㆍ허영ㆍ두려움―은 인류를 전쟁과 살육으로 몬다.

인류의 평화 성향은 자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계시된 종교의 가르침으로부터, 특히 평화의 왕, 예수의 가르침으로부터 비롯된다.

4. 도덕 관습의 진화 현대의 모든 사회 제도는 조상의 원시 관습이 진화된 것이다.

도덕 관습은 사람이 집단을 이루어 사는 조건에서 생겨난다. 고통과 치욕을 피하고 동시에 쾌락과 권력을 누리려고 부족이 적응하는 것이다.

귀신 공포증은 원시인으로 하여금 초자연적인 것을 상상하도록 몰았고, 윤리와 종교가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기초가 되었다.

죽은 사람들이 존중했던 규칙을 경시하는 필사자에게 벌이 내릴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그런 규칙을 지키는 도덕 관습이 일찍부터 생겨났다.

이 모두가 황인종의 조상 숭배에서 잘 나타난다.

진보하는 문명은 갈수록 두려움과 미신에서 인류를 해방한다.

원시의 야만인은 끊임없는 예식에 둘러싸였다.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밤에 잘 때까지, 모든 것을 부족 풍습에 따라 행해야 되었다.

초기의 인간은 관습에 노예가 되었다. 그러나 원시인의 타성은 문명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하여 파멸로 갑자기 굴러떨어지는 것을 막는 안전 장치이다.

관습은 진화되어야 하며, 급진적 혁명으로 관습을 수정하는 것은 문명을 붕괴시킬 위험이 있다. 자체의 도덕관을 버린 문명은 지탱하지 못했다.

한 사회가 살아남는 것은 주로 도덕관의 점진적 발달에 달려 있다. 변화가 반드시 나아진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문명이 전진하는 투쟁에 여러 번 후퇴가 있었다.

5. 토지 이용 기술―유지하는 예술 토지는 사회의 무대요, 사람들은 배우이다.

도덕 관습의 진화는 언제나 인구 밀도에 달려 있다.

가장 일찍 있었던, 인간의 문화는 동반구의 강들을 따라서 생겨났다. 문명의 행진에 네 단계가 있었다:

(i) 수집 단계. 배고픔은 산업 조직의 첫 형태가 생기게 하였다. 원시적으로 먹이를 수집하는 줄이 생겼고, 이것은 10킬로미터나 되곤 했다.

(ii) 사냥 단계. 주먹을 다친 어느 안돈 사람이 팔 대신에 긴 막대기, 주먹 대신에 힘줄로 부싯돌 조각을 묶어서 쓰는 생각을 다시 찾아냈다.

청인은 솜씨 있는 사냥꾼, 덫꾼이 되었다.

(iii) 목축 단계. 이 단계는 동물을 길들임으로 가능해졌다.

목축 생활은 식량에 노예가 된 상태로부터 부담을 덜어주었다. 사람은 가축 떼의 증가분으로 사는 것을 배웠고, 이것은 진보를 위하여 여가를 마련해 주었다.

목축 이전의 사회는 남녀가 협동하는 사회였지만, 동물 사육이 퍼지자 여자는 사회에서 노예의 처지로 떨어졌다. 이 시대의 끝에, 여자는 일하고 자식을 낳는 신세로 떨어졌다.

(iv) 농업 단계. 칼리가스티아와 아담은 원예와 농업을 가르치려고 애썼다.

농업이 시작되자 세계의 인구 밀도가 4배가 넘게 들어났다. 사냥, 목축, 농업이 겹칠 때, 남자는 사냥하고 여자는 땅을 경작한다.

목자와 농부 사이에는 언제나 마찰이 있었다. 사냥꾼과 목자는 투사요, 농부는 평화를 사랑했다.

인간 사회는 사냥 단계와 목축 단계를 거쳐서, 농사 짓는 단계로 진화했다. 각 단계에 방랑 생활이 차츰 줄어들었고, 갈수록 더 남자는 집에서 살기 시작했다.

산업이 농업을 보충하고 도시화가 진행되자 비농업 집단이 늘어났다. 사회가 아무리 발달해도 농업의 기초 위에 서야 한다는 것을 지도자들이 깨닫지 못하면, 산업 시대는 살아남을 수 없다.

6. 문화의 진화 사람은 흙에서 생긴 생물이다. 아무리 진지하게 땅을 벗어나려 해도, 끝까지 두고 보면 분명히 실패한다.

사람의 근본적 싸움은 땅을 위한 싸움이었고,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늘 그럴 것이다.

사람은 예술과 과학의 수단으로 땅의 소산을 늘였다. 따라서 문화가 있는 문명을 세우기 위하여 생계와 여가가 마련되었다.

토지가 풍부한 시절에는 사람의 필요가 컸고, 사람 목숨의 값이 높아졌다. 토지가 귀하고 인구가 과잉인 기간에는 사람의 목숨이 값싸졌고, 전쟁ㆍ기근ㆍ유행병에 관심을 덜 쏟았다.

토지의 소산이 줄거나 인구가 늘어날 때, 불가피한 투쟁이 다시 시작되었고, 인간의 나쁜 특성이 표면에 나타났다.

영적 문화와 과학적 진보는 도심이 농업과 산업에 종사하는 인구의 지원을 받을 때, 그런 도심에서 일어난다.

생활 수준이 높을수록 안정된 상태나 사멸하는 점까지 가족이 작아진다.

생활 수준이 복잡하거나 지나치게 사치스럽게 될 때, 그것은 자살이 된다.

원시 부족은 병약한 아이를 죽이고 여자 아기들은 내버려져 빈번히 죽음을 당했다. 이러한 관습은 인구의 증가를 제한하였다.

많은 종족의 유산하는 기술을 배웠으나, 개화된 집단에서 사생아(私生兒)는 소녀의 어머니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20세기에도 인구를 통제하는 원시 방법이 오스트랄리아와 마다가스카에 남아 있다.

과잉 인구는 지난날에 심각한 문제가 된 적이 없다. 그러나 전쟁이 줄어들고 과학이 인간의 병을 통제하면, 과잉 인구는 장래에 심각한 문제가 될지 모른다.

보통 인간이 양육되어야 한다. 보통 사람은 문명의 등뼈요, 돌연 변이로 천재들이 나오는 근원이다.

보통 이하의 사람은 사회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낮은 등급의 노동에 필요한 것보다 더 생산되어서는 안 된다.

   
  69편, 원시적 인간 제도
글쓴이: 네바돈의 한 멜기세덱

1934년

사람이 유머ㆍ예술ㆍ종교를 이해하는 능력은 동물 조상을 뛰어넘는다.

인간이 오랫동안 사회 집단을 유지하면 그 집단은 궁극에 제도를 낳는다. 인간 제도의 대부분은 노동을 절약하고 집단의 안전에 무엇인가 기여한다.

그러나 모든 인간 제도는 그 동안에 축적된 도덕 관습에 불과하다.

1. 기본적 인간 제도 제도의 지나친 발전은 인격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창의성을 줄인다.

세 종류의 인간 제도가 있다:

(i) 자아 유지 제도. 굶주림과 자아 보존의 본능에서 생겨나는 관습.

(ii) 자아 영속 제도. 성욕과 모성 본능에서 생겨나는 사회 질서. 결혼 관습, 방어를 위한 전쟁, 가정 만들기를 포함한다.

(iii) 자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제도. 허영심과 자부심에서 생겨나는 관습. 몸을 치장하는 관습, 영광을 위한 전쟁 따위. 문명은 자아 욕구를 충족시키는 제도를 진화시키지 못했다.

유란시아에서 이 여러 제도는 함께 단일 사회 기구가 된다.

2. 산업의 시작 원시의 산업은 기근을 막는 보험으로서 생겨났다.

원시인은 먹을 것을 얻으려고 동물 세계 전체와 경쟁해야 했다. 재산은 저절로 생기는 선물이 아니요, 노동ㆍ지식ㆍ조직으로부터 생긴다.

조직의 결과는 노동의 분업이었고, 그 결과로 시간과 물자가 절약되었다.

옛날 사람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러나 살아남으려는 싸움과 높아지는 생활 수준이 이런 종족을 근면하게 만들었다.

아담은 동산에서 일하는 사람이었고, 히브리인의 하나님은 일했다.

히브리인은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 말라”하고 처음으로 선포한 민족이었다.

산긱 부족들은 열대에서 멀리 있을 때, 상당히 부지런했다.

인간은 불ㆍ물ㆍ먹을 것을 보존하는 데 처음으로 선견을 이용했다.

3. 노동의 전문화 원시 사회에서 노동의 분업이 자연히 생겼고, 다음에 사회적 상황에 따라 결정되었다.

노동이 초기에 다음과 같이 전문화되었다.

(i) 남녀 구별에 따른 전문화.

아이가 생기면서 여자의 일이 생겨났다.

여자는 자연히 남자보다 아기들을 더 사랑했고, 여자는 이처럼 일꾼이 되었다. 남자는 사냥꾼과 투사가 되었고, 집중하여 일한 뒤에 쉬는 시간이 있었다.

남자는 이기적으로 편한 일을 골랐고, 일상적인 고된 일을 여자에게 맡겼다.

(ii) 나이와 질병에 따른 수정.

늙은 남자와 병든 자는 일찍이 연장과 무기를 만드는 데 종사했고, 나중에는 관개 시설을 만드는 데 배치되었다.

(iii) 종교적 분화.

주술사는 처음으로 육체 노동에서 면제된 인간이었다. 대장장이는 주술사와 경쟁하는 집단이었다.

대장장이는 특권을 누린 첫 비종교 집단이었다. 대장장이는 전쟁하는 동안에 중립자로 간주되었다. 이들은 원시 사회의 정치가가 되었고, 이 특권의 남용으로 널리 미움을 받았다.

(iv) 주인과 종.

인간의 노예 제도가 시작되어서 생긴 분화.

(v) 신체 및 정신 자질에 따른 분화.

사람들의 타고난 차이가 노동의 분업을 유리하게 만들었다.

산업에서 초기의 전문화는 부싯돌 벗기는 자와 석공, 다음에는 대장장이였다.

산업에서 집단 전문가는 돌소금 수출상과 도공이었다.

초기의 상인은 여자였는데, 여자는 첩자로 고용되었고, 상업을 부업으로 했다.

