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0 편, 로마로 가는 길

지은이: 중도자 위원회

1935년

로마 세계의 여행은 예수가 스물여덟 되던 해의 대부분과 스물아홉 되던 해 전부를 써버렸다.


크레테로 가는 여행 길

서기 22년 4월 26일, 일요일 아침에, 예수는 고노드와 그의 아들 가니드와 함께 예루살렘을 떠났다.

이듬해, 서기 23년 12월 10일, 카락스 시에서 예수는 두 인도인과 작별을 고했다.

다마스커스에서 넉 달 일하는 동안, 예수는 고노드와 가니드가 사용하는 언어의 기본을 깨우쳤다.
거기서 예수는 그리스어를 어느 인도 언어로 번역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보냈고, 고노드의 고향에서 온 본토인의 도움을 받았다.

예수는 이 지중해 여행을 하는 동안, 가니드를 가르치고, 가니드를 위하여 통역으로 활동하면서 하루의 절반을 보냈다.

나머지 시간은 자유로웠고, 동료 인간들과 접촉하느라고 시간을 썼다.

눈으로 직접 보고 실제로 접촉함으로 예수는 서양과 레반트의 문명을 알게 되었다. 고노드와 가니드로부터 인도 및 중국의 문화에 대하여 배웠다.

고노드는 예수에게 함께 인도로 돌아가자고 설득하려 했지만, 그는 사양하였다.

1. 요파에서―요나에 대한 강연 예수는 가디아를 만났다. 그는 시몬이라는 무두장이를 위하여 일하는 필리스티아인 통역이었다.

가디아는 물었다: “그러나 당신은 큰 물고기가 정말로 요나를 삼켰다고 생각하시나이까?”

예수: “친구여,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요나와 같으니라.

“아무리 깊은 수렁에 빠졌을지라도, 마음을 다하여 저희가 빛을 구하면, 하늘에 계신 주 하나님의 영이 저희를 포로 생활에서 구제하리라.”

이 가디아는 나중에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서 예수를 믿었고, 도르가의 집에서 베드로와 논쟁했던 바로 그 가디아였다.

예수와 가디아의 토론 (선과 악) 가디아는 물었다: “하나님이 무한히 선하시다면, 어찌하여 우리가 악으로 생긴 슬픔을 당하도록 버려둘 수 있나이까, 결국 누가 악을 창조하나이까?”

예수: “악은 다만 미숙하여 형편에 잘못 적응하는 것이거나 무지의 영향이라. 이를 알면서 지지했을 때, 그 악이 죄가 되느니라.

2. 케자리아에서 방향타를 고치는 데 수력된 세공인이 부족하여 예수는 돕기를 자청했다.


케자리아의 성벽. 이 담위로 걷는 길이 있었던 듯.

 


여기에 기술된 바와 같이, 이 담의 맞은편에 높은 기반 위에 케자의 성전이 있었다고 한다.


전차 경기장


바울이 케자에게 상소한 곳

Restored amphitheater of Caesarea

둘째 날 오후에 세 사람은 원형 극장에 가서 공연에 참석했고, 그날 밤 극장으로 그리스 연극을 보러 갔다.

몽골리아에서 온 상인 예수는 몽골리아에서 온 한 상인을 만나서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에 날마다 복종함으로, 땅에 있는 동안 하늘의 삶을 사는 것”을 가르쳤다.

몽골리아로 돌아갔을 때, 그의 아들은 도교의 사제가 되었고, 손자와 함께 하나의 신을 믿는 교리에 충성하였다.

초대 기독교의 동부 지파는 필라델피아에 본부가 있어, 예수의 가르침을 예루살렘 교회보다 더 충실히 간직했지만, 베드로와 바울 같은 사람이 중국이나 인도에 가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아시아의 민족들은 그 당시에 새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낙산드 그리스인 아낙산드: 만약에 신들이 나에게 관심이 있다면, 어찌하여 부당한 반장을 없애지 않나이까?

예수는 네가 이 사람보다 더 진리를 많이 받았다면, 너는 그의 곤궁한 처지를 불쌍히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아낙산드는 이 이야기를 상관에게 이야기하였다. 이들은 빌립이 세운 교회에서 출중한 신자가 되었다. 아낙산드는 2만 유대인의 학살이 있었을 때 사고로 죽었다.

가니드 가니드는 물었다. “어째서 당신은 낯선 사람들과 이렇게 이야기하는 데 계속하여 몰두하시나이까?”

예수는 대답했다: “너는 모든 사람이 형제임을 발견하느니라.”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길이요, 하나님처럼 되는 점진적 체험이라.

가니드는 개가 혼이 있는가 물었다.

