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3 편, 예수의 어린 시절 초기

지은이: 중도자 위원회

1935년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하기까지, 마리아는 아기에게 젖을 떼지 않았다.

요셉은 공공 건물 공사에, 노동자들의 우두머리 자리로 승진되었고, 나중에 그는 청부업자이자 건설업자가 될 생각을 품게 되었다.

마리아는 처음에 지나치게 아기를 보호하려 했으나, 요셉은 그런 과정은 예수가 같은 또래의 아이들에게 적응하는 체험을 얻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마리아를 설득하였다. 지나치게 감싸는 것은 예수를 자기 중심인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마리아는 예수를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자라도록 놓아두는 데 찬성했다.

요셉의 가족

알렉산드리아에서 2년 머물렀고 예수는 정상으로 자랐다.

New Library of Alexandria

떠나기 얼마 전에, 멤피스에 사는, 이크나톤의 후손인 몇 친구들이 작별회를 열고, 히브리 성서의 그리스어 번역판을 예수에게 바쳤다.

이 지지자들은 팔레스타인의 어느 곳보다도 알렉산드리아 주민으로서 예수가 훨씬 더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하였고, 이 때문에 헤롯이 죽은 뒤에, 요셉의 가족이 떠나는 것이 얼마 동안 지연되었다.

마침내 요파로 가는 배를 타고 알렉산드리아를 떠나서, 그들은 요파에 도착하였다.

베들레헴에 있을 것인가 나사렛으로 갈 것인가 결정하지 못하여, 그들은 9월을 베들레헴에서 보냈다.

마리아는 아기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자라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요셉은 자신이 다윗의 후손이 아닌 것을 알았다.
요셉은 아켈라우스가 아버지 헤롯의 정책을 이어받아, 안티파스보다 더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갈릴리가 유대 지방보다 아이의 교육에 더 좋다고 거리낌없이 이야기했다.

10월 1일에, 요셉은 나사렛으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마리아와 친구들을 설득했다.

따라서, 기원전 4년 10월초에 베들레헴을 떠났다

마리아와 아기는 짐승 위에 올라탔고, 요셉과 친척 남자 5명은 걸어갔다.

1. 나사렛으로 돌아와서 사흘 만에 요셉의 가족은 나사렛 집에 도착했다.

그 집은 3년이 넘도록 요셉의 결혼한 형제 중에 한 사람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다음 날 그는 가족을 옯겼다.

한 주 안에 요셉은 목수로서 일자리를 얻었다.

예수는 3살 2달 정도 되었다.
마당이 있어서 좋아했지만, 알렉산드리아의 치구들을 그리워하였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가 “약속의 아이”라는 것을 퍼뜨리지 않기로 작정하였다.

네 살이 되던 해, 예수는 몸이 정상으로 자랐다. 예수는 야곱이라 이름하는 자기 또래의 소년과 가까워졌다.

기원전 3년 4월 2일에 동생 야고보가 태어났다.

이 해 여름에, 요셉은 카라반이 머무르는 마당 가까이에 조그만 작업장을 지었다. 예수는 자라면서 학교에 가지 않을 때, 어머니의 집안 일을 돕고, 사방에서 온 카라반 안내자와 여행자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구경하는 데 시간을 대체로 반반씩 보냈다.

7월에 악성 장 질환이 나사렛에 번졌다.

마리아는 두 아이를 싸들고, 동생의 시골 집으로 달아났고, 두 달이 넘게 머물렀다.

예수는 농가에서 사는 경험을 즐겼다.

2. 다섯 살 되던 해 (기원전 2년) 예수는 도덕적 결정을 처음으로 내릴 나이에 이르렀다.

기원전 2년 2월 11일: 생각 조절자가 함께 거하려고 왔는데, 그는 전에 멜기세덱과 함께 봉사한 적이 있었다.

이날, 우주 통치자들의 직접 감독이 끝났다.

예수를 지키는 책임은 조절자, 그리고 관련된 수호 천사들의 책임에 맡겨졌다. 중도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7월 11일. 예수가 다섯 살이 되기 달포 전에, 여동생 미리암이 태어났다.

예수는 여러 생물이 세상에 태어나는 방법에 대하여 아버지와 함께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의 질문에 성의껏 대답하였다.

예수는 야고보와 미리암을 돌보아 마리아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시절에 이방 세계에는 갈릴리의 유대인 가정보다 더 낫게 지적ㆍ도덕적ㆍ종교적 훈련을 줄 수 있는 집이 거의 없었다.

유대인은 어린아이의 교육을 7단계로 나누었다.