4. 무역의 시작 침공으로 약탈하던 시절 이후에 물물 교역이 따랐다.

말없이 물물 교환하던 시절과 현대 방법으로 무역하는 사이에 해적(海賊) 행위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무장한 무역상들이 처음에 물물 교환을 했다. 여자는 일찍부터 상인이었는데, 이들이 짐꾼이었기 때문이다.

말없는 물물 교환을 위해서 맡긴 물품을 지키려고 주물이 사용되었다. 초기의 상인은 자신의 부족 안에서 정직했지만, 낯선 사람을 속이는 것은 괜찮게 여겼다.

말없는 물물 교환이 오랫동안 이어지자, 이러한 장터는 첫 성소가 되었고, 이것은 “피난의 도시”로 알려졌다.

처음의 저울추는 밀알과 기타 곡식의 낟알이었다.

낟알 모양의 저울추, 대영 박물관

현대의 글자는 초기의 상업 기록에서 생겨났다. 초기의 많은 전쟁은 부싯돌ㆍ소금ㆍ금속과 같은 천연 매장물 때문에 일어났다.

글쓰기는 매듭진 끈, 상형 문자를 거쳐서 알파벳까지 발전했다.

고대의 상인은 세상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생각과 개량된 방법을 퍼뜨렸다. 상업은 문화의 교류를 조장하여 사람을 문명화시키는 좋은 수단이었다.

5. 자본의 시작 자본은 오늘을 포기하고 앞날을 위하여 노동을 적용한 것이다. 저축은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보험이다.

초기의 은행가는 부족에서 용감한 사람이었다. 은행가는 집단의 귀중품을 맡아서 간직하였고, 공격을 받았을 경우에는 씨족 전부가 그의 오두막을 방어하곤 했다. 이처럼 자본의 축적은 이내 군대 조직을 낳았다. 처음에 군대 조직은 재산을 방어하려고 생겼지만, 나중에는 이웃 부족의 재산을 약탈하려고 군대 조직을 연습시키게 되었다.

자본을 축적하는 욕구는 다음과 같다:

(i) 배고픔. 식량의 저축은 기근과 재난에 대비한 보험이었다.

(ii) 가족 사랑. 오늘의 욕구가 강해도 앞날의 필요에 대비하여, 자손을 위하여, 재산을 저축했다.

(iii) 허영심. 여벌의 옷은 탁월의 표시였다.

(iv) 지위. 상업화된 귀족들이 일찍부터 생겨났고, 왕족에게 봉사하거나 돈을 낸 대가로 지위를 살 수 있었다.

(v) 권력. 1년에 100퍼센트가 옛 시절의 이자율이었다. 대금업자는 빚진 자들의 떼를 만들어 자신이 왕이 되었다.

(vi) 죽은 자의 귀신을 두려워하는 것. 사람들은 일찍부터 사제들에게 죽음의 선물을 주었다. 이렇게 사제들은 고대의 자본가가 되었다.

(vii) 성욕. 아내를 하나 이상 가지려는 욕구. 남자가 처음으로 한 장사는 여자 교환이었다. 이 장사는 가족 생활의 발전을 방해하고, 민족의 생물학적 건강을 해쳤다.

(viii) 자아 욕구의 충족. 초기의 사람은 재산을 사치품에 헤프게 쓰는 경향이 있었다.

재산의 축적은 사회에서 탁월함을 가리키는 상징이 되었다. 현대의 민족들도 아낌없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나누어 주고, 부자들은 박애 및 교육 기관에 기부한다.

옛날의 많은 부자는 피살되는 위험이 두려워 많은 재산을 나누어 주었다.

자본은 사람을 해방시키는 경향이 있다. 자본과 발명을 통해서, 지금 세대는 이전의 어느 세대보다도 자유를 더 누린다.

6. 불과 문명의 관계 원시 사회의 네 분과(산업ㆍ규제ㆍ종교ㆍ군사)는 불ㆍ동물ㆍ노예ㆍ재산을 도구로 씀으로 생겨났다.

불은 인간의 기본 발명이다. 모든 동물이 불을 무서워했기 때문에, 불은 땅에서 사람을 보호하였다. 불은 또한 저녁때 사회적 교제를 북돋았다.

불을 잃지 않고 타고 있는 목탄을 이웃에게 줌으로, 불은 사람에게 손해 보지 않고 남을 돕는 수단이 되었다.

불을 발견한 안돈은 불의 숭배자가 되지 않았지만, 그 후손의 다수는 불꽃을 하나의 주물로 여겼다. 원시인은 불을 무서워했고, 불을 기분 좋게 간직하려고 향을 뿌렸다.

불을 끄는 것은 죄로 생각되어서, 원시인은 오두막에 불이 붙으면, 타게 내버려 두었다.

번개로 불이 붙는 것을 지켜보고서, 배화(拜火), 불의 숭배는 “불을 지나가는” 관습으로 발전되었다.

원시인은 불로 먹을 것을 익혀 먹는 것을 배웠고, 음식을 소화하는 데 에너지 소모를 줄임으로 문화를 가질 힘을 얼마큼 남겨 주었다.

불은 금속 세공으로 이끌었고, 나중에 증기 동력과 전기를 사용하게 되었다.

7. 동물 이용 동물 세계 전체가 사람의 적이었다. 처음에 사람은 동물을 먹어치웠지만, 나중에는 이를 길들이고 사람을 위하여 일을 시키는 것을 배웠다.

야만인은 동물의 떼를 둘러싸서 동물을 통제할 수 있었고, 식량에 필요한 대로 동물을 죽일 수 있었다. 나중에는 우리를 지었다.

어떤 동물은 길들이기 쉬웠지만, 많은 동물은 잡혀 있을 때 새끼를 낳으려 하지 않았다. 사로잡혀 있어도 새끼를 낳는 종자들을 골라서 사육함으로 동물 길들이기가 진전되었다.

개는 처음으로 길들인 동물이었고, 오랜 세월 동안 개는 식용으로, 사냥과 수송에, 그리고 동반하는 동물로 쓰였다.

사냥꾼이었을 때 남자는 여자에게 친절했지만, 동물을 길들인 뒤에, 많은 부족이 여자들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8. 문명의 한 요소인 노예 제도 원시인은 서슴지 않고 동료들을 종으로 만들었다.

여자는 첫 종, 가족의 종이 되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도, 정복자의 종교를 받아들이지 않는 전쟁 포로들은 노예의 처지로 떨어졌다. 그러나 노예 제도는 학살이나 잡아먹기보다 대단히 진보한 것이다.

전쟁 포로를 노예로 만든 것은 전진하는 걸음이었다. 아이 성(城)을 취한 복병은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을 전멸시키고, 정복자의 허영을 채우려고 임금만 살려놓았다.

사냥꾼은 노예를 만들지 않았고, 포로를 동료로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죽였다.

전쟁에서 목자들은 남자 포로를 모두 죽이고, 여자와 아이들만 노예로 취했다.

목자는 첫 자본가였는데, 가축 떼가 자본이었고, 그들은 이자(자연 증가분)로 먹고 살았다.

노예 제도는 인간 문명의 진화에서 빠뜨릴 수 없는 고리였다. 노예 제도는 게으른 민족들이 일하도록 강요하였고, 우주한 자의 사회적 진보를 위하여 부와 여가를 마련해 주었다.

노예 제도는 사람으로 하여금 원시 사회를 규제할 필요성을 깨닫게 하였고, 이것이 정부의 시작이 되었다. 노예 제도는 강력한 규제를 요구했다. 봉건 영주들이 노예를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에 노예 제도는 유럽의 중세에서 거의 사라졌다.

노예 제도가 사람을 억압한 것은 사실이지만, 억압이라는 학교에서 사람은 부지런함을 배웠다. 노예들은 상급 사회를 마지못해 도와주었고, 궁극에는 그 사회의 축복을 함께 가졌다. 노예 제도는 모든 사회악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이며, 안에서 사회를 공격한다.

기계의 발명은 노예를 쓸모 없이 만들었다. 노예 제도는 수지가 맞지 않아 사라진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빚의 노예로 전락한다. 강제하는 노예 제도는 사라졌지만, 수정된 산업 노예 상태가 대두되었다.

튼튼한 육체를 가진 사람은 모두 적어도, 자기가 먹고 살 만큼의 일을 하도록 강요되어야 한다.

현대의 사회는 거꾸로 간다. 노예 제도는 거의 사라졌고, 길들인 동물도 사라져 간다. 사람은 불ㆍ동물ㆍ노예 제도를 거쳐서 야만 상태에서부터 올라왔다. 오늘날 사람은 자연의 원소 창고에서 동력의 새로운 비밀을 찾아내려고 애쓴다.

9. 사유 재산 원시 사회는 거의 공동체였다. 이 초기의 공산주의는 단순한 이론이나 신조가 아니라, 실용적 자동 조정 장치였다. 공산주의는 빈곤을 막았고, 이 고대의 부족들은 매춘을 거의 알지 못했다.

공산주의는 원시 사회의 성장에 임시 발판이 되었지만, 네 가지 인간의 성향에 어긋나기 때문에 인간은 더 진보된 사회를 만들었다.

(i) 가족.

초기의 공산 사회에는 재산 상속이 없었다. 재산을 물려주는 관습은 뚜렷한 진보였다.

(ii) 종교적 성향.

원시인은 다음 생명의 토대로서 재산을 저축하고 싶어 했다. 옛날 사람들은 오직 부자만 죽음에서 살아난다고 믿었다.

(iii) 자유와 여가를 누리고 싶은 소망.

개인의 소득을 집단이 나누는 것은 일종의 노예 제도였다. 일하는 자는 게으른 자의 노예였다. 선견이 없는 자는 검소한 자에게 붙어사는 것이 버릇이었다.

(iv) 안전과 권력의 욕구.

개인들의 속이는 버릇 때문에 공산주의는 무너졌다. 재산을 많이 쌓는 것은 위험했다. 임금은 부자의 재산을 빼앗으려고 죄를 뒤집어 씌우곤 하였다.

초기에 여자는 공동체의 재산이었고, 어머니가 가족을 지배했다.

공산주의가 사라지자, 아버지가 가정의 통제권을 쥐었다. 일부다처 관습은 차츰 일부일처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모든 재산이 부족의 공동 재산이었다. 다음에 피를 흘린 곳은 어디나, 다친 개인이나 집단의 재산이 되었다.

