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8 편, 예수의 어른 시절 초기

지은이: 중도자 위원회

1935년

나사렛, 예루살렘

어른 시절에 접어들면서 나사렛 예수는 땅에서 보통 사람으로 살아 갔고, 계속 그렇게 살았다.

육신화를 실천할 장소로서 이 세계를 택하기는 했지만, 그 외에 그는 세상에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나타났다.

미가엘이 유란시아에 자신을 수여한 두 가지 목적

(i) 사람의 일생을 끝까지 사는 체험을 통달할 것, 즉 네바돈 통치권을 완전히 얻는 것.

(ii) 우주의 아버지를 시공 세계의 필사자들에게 드러내는 것.

모든 다른 것은 2차적으로 생기는 것이다.

1. 스물하나 되던 해 (서기 15년) 예수는 자기의 두 가지 성품을 깨닫고, 이를 하나로, 나사렛 예수로 통합하였다.

육체가 되어 유란시아에서 이 땅의 사람으로서 거했다.

수고하고 지쳤고, 쉬고 잠을 잤다. 배고픔을 느끼고 그 욕구를 먹을 것으로 채웠다.

목이 말랐고 물을 마셨다.

“모든 일에 너희처럼 시험을 받았고” 고통을 받다가 죽었다.

예수는 자기가 인간의 성품을 지닌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신성(神性)의 자각은 느렸고, 자연스럽게 점진적으로 일어났다.

한 번은 열세 살 때, 그리고 한 번은 세례받을 때, 두 번 하늘의 방문이 있었다. 이 외에 아무런 초자연이나 초인간적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 해에 예수는 동생 요셉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네 번째 예루살렘 방문 (요셉과 함께)

요셉이 질문을 많이 했지만, 예수는 다만 “나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대답하곤 했다.

2. 스물둘 되던 해 (서기 16년) 이 해에 동생 시몬은 학교를 졸업하고서, 석공 야곱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가족 회의를 연 결과, 직업을 다양화함으로 그들이 건물 전체를 세우는 계약을 받을 준비를 갖출 것이라 생각되었다.

야고보가 작업장 지키는 일을 교대하고 요셉을 집 벤치에 두었고, 예수는 세포리스로 가서 6개월 동안 금속 다루는 일을 했다.

예수는 세포리스에 가기 전에 정기 가족 회의를 열고, 야고보를 임시 가장으로 임명했다.

야고보는 가족의 재정 책임을 맡았고 예수는 주마다 정해진 돈을 냈다.

세포리스에서 일한 것은 이방인의 관점을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다.

나사렛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가족 일을 지시하는 직책을 다시 맡지 않았다.

3. 스물셋 되던 해 (서기 17년) 네 사람이 일하고 있어서, 재정의 여유가 생겼다.

시몬을 예루살렘으로 데려가려고 3주 정도 예수는 쉬었다.


다섯 번째의 예루살렘 여행 (시몬과 함께)

필라델피아에서, 예수와 시몬은 다마스커스에서 온 상인을 알게 되었다.

시몬이 성전 행사에 참석한 동안에, 예수는 많이 여행한 이 상인과 이야기하였다.

시몬이 유월절 예식에 간 동안에, 예수는 방문자들 무리, 특히 개종한 이방인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스테반을 만나서, 함께 아스모니아 궁전을 구경하면서, 생명의 길과 참 하나님에 관하여 4시간이나 토론하였다.


스테반

이 사람은 후일에 복음을 대담하게 전파하여 유대인들에게 돌로 쳐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이렇게 그는 기독교의 첫 순교자가 되었다.

스테반이 죽는 태도를 보고서 사울(바울)은 감동하여 기독교 운동을 지지하게 되었다.

“낯선 사람들, 특히 먼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예수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고 시몬이 보고하여 마리아는 언짢았다.

나사렛 가족은 눈앞에 닥친 일을 처리하는 데 정신을 빼앗겨 예수의 앞날을 언급하는 일이 뜸해졌다.

4. 다마스커스 사건

architecture of mosque in Damascus

Ommayad Mosque in Damascus

 

다마스커스에서 만났던 상인이 예수를 수소문하여 만났다.

알렉산드리아를 능가할, 종교 철학 학교를 세우고 싶어했다. 그는 관심 있는 상인과 은행가 12명의 무리를 예수 앞으로 데리고 왔다.

예수는 관심을 보이고 그 계획을 도왔지만, 이를 지도하는 책임을 질 수 없다고 대답했다.

예수는 사람에게 빚을 지고 “사람의 심의”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예수는 일부러 생애의 여러 사건을 서로 분리시키려고 머리를 썼다.

