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6 편, 십자가에 못 박히기 바로 전


글쓴이: 중도자 위원회

서기 30년 4월 7일(금)

예루살렘

예수와 고발자들이 헤롯을 보려고 떠났을 때, 주는 요한에게 말했다: "너는 나를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이 더 없느니라. 내 어머니께로 가서, 내가 죽기 전에 나를 보도록 어머니를 모셔 오라."

요한은 베다니의 나사로의 집으로 서둘러 갔는데, 거기에는 예수의 가족 전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요한에게서 예수가 체포된 이후로 일어난 모든 것을 들은 뒤에, 어머니 마리아는 당장 요한을 따라서 맏아들을 보러 갔다.

동생 룻이 따라가려고 각오가 굳었기 때문에, 오빠 유다가 룻과 함께 갔다.

1. 가룟 유다의 마지막

아침 8시 반쯤에 빌라도 앞에서 예수의 청문회가 끝났고, 주는 로마 군인들의 보호에 맡겨졌다.

유대인 경비대의 지휘관은 부하들과 함께 성전 본부로 돌아갔다. 주사제와 산헤드린 의원들은 성전의 회의 장소로 갔고, 가야바는 산헤드린에 경과를 보고하였다. 그동안에 유다는 보상을 요구하려고 그들 앞에 나타났다.

유대 당국의 태도가 쌀쌀한 것이 싫었지만, 유다는 후하게 보상받기를 기대했다.

대사제의 하인이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방 바깥으로 불러내어 말했다: "유다여, 예수를 배반한 것에 대하여 당신에게 돈을 주라고 나는 지시를 받았소. 여기 당신의 보상이 있소이다." 이렇게 말하며 가야바의 하인은 은화 서른 잎이 담은 자루를 주었다. (이것은 건강한 노예 값에 상당했다.)

유다는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았고, 방으로 도로 달려갔지만, 문지기가 막았다. 정신없이 돈 자루를 호주머니에 집어넣고서 도시를 헤매다녔다.

다시 성전으로 달려가서 강제로 아직 회의 중인 산헤드린 앞에 섰다. 유다는 더듬거리며 이런 말을 뱉었다: "내가 죄 없는 자의 피를 팔아넘겼으니, 죄를 지었소이다… 내가 이렇게 한 것을 뉘우치오이다. 여기 당신들의 돈이 있소이다."

유대인 권력자들 중에 한 사람이 말했다: "네 죄책감에 대하여 말하자면,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 네가 알아서 처리하라―그리고 꺼져라!"

산헤드린의 방을 떠나면서 유다는 은화 서른 잎을 꺼내서 성전 마루에 동댕이쳤다.

죄는 저지를 때 모험하는 맛이 나지만, 이제 낭만적이 아닌 사실을 거두어야 한다.

유다는 예루살렘의 거리를 지나서 걸었다. 힌놈의 골짜기에 가파른 바위로 기어 올라가서, 허리띠를 쥐고 한쪽 끝을 작은 나무에 매고 다른 끝을 목 둘레에 묶고, 절벽 너머로 몸을 내던졌다. 배반자의 몸은 바위 위로 떨어지면서 박살이 났다.

2. 주의 태도

예수는 육체를 입고서 땅에서 할 일이 끝났음을 알았다. 어떤 종류의 죽음을 겪을 것인가 알았고, 그는 재판의 세부에 거의 아랑곳하지 않았다.

산헤드린의 법정에서 거짓 맹세하는 증언에 대답하려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아들인가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대답했다.

모든 다른 인간이 겪어야 하는 것과 똑같이 자연스러운 과정에 복종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라고 예수는 확신했다. 따라서 순전히 그의 인간적 능력, 웅변조차 이용하려고 하지 않았다.

예수는 무서운 침묵 속에서 한 나라가 사멸하는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 무리들은 (빌라도 앞에서 예수가 재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앞에서 빌라도가 심판받는" 장면의 방송을 자제할 수 없었다.

예수는 대사제의 물음에 서슴지 않고 대답하고 그에게 신성 모독죄의 근거를 마련해주었다.