사유 재산은 소유지의 인격이 일부 담겨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존중받았다. 집단 안에서는 도둑질이 없었으나, 사람들은 다른 부족의 물건을 취하는 것을 꺼려하지 않았다.

치장하는 종류의 소유물은 부적을 달고 다니는 데서 생겨났다. 허영과 귀신 공포증 때문에 원시인은 좋아하는 부적을 지녔고, 이것은 필수품보다 귀중하게 여겼다.

부족의 추장은 집터를 배정하고, 집단을 위하여 모든 부동산을 관리했다.

물웅덩이와 우물은 첫 사유 재산이었다. 주물을 믿는 신앙이 사라지자, 법이 개인의 소유물을 보호하기 위하여 진화되었다.

사유 재산은 일찍부터 가족의 문장(紋章)으로 표시되었다. 히브리인은 가족 땅의 경계 표지를 크게 존중했다. “이웃의 경계 표지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수사에서 발견된 지계표(地界標), 루브르 박물관

옛날에는 농작물만 사유가 되었고, 농업이 자리잡게 되자 토지 소유권이 생겼다. 개인들은 처음에 종신 소유권을 받았고, 죽을 때 땅은 부족에게 되돌아갔다.

결국에는 나라가 재산권을 개인에게 나누어 주었고 세금을 부과할 권리를 유보하였다. 이 소유권을 확보한 뒤에, 지주는 임대료를 걷을 수 있었고, 토지는 자본이 되었다.

사유 재산권은 자유를 늘이고 사회를 안정시켰다. 개량된 기계는 사람을 종이 하는 고된 일에서 해방시킨다.

재산권은 절대적이 아니고 순전히 사회적인 것이다. 정부ㆍ법ㆍ질서, 그리고 시민의 권리는 개인의 재산 소유권을 토대로 성장했다.

현재의 사회 질서가 반드시 옳지는 않다. 그러나 인류는 이를 천천히 고치는 것이 좋겠다. 너희가 가진 제도는 조상의 어떤 제도보다도 엄청나게 더 좋다.

사회 질서를 바꾸려면, 반드시 더 낫게 바꾸도록 하여라.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나갈지어다!

   
  70편, 인간이 만든 정부의 진화
글쓴이: 네바돈의 한 멜기세덱

1934년

생계를 잇는 문제를 얼마큼 풀자마자, 사람은 인간의 접촉을 규제하는 일에 부닥쳤다. 사유 재산은 (재산권을 보장하는) 정부를 필요하게 만들었다.

정부는 부족ㆍ씨족ㆍ가족ㆍ개인의 대립 관계가 조정되기를 강요한다.

정부는 의식하지 않고 발달한 것이요, 살아남을 가치가 있으며, 무정부는 비참을 더한다.

1. 전쟁의 발생 전쟁은 진화하는 사람의 자연스러운 상태요, 평화는 문명이 진보된 정도를 재는 척도이다.

폭력은 자연의 법칙이요 적의(敵意)는 자연인의 자동 반응이며, 한편 전쟁은 다만 바로 이 활동을 집단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전쟁은 오해와 염증에 대하여 동물처럼 반응하는 것이다. 안돈 족속은 일찍부터 황금률을 배웠다.

안돈은 자식들에게 각자가 나무를 저주하면서 막대기로 나무를 때려서 말다툼을 해결하는 것을 가르쳤다. 막대기를 먼저 부러뜨린 자가 이긴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회가 전쟁 연습을 인가할 만큼 진화하기까지, 전쟁과 같은 현상은 일어날 수 없다. 전쟁한다는 개념은 어느 정도의 조직이 있음을 의미한다.

사회 집단들이 생겨나자 개인의 짜증은 집단의 감정 속에 파묻혀 사라지기 시작했다.

부족 안에서 평온이 늘어났지만, 부족들 사이의 평화를 희생하였다.

사람들이 싸우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초기의 족장들은 1년에 한 번, 부족의 돌싸움을 허가하곤 했다.

초기에 전쟁의 원인은 다음과 같았다:

(i) 배고픔은 식량을 얻기 위한 침공으로 이끌었다.

(ii) 여자의 부족. 여자를 훔치는 것은 전쟁을 일으켰다.

(iii) 허영심. 우수한 집단은 자체의 생활 방식을 열등한 민족에게 강요하려고 싸운다.

(iv) 노예. 새 일꾼을 모집할 필요.

(v) 복수. 이웃 부족이 동료 부족 사람을 죽게 만들었을 경우에 복수는 전쟁의 동기가 되었다.

(vi) 오락. 초기 시절에 젊은 사람들은 전쟁을 오락으로 보았다.

(vii) 종교. 원시 종교들은 전쟁을 인가했다. 교회와 국가를 분리하는 데 오랜 세월이 걸렸다.

이 옛 부족들은 신들의 명령(추장이나 주술사의 요청)을 받고서 전쟁을 일으켰다. 잔학 행위는, 사람이 그 책임을 신들에게 돌리는 경향이 있지만, 신이 부추긴 것이 아니다.

인류는 군사적 자비를 배우는 데 오랜 세월이 걸렸다. 데보라가 히브리인을 통치했을 때에도 잔학 행위가 계속되었다.

초기에는 부족 전체가 싸웠으나, 서로 다른 부족에 속하는 두 사람 사이에 다툼이 있을 때, 그 두 사람만 결투에 들어갔다. 다윗과 골리앗의 경우와 같이, 각 편에서 뽑은 대표 사이의 싸움에 모두를 거는 것이 관습이 되었다.

전쟁이 처음으로 개선된 것은 포로를 잡는 것이었다. 다음에, 여자는 전투 행위에서 제외되었다. 전투가 복잡해지자, 군대 계급과 상비군이 생겨났다.

여자들은 언제나 군인들을 돌보았으며, 그들이 싸우도록 격려했다.

전쟁을 선언하는 관습은 큰 진보이다. 싸우려는 의사를 선언하는 것은 공정 감각이 도래한 것을 가리킨다. “문명화된” 전쟁 규칙이 차츰 발전되었다.

전쟁은 원시인의 사람 사냥으로 시작하여 문명화된 국가들의 질서 있는 체계로 바뀌었다.

2. 전쟁의 사회적 가치 지나간 시대에 격심한 전쟁은 1만 년 동안에 자연히 일어나지 않을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고 생각을 바꾸곤 하였다. 전쟁으로 생기는 이러한 이득을 얻기 위하여 치르는 대가는 사회가 일시 야만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전쟁은 효력이 센 약이지만, 때때로 환자를 죽이고 사회를 파괴한다.

오늘날의 사회는 기술 혁신의 이익을 누리지만, 이것들은 처음에 군사 목적으로 개발한 것이었다. 전쟁은 다음 이유로 문명에 가치가 있었다:

(i) 훈련을 부과했다.

(ii) 사람들이 인내와 용기를 소중히 여기게 만들었다.

(iii) 민족주의를 육성하였다.

(iv) 부적당한 민족들을 멸망시켰다.

(v) 원시적 평등의 망상을 없애고, 계층 있는 사회를 만들었다.

전쟁은 어떤 진화적 가치와 사람을 선택하는 가치가 있지만, 노예 제도와 마찬가지로 문명이 진보함에 따라서 언젠가 전쟁을 버려야 한다.

고대의 전쟁은 열등한 종족의 학살을 초래했다. 현대의 전투는 훌륭한 인간 혈통을 골라서 파괴한다.

지난날에 전쟁은 문명을 세우는 데 필수 발판이었지만, 전쟁은 급속히 문화에 손해가 되고 있다.

한때 의사들은 방혈(防血)이 여러 가지 병을 치료한다고 믿었지만, 의사들은 그 뒤로 이러한 대부분의 질병에 더 좋은 처방을 발견했다. 국제적 유혈(流血)보다 더 나은 해결책을 국가들이 찾아야 한다.

유란시아의 나라들은 군사주의와 산업주의 사이에 벌어지는 싸움을 시작하였다. 산업주의가 군사주의를 이기려면, 다음의 위험을 피해야 한다.

(i) 물질주의.

(ii) 부와 권력의 숭배.

(iii) 사치의 악덕.

(iv) 게으름과 봉사에 무감각한 것.

(v) 생물학상의 악화.

(vi) 표준화된 산업에 노예가 되는 위협.

군사주의는 야만스럽다. 산업주의가 더 문명화된 것이며, 사회는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창의성을 길러주어야 한다.

전쟁을 영화롭게 기리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 전쟁이 사회에 무슨 이익을 가져왔는가 헤아리고, 전쟁의 대용품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쟁이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다.

평화가 물질적 복지에 최신이라는 것, 그리고 사회가 평화스런 방법으로 전쟁의 대용품을 마련할 때까지, 사람은 평화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옛날의 전쟁은 위대한 사람을 지도자로 뽑았지만, 지도자를 찾으려면 사회는 이제 산업ㆍ과학, 그리고 사회적 성취에 눈을 돌려야 한다.

3. 초기의 인간 관계 가장 원시적 사회에서는 집단이 전부요, 아이들조차 집단의 공동 재산이었다.

가족이 진화하자 가족은 아이를 기르는 일을 맡았고, 씨족과 부족들이 사회 단위가 되었다.

성욕과 모성애는 가족을 일으킨다.

가족들은 씨족으로 뭉치게 되었다. 씨족들은 나중에 부족, 영토를 가진 공동체로 진화하였다. 초기의 원시 집단을 결속한 것은 상업과 무역이었다.

궤변보다 국제 무역(貿易) 조직이 유란시아의 평화를 훨씬 더 증진할 것이다. 언어의 발달과 수송 및 통신 방법이 무역을 수월하게 만들었다.

공통된 언어의 부재는 평화 집단의 성장을 막았지만 산업 시장이 현대 사회를 결속한다.

한때는 낯선 사람을 죽이는 것, 나중에는 그들을 종으로 만드는 것이 관습이었다.

부족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의식은 서로의 피를 마시는 것이었다. 어떤 집단에서는 침을 교환하었고, 이것이 입맞추는 관습의 기원이다.

후일에는 붉은 포조주로 묽게 만든 피가 쓰였고, 결국에는 오직 포도주를 마시고 입족 의식을 마쳤다.

