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4 편, 과도기

글쓴이: 중도자 위원회

1935년

예수는 팔레스타인에서 그가 유대인 부모에게 태어나도록 마련한 계획을 승인하였고, 대중에게 진실을 가르치는 공생애를 유대 민족이 사는 땅에서 시작하려고 갈릴리로 돌아갔다.

로마 세계에서 팔레스타인의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서 신다운 신분을 드러내는 계획을 만족스럽게 생각했다.

Azem palace in Damascus

1. 서른 살 되던 해 (서기 24년) 카락스에서 고노드와 가니드와 작별한 뒤에, 예수는 다마스커스를 경유하여 가버나움으로 갔다. 동생 야고보 및 유다와 이야기하고 나서, 요한 세베대가 샀던 작은 집을 야고보한테 넘겨 주고서 나사렛으로 갔다.

지중해 여행이 끝났을 때, 예수는 대중 봉사를 시작하기까지 드는 생활비를 치르기에 넉넉한 돈을 받았다.

시몬과 유다는 이 해, 서기 24년 3월초에 쌍 결혼식을 올렸다. 막내 룻만 마리아와 함께 집에 남았다.

나사렛을 지나던 어느 큰 카라반 안내자가 앓게 되어, 예수는 그 자리를 대신 자청하였다. 가족 회의를 열고서, 예수는 야고보에게 넘겨준 집에서 어머니와 룻이 살 것을 제안하였다. 요셉과 그 가족은 옛 나사렛 집으로 이사했다.

2. 카스피까지 카라반 여행을

Caspian Sea in Baku, Azerbaijan

Baku reflected on the Caspian Sea

예수는 서기 24년 4월 1일에 나사렛을 떠나 카스피 바다 지역까지 카라반 여행을 하였다. 이 여행은 만 1년이 걸렸다.

동양에 가장 가깝게 갔고, 예수는 극동 민족을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경영자 자격으로 활동했고, 여행자들의 안전을 책임졌다.

돌아오는 길에 우르미아 호수에서 예수는 카라반의 지휘를 그만두었다. 승객으로서 다마스커스로 돌아갔다. 가버나움에 서기 25년 4월 1일에 도착했다.

3. 우르미아 강의 카스피 해로 가는 길에, 옛 페르시아 도시, 우르미아에서 멈추었다. 호수의 여러 섬 중에서 가장 큰 섬에는 큰 건물―강의용 원형 극장―이 자리잡았고 이것은 “종교의 정신”에 바쳐진 건물이었다. 이 건물은 정말로 종교 철학의 전당(殿堂)이었다.

심보이톤과 그 세 아들이 이 전당을 세웠다.

강의와 토론은 아침 10시에 시작되었고, 오후 수업은 3시에, 저녁 토론은 8시에 열렸다.

심보이톤이나 세 아들 중에 하나가 강의ㆍ논의ㆍ토론 시간에 언제나 사회(司會)를 보았다. 이 독특한 종교 학교의 창시자는 자신의 종교 관념을 밝히지 않았다.

심보이톤은 예수가 돌아오는 길에 2주 동안 머무르고 “사람이 형제인” 것에 대하여 24번 강의하고, 질문과 토론이 있는 저녁 시간을 12번 진행하도록 주선하였다.

실제로 이 여러 강연은 “하나님의 나라”와 “사람의 나라”에 관한 것이었다.

교사진은 서른이 넘는 종파를 대표하였고, 교직원이 75명쯤 있었다. 이들은 여러 오두막에서 살았고, 각 오두막은 12명에게 숙소를 제공했다. 싸우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재빨리 교체되었다. 선생들은 최고의 신을 대표하는 한 종교를 대표하거나 독립된 선생 자격으로 참여하였다.

[중도자들의 설명:교회 세라핌과 진보 세라핌들 사이에 의견 차이가 생겼다. 20세기에 종교및 정부의 조건이 예수 시절의 조건과 많이 달랐다. 결국 우르미아 가르침에 대하여 2차 중도자 3명이 현대의 조건에 맞게 적응하여 설명하는 책임이 돌아갔다.]

4. 통치권―신과 인간의 통치권 사람이 형제인 것은 하나님이 아버지인 것에 기초를 둔다.

아버지 하나님은 신답게 자녀들 모두를 사랑한다.

