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6 편, 화요일 저녁 올리브 산에서

글쓴이: 중도자 위원회

서기 30년 4월 4일

올리브산

예수와 사도들이 겟세마네 캠프까지 가는 길에, 성전 바깥으로 나가면서 마태는 성전의 건축에 주의를 끌면서 말했다: “주여, 이것들이 어떤 모양의 건물인가 지켜보소서… 도대체 이 건물들이 파괴되는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타이투스 장군의 군대가 서기 68년에 성전의 돌들을 밀어버렸고, 이를 많은 사람이 가져다 썼으나, 아직도 잔재가 이렇게 남아 있다.

예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을 날이 곧 닥치리라. 사람들이 이 돌들을 모두 던져 버리리라.”

올리브 산에서 머무르는 동안에, 그들은 지는 태양의 햇살로 눈부시게 된 성전을 지켜보았다. 나다니엘이 물었다: “주여, 말씀하소서. 언제 이 사건들이 일어나려 하는지 우리가 어찌 알 수 있나이까?”

올리브 산에서 보는 옛 도시 예루살렘

1. 예루살렘의 멸망 나는 바야흐로 너희를 떠나려 하고, 아버지께로 가노라… 너희가 전쟁 소문을 들을 때 상관하지 말지니, 예루살렘의 종말이 아직 가깝지 아니한 까닭이라.

“너희가 재판관 앞에 설 때,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초조해하지 말지니, 바로 그 시간에 영이 너희가 적들에게 어찌 대답해야 할까 가르칠 것임이라.

구원자가 물질적 사명을 가졌다는 생각에 집착하는 결심은 유대인들이 로마 군대와 충돌하게 만들리라는 것, 그러한 투쟁은 유대 민족의 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주는 깨달았다. 이 세속적 메시아 관념이 궁극에 유대인을 멸망시킨 소동을 초래하였다고 후일에 유대인 지도자들도 인정하였다.

예수는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유대 민족의 멸망이 있을 때 복음 선생과 전도자들이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

안드레가 물었다: “거룩한 도시와 성전이 멸망해야 된다면, 언제 우리가 예루살렘을 버려야 하나이까?” 예수가 말했다: “거짓 선지자들의 폭동이 있은 뒤에 너희가 예루살렘이 마침내 로마 군대에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예루살렘의 황폐가 가까웠음을 너희가 알리라… 그때 너희는 산으로 달아나야 하느니라.

“순종하지 않는 이 민족은 칼날에 쓰러지고 모든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겠고, 그렇게 예루살렘이 이방인에게 짓밟히리라.


마사다 요새 밑에 로마 군대가 진을 쳤던 흔적

로마 군대가 처음 나타나자, 바로 이 경고에 순응하여 신자와 제자 무리의 거의 전부가 예루살렘에서 달아났고, 펠라에서 안전한 피난처를 발견했다.

예수의 많은 추종자가 성전의 멸망을 “세상의 종말”과 연결시키려고 마음먹었다. 세상의 종말이 온 뒤에 “새 하늘과 새 땅”이 뒤이어 나타날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베드로가 물었다: “주여,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날 때 모든 것이 없어질 것을 우리가 아나이다. 그러나 당신이 이 모든 것을 일으키려고 언제 돌아오실까 우리가 어찌 알리이까?”

예수는 말했다: “너희가 늘 잘못하는 것은 새 가르침을 옛 가르침과 연결하려고 너희가 언제나 애쓰는 까닭이라. 너희는 내 가르침을 모두 오해하려고 결심하였구나.

2. 주의 재림 예수는 몇 번 어떤 말씀을 한 적이 있는데, 이것은 듣는 사람들이 예수가 얼마 안 있어 이 세상을 떠나겠지만 하늘나라 일을 마치려고 돌아오리라 추측하도록 이끌었다.

예수가 그들을 떠나리라고 추종자들이 확신하게 됨에 따라서, 그가 돌아온다는 약속을 모든 신자가 단단히 믿음 것은 자연스러울 따름이다. 이처럼 예수가 다시 오신다는 교리는 기독교의 가르침에 일찍 합병되었다.

초기의 제자와 사도들은 예루살렘이 멸망한다는 예언을 그가 다시 오신다는 약속과 연결시켰다.