“손님 자격의 친교”는 임시 친교였다. 방문하는 손님이 떠날 때, 접시를 반쪽으로 깨뜨리고 한 조각을 떠나는 친구에게 주었고, 나중에 방문하는 제삼자가 이를 소개장으로 이용했다.

첫 평화 조약은 “피의 유대”였다. 평화 대사들이 만나서, 살갗에서 피가 날 때까지 찌르고, 서로의 피를 빨아 먹고 평화를 선언하곤 했다.

가장 일찍 있었던 평화 사절단은 적들의 성욕을 채워 주기 위하여 가장 예쁜 처녀들을 데려오는 남자 대표단이었다. 이를 받은 부족은 자체의 처녀들을 데리고 답례 방문을 하였고, 이렇게 평화가 정착되었다.

4. 씨족과 부족 첫 평화 집단은 가족이었고, 다음에는 씨족ㆍ부족, 나중에는 민족이었으며, 민족은 결국 영토를 가진 현대 국가가 되었다.

씨족은 다음의 공통된 이익에 빚을 지고 있다.

(i) 공통된 조상을 가졌다.

(ii) 공통된 종교 토템에 충성한다.

(iii) 같은 지방 사투리를 쓴다.

(iv) 공통된 거처를 함께 쓴다.

(v) 같은 적을 무서워한다.

(vi) 공통된 군사 체험을 가진다.

씨족의 수령들은 부족 추장에게 종속되었다.

씨족의 평화시 추장은 보통, 모계를 통해서 다스렸다.

부족의 전시 추장은 부계를 확립했다.

부족의 추장이나 초기 임금은 씨족의 수령들을 1년에 몇 번씩 초대하는 것이 풍습이었다. 임금이 그들을 지켜보고 그들의 협조를 얻기가 쉬웠다.

5. 정부의 시작 국가의 정부는 진화의 산물이다. 초기의 씨족과 원시 부족들로부터 인간의 정부가 차츰 개발되었다.

씨족의 조직에서 정부의 기초가 세워졌다. 진짜 정부는 장로 회의에서 생겼다.

초기의 장로 회의에는 모든 정부 기능, 곧 행정ㆍ입법ㆍ사법 기능의 잠재성이 존재했다. 당대의 관습을 풀이했을 때, 장로 회의는 법정이었다.
사회 관습을 세울 때는 입법 기관이었고, 그러한 선포와 법령이 집행되는 한, 행정부였다.

어떤 부족에는 여자 회의가 있었다.

다투는 사회가 평화도 전쟁도 경영할 수 없다는 것을 인류가 깨닫기 어려웠다.

처음에 전쟁 추장은 군사 근무에만 뽑혔고, 평화시에는 그 권한을 일부 포기하였다. 이들은 평화 기간을 잠식하고, 다음 전쟁이 있기까지 계속하여 다스리는 경향이 있었다.

후일에 어떤 추장들은 다른 능력 때문에 뽑혔다.

어떤 초기 공동체에서는 주술사가 다스리고 추장으로서 행동했다. 한 사람이 사제, 의원, 최고 집행자로서 행동하였다.

이런 단계를 거쳐서 행정부가 차츰 생기게 되었다. 씨족 및 부족 회의는 나중에 나타나는 입법부와 사법부의 선구자가 되었다.

6. 군주제 정부 완전한 집행 권한을 가진 추장이 나타난 뒤에 국가가 생겼다.

족장이 임금이 되었을 때 그를 때때로 “민족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세월이 지나자, 왕이 신성한 기원을 가졌다는 믿음 때문에 통치권이 상속되었다.

왕권을 세습(世襲)하는 제도는 한 임금이 죽고 후계자가 선출 되는 사이에 무정부 상태를 피했다.

왕의 계승은 결국 초자연적 일로 간주되었으며, 이처럼 왕은 주물 인격자가 되어 사람들이 왕을 무서워하게 되었고, 특별한 형식의 대화를 궁정에서 사용하게 되었다.

초기의 임금은 은둔하였고, 너무나 신성해서 휴일을 빼고 사람들이 볼 수 없다고 여겼다. 보통, 한 대표가 임금을 흉내내도록 선택되었고, 이것이 수상의 기원이다.

양심 없는 통치자들은 독을 발견하여 큰 권력을 쥐었다. 임금의 적들은 금방 죽었다.

7. 원시의 클럽과 비밀 사회 혈연 관계로 처음 사회 집단들이 형성되었고, 서로 결혼하는 것은 집단을 확대하였다. 이렇게 생긴 부족은 처음으로 정치 단체였다.

사회의 발전에서 다음 걸음은 종교적 종파와 정치 클럽의 진화였다. 이것들은 처음에 비밀 사회로서 나타났다. 이내 클럽은 사회ㆍ정치적 클럽과 종교적 클럽으로 나누어졌다.

이들은 다음 이유로 비밀을 지켜야 했다.

(i) 금기의 위반이 통치자의 비위를 건드리는 두려움.

(ii) 소수의 종교 의식을 거행하려고.

(iii) 가치 있는 정신이나 상업의 비밀을 보존하려고.

(iv) 특별한 마술을 즐기려고.

비밀은 허영심에 호소했고, 가입한 자들은 당대에 사회에서 귀족이었다.

원시 인간은 일찍부터 사춘기 청년들에게 성욕의 자제를 가르쳤다. 사춘기의 소년들을 부모로부터 떼어내는 것이 관습이었고, 소년의 교육은 남자들의 비밀 사회에 맡겼다.

남자의 클럽이 다른 부족에서 온 여자를 사용하는 데 돈을 치름으로, 상업화된 매춘이 시작되었다.

사춘기에 입문하는 의식(儀式)은 보통 5년 동안 연장되었다. 입문의 일부로서 부족의 표시를 몸에 새겼다. 문신(文身)은 그러한 부족원의 표징으로서 시작되었다.

비밀 사회들은 사춘기의 도덕성의 개량을 목표로 하였다. 사춘기 예식의 주요한 한 목적은 소년에게 다른 남자의 아내를 가까이하지 말아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훈련을 몇 년 동안 거친 다음에, 결혼 직전에 젊은 남자들은 보통 여가를 가지도록 잠시 풀려났고, 그 뒤에 집에 돌아와서 결혼하고 일생 동안 금기에 복종했다.

후일에 많은 부족이 여자들의 비밀 클럽을 인가했는데, 그 목적은 사춘기의 소녀들을 아내와 어머니가 되도록 준비시키는 것이었다. 입회한 다음에 소녀는 결혼할 자격이 있었고 “신부 보이기”에 나가는 것이 허락되었다.

결혼하지 않은 남자의 집단과 결혼하지 않은 여자의 집단이 따로 조직되자, 비밀 아닌 클럽이 등장했다. 이 사회들은 정말로 처음 학교였다.

비밀 사회들은 가면을 쓰기도 했고, 신호와 특별한 비밀 은어(隱語)를 이용했다.

모든 비밀 결사는 선서를 부과하고 비밀을 지키라고 강요했다. 이 사회는 부족들이 전쟁할 때 첫 간첩이었고, 평화 시절에는 첫 비밀 경찰이었다.

이러한 사회 단체는 처음으로 정당을 낳았다.

이 클럽들은 빌려준 돈을 걷기 위하여 상인에게 고용되었고, 세금을 걷기 위해 통치자에게 고용되었다. 세금은 최초에 왕가를 유지하기 위하여 부과되었지만, 성전 예베를 지원하는 헌금이라고 했을 때, 세금 걷기가 더 쉽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 비밀 결사들은 자선 조직으로 성장했고, 나중에는 종교 단체로 진화했다. 이 사회들 중에 더러는 부족간의 사회, 국제 단체가 되었다.

8. 사회 계급 인간의 정신ㆍ육체의 불평등은 사회 계급이 나타날 것을 보장한다. 사회 계층이 없는 유일한 세계는 가장 원시적 세계와 가장 진보된 세계이다.

사회가 야만 상태에서 미개(未開) 상태로 솟아오름에 따라서, 그 인간은 다음의 일반적 이유 때문에, 여러 등급으로 분류된다:

(i) 자연스런 이유―결혼 및 친척 관계.

(ii) 개인적 이유―능력과 기술.

(iii) 우연―전쟁과 이민은 인간의 집단을 분리했다.

(iv) 경제적 이유―빈부. 재산과 노예의 소유는 사회 계급의 기초가 되었다.

(v) 지리적 이유―도시와 시골은 목자ㆍ농부ㆍ상인ㆍ산업가로 전문화하는 데 기여했다.

(vi) 사회적 이유―사제와 선생, 통치자와 무사, 자본가와 상인, 보통 노동자와 노예.

(vii) 직업적 이유―노동자는 세 집단으로 나뉘었다. 주술사를 포함한 전문가 계급, 기술 노동자, 미숙련 노동자.

(viii) 종교적 이유―사제들은 오랫동안 따로 된 사회 집단이었다.

(ix) 종족의 이유―둘 이상의 종족이 존재하면, 보통 피부색에 따른 카스트가 생긴다.

(x) 나이―소년은 아버지의 보호 밑에 남아 있고, 소녀는 결혼할 때까지 어머니가 보살폈다.

사회적 카스트는 한 사람의 일자리를 찾는 문제를 풀지만, 또한 개인의 발전을 줄이고 사회의 협동을 방해한다.

다음과 같은 조종을 통해서 계급은 말소될 수 있다:

(i) 종족 혈통의 혁신―열등한 인간 혈통을 골라서 없앤다.

(ii) 생물학적 개량으로 증가된 두뇌력을 교육으로 훈련한다.

(iii) 필사자가 친척이요 형제라는 느낌을 종교로 깨우친다.

이러한 조치는 천년이 여러 번 지나야 열매를 얻을 것이다.

종교는 문명을 높이는 강력한 지렛대이지만, 정상 지성의 받침이 없이 힘을 쓸 수 없다.

9. 인간의 권리 자연은 사람에게 아무 권리를 주지 않는다. 단지 목숨과 세상을 준다.

사회가 사람에게 주는 첫 선물은 안전이다.

차츰차츰 사회는 다음의 권리를 주장했다:

(i) 식량 공급의 보장.

(ii) 군사적 방어.

(iii) 내부 평화―개인이 폭력을 당하지 않고 질서 있는 사회가 유지되는 것.

(iv) 성의 통제―결혼 및 가족 제도.