1. 갓난아이 = 첫날부터 여드렛날까지

2. 젖 먹는 아이

3. 젖뗀 아이

4. 어머니에게 의지하는 기간 = 만 다섯 살까지

5. 자립의 시작. 아들의 경우 아버지가 교육을 책임진다.

6. 소년과 소녀

7. 젊은 남녀

이 관습에 따라서, 기원전 8월 21일에, 마리아는 요셉에게 예수를 교육하라고 넘겼다.

아버지는 예수의 지적ㆍ종교적 교육을 책임지고, 어머니는 가정 교육에 관심을 가졌다.
예수는 아람어ㆍ그리스어, 나중에는 히브리어 글자 쓰기의 기초를 익혔다.

이해 후반에 예수는 배탈이 한 번 났지만, 예수는 정상으로 자랐다.

3. 여섯 살 되던 해의 사건들 (기원전 1년)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예수는 아람어의 갈릴리 방언을 통달했다.

아버지는 그리스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스어 교과서는 히브리 성서의 사본이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받은 그리스어 성서의 사본)

나사렛에 사본이 겨우 2권 있었다.
요셉의 가족이 이 그리스어 성서를 소유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요셉의 집을 많이 찾았다.

여섯 살 되는 생일에, 이 책을 알렉산드리아의 친구 및 친척들로부터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예수는 이 사본(寫本)의 관리를 맡았다.

여섯 살이 채 되기 전에 일어난 큰 사건은, 예수가 지진의 원인에 대하여 질문한 데 대하여, 아버지가 “나는 정말 모른다”하고 대답한 것이다.

예수는 보이지 않는 영들의 영향이 자연 세계의 물리적 사건을 일으킨다는 생각을 의심하게 되었다.

여섯 살 되기 직전, 초여름에 사가리아와 엘리자벳이 아들 요한을 데리고 나사렛 가족을 찾아보았다.

부모들이 두 아들의 장래를 이야기하는 동안, 요한과 예수는 집 꼭대기에서, 나무토막과 모래를 가지고 놀았다.

요한을 만났기 때문에 예수는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기념 축제에 대하여 물었다.
아버지는 이 여러 명절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다.

첫째는 한겨울 명절에 불을 밝히는 것(하누카). 이것은 유다 마카비가 모세의 예배를 부활하고 성전을 봉헌한 것을 기념한다.

이른 봄의 푸림 축제는 에스터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구원받은 것을 기념한다.

유월절에는 누룩 넣지 않은 빵을 먹는다.

첫 열매의 축제.

마지막에 새해의 축제, 속죄하는 날.

어린 머리에 어떤 것은 알아듣기 힘들었으나, 예수는 초막절을 즐겼다. 이것은 해마다 휴가철에 초막에서 야영하고 노는 때였다.

이 해 동안,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의 기도하는 버릇 때문에 곤경을 겪었다. 예수는 땅에서 아버지 요셉에게 말하는 것과 비슷하게 하늘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고집했다.

6월부터 요셉은 나사렛의 작업장을 형제에게 넘기고, 건설업자로서 일을 시작했다. 그 결과로 소득이 3배가 넘게 늘어났다.

다음 몇 년 동안, 나사렛과 근처의 여러 도시(가나ㆍ막달라ㆍ나인ㆍ세포리스ㆍ가버나움)에 출장갈 때 예수는 자주 따라갔고. 이런 여행에서 실용적 지식을 많이 얻었다.

예수는 가정 규율에 대하여 싫어도 충동을 조절하는 데 나아졌다. 마리아는 엄격한 훈육자였다.

4. 일곱 살 되던 해 (서기 1년) 1백 년 만에 큰 눈이 왔다.

예수의 시절에 어린이의 오락은 제한되었고, 어른들의 장례식ㆍ결혼식을 지켜 보고 흉내냈지만, 조직된 경기(축구 따위)가 거의 없었다.

예수는 목수 작업장에서 이웃 소년과, 후일에는 동생 야고보와 놀기를 놓아했다.

마리아는 인접한 우리에 비둘기장을 두었고, 비둘기를 판 돈에서 십일조를 회당에 바치고, 나머지 기금을 예수가 관리하였다.

7월에 모래 폭풍이 닥쳐, 예수는 계단에서 내려오다가 굴러떨어졌다. 이 사고 이후에 요셉은 계단 양쪽에 난간을 만들었다.

1차 중도자 1명, 2차 중도자 1명, 수호 천사가 지키고 있었으나, 이들의 책임이라 할 수 없었다.

넷째 식구(예수, 야고보, 미리암 다음으로) 요셉이 서기 1년 3월 16일에 태어났다.

율리우스 달력. 이 달력은 기원전 46년부터 쓰였다.