하늘의 나라는 신이 통치권을 가진 사실에 기초를 둔다. 그 나라는 영적인 국가이다.

다른 종교들이 아버지 하나님이 통치권을 가졌다고 인정하면 서로 평화롭게 남아 있을 것이다. 한 종교가 다른 종교들을 다스릴 독점 권한을 가졌다고 믿을 때, 다른 종교의 신자들을 박해한다.

모든 종교가 교회 권한, 영적 통치권을 가졌다는 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종교적 평화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

하나님은 자아의 분신을 사람의 마음 속에 거하라고 주신다. 영적으로, 만민은 평등하다. 너희는 모두 형제이다.

우르미아의 종교가들은 평화롭게 살았는데, 종교적 통치권을 완전히 포기했기 때문이다. 도전할 수 없는 권한은 주관하는 우두머리에게 있었다.

각 종교 집단이 자기네가 신의 총애를 받는다, 선택받은 민족이다 따위의 개념을 포기하기까지, 종교적 평화를 누릴 수 없다.

5. 정치적 통치권 [중도자들의 설명: 정치적 통치권에 대하여 예수가 하신 말씀은 지난 1900년 동안에 국가들이 정치적 진화를 겪음으로 복잡해졌다.

예수의 시절에는 강대국이 로마 제국과 한(漢) 제국이 있었다. 앞으로 정치적 통치권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 우르미아에서 주가 가르친 내용을 더욱 폭 넓게 해석하겠다.]

국가가 무제한 통치권을 가졌다는 개념을 고수하는 한, 유란시아에서 전쟁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국가 통치자들은 최고자들이 사람의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들은 어느 집단에게도 특별 혜택을 주지 않는다. “선택된 민족” 같은 것은 없다.

가족들이 모여 씨족을 이루고, 씨족들은 부족 단위로 뭉치게 된다. 무역ㆍ상업ㆍ정복을 통해서 부족들은 한 나라로서 연합되며, 한편 때때로 제국이 여러 나라를 통일한다.

따라서 작은 나라들 사이에 사소한 전쟁이 줄어든다. 그러나 강대국들이 커질수록, 더 큰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자결을 더 큰 정치 조직으로 이양하는 것은 명(明) 나라와 모굴 왕조가 세워진 뒤로, 동양에서 대체로 줄어들지 않고 진행되어 왔다. 서양에서 이것은 1천 년이 넘도록, 바로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진행되었고, 이 때 역행 운동이 일시 일어났다.


모굴 제국의 학교

강대국이 그 통치권을 인류의 정부의 손에 넘겨주기까지, 유란시아는 오래 가는 평화를 누리지 못할 것이다. 국제 연맹은 영구한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 이 강대국들 가운데서 하나가 연맹에서 탈퇴하고 전쟁을 선포할 것이다.

통치권을 가진 국가들이 모두 전쟁을 수행하는 권한을 온 인류의 대표 정부에게 양보할 때까지, 평화는 유란시아에 오지 않을 것이다.

19-20세기의 예를 들자. 미국의 48주는 오랫동안 평화를 누려왔고, 이제 더 자기들끼리 전쟁하지 않는다. 통치권을 연방 정부에게 넘겨주었고, 각 주는 내부 사무를 규제하지만, 외교ㆍ관세ㆍ이민ㆍ군사, 그리고 주 사이의 상업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인구가 많은 뉴욕주나 큰 텍사스주와 똑같이, 작은 로드 아이랜드 주가 상원 의원 2명을 가진 것처럼, 세계 정부에서 작은 나라는 큰 나라만큼 강력해질 것이다.

정부는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여 창조되는 조직이다. 과학의 진보와 함께, 전쟁은 갈수록 세상을 황폐하게 만든다. 영구한 평화를 누리기까지, 몇 차례나 세계 전쟁을 치러야 하는가?

6. 법과 자유와 통치권 자유를 사랑하는 필사자 집단은 각 사람에게 같은 자유를 주고 이를 보호할 법에 복종하지 않고는 평화롭게 함께 살 수 없다.

또 하나의 세계 전쟁은 통치권을 가진 국가들에게 어떤 종류의 연방을 형성하고 작은 전쟁 막는 것을 가르칠 것이다.