(v) 재산―소유할 권리.

(vi) 개인 및 집단 경쟁의 육성.

(vii) 젊은이의 교육.

(viii) 무역과 상업의 촉진.

(ix) 노동 조건과 보상의 개선.

(x) 종교 관습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

권리가 기원을 알 수 없이 오래 되었을 때, 이를 흔히 자연권이라 부른다.

그러나 인간의 권리는 자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준 것이다. 이 권리는 늘 변하는 경기 규칙에 불과하다.

한 시대에 권리인 것은 다른 시대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인간의 권리 중에 거의 아무것도 유럽의 중세에는 인정되지 않았다. 누구나 다른 사람에 속했고, 권리는 국가나 교회가 허락한 특권이나 은혜였다.

이 잘못에 대한 절망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믿음으로 인도했기 때문에, 똑같이 잘못되었다.

약하고 열등한 자는 언제나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였다. 이런 결점은 흔히 무관심과 게으름에서 자연히 생긴 결과이다.

자연 속에 평등은 발견되지 않는다.

문화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능력이 다른 것은 사람이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은 것을 보여준다.

10. 응보의 진화 자연이 응보를 베푼다는 것은 사람이 만든 이론이요, 현실이 아니다.

사람이 파악하는 응보는 자기 권리를 찾는 것을 뜻하며, 점진적으로 진화되는 개념이다. 응보 개념은 완전히 형성되어 세계에 나타나지 않는다.

누가 죽었을 경우에, 야만인은 무엇이 그를 죽였는가가 아니라, 누가 죽였는가 물었다.

원시인의 인생에는 사생활이 없었다. 이웃이 한 사람의 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졌다. 따라서 이웃이 사사로운 일을 엿볼 권리가 생긴다.

사람들은 귀신이 주술사와 사제를 통해서 응보를 베푼다고 믿었다. 사제들을 율법을 시행하는 자로 만들었다.

구약은 결혼 생활의 죄에 대한 시험을 기록한다. 한 남자가 자기 아내가 정절을 지키지 않았다고 의심하면 사제에게 이를 보고했고, 사제는 그 아내에게 거룩한 물과 성전 마루에서 쓸어모은 더러운 것의 혼합물을 마시게 했다. 여자가 몸이 아프지 않으면, 그 여자는 고소당한 죄목에서 풀려났다.

진화하는 거의 모든 부족이 이런 포학한 방법을 언젠가 실행한 적이 있다.

3천 년 전에 히브리인이 응보를 시행하는 그런 원시 방법을 쓴 것에 놀라서는 안 된다. 그러나 생각 있는 사람들이 성스러운 기록 안에 그러한 미개 상태의 유물을 남겨두려 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사회는 일찍부터 눈에는 눈, 목숨에는 목숨으로 복수하는 것을 인정하였다. 복수는 원시 생활의 목표가 되었지만, 종교는 이 풍습을 고쳤다.

자살은 흔한 형태의 복수였다. 살아서 복수할 수 없다면, 죽어서 귀신이 되어 돌아와서 적에게 노여움을 퍼부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죽었다. 이 믿음이 널리 퍼져서, 적의 문간에서 자살한다는 위협은 적을 항복시키기에 넉넉했다.

초기에 진보된 율법은 피의 복수를 부족의 일로 떠맡는 것이었다.

또 한 가지 진보는 금기 위반에 대하여 벌금을 물게 하는 것이었다. 사람의 목숨을 포함하여 모든 것에 값이 매겨지게 되었다.

이처럼 처음에는 가족이, 다음에는 씨족이, 나중에는 부족이 응보를 시행하였다.

산 채로 태워 죽이는 벌은 한때 보통 관습이었다. 모세는 많은 범죄, 특히 심각한 성적(性的) 성질을 가진 범죄는 화형에 처함으로 벌을 주어야 한다고 지시했다.

반역은 처음으로 죽을 죄였다. 가축을 훔치는 것은 보편적으로 당장 사형에 처했고, 최근에도 말을 훔치는 것은 비슷하게 벌을 받았다.

사회가 범죄를 벌하지 못할 때, 집단의 분개심은 사적(私的) 제재로 죽이는 수단으로서 나타난다.

11. 법과 법정 도덕 관습과 법은 구별하기가 힘들다.

법은 반드시 처음에 부정적이고, 무엇을 하지 말라 한다.

초기의 사회는 부정적으로 작용했으며, 모든 사람에게 “너희는 죽이지 말라”는 명령을 내림으로 개인에세 살 권리를 주었다.

금기는 본래부터 부정적이다. 이것은 원시 사회가 무엇을 막으려고 조직되었고, 응보의 시행은 금기를 집행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진실한 증언을 강요하기 위하여, 멩세가 달라마시아 시절에 생겨났다. 맹세는 자신에게 저주를 선언하는 것이었다.

범죄는 부족의 도덕 관습을 어기는 것이었고, 죄는 귀신이 인가한 금기를 어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범죄와 죄가 구분되지 않아서 오랫동안 혼란이 있었다.

사람은 이기심으로 살인하지 말라는 금기를 만들었고, 사회는 이른 관습으로 인가하였으며, 한편 종교는 관습을 도덕법으로 만들었다. 이 세 가지가 인생을 안전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였다.

율법은 구체화되고 공인된 여론이 법전으로 기록된 것이다. 도덕 관습은 축적된 체험이었고, 나중에 지식인들이 성문화된 법을 작성했다.

재산에 관한 투쟁은 다음 방법으로 처리되었다:

(i) 싸움에 걸린 재산을 없애버린다.

(ii) 무력으로.

(iii) 제삼자가 결정한다.

(iv) 장로들에게 상소함으로.

초기의 법정은 주먹 싸움으로 판결했고, 판사는 중재인이었다.

원시의 응보 관념은 공정을 찾기보다 논쟁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어떤 문명의 지위도 그 법정이 얼마나 철저하고 공평한가에 따라 결정되는 듯하다.

12. 국가 권한의 분배 잘 조정된 행정부ㆍ입법부ㆍ사법부 사이에 권력의 균형이 유지되었을 때, 대의정치 종류의 국가 정부가 진화 민족들을 최선으로 규제한다는 것을 우주 행정가들은 배웠다.

이상적 정부는 대의정치 체계이다. 원시 장로 회의가 가졌던 권력은 차츰, 절대 군주에게 집중되었고, 장로 집단은 자문 단체로서 지속하였다. 후일에 입법 기관이 나타났고, 판결하는 최고 법정이 따로 확립되었다.

임금은 처음에 불문률의 집행자였고, 나중에는 제정된 법령을 집행했다.

초기의 임금은 도덕 관습에 크게 제한을 받았다.

유란시아의 필사자들은 자유를 가질 자격이 있고, 정부를 만들고 헌법을 채택해야 한다. 이렇게 하고 나서 유능한 자를 최고 집행자로 뽑아야 한다. 입법부 대표와 판사들은 경험으로 지혜를 가진 자들만 선출해야 한다.

자유를 유지하고 싶으면, 사람은 헌장으로 다음을 방지해야 한다.

(i) 행정부나 입법부가 부당하게 권력을 강탈하는 것.

(ii) 무지한 선동자들의 술수.

(iii) 과학적 진보의 지연.

(iv) 평범의 지배.

(v) 사악한 소수의 지배.

(vi) 독재를 꿈꾸는 자.

(vii) 공포로 생기는 혼란.

(viii) 양심 없는 자들의 착취.

(ix) 세금을 높여 시민을 노예로 만드는 것.

(x) 사회 및 경제적 불평등.

(xi) 교회와 국가의 통합.

(xii)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

이를 방지하는 것이 헌법을 따르는 법정의 목적이다.

유란시아에서 늘 변하는 시대의 요구에 적응하고, 권력을 분산시키고, 지혜로운 행정가들을 뽑음으로 정부를 완전하게 만들어야 한다.

신성한 형태의 정부가 있지만, 그런 것은 계시될 수 없고, 각 행성의 남녀가 천천히 힘들여 발견해야 한다.

   
  71편, 국가의 발전
글쓴이: 네바돈의 한 멜기세덱

1934년

국가는 문명에서 유익한 진화이며, 전쟁의 고통으로부터 얻은 순이익을 대표한다.

현대의 국가는 집단의 권력을 얻으려는 투쟁에서 살아남은 제도이다.

국가는 신에게서 기원을 가지지 않았다. 국가는 순전히 진화된 제도이다.

1. 초기의 국가 국가는 영토가 있고 사회를 규제하는 조직이다.

강력하고 오래 가는 국가는 단일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고, 공통된 언어ㆍ도덕ㆍ제도를 가지고 있다.

초기의 국가들은 자원하는 결합으로 생기기 않았다. 유목민들은 평화로운 목자나 농부들에게 덮쳐서 그들을 노예로 만들곤 했다. 정복으로 생긴 국가들은 여러 층으로 이루어졌고, 계급 투쟁이 불가피했다.

아메리카 홍인의 북쪽 부족들은 국가 상태로 발전하지 못했다. 이로쿼이 연방은 여섯 민족의 집단이었고, 다음의 필수 요소가 빠졌기 때문에 살아남지 못했다:

(i) 사유 재산의 획득과 상속.

(ii) 도시ㆍ농업ㆍ산업.

(iii) 유용한 길들인 동물.

(iv) 실용적 가족 조직 (홍인들은 모계 가족이었다)

(v) 분명한 영토.

(vi) 강력한 행정 우두머리.

(vii) 포로의 노예화.

(viii) 결정적인 정복.

더 진보된 백인의 문명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홍인은 결국 국가를 진화시켰을 것이다.

성공한 로마 제국은 다음에 기초를 두었다:

(i) 부계 가족.

(ii) 농업과 동물 길들이기.

(iii) 인구의 집중.

(iv) 사유 재산과 토지.

(v) 노예 제도.

(vi) 뒤떨어진 민족들을 정복한 것.

(vii) 길과 분명한 영토.

(viii) 강력한 통치자.

로마 제국이 궁극에 멸망하게 된 한 요인은 21살에 남자와 여자를 해방한 조치였다. 여자아이는 자신이 고르는 남자와 결혼하거나 부도덕하게 될 자유가 있었다.

초기의 국가에는 혈통의 유대가 줄어들었고, 정복으로 부족 연맹이 견고해졌다. 후일에 많은 씨족이 무역과 산업 조합에서 생겨났다.