개는 물질 인간을 알아볼 수 있는 머리가 있지만, 영이신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지난 일을 돌이켜보지 않는 한, 인간의 의지와 비교할 수 없다.

그런 동물은 시간이 지나도 언어를 개발할 수 없고, 죽은 뒤에 살아남을 수도 없다. 이 말씀을 들은 후에, 가니드는 윤회 사상을 더 거들떠보지 않았다.

예수는 고노드의 질문에 대답했다. 물질 문제에만 상관하는 인간의 의지는 시간이 지나면 죽는다. 도더적 결정을 내리고 영적 선택을 내리는 자는 죽은 뒤에 살아남아서, 영원히 살아남는 신분을 유지한다.

 

3. 알렉산드리아에서

배가 준비되자, 어느 날 한낮에, 알렉산드리아를 향하여 떠났다.

가니드는 파로스의 큰 등대를 보고 기뻐했다.

알렉산더는 방파제로 이 섬을 대륙과 연결하였다. 이렇게 함으로 알렉산드리아는 아프리카ㆍ아시아ㆍ유럽의 해상 무역의 교차로가 되었다.


은전에 새겨진 알렉산더, 파로스의 등대는 세계의 칠대 경이의 하나였다.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를 그린 모자익 (세포리스의 페허)

“자, 얘야 인도로 돌아갈 때, 아니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너는 이 등대처럼 될 것이라. 어둠 속에서 주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빛처럼 되리니…”

예수의 손을 꽉 잡으면서 가니드는 대답했다, “그렇게 하리이다.”

초기 기독교의 선생들이 서양 문명에만 집중한 것이 큰 잘못임을 우리는 다시 지적한다.

알렉산드리아의 인구는 1백만이 되었다.

대학(박물관), 도서관, 왕립 대무덤, 궁전, 넵튠 신전, 극장, 체육관을 둘러보고, 고노드는 사업을 돌보았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바티칸 박물관)

예수와 가니드는 도서관으로 갔는데, 여기는 세상에서 가장 컸다. 1백만의 원고가 수집되어 있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머무르는 동안에, 그들은 도서관에서 날마다 얼마큼 시간을 보냈다.

이 장소에서 히브리 성서가 그리스어로 번역되었다고 예수는 가니드에게 일러주었다.

가니드는 세상의 모든 종교의 가르침을 수집했다.

로마에서 체류가 끝날 때가 되어서야, 가니드는 이 발췌한 기록을 정리하고 결론을 내렸다.

박물관은 오히려 미술ㆍ과학ㆍ문학을 가르치는 대학이었다. 학식 있는 교수들이 여기서 날마다 강의했고 그 시절에 여기는 서양 세계의 지적 중심이었다.

가니드: “요수아 선생이여, 당신은 이 교수들보다 더 아시나이다.”

“영적 변화 없이 학문에서 얻는 자만은 위험한 것이라.”

“참된 선생은 늘 배우는 사람이 됨으로 지적 성실성을 유지하느니라.”

유대인 은행가 알렉산더의 형제 필로는 아파서 드러누워 있었다.

4. 실체에 대한 강론 알렉산드리아를 떠나기 전날 밤, 가니드와 예수는 플라톤의 가르침게 관하여 대학에서 강의하던 어느 교수와 오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수와 가니드는 플라톤의 신조(물질인 것은 영적 실체들의 그림자이라는 이론)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니드에게 우주의 실체에 관하여 강의하였다.

우주 실체의 근원은 무한자이다.

유한한 인간이 진보함으로 미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은 우주의 아버지를 인식하는 것, 최상위를 이해하는 것이다.

오직 인간이 유한한 개인 의지를 창조자의 신성한 뜻에 한결같이 맞추어 시간과 영원 속에서 계속 사는 방법으로 그러한 신다운 상태에 도달한다.

눈이 하나인 사람은 결코 원근의 깊이를 선명히 보기를 바랄 수 없다. 한 눈으로 보는 물질 과학자나, 한 눈으로 보는 영적 신비주의자와 우화(寓話) 작가들은 우주 실체의 참 깊이를 정확하게 상상하고 적절히 이해할 수 없다.

생각이 없는 인과 작용은, 투박하고 간단한 것으로부터 세련되고 복잡한 것을 진화시킬 수 없고, 영이 없는 체험은 시간 세계 필사자의 물질 지성으로부터 영원히 살아남는 신다운 인품을 진화시킬 수 없다.

우주 지성의 작용으로 인하여, 영이신 하나님의 영(靈) 불꽃을 붙임으로 생명이 존재하게 된다.

잘못을 저지를 가능성은 지혜를 얻는 과정에서, 즉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것으로부터 완전하고 영원한 것으로, 상대적이고 불완전한 것으로부터 최종이며 완전해진 것으로 나아가는 계획에 본래부터 생긴다.