의도는 좋았어도 예수를 석방하려고 빌라도가 기울인 노력을 주는 거들떠보지 않았다.

예수는 재판 중에 입을 거의 열지 않았지만, 그의 말씀은 사람이 어떤 종류의 인품을 완성할 수 있는가 모든 필사자에게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그가 무지한 필사자들을 사랑한 것은 거친 군인과 지각없는 하인들의 놀림ㆍ구타(毆打)ㆍ주먹질을 당하고서 그가 보인 참을성에서 드러난다.

빌라도가 "이 사람을 보라!" 외쳤을 때, "하나님인 사람을 보라!"하는 소리가 온 네바돈에 두루 메아리쳤다.

3. 믿음직한 다윗 세베대

성전 경비원들의 한 무리가 주의 추종자들을 흩어지게 하거나 체포하려고 겟세마네로 갔지만, 이들은 이미 흩어졌다.

예수가 로마 군인들에게 넘겨지자마자, 한 사자가 다윗에게 서둘러 갔고, 다시 주자들이 5분 안에 벳세다ㆍ펠라ㆍ필라델피아ㆍ시돈ㆍ세켐ㆍ헤브론ㆍ다마스커스ㆍ알렉산드리아로 달려갔다.

다윗은 사도와 그리스인들, 그리고 나사로의 집에 모여 있던, 예수의 세상 식구들에게 거의 반시간마다 보고를 보냈다.

다윗은 예수가 죽고 "사흘째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말씀을 사무적으로 받아들이고 싶어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예수의 추종자들 가운데 아무도 예수가 그렇게 빨리 살아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4. 십자가 처형을 위한 준비

빌라도는 군인들의 지휘관에게 주를 즉시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말했다.

군인들이 처형 장소를 향하여 떠난 것은 9시 조금 전이었다.

이들은 예수의 침착성과 침묵에 감명받았다.

처형 장소로 예수와 함께 떠나는 데 지체된 것은 그 지휘관이 선고받은 두 도둑을 함께 데리고 가려고 마지막 순간에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도둑들이 준비가 되자 안뜰로 끌려 왔는데, 하나는 예수를 처음 보았지만, 다른 하나는 예수의 말씀을 성전에서, 또 펠라 캠프에서 자주 들은 적이 있었다.

5. 예수의 죽음과 유월절의 관계

예수의 죽음과 유월절 사이에는 아무 관계가 없다.

십자가에서 예수가 죽도록 계획하고 사형을 집행한 것은 사람이요, 하나님이 아니었다. 파라다이스에 계신 아버지는 예수가 십자가에 죽으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예수는 다만 육신화를 벗어야 했고, 두 도둑 사이에 죽지 않고서 수많은 방법으로 죽을 수 있었다.

예수의 임무는 세례받을 때 끝났다. 그 뒤의 여생은, 죽는 그 방법조차, 이 세상과 다른 세상들에 사는 필사 인간들의 복지를 위하여 몸소 수고를 베푸신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의 복음은 예수의 죽음과 상관이 없다.

사람과 창조주 사이의 아름다운 관계는 영원부터 존재해 왔으며, 창조 아들들의 정기적 수여와 상관 없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예수가 살다가 죽기 전에도 땅에 있는 인간을 사랑하셨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미가엘이 이렇게 수여되었다고 해서 우리를 더 사랑하지는 않지만, 하늘의 모든 다른 지적 존재는 그렇다.

예수는 사람들의 죄를 갚는 희생물로서 죽으려 하는 것이 아니요, 인류의 타고난 죄를 대신 갚으려 하는 것이 아니다.

죄와 반란은 파라다이스 아들들을 수여하는 계획과 상관이 없다.

하나님이 필사자에게 베푸는 구원은 예수가 잔인한 방법으로 죽지 않았더라도, 어김 없이 확실했을 것이다.

너희 필사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 진실이 너의 개인 체험에서 사실이 되는 데는 오직 한 가지가 필요한데, 영에게서 태어난 너의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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