국가를 통합하는 데 실패하면, 유럽에서 중세의 봉건주의처럼 국가 이전의 조건으로 후퇴하게 된다.

2. 대의 정치의 진화 민주주의는 이상이지만, 문명의 소산이요, 진화의 소산이 아니다. 다음과 같은 민주주의의 위험 때문에 너희는 천천히 움직이고 살펴서 선택해야 한다.

(i) 평범의 찬미.

(ii) 저질의 통치자를 선택하는 것.

(iii) 사회의 진화에서 기본적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

(iv) 교육받지 않고 게으른 대다수가 보통 투표권을 가지는 것.

(v) 여론에 노예가 되는 것. 대다수가 언제나 옳지는 않다.

여론은 언제나 사회가 처지게 만들었다. 그렇기는 해도 여론은 값지니, 사회의 진화를 더디게 하지만 문명을 보존하기 때문이다.

여론을 교육하는 것은 문명을 가속하는 유일하게 안전한 방법이다. 여론의 표현은 폭력을 쓰지 않아야 한다.

보통 선거가 사물을 반드시 바르게 결정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나쁜 일조차도 올바르게 처리하는 방법이다.

효과적인 대의 정치의 진화에는 열 단계가 있다.

(i) 사람의 자유. 노예 제도와 농노는 사라져야 한다.

(ii) 지성의 자유. 민족이 교육받지 않으면 자유는 보통 해롭다.

(iii) 법대로 다스리는 것. 통치자의 의지를 법령으로 갈아치울 때, 사람은 자유를 누릴 수 있다.

(iv)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없이 대의 정치는 있을 수 없다.

(v) 재산의 안전. 개인의 재산을 사용할 권한을 인정하지 않으면 어떤 정부도 오래 견딜 수 없다.

(vi) 탄원할 권리. 탄원하는 특권은 자유 시민권에 본래부터 있다.

(vii) 통치하는 권리. 탄원하는 권리는 정부를 실제로 관리하기까지 연장되어야 한다.

(viii) 보통 선거권. 대의 정치는 유능한 보통 선거권자를 전제 조건으로 한다.

(ix) 공복(公僕)의 통제. 시민은 공무원을 통제하는 기법을 소유해야 한다.

(x) 훈편받은 대표. 민주주의는 대의 정치의 성공에 달려 있다. 유능하고 충성하고 도덕적으로 건전한 사람들만 공직에 선출하는 관습을 가져야 한다.

3. 이상적인 국가 시민의 진보에 기본적인 것―자유ㆍ안전ㆍ교육 및 사회적 조정―을 마련해 준다면, 정부의 형태는 거의 중요성이 없다.

어떤 국가도 국민의 도덕적 가치 기준을 뛰어넘을 수 없다.

선택된 백성이라는 신조는 부족의 결속과 국가 건설에 으뜸가는 요소였다. 불관용을 없앨 때까지, 어떤 나라도 이상적 수준에 이를 수 없다.

이상적인 국가는 세 가지 추진력을 받고 움직인다:

(i) 사람이 형제임을 깨닫고 사랑으로 충실한 것.

(ii) 이상에 기초를 둔 총명한 애국심.

(iii) 행성의 사실ㆍ필요ㆍ목표로 풀이한 통찰력.

이상적 국가의 법은 가지 수가 많지 않다. 무엇을 하지 말라는 금기 시대를 지나서, 자유가 진보하는 시대가 된다.

고된 일에서 해방되어 얻는 여가를 유익하게 이용하여 생산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어떤 사회도 빈곤을 묵인할 때 진보하기가 어렵다. 결함이 있는 핏줄을 아낌없이 지원하고 번식하도록 허락하면 결코 빈곤과 의존성을 없앨 수 없다.

도덕적인 사회는 국민의 자존심을 보존하고 정상 시민에게 자아를 실현하는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상적 국가는 진화로, 시민 의식을 키움으로 성취되어야 한다.

참된 연방에서는 전문가가 도시와 지방을 다스리는 사무를 관리한다.

진보된 국가에서, 정치적 봉사는 가장 높은 봉사로 평가된다. 다음에 명예는 철학자ㆍ교육자ㆍ과학자ㆍ산업가ㆍ군인에게 수여된다.

4. 진취적 문명 경제와 사회와 정부는 남아 있으려면 진화해야 한다.

진화 세계에서 정적(靜的) 조건은 무엇이 썩고 있음을 가리키며, 오직 진화의 흐름과 함께 앞으로 움직이는 제도만 지속한다.

문명의 진취적 계획은 다음을 포함한다:

(i) 개인의 자유의 보존.

(ii) 가정의 보호.

(iii) 경제적 안전의 증진.

(iv) 질병의 방지.

(v) 의무 교육.

(vi) 의무 고용.

(vii) 여가의 유익한 이용.

(viii) 불운한 자를 보살피기.

(ix) 종족 개량.

(x) 과학과 예술의 증진.

(xi) 철학의 촉진.

(xii) 우주 통찰력(영적 성향)을 키우는 것.

문명의 이러한 진보는 가장 높은 목표의 실현으로―사람의 형제 정신을 사회에서 성취하고 하나님을 의식하도록―바로 이끈다.

진정한 형제 정신의 출현은 모든 사람이 기쁘게 짐을 지는 사회 질서가 도착했음을 가리킨다.

약한 자나 악한 자가 헌신하는 자를 이용하려고 기다릴 때, 이상적인 사회는 실현될 수 없다.

각 세대에 이상주의자가 낮은 서열의 인간에게 멸종당하도록 버려두면, 이상주의는 행성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국가가 살아남으려면 전쟁 준비가 필요하며, 오직 종교적 이상이 방어 준비를 공격에 악용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5. 경쟁의 진화 경쟁은 사회의 진보에 필수이지만, 규제받지 않은 경쟁은 폭력을 낳는다.

오늘날의 사회에서 경쟁은 산업 자체가 살아남는 것뿐 아니라, 산업에서 사람의 자리를 결정하므로, 경쟁은 천천히 전쟁을 대신하고 있다.

(살인은 사회의 초기에 금지되었으나 아직까지 인류가 전쟁을 금지한 적은 없다.)

여기에 국가의 큰 문제가 있다: 어떻게 산업에서 평온을 보장하고 세금이 산업에 장애가 되지 않게 막으면서 국가가 기생충이나 폭군이 되지 않게 보장할 수 있는가?

경쟁은 진보하는 문명에 꼭 필요하다. 상급 문명에서는 협동이 경쟁보다 더 능률이 있다.

산업의 경쟁은 지나친 낭비이지만, 낭비적 경제 활동을 없애려는 노력이 개인의 기본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6. 이익을 얻으려는 동기 순전히 사리(私利)를 추구하는 이익 동기는 기독교의 이상과 양립할 수 없다.

경제학에서 이익을 얻으려는 동기와 봉사하려는 동기는 종교에서 두려움과 사랑과 같다.

그러나 이익의 동기를 갑자기 없애서는 안 된다.

경제 활동에서 이익의 동기는 높은 사회 체제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익 동기는 문명의 초기에 필수 요소이다.

7. 교육 지속하는 국가는 문화에 기초를 두고, 이상에 지배되며 봉사로 자극을 받는다.

교육의 목적은 기술을 배우고, 지혜를 추구하며, 자아를 실현하고 영적 가치 기준에 도달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상적 국가에서는 교육이 일생 동안 내내 계속되며, 때로는 국민이 철학을 추구한다.

유란시아인은 문화적인 높은 사회를 이루는 꿈을 가져야 한다.

교육은 너무 오랫동안 지역과 군대에 치중하였고, 자아를 찬미하고 성공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교육은 궁극에 이상적이어야 하고 자아를 실현하고 우주를 깨달아야 한다.

교육은 성직자의 통제를 받다가, 요즈음에 사업가들이 통제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궁극에는 철학자와 과학자에게 교육을 맡겨야 한다.

교육은 실천하는 사업이다. 인류는 다음의 지혜를 차츰차츰 체험해야 한다:

(i) 사물에 관한 지식.

(ii) 체험의 의미를 깨닫는 것.

(iii) 가치 기준의 이해.

(iv) 일의 고귀함. (의무)

(v) 도덕적인 목표.

(vi) 봉사하고 싶은 마음―인품.

(vii) 우주를 보는 통찰력.

이러한 성취를 통해서, 많은 사람이 궁극에 하나님을 의식하는 수준까지 올라갈 것이다.

8. 국가의 성질 어떤 인간 정부에서도 유일하게 성스러운 모습은 국가를 행정ㆍ입법ㆍ사법의 세 분과로 나눈 것이다. 우주는 기능과 권한을 그렇게 분리하는 계획에 따라서 관리된다.

국가는 다음 단계로 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i) 행정부ㆍ입법부ㆍ사법부, 세 부분으로 정부를 창조하는 것.

(ii) 사회ㆍ정치ㆍ종교 활동의 자유.

(iii) 노예 제도의 페지.

(iv) 국민이 세금 부과를 통제하는 능력.

(v)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어진 교육.

(vi) 지역 정부와 국가 정부 사이의 조정.

(vii) 과학의 육성과 질병의 정복.

(viii) 남녀 평등.

(ix) 기계의 발명으로 사람이 고된 일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것.

(x) 보편적 언어의 승리.

(xi) 전쟁의 종결. 대륙 법정은 권한을 가지고 세계 법정은 자문한다.

(xii) 지혜의 추구가 널리 유행하는 것. 이것이 행성이 빛과 생명 시대에 들어감을 예시한다.

이것들이 이상적 국가의 표시이다. 유란시아는 이 높은 이상을 이룩하기에 멀었지만, 문명화된 민족들은 첫 걸음을 내디디었다.

   
  72편, 이웃 행성의 정부
글쓴이: 네바돈의 한 멜기세덱

1934년

라나포지의 허락을 받고, 에덴시아 최고자들은 승인을 얻어서, 사타니아 체계에 속하는 어느 행성에서 사는 인류의 사회ㆍ도덕 및 정치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루시퍼 반란에 참여했기 때문에. 이행성은 유란시아와 비슷한 역사를 거쳤고, 이 이유 때문에 이 특별 발표가 인가되었다.