다능하고 눈부신 경력을 쌓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가르침보다 그 인물에 치중하는 종교를 만들 유혹을 받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예수가 땅에서 자신이 다른 칭호로 알려지도록 버려둔 이유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아보기가 어렵게 되었고, 예수는 평범한 사람과 아주 비슷하게 되었다.

이런 방법으로 예수의 일생이 펼쳐지는 것이 하늘 아버지의 뜻이었다.

5. 스물넷 되던 해 (서기 18년) 예수는 알렉산드리아의 저명한 유대인 5명을 만나려고 케자리아로 갔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종교 스승으로 일을 시작하고, 주요 회당에서 조수가 되는 자리를 그들은 예수에게 내밀었다.

이들의 대변인은 알렉산드리아가 유대인 문화의 본부가 될 운명을 가졌다, 헬라파 경향은 바빌로니아 학파를 앞섰다고 설명했다.

팔레스타인에서 반란이 있을 터이고, 그래 보았자 로마의 철권이 석 달 안에 반란을 진압하리라, 성전은 파괴되리라고 장담하였다.

예수는 사양하면서 “나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비를 보상하는 돈 봉투도 사양했다.

야고보가 결혼하기 전에, 요셉이 집안 일의 관리를 맡도록 훈련시킨다는 조건으로 2년 뒤에 그가 결혼하는 것에 찬성하였다.

마르다가 가정 임무를 맡을 능력이 있게 되면, 예수는 미리암과 석공 야곱의 결혼을 축복하겠다고 말했다.

6. 스물다섯 되던 해 (서기 19년) 요셉의 재산이 없어진 이후로, 가족의 재정이 최고로 좋아졌다.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않았고, 저축이 생겼다.

예수는 유다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기로 했다.

성전에 갔다가 베다니 사람 나사로를 우연히 만나서, 잠시 유월절 저녁을 주선하는 동안, 유다가 문제를 일으켰다.

어느 로마인 경비병이 유대인 여자에게 예의에 벗어나는 말을 던졌기 때문에, 유다는 불 같이 분통을 터뜨렸다.


로마의 군대 조직

유다가 체포되었기 때문에, 예수를 동반하고 유다는 군대의 감옥으로 끌려갔다.


유다가 갇혔던 감옥

예루살렘에서 “거룩한 집회”가 있기 때문에, 로마인들은 유대인에 대한 고발을 심의하려 하지 않았다.

유다는 다음날 아침까지 갇혀 있었고, 예수는 함께 감옥에서 지냈다.

둘째 날이 지나고 아침이 되어 예수는 유다를 대변하려고 군대의 판사 앞에 섰다.

동생이 나이 어린 것을 사과하고, 분별 있는 말을 하여, 재판관은 유대인 젊은이가 분개한 것에 아마도 이유가 있었을지 모른다는 의견을 표현했다.

로마인 판사는 진실을 말했다: “당신은 그 소년을 지켜보는 것이 좋겠소. 당신들 모두에게 걸핏하면 많은 문제를 일으키리이다.”

유다가 석방된 뒤에, 예수와 유다는 베다니로 가서, 어째서 유월절 저녁 약속을 지키지 못했는가 설명했다.

유다는 예수와 의논한 뒤에, 이 사건을 가족에게 이야기했다.

룻과 그 놀이 친구들이 수선 작업장에 자주 찾아왔다. 예수는 모래와 나무토막과 돌을 작업장 옆에 마련해 놓았고, 예수가 바쁘지 않으면, 꼬마들은 예수에게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꼬마들을 좋아했지만, 예수는 조카들과 즐거워할 만큼 오래 살지 않았다.

7. 스물여섯 되던 해 (서기 20년) 예수는 큰 잠재 능력을 가진 것을 의식하게 되었으나, 이 능력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확신하였다.

야고보와 요셉은 유다를 집에서 쫓아내는 데 찬성했으나 예수는 동의하지 않았다.

예수는 야고보가 수선 가게를 경영하도록 훈련시켰다.

요셉이 집안 일 지도하는 것을 훈련시켰다.

마리아는 예수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음을 눈치챘다.

유다는 결혼한 뒤에 어부로서 일했다.

11월에 쌍 결혼이 있었다. 야고보와 에스타, 그리고 미리암과 야곱이 결혼했다.

결혼한 뒤에, 야고보의 마리아 지원 부담은 반으로 줄어들었다.

미리암은 야곱의 집에서, 마리아의 이웃에서 살았다.

쌍 결혼식이 있은 후에 예수는 수선 가게의 권리를 야고보에게 주고, 야고보를 “내 아버지 집의 가장이자 보호자”로 세우고, 예수는 더 이상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고 적었다.

그러나 예수는 형편이 닿는 대로, 돈을 보내되, 예수가 보내는 돈은 비상시에 쓰라고 지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