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1 편, 대중 전도의 시작

글쓴이: 중도자 위원회

서기 27년 1월 19일 → 4월6일

갈릴리 → 예루살렘

안드레는 물가에서 예수가 배에 앉아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좋은 날에, 주여, 아버지의 나라를 선포하려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떠나야 하는데, 눈물을 흘리시니 어인 일이니이까? 우리 가운데 누가 당신께 무례하였나이까?”

예수는 대답했다. “너희 가운데 아무도 나를 슬프게 하지 않았느니라. 내가 슬퍼하는 것은 내 아버지 요셉의 집안에서 아무도 기억하여 성공을 빌러 오지 않았기 때문이라.”

1. 갈릴리를 떠나다

예수의 명성이 널리 퍼지기 시작하여, 예수는 헤롯의 주목을 받을 것을 알았다. 1백 명이 넘는 신자들이 따라오고 싶어했으나, 그러지 말라고 부탁했다.

요한이 1년 전쯤에 예수가 세례받은 곳까지 가서 2주가 넘도록 머무르고 가르쳤다.

예수는 대중 설교를 하지 않았다. 안드레가 오전ㆍ오후 집회에 설교할 사람들을 배치했다.

사도들은 요한의 설교를 깎아내리지 않았다. 그래도 요한의 제자들은 어째서 예수가 그의 죽음을 막지 않았는가 이해할 수 없었다.

대중 봉사하는 첫 해 동안, 추종자의 3/4이 요한의 세례를 받은 적이 있었다.

2. 하나님의 율법과 아버지의 뜻

어느 나라에도 율법을 선포하는 임금이 있어야 하느니라.

아버지의 뜻이 너희의 율법일 때, 너희는 도저히 하늘나라에 있다 할 수 없느니라.

신의 아들이라는 이 새 복음을 믿을 때, 내 아버지의 뜻은 너희의 뜻이되고, …아들의 높은 자리로 올라가느니라.

3. 아마투스에서 머무르다

사도들은 날마다 두 차례 군중에게 계속 설교했다.

예수는 안식일 오후에 설교했다.

안드레가 한 주에 6일 동안 매일 두 사도가 쉬어야 한다고 정했다. 모두가 안식일 예배에 근무했다.

(i) 베드로ㆍ야고보ㆍ요한이 대중 설교의 대부분을 맡았다.

(ii) 빌립과 나다니엘, 토마스와 시몬은 개인을 상대로 상당히 일했고, 특별히 질문자들을 위하여 학급을 운영했다.

(iii) 쌍둥이는 일반 치안 감독을 계속하였고, 한편 안드레ㆍ마태ㆍ유다는 세 사람으로 구성된 일반 관리 위원회로 발전했다.

안드레가 이 문제들을 가지고 왔을 때, 예수는 언제나 이렇게 말하곤 했다. “주인이 손님들의 집안 문제에 끼어드는 것이 지혜롭지 않느니라. 슬기로운 부모는 아이들의 사소한 싸움에서 결코 편을 들지 않느니라.”

이제까지 예수의 초상화들은 아주 보기 민망하였다.

주의 멍에는 정말로 가볍지만, 그렇다 해도 결코 그 멍에를 강제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자기의 자유 의지대로 이 멍에를 메어야 한다.

4. 아버지에 대한 가르침

"하나님은 아버지요 땅에서 잘못하는 아이들에게 손해되는 기록, 나중에 온 창조의 공정한 재판관으로서 판결을 내릴 때 불리하게 쓰일 죄와 잘못을 장부에 적느라고 주로 바쁜, 크고 높은 기록관이 아니라고 사도들에게 거듭 강조했다.

“하늘나라를 다스리는 이 하나님은 누구시나이까?” 하는 토마스의 물음에 예수는 대답했다. “하나님은 너의 아버지요, 종교―내 가르침―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진리를 믿고 인정(認定)하는 것, 이보다 더도 아니요 덜도 아니라.

형제들은 세 가지의 고통을 당한다

(i) 육체의 병―몸의 병으로 보통 간주되는 질병.
(ii) 불안한 정신―후일에 감정 및 정신의 고생과 장애로 여긴 비육체적 질병.
(iii) 악한 귀신에 들리는 것.

5. 영적으로 하나되는 것

야고보 세베대가 물었다: “주여, 어떻게 우리가 같은 눈으로 보기를 배우고, 그렇게 함으로 우리끼리 더 조화를 이루겠나이까?”

“야고보야 야고보야, 너희가 모두 같은 눈으로 보아야 한다고 언제 너희에게 가르치더냐?

영적으로 같아지기 위하여 같은 눈으로 보거나 같은 느낌을 가질 필요가 없고, 또한 같은 생각을 가질 필요조차 없느니라.

6. 아마투스에서 보낸 마지막 주

시몬은 테헤르마를 설득하지 못하여 주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나는 그를 설득할 수 없었나이까? 어찌하여 그는 나에게 그렇게 저항하고 당신의 말씀은 그토록 쉽사리 들으려 하나이까?” 예수는 대답했다:

“시몬아 시몬아, 구원을 찾는 자들의 마음 속에서 무엇을 없애려는 노력을 전혀 삼가라고 몇 번이나 가르쳤느냐? 다만 갈급한 이 혼들 속으로 무언가 집어넣으려고 수고하라, 얼마나 자주 일렀느냐?

"그것은 너희의 나라가 아니요 너희는 대사일 뿐이라. 다만 가서 외치라: 이것이 하늘나라이니―하나님은 너희 아버지요 너희는 그의 아들이라, 너희가 진심으로 믿으면 이 좋은 소식이 너희의 영원한 구원이라."

7. 요단 강 건너 베다니에서

사람들이 제자들의 생애를 봄으로 하늘나라를 의식하게 되고, 따라서 신자들에게 하늘나라의 길에 관하여 묻고 싶은 생각이 나도록 제자들이 세상에서 살기를 바란다는 것을 예수는 분명히 밝히려고 애썼다.

하늘나라를 가르치는 데 제일 중요한 두 가지 진리라 부른 것을 크게 강조하였다. 곧 (1) 믿음으로, 그리고 믿음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요, 이와 아울러 (2) 진실을 진지하게 인식함으로 인간의 해방을 얻는다, “너희가 진실을 알지니, 진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하는 혁신적 가르침이었다.

그는 선생이요 설교자가 아니었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베드로는 예수보다 훨씬 더 유능한 설교자였다. 예수의 설교는 마음을 끄는 웅변이나 감정에 호소하기 때문이 아니라, 독특한 인품 때문에 무척 힘이 있었다.

8. 예리고에서 일하다

주마다 몇 번 안드레는 쌍으로 사도들에게 하루나 이틀 동안 예리고에 배치하였다. 여기서 요한의 옛 신자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환영했다.

좋은 소식은 아픈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치유하는 힘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9. 예루살렘을 향하여 떠나다

3월 마지막 날에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파른 여행 길을 떠났다.

나사로와 누이들 집에서, 주와 사도들이 본부를 차리도록 만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여기서 그들은 닷새 동안 머물러 쉬고 원기를 회복했다.

4월 6일에 예수와 사도들은 예루살렘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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