서기 1년 달력 (당시에 쓰인 실제 달력)

1752년 9월부터 그레고리 달력을 쓰기 시작했다.

5. 나사렛에서 보낸 학교 시절 예수는 7살이 되었다. 이 나이에 유대인 아이들은 회당 학교를 시작했다.

8월에 나사렛에서 학교에 들어갔다.

예수는 이미 아람어와 그리스어를 유창하게 읽고 쓰고 말했다.

이제 히브리어를 익혀야 했다.

3년 동안 예수는 나사렛 회당의 초등 학교를 다녔다. 히브리어로 율법서 (토라, 곧 모세 5경)의 기초를 공부했다.

다시 3년 동안, 상급 학교에서 공부하여, 13살 되던 해에 회당 학교를 졸업했다. 다음에 “계명의 아들”이 되어 이스라엘 공동체의 시민이 되었다.

나사렛에서 생도들은 반원을 이루어 마루에 앉았고, 하잔(선생)은 학생들을 마주 보고 앉았다. 여름에는 수업 시간이 짧아졌다.

예수는 히브리어를 일찍 통달했고, 유명한 방문객이 나사렛에 없을 때는, 안식일 예배에 회당에서 히브리 성서를 읽어달라고 자주 부탁을 받았다.

나사렛의 회당 학교에는 교과서가 없었다.

아버지의 수선 작업장에 드나들면서, 예수는 지구의 사방에서 온 사람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그리스어를 거침없이 말했기 때문에, 여행자과 이야기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나사렛은 여행의 교차로였고, 그 주민은 대체로 이방인이었다.
그래서
유대인의 전통 율법을 자유롭게 해석하는 중심지로 알려졌다.
여러 제한을 나사렛에서는 자유롭게 해석하여 “나사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는가?” 하는 속담이 예루살렘에서 생기게 되었다.

예수는

집에서 도덕 훈련과 영적 교양을 얻었다.

하잔으로부터 지적 교육과 신학 교육을 얻었다.

생활에 닥치는 머리는 동료 인간들과 섞여 얻었다.

세 나라 언어에 정통했기 때문에 예수는 학교에서 유리했다.

하잔은 “소년을 가르칠 수 있었던” 것 보다 “예수의 파고드는 질문으로부터 더 배웠다” 생각한다고 요셉에게 말했다.

7살에 학교에 들어갔을 때 (이때 유대인은 의무 교육법을 막 시행했다),
예수는 생일 구절을 이사야에서 선택하였다.

“주 하나님의 영이 내게 다가오시니, 주가 내게 기름을 부으셨음이라. 그는 온유한 자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고, 포로가 된 자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영적으로 갇힌 자를 풀어 놓으라고 나를 보내셨도다.”

나사렛은 유대 나라에서 24 사제 중심 중에 하나였다.

여덟 살이 되기 전에, 예수는 나사렛의 어머니와 젊은 여자들에게 알려졌고, 이들은 샘물 가에서 그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물가의 여인들

예수는 송아지 젖을 짜고 동물 돌보는 일을 배웠다.
베틀 작동하는 데 전문가가 되었다.

예수와 이웃 소년 야곱은 도공 나단의 친구가 되었다.

6. 여덟 살 되던 해 (서기 2년) 예수는 반에서 상급 1/3에 속했다.
공부를 잘 해서,
한 달에 한 주는 출석하지 않아도 되었다. 어부인 삼촌과 함께 갈릴리 바닷가에서 보내거나 다른 삼촌의 농장에서 지냈다.

이 무렵에 다마스커스에서 온 어느 수학 선생을 만나서 새 계산 기술을 배우고 수학에 관심을 가졌다.

예수는 동생 야고보에게 알파벳을 가르쳤다.

예수는 음악을 좋아해서 하프 연주자가 되어, 즉흥 연주로 가족과 친구들을 접대하였다.

나사렛과 요단 강 유역에 왜 기온 차이가 있는가 해답을 얻으려 했다.

셋째 동생 시몬이 2년 4월 14일에 태어났다.

2월에 요한의 아버지가 부추겼기 때문에 나호르는 예수를 지켜보려고 왔다.

나호르는 예루살렘으로 예수를 데려가려고 했다. 예루살렘에는 유대인 문화의 중심에서 교육과 훈련을 받는 장점이 있다고 조언했고, 마리아는 귀가 솔깃했지만, 요셉은 망설였다.

예수 앞에 이 문제를 펼쳐 놓자, 그는 석공 야곱과 의논했고, 자기가 결정을 내릴 능력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이야기”하고서, 부모가 그에게 더 많이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는 뜻으로 대답했다.

이 대답을 듣고 나호르는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