이 행성도 루시퍼 반란에 관계되어 행성 영주가 불충하였다. 아담이 유란시아에 온 뒤에 곧, 이 행성도 한 물질 아들을 받았는데, 그도 직무를 이행하지 못하여 그 구체가 고립되었다.

1. 대륙 국가 행성에 이 모든 장애가 있었는데도, 오스트랄리아 크기의 고립된 대륙에서 우수한 문명이 발전되고 있다. 이 나라의 인구는 1억4천만이다. 거기에 사는 민족은 주로 청인과 황인이 혼합된 종족이고, 유란시아의 백인종보다 보라의 비율이 조금 높다. 평균 수명은 90년이며, 그 행성에서 사는 다른 민족보다 15퍼센트가 길다.

1년에 8개월 동안 비가 내리는 높은 산들이 나라의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이 배치는 수력의 이용을 유리하게 만든다.

이 사람들은 자급 자족한다. 둘러싼 나라들로부터 아무것도 수입하지 않고서 언제까지나 살 수 있다. 국내 상업은 활발하지만 이웃 나라들이 적대하기 때문에, 외국과 거의 무역을 하지 않는다.

부족 단계로부터 강력한 통치자와 왕들이 등장하기까지 몇천 년이 걸렸다. 드디어 통치권이 한 사람의 손에 쥐어졌고, 강력한 군주 정치 밑에서 훌륭한 자유 헌장이 진화하였다.

군주제로부터 대의 정치로 넘어가는 것은 차츰 일어났다.

2. 정치 조직 이 대륙 국가는 이제 대의(代議) 제도의 정부가 있고, 서울은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중앙 정부는 자유로운 1백 주(州)로 된 강력한 연방이다. 이 여러 주는 각자 주지사와 입법가를 뽑고 그 임기는 10년이고 아무도 재선될 수 없다.

도시 정부는 다섯 종류가 있지만, 어느 도시도 1백만이 넘게 거주자를 가질 수 없다.

연방 정부는 동등한 세 분과, 곧 행정부ㆍ입법부ㆍ사법부를 포함한다. 연방의 최고 집행자는 보통 선거로 6년마다 뽑는다. 주 입법가 75명 이상이 탄원하고 주지사들이 찬성할 경우를 제외하고, 재선될 자격이 없고, 그것도 한 임기 뿐이다.

입법부는 3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i) 상원은 산업ㆍ전문직ㆍ농업, 그리고 기타 집단의 노동자들이 선출하며, 경제 활동에 따라서 투표한다.

(ii) 하원은 산업이나 전문직에 들어가지 않는 사회ㆍ정치ㆍ철학 집단을 포함하는 어떤 사회 조직들이 뽑는다.

(iii) 제삼원은 국민에게 오래 봉사한 고참들을 포함한다. 이 집단은 많아야 1백 명으로 제한되어 있다. 회원 자격은 종신이며, 빈 자리가 생길 때, 가장 표를 많이 받은 사람이 선출된다.

연방의 행정 작업의 상당 부분은 10개 지역 당국이 수행하고, 이것은 각기 10개 주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나라는 법 재판소와 사회 경제 재판소의 판결을 받는다.

법 재판소는 세 수준에서 활동한다:

(i) 소(小)재판소는 시와 지역을 관할하며, 그 결정은 주 재판소에 상소될 수 있다.

(ii) 주(州) 재판소는 어느 사례도 연방 최고 재판소에 가져갈 수 있다.

(iii) 연방 최고 재판소는 주 재판소로부터 올라오는 상소 사례를 판결한다. 이 법정은 40세가 넘고 75세 이하인 남자 12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회 경제 재판소는 세 부문에서 활동한다:

(i) 부모 재판소. 가정과 사회의 입법 및 행정 부서와 관련된다.

(ii) 교육 재판소. 학교 체계들과 연결된 행정부 및 입법부와 관련된 기관.

(iii) 산업 재판소. 모든 경제적 오해를 매듭짓는 사법 재판소.

연방의 최고 법정은 제3원(연로 정치가 회의)에서 4분의 3 투표를 받을 경우를 제외하고, 사회ㆍ경제적 사례에 판결을 내리지 않는다.

3. 가정 생활 이 대륙에서, 같은 지붕 밑에서 두 가족이 사는 것은 법에 어긋난다.

집단 거주가 불법이 되었으니까, 아파트 종류의 건물은 대부분 파괴되었다. 그러나 결혼하지 않은 자들은 아직도 클럽이나 호텔, 그리고 기타 집단 거처에서 산다.

집터는 최소 4645 평방미터의 땅을 마련해야 한다.

이 사람들의 가정 생활은 지난 1세기 동안 크게 개선되었다. 부모는 아동의 교양을 가르치는 부모 학교에 참석하는 것이 의무이다. 시골에서 사는 농부들조차 이를 통신으로 마쳐야 한다.

가족에 아이들의 평균 수는 다섯이며, 부모의 통제를 받든지 부모 중 하나나 둘이 죽었을 때, 법정이 지명한 보호자들의 완전한 통제를 받는다.

이 사람들은 가정을 문명의 기본 제도로 여긴다.

모든 성교육은 집에서 부모나 법적 보호자들이 베푼다.

종교 훈련은 부모의 독점 특권으로 생각되며, 종교를 가정 생활의 필수 부분으로 여긴다.

교회와 같은 순전한 종교 조직은 이들 사이에서 발달하지 않았다.

종교가 전적으로 가족의 문제이기 때문에, 종교 집회에 전용되는 공공 장소가 하나도 없다.

영적 교육자들은 아이들을 정기적으로 검사하려고 각 가정을 찾아보며, 그들은 정부의 감독을 받는다.

아이들은 15살까지 법적으로 부모 밑에 남아 있으며, 그때 시민의 책임을 받도록 처음 입회식이 거행된다. 그 뒤에 5년마다 다섯 기간 동안, 비슷한 행사가 거행되며, 거기서 부모에 대한 그들의 의무가 차츰 줄어들고, 사회적 책임이 늘어난다.

결혼과 이혼 법률은 나라에 두루, 한결같다. 20살이 되기 전에 결혼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이혼 규칙은 느슨하지만, 별고의 선포는 이혼 신청 후 1년이 지날 때까지 받지 못한다. 이들의 이혼율은 문명화된 유란시아 민족 이혼율의 10분의 1밖에 안 된다.

4. 교육 제도 이 나라에서 5살부터 18살까지, 대학 밑의 학교에서 교육은 의무이며 남녀 공학이다.

이 학교들은 유란시아의 학교들과 엄청나게 다르다. 교실이 없고, 한 때에 오직 한 가지 공부만 추구하며, 처음 3년 뒤에는 모든 생도가 조교가 되고, 그들 밑에 있는 자들을 가르친다.

책은 오로지 학교의 작업장과 학교 농장에서 생기는 문제를 푸는 데 도움 되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 쓰인다. 각 작업장 옆에는 기초 도서관이 있다.

저능한 아이들은 농업과 축산 분야에서 훈련을 받는다. 거기서 이들은 부모가 되지 못하도록 분리되며, 부모 노릇은 정상 이하의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는다.

모두가 한 해에 한 달 동안 휴가를 가진다. 대학 이하의 학교들은 열 달로 된 1년에 아홉 달 동안 운영된다.

학교 시간의 4분의 1은 경쟁하는 운동에 바치고, 생도들은 이 경쟁에서 주와 지방의 시합을 거쳐서 전국 시합까지 올라간다.

학교의 정부는 세 지부를 가진 국가 정부의 복사판이며, 교직원은 자문하는 입법 부서로서 활동한다.

대학 밑의 학교에서 18살에 졸업하는 아이들은 모두 솜씨 있는 기능공이 된다. 책을 연구하고 지식을 추구하는 것은 성인 학교나 대학에서 시작된다.

5. 산업의 조직 이 민족 사이에서 산업의 상황은 이상과 거리가 걸다. 자본가와 노동자는 아직도 문제를 안고 있지만, 양자가 협동하는 계획에 적응되고 있다.

이 대륙에서 노동자는 갈수록 모든 산업 분야에서 주주(株主)가 되고 있다. 모든 영리한 노동자가 천천히 작은 자본가가 되고 있다.

노예 제도가 폐지된 이후로 (1백 년이 넘는다), 아무런 심각한 경제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것은 1년에 2퍼센트씩 해방시킴으로 이러한 조정이 차츰차츰 일어났기 때문이다.

개인이나 산업의 의견 차이를 조정하는 데 폭력은 금지되었다.

산업 재판소들은 만족스럽게 활동한다. 산업 재판소들은 세 부문에 법적 보상을 인정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i) 투자된 자본에 대한 법정 이자율.

(ii) 산업 활동에 고용된 기술에 대한 적당한 봉급.

(iii) 노동자에게 주는 공평한 임금.

이 조건들은 먼저 만족시키든지, 아니면 소득이 줄어들 경우에 이들은 일시적 감소를 비례하여 분담해야 한다. 고정된 비용을 초과하는 이익은 자본ㆍ기술ㆍ노동에게 비례하여 분배되어야 한다.

산업은 이제 5일로 된 1주에 근거를 두고, 나흘 일하고 하루를 논다. 이들은 일하는 날에 6시간 일하며, 열 달로 된 1년에 아홉 달 일한다.

휴가를 여행에 보통 쓰며, 나라 전체가 여행에 흠뻑 빠져 있다.

2백 년 전에는 이익 동기가 산업을 온통 지배했지만, 더 높은 추진력이 이익 동기를 대체하고 있다.

경쟁은 사회에 봉사하고 정부에 충성하는 데서 가장 활발하다. 대륙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의 그의 기계 작업장 사무실에서 하루에 여섯 시간 일하고, 다음에 정치 학교의 지역 지부에 가서 공직을 얻을 자격을 갖추려고 애쓴다.

18살이 넘고 정상의 몸을 가진 모든 국민은 집과 농장에서, 공공 사업과 광산에서 일한다.

이 사람들은 게으름과 벌어들이지 않은 재산에 대한 혐오감을 기르고 있다. 이들도 한때는 정치적 자유를 위하여, 나중에는 경제적 자유를 위하여 투쟁했다.

6. 노령 보험 이 나라는 아이들을 모두 교육시키고 모든 사람에게 직업을 마련해 준다. 따라서 허약하고 나이 든 사람을 보호하기 위하여 그런 보험을 마련할 수 있다.