유럽 국가들에서 사는 여러 국민과 종족이 미국의 48주의 시민들 사이에 끼어 있다. 48주가 통치권을 포기하고 이들은 평화롭게 살게 되었다.

전쟁은 인간의 병이 아니다. 전쟁은 증상이요 결과이다. 진짜 병은 국가 통치권이라는 바이러스이다.

지역 사무는 지역 정부가, 나라의 사무는 국가 정부가, 국제 사무는 세계 정부가 관리해야 한다. 그러한 세계 정부 밑에서 개인은 더 많은 자유를 누리게 된다.

집단의 안전은 그 집단이 온 인류를 포함할 때까지,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

심보이톤이 죽은 뒤에, 아들들은 교사진의 평화를 유지할 수 없었다.

심보이톤의 맏아들은 아브너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파견된 선생들은 완고하였고, 그들의 종교가 다른 종파들을 지배하게 만들려고 애썼다.

교사진에서 혼란이 커지자, 세 형제는 재정 지원을 그만두었고, 학교는 문을 닫았다.

그 학교는 미트라 신전으로서 다시 열렸으나, 질탕한 잔치가 있은 후에 불에 타버렸다.

7. 서른하나 되던 해 (서기 25년)

Antioch, Syria

St Peter church in Antioch (the first church)

4월 중순에 예수는 티레와 시돈에 들리고 안티옥으로 갔다. 이 해는 시리아를 혼자서 여행하던 해였다.

안티옥에서 예수는 일하고, 관찰하고, 공부하고, 방문하고 봉사하면서 두 달이 넘도록 살았다.

팔레스타인의 여러 도시를 들린 뒤에, 헤르몬 산으로 가서 6주 동안 머물렀다.

8. 헤르몬산에서 머무르다

헤르몬 산으로 가는 길

짐 나르는 짐승과 티글라스라는 소년을 구하고서, 헤르몬 산 기슭을 올라갔다.

예수는 티글라스와 함께 돌 무더기 상자를 지었고, 티글라스는 한 주에 두 번, 먹을 것을 집어넣기로 했다.

수호 세라핌을 “티글라스와 함께 있도록” 돌려보낼 것을 요청하였고, 이것은 허락되었다.

8월의 마지막 3주와 9월의 첫 3주를 예수는 헤르몬 산에서 보냈다.

사타니아에 있는 적들과 회담할 것을 아버지께 요청했고 허락을 받았다.

사탄과 칼리가스티아가 나타났다.

이 마지막 시련은 먹을 것이나 성전 뾰족탑이나 주제넘은 행위와 상관이 없다.


헤르몬 산 꼭대기는 (9232 피트) 여름에도 눈에 덮혀 있다. 예수는 6000 피트까지 올라갔다.

루시퍼는 부하들을 통하여 여러 제안을 내밀었지만, 예수는 “파라다이스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이다”고 대답하면서, 이들을 더 큰 우주의 재판관들에게 넘기었다.

예수는 필사 육체의 모습을 입고서 육신화 생명을 살라는 과제를 마쳤다. 그러나 세례를 받기까지, 이 업적은 우주에서 발표되지 않았다.

산을 내려가면서, 예수는 티글라스를 만났다. 단에서 그 소년을 보내고 당나귀를 주었다.

9. 기다리는 시간 예수는 가버나움에서 안식일 동안에 가족 회의를 열었다.

세베대의 아들 요한과 함께 예수는 예루살렘을 향하였다.

예수와 요한은 베다니에서 나사로의 집에서 묵고 이튿날 예루살렘으로 갔다.

두 사람은 속죄의 날에 성전 예배에 참석했다.

참된 진실을 선포하고 싶어 속이 탔지만, 조절자는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타일렀다.

축제 행사가 끝나고 요한을 보냈다.

베다니 가까이 거의 한 주 동안 혼자 지낸 뒤에 예수는 가버나움으로 갔다.

예수는 세베대의 작업장에서 아우 야고보 옆에서 이듬해 1월까지 일했다: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바쁘게 일하는 것이 내게 마땅하도다.”

시간이 지나자, 요단 강에서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는 어떤 요한이라는 사람의 소문이 가버나움에 도착했다.

요한은 이렇게 설교했다: “하늘나라가 가까웠도다. 뉘우치고 세례를 받으라.”

당장에 그는 세례를 받으려고 요한에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