중세의 예루살렘 지도

예수: “어찌하여 너희는 아직도 사람의 아들이 다윗의 보좌에 앉기를 찾느냐?… 내 아버지가 내게 모든 권한을 투입한 뒤에, 나도 또한 너희의 운명을 계속 따르고 내 영을 머지 않아 모든 육체에 부으리라. 또한 약속하노니, 내가 이 세상으로 언젠가 다시 돌아오리라.

“육체를 입은 나를 지금 너희가 보아도, 돌아올 때 나는 권능을 가지고 영이 되어 오리라.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다시 나타날 그때는 오직 파라다이스 회의에서만 알고 있고, 천사들조차 이 일이 언제 일어날까 모르느니라. 이 하늘나라 복음이 온 세상에 선포되었을 때, 아버지는 너희에게 또 다른 섭리 시대 수여자를 보내거나, 아니면 사람의 아들이 시대를 판결하려고 돌아오리라.

“이제 예루살렘이 겪을 진통에 관하여 이르자면, 이에 대하여 내가 말한 적이 있고, 내 말이 이루어지기까지 이 세대조차 사라지지 아니하리라.

“너희 각자가 죽음의 문을 지나가라고 부름받을 때, 너희는 즉시 심판대에 서는 것을 너희는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가 끝까지 천수를 누리고, 그렇게 죽어서, 한 시대의 끝에 온 세상이 부닥쳐야 할 것을 너희는 각자 개인적 체험으로서 부닥쳐야 하느니라.

주의 강연 가운데 아무것도,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가 다시 온다는 이 두 가지 주제에 관하여 하신 이 강연만큼 그들의 머리 속에 그렇게 뒤죽박죽이 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강연에 근거를 둔, 후일에 쓴 기록들 사이에 일치되는 것이 거의 없었다. 어떤 셀타라고 하는 사람이 쓴, 유대인 묵시록이 마태 복음에 통째로 복사되었고, 나중에 마가와 누가의 기록에 첨가되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이렇게 혼동하지 않았다.

열세 사람은 캠프를 향하여 길을 다시 떠났다.

3. 캠프에서 나중에 있은 토론 스무 명쯤 모닥불 주위에 모여 있는 동안 토마스가 물었다: “당신이 하늘나라의 일을 마치려고 돌아오셔야 하오니, 당신이 떠나 있는 동안 우리가 무슨 태도를 가져야 하나이까?

예수: “토마스야, 너조차도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구나. 너와 하늘나라의 관계는 개인이 영적으로 체험하는 문제라고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더냐? 믿지 않는 유대인들의 멸망, 한 시대의 종말, 아니 세상의 종말조차, 이 복음을 믿는 자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희는 이미 영생을 보장받았느니라… 나라들이 전복되거나 시대가 끝나거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진다면, 너에게 무슨 문제이냐?

“자연사에 비추어 신자 하나하나가 일생의 일을 추진하는 것 같이, 각 세대의 신자들은 사람의 아들이 돌아올 가능성에 비추어 자기의 일을 해야 하느니라. 하늘나라에서 아들인 것을 너희가 한 번 받아들였다고 해도, 진실을 끈질기게 거절하면 너희를 구원하지 못하리라.

“내가 비유를 말하니 들으라: 어떤 위대한 사람이 먼 길을 떠나기 전에, 믿던 종들을 앞에 부르고 저희에게 그의 재물을 맡겼더라. 한 사람에게 다섯 달란트를 주었고, 한 사람에게 두 달란트, 또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었더라. 이렇게 각자의 능력에 따라서 재물을 맡기고 나서 길을 떠났더라.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는 즉시 장사하여, 금방 다섯 달란트의 이익을 얻었고, 마찬가지로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곧 두 달란트를 더 벌었더라. 그래서 이 종들이 모두 이익을 얻었는데, 한 달란트만 받은 자는 땅에 구덩이를 파고 주인의 돈을 감추었는지라.

“뜻하지 않게 주인이 돌아와서 계산하라고 집사들을 불렀더라.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가 말하되 ‘주여, 당신이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고, 내가 번 다섯 달란트를 더 내놓게 되어 기쁘나이다.’ 주인이 그에게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아, 이제 너를 여러 사람 위에 집사로 세우리라.’ 그리고 나서 두 달란트 받은 자가 말하였더라: ‘주여, 당신은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나는 두 달란트를 더 벌었나이다.’ 주인이 그에게 이르되, ‘잘하였도다, 너도 충성하였으니, 내가 너를 여러 사람 위에 세우리라.’