주(州)의 노동 위원장으로부터 70세까지 남아서 일하도록 자격을 부여하는 허가를 받지 않는 한, 모든 사람이 65세에 소득을 얻는 직업에서 은퇴해야 한다.

신체적으로 일할 수 없거나 불구가 된 사람은 나이에 상관 없이 은퇴자 명단에 올라갈 수 있다.

노년기 연금은 네 가지 근원에서 생긴다:

(i) 한 달에 하루의 소득은 이 목적으로 강제로 떼어 간다.

(ii) 부유한 사람들이 유산(遺産)을 남긴다.

(iii) 주(州)의 광산에서 강제 노동으로부터 생기는 잉여 소득은 이 연금에 넘겨진다.

(iv) 지하 자원에서 생기는 소득의 반은 노년 연금의 기금으로 들어간다.

이러한 정부 기금은 오랫동안 정직하게 관리되어 왔다. 반역과 살인 다음에 무거운 벌은 대중의 신임을 저버리는 데 내려진다.

7. 세금 연방 정부는 노년 연금의 관리와 천재 및 독창성의 육성에만 간섭한다.

주 정부는 개별 시민에 더 관심을 가지며, 한편 지역 정부는 더욱 간섭한다.

어떤 산업에서도 먼저 건강에 주의를 기울인다.

도시는 전혀 세금을 부과하는 권한이 없고 빚을 질 수도 없다. 도시는 주 재무부로부터 머리 수에 따라 수당을 받고, 이러한 소득을 사회주의적 기업에서 생긴 소득과 면허를 줌으로 보충해야 한다.

급히 이동하는 시설은 도시의 통제를 받는다. 모든 건물은 불연성(不燃性)이다.

시에서 임명하는 치안 관리는 없다. 주 정부가 경찰력을 관리한다.

25세부터 50세 사이에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로 경찰 부서를 채운다.

경제 조건이 지역에 따라 다르니까, 1백 주의 세금 계획은 같지 않다.

주마다 10개의 헌법 조항이 있다. 한 해에 어떤 재산에도 1퍼센트가 넘는 세금을 부과하지 못하게 하고, 집터는 세금이 면제된다.

연방 정부는 빚을 질 수 없으며, 전쟁 목적이 아닐 경우에, 돈을 빌리는 데 4분의 3의 주민 투표가 요구된다.

전쟁이 일어날 경우에, 국가 방어 회의가 여러 주에게 사람ㆍ물자ㆍ돈을 부과할 권리가 있다.

연방 정부의 소득은 다섯 근원으로부터 생긴다:

(i) 수입세.

모든 수입품은 생활 수준을 보호하려고 고안된 관세를 물어야 한다. 최고 산업 재판소가 관세를 정하는데, 최고 집행자는 두 입법 기관이 임명한 사람이다. 노동자가 상원을 선출하고 자본가가 하원을 선출한다.

(ii) 특허권 사용료.

연방 정부는 발명을 권장하며 특허를 보호한다. 그 대신에 발명과 창작품으로부터 생긴 이익의 절반을 가진다.

(iii) 상속세.

1퍼센트에서 50퍼센트까지 누진되는 상속세를 부과한다.

(iv) 군사 장비.

육군 및 해군 장비를 상업 용도로 빌려줌으로 버는 돈.

(v) 자연 자원.

자연 자원에서 생기는 소득은, 특별한 목적으로 헌장이 전액을 요구하지 않을 때, 국가의 금고로 넘어간다.

전쟁 기금을 제외하고, 예산은 상원에서 시작되고, 하원의 동의를 얻고, 최고 집행자의 승인을 받고, 마지막에 100명으로 구성된 연방 예산 위원회가 예산을 유효하게 만든다.

8. 특별 학부 의무 교육은 5살부터 18살까지 이어진다. (15년) 특별 학교들이 다음과 같이 유지된다.

(i) 정치 학교. 이 학교들은 국가ㆍ지역ㆍ주(州), 이 세 등급으로 되어 있다.

국가의 공직은 4 부문으로 분류된다. 공직의 첫째 부문은 주로 국가 행정에 관계되는데, 이 집단의 관리들은 모두, 지역의 정치 학교와 국가 정치(政治) 학교를 졸업한 자라야 된다.

정치 학교를 졸업한 개인은 둘째 부문의 직책을 받아들여도 좋다. 제3 부문은 주 정부의 직책이며 주의 정치 학위를 소지해야 한다. 넷째 부문의 관리들은 정치 학위가 필요 없고 지명된다.

소 재판소와 주 재판소의 판사들은 주의 정치 학교에서 받은 학위를 소지한다.

(ii) 철학 학교. 이 학교들은 철학의 전당과 관계가 있다.

(iii) 과학 기관. 이 기술 학교들은 산업과 조정된다.

(iv) 전문직 훈련 학교. 이 학교들은 다양한 학문 직종을 위하여 훈련을 마련해 준다.

(v) 육군 학교와 해군 학교. 25개의 군사 중심에는 시민의 군사 훈련에 전념하는 기관들이 유지된다.

9. 보통 투표 계획 이 나라의 지도자들은 보통 투표 계획에서 심각한 약점을 발견했고, 투표 계획을 수정하였다.

(i) 20세 이상의 모든 남자와 여자는 한 표를 가진다. 이 나이가 되고 나서, 시민은 두 투표 집단에서 회원 자격을 받아들여야 한다.

경제 활동에 따라서 첫째 집단에 참가한다. 정치ㆍ철학ㆍ사회적 경향에 따라서 둘째 집단에 들어간다.

(ii) 사회에 크게 봉사했거나 정부 근무에서 비상한 지혜를 보인 자들은 5년 이상의 기간마다 추가된 투표권을 받아도 좋으며, 초월 투표권은 9을 넘지 못한다. 최대 투표수는 10이다.

과학자ㆍ발명가ㆍ선생ㆍ철학자ㆍ영적 지도자는 또한 늘어난 정치 권력을 받음으로 이렇게 인정받고 영예를 얻는다.

(iii) 광산에서 강제 노동을 하라고 판결받은 사람과 세금으로 지원을 받는 공무원은 근무 기간에 투표권을 잃는다. 이것은 65세에 연금을 받고 은퇴하는 사람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iv) 세금을 반영하는 투표권에는 다섯 등급이 있다. 세금을 많이 낸 자는 5표까지 추가 투표권이 허락된다.

(v) 모든 시민은 이제 거처에 상관 없이, 산업ㆍ사회, 또는 전문직 집단의 회원으로서 투표한다.

최고 집행자의 선거를 제외하고, 투표권은 경제적ㆍ직업적ㆍ지적ㆍ사회적 분류에 따라서 행사된다.

정치 학교들은 결함이 있거나, 게으르거나, 무관심하거나, 범죄 성향이 있는 사람의 투표권을 빼앗는 절차를 시작할 수 있다.

이 사람들은 한 나라의 50퍼센트가 열등하거나 결함이 있는데도 투표권을 가질 때, 그런 나라가 망한다는 것을 헤아린다. 투표는 의무이며, 투표하지 않는 자에게 무거운 벌금이 부과된다.

10. 범죄 다루기 이 종족이 범죄와 퇴화를 다루는 방법은 대부분의 유란시아인에게 충격이 될 것이다.

범죄자와 결함 있는 자는 성별에 따라서 보통 농업 식민지에 보내며, 이들은 자급 자족하고도 남는다. 심각한 습관성 범죄자와 치료할 수 없이 미친 자는 가스 방에서 죽도록 재판소에서 선고를 받는다.

요즈음에 그들은 살인과 큰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식민지에서 종신 근무하도록 선고하여 범죄를 방지하려고 한다. 죄수들이 정상으로 되었다는 것을 보이면 가석방이나 사면을 받을 수도 있다. 이 대륙에서 살인율은 다른 나라들의 1퍼센트 정도이다.

죄수와 결함 있는 자들의 번식을 막으려는 노력은 흡족한 결과를 낳았다. 미친 사람을 위하여 아무런 감옥이나 병원이 없다. 이 집단이 유란시아의 10퍼센트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11. 군대의 준비 상태 국가 방어 회의의 총재는 군사 학교 졸업생들을 일곱 계급으로, “문명의 수호자”로 임명할 수 있다. 이 회의는 25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70세가 되기까지 근무한다.

임명 받은 장교들의 과정은 4년 걸린다. 관계된 산업ㆍ과학, 또는 전문직의 교육을 받지 않고는 군사 훈련을 결코 주지 않는다. 군사 훈련이 끝났을 때, 개인은 4년 과정 동안에 다른 특별 학교에서 주는 교육의 절반을 받은 것으로 쳐준다. 이 방법으로 남자들에게 자신을 부양할 기회를 마련해 줌으로, 직업 군인 계급의 창설을 피한다.

평화 시절에 군대 복무는 자원이고 4년 동안이다. 남자들은 군사 전술 외에, 어느 특별 직종의 연구를 추구한다.

둘러싼 적대 민족들의 침공에 대한 방어로서 이들은 강력한 전쟁 시설을 유지하지만, 이를 공격하는 전쟁에 이용하지 않았다. 이들은 지난 2세기 동안 아홉 번이나 방어 전쟁을 수행하였다.

세계와 평화를 누리고 있을 때, 모든 방어 장치는 무역ㆍ상업ㆍ오락에 이용된다.

12. 다른 여러 나라 이 민족의 사회와 정부가 여러 모로 유란시아 국가들보다 우수하지만, 다른 여러 대륙에 있는 11개 국가의 정부들은 유란시아의 진보된 나라들보다 열등하다.

이 나라는 열등한 나라들과 대사(大使) 관계를 세우려고 계획하고 있으며, 둘러싼 이 나라들에 선교사를 보내자고 주장하는 종교 지도자도 있다. 우리는 이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이 대륙 국가가 이웃 민족들 중에서 훌륭한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교육시킨 다음에 도로 밀사로 보낼 수 있다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유란시아에서 문명을 향상시키고 정부의 진화를 도우려는 뜻으로 특별 허가를 받고서, 이 이웃 행성의 일을 이야기한다.

유란시아인은 이 행성이 심판관 임무나 수여 임무를 띠고 오는 파라다이스 아들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진실의 영이 부어진 것은 인류가 큰 업적을 이룩할 영적 기초를 마련해 주며, 빛과 생명의 시대의 문턱까지 이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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