가니드는 눈꺼풀이 무거워졌고, 곧 잠에 빠졌다. 다음 날, 가니드는 악에 관하여 질문했다.

정적이고 죽은 개념은 다 악할 잠재성이 있다.

5. 크레테 섬에서 놀고 섬 주위를 걷고 산을 오르는 것이 목적이었다.


크레테 섬에 있는 산

바울은 크레테인에 관하여 지나친 말을 했지만, 예수는 이들을 사랑했다.

고노드는 예수와 이야기를 나눈 뒤에 말했다:”다마스커스는커녕, 예루살렘에도 사람들이 그런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을 몰랐소이다.”

가니드는 예수가 어째서 대중을 가르치지 않는가 물었다: “아이야, 모든 일은 때가 오기를 기다려야 하느니라.”

좋은 항구라는 도시로 가는 길에, 어느 술 취한 사람이 한 여자 노예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예수는 소녀를 구출하였다. 모두 세 사람이 그 소녀를 집까지 바래다 주었다.

6. 두려움에 빠진 젊은이 예수는 두려움이 많은 한 젊은이와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무력하고 열등하다는 느낌을 가지고 자랐는데, 열두 살이었을 때 아버지를 잃은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예수는 물었다: “여보게 친구여! 이렇게 좋은 날에 어찌 그리 풀이 죽어 있는가?” 아무런 대답이 없어 예수는 다시 접근하였다.

“혹시, 피닉스로 가려면 어느 길이 제일 좋은가 내게 일러줄 수 있느냐?”

젊은이는 흥미가 생겨서,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운명의 목표까지 어떻게 가는 것이 최선인가 도움을 청하는 것을 듣지 않고 떠나는 것은 공평하지 않구나”

“하지만― 당신께 아무것도 부탁하지 않았나이다―”

“말로 하지는 않았어도, 몹시 바라는 눈으로 내 마음에 호소하였느니라.”

“번영하는 사람과 똑같이 너에게 태양은 아침마다 인사하느니라. 보아라―너는 튼튼한 몸과 힘센 근육을 가졌고 육체의 자질은 보통을 넘는도다.”

이 젊은이 포춘은 크레테에서 기독교 신자들의 지도자가 되었다.

키레네에서 이틀 멈추는 동안, 예수와 가니드는 어느 루퍼스라는 한 소년을 응급 치료했는데, 그의 아버지 시몬은 로마 군인의 명을 받아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었다.

7. 카르타고에서―시간과 공간에 대한 강론

ruins of ancient Carthage, 카르타고의 옛 유적

고노드와 가니드는 예수가 훌륭한 이야기꾼인 것을 발견했다.

가니드는 사람이 친구를 얻기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물었다.

예수는 유대인의 옛 속담을 인용하였다―”친구를 가지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친절을 보여야 한다.”

미트라교 사제와 합께 불멸, 시간과 공간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파라다이스와 거기에 있는 신들은 시간과 공간, 모두를 초월한다.

공간은 시간으로 측정하며, 시간을 공간으로 측정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라도 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지성이다.

지성의 시공 개념은 인격자가 여러 우주를 올라감에 따라서 확대된다.

이 시공 개념은 절대자들의 개념, 시간과 공간이 없는 개념에 가까워진다.

8. 나폴리와 로마로 가는 길에서 말타 섬에서, 예수는 클라우두스라 이름하는 낙심한 젊은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대장부처럼 굳세게 살리이다. 겁쟁이 노릇은 끝났나이다. 내 친족에게 돌아가서 모두 다시 시작하리이다.”

그는 베드로와 손잡고 로마와 나폴리에서 기독교를 선포하였다.


로마인이 만든 길

시라큐스에서 한 주를 보내면서, 에즈라를 만났다.

예수: “참으로 하나님을 찾고 싶다면, 그 소망 자체가, 네가 이미 그를 찾아냈다는 증거이라. … 너의 어려움은 단지 하나님을 모르는 데 있느니라.”

에즈라는 어느 개종한 부자 유대인과 제휴하여, 시라큐스에서 첫 기독교 교회를 세웠다.

메시나에서 과일 행상을 하는 어린 소년에게 생명의 빵을 먹였다.

“하늘의 내 아버지가 너와 함께 계시고, 네 앞에 가리라.” 이 소년은 미트라교의 신자가 되었고, 나중에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나폴리에 이르러 한 거지에게 동전을 주고, 그에게 위로의 말을 하지 않았다.

“네 말의 뜻을 알아들을 수 없는 자에게 어찌하여 말을 낭비하느냐? 아버지의 영은 아들 될 능력이 전혀 없는 자를 가르치고 구할 수 없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