“한 달란트를 받았던 자가 나와서 말하되, ‘주여, 당신이 몸소 수고하지 않은 데서 이익을 기대하시니, 당신이 맡긴 것을 위태롭게 하기가 두려웠나이다. 나는 당신의 달란트를 땅 속에 감추었나이다. 여기 있나이다.’ 주인이 대답하되, ‘너는 게으르고 굼뜬 집사이라. 내가 계산을 요구할 것을 알았은즉, 내 돈과 이자를 받도록 적어도 내 돈을 은행가의 손에 맡겨야 했느니라.’ 그리고 나서 우두머리 집사에게 주인이 말하되, ‘이 한 달란트를 이 집사에게서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주라’ 하였더라.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으려니와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기리라. 내 아버지는 자녀들 모두가 성장하기를 요구하시니라.

“이제부터 너희는 아버지의 일에 몰두해야 하느니라. 내가 올 때까지 계속하라. 그리하면 너희는 청산하라고 죽음이 부를 때 준비가 되리라.

예수를 따른다고 공언한 자들의 세대가 이렇게 말한다면 얼마나 딱한가: “주여, 1백 년이나 1천 년 전에 당신이 우리에게 맡긴 진리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는 하나도 잃지 않았고, 당신이 주신 것을 충실히 간직하였나이다. 여기 그대로 있나이다.” 그러한 탄원은 열매 없는 집사가 옳다고 입증하지 않을 것이다.

태고난 재능이 많든 적든, 공정한 계산을 직면해야 한다. 자질을 오로지 이기적 추구에만 썼고, 높은 의무에 마음을 쏟지 않는다면, 그러한 이기적 집사는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기적 필사자는 한 달란트를 받고 열매 없는 것을 주인의 탓으로 돌린 불충한 종과 얼마나 비슷한가.

그들이 쉬러 갈때 예수는 말했다: “너희는 거저 받았은즉 거저 하늘의 진실을 주어야 하느니라.”

4. 미가엘의 돌아오심 주의 모든 가르침 가운데 언젠가 그가 친히 돌아온다는 약속처럼 오해받은 것은 없다. 지금은 광대한 우주를 통치하는 군주가 된 나사렛 예수가 그 권능을 얻어낸 세상으로 여러 번이라도 돌아오고 싶어하리라 믿는 것은 당연하다.

주가 현세의 구원자로 활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유대 나라가 멸망한다는 예언을 듣고서, 추종자들은 그가 돌아온다는 약속을 대격변의 사건들과 연결시키기 지작했다.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의 담을 밀어 버리고 성전을 무너뜨렸는데도 주가 돌아오시지 않자, 추종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세상의 종말과 연결시키기 시작했다.

예수는 두 가지 일을 하기로 약속했다. 첫째로, 자기 대신에 다른 선생(진실의 영)을 보내겠다고 약속했고, 오순절 날에 그대로 했다. 둘째로, 언젠가 이 세상으로 친히 돌아오리라고 약속했다. 그가 돌아올 때, 영적 믿음의 눈으로만 그를 알아볼 수 있으리라고 암시하였다.

우리 가운데 다수가 예수가 여러 번 유란시아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그가 언제, 어떻게 오실 것인가 우리는 짐작할 수 없다. 그가 돌아올 때, 아마도 온 세상이 알 듯하다. 베들레헴의 이름 없는 아기가 아니라, 한 우주의 통치자로 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가 다시 오시는 것을 어떤 사건이나 정착된 시대와 분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땅에 미가엘이 다시 오는 것은 중도자와 인간에게 감상적인 사건이지만, 그 외에 실용적 중요성이 없다. 빛의 자녀들은 모두 그를 만나볼 터이고, 우리가 그에게 가거나 아니면 그가 먼저 우리에게로 오든지, 조금도 아랑곳할 것이 아니다. 예수가 하늘에서 너희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이, 너희는 언제나 땅에서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하여라. 그가 언제, 어떤 관계로 오실지 우리는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