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2 편, 예수의 탄생과 아기 시절

지은이: 중도자 위원회

1934년

어째서 요셉과 마리아의 가족을 선택했는가 설명하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가브리엘과 의논하고서 미가엘은 유란시아를 선택했다.

가브리엘은 유란시아를 방문하고서, 예수를 히브리 종족에게 수여하기로 결정하였다. 미가엘의 인가를 받은 뒤에, 12자 가족 위원회가 임명되었고, 이들은 유란시아로 파견되었다. 이들이 지명한 세 쌍 중에서 가브리엘이 요셉과 마리아를 선택하였다.

1. 요셉과 마리아 요셉의 직계 조상들은 기계공이었다.

마리아의 족보도 마찬가지로 보통 사람이 주류를 이루었고, 종족 면에서 마리아를 유대인으로 보기 힘들다.

땅에서 보통 사람으로 나타나는 것이 미가엘의 계획이었고, 가브리엘은 마리아와 요셉과 같이 평범한 쌍을 수여자의 부모로 선택하였다.

2. 가브리엘이 엘리자벳에게 나타나다 사가리아와 엘리자벳은 결혼한 지 오래 되었으나 아이가 없었다.

가브리엘이 엘리자벳에게 기원전 8년 6월 말에 나타났다.

“아들의 이름을 요한이라 부르라. 그가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리라. 내가 또 마리아에게 나타나리라.”

마리아는 요셉을 설득하여, (혼자서) 엘리자벳을 방문하고 그 집에서 3주 동안 머물렀다.

요한은 기원전 7년 3월 25일에 유다시에서 태어났다.

요한은 어릴 때 아버지 사가리아가 성전에서 일하는 기간에 아버지를 따라갔다.

3.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다 어느 날 해 질 무렵, 요셉이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나사렛의 집에 나타났다.

“네 안에 잉태된 자를 하늘에서 예정하셨고…

그를 요수아로 부를지니라.

이 집이 운명의 아이가 사람으로 거할 곳으로 선택되었음이라.

엘리자벳의 집에 다녀 온 뒤에, 마리아는 부모, 요아킴과 한나를 찾아 보았다. 친정 식구들은 마리아의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4. 요셉의 꿈 꿈 속에, 한 눈부신 하늘 사자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세상에서 큰 빛이 될 아들에 관하여 너에게 이르라고 지시를 받았노라.

자신의 민족은 좀처럼 그를 받아들이지 아니하리라.

그를 받아들이는 많은 사람에게 저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밝히리라.”


꿈꾸는 요셉. 부활 교회, St. Petersburg, Russia.

히브리 선지자들은 한 구원자(메시아)가 올 것이라 예언해 왔으나, 유대인은 메시아가 이스라엘을 외국의 지배에서 해방하는 강국으로 세울 사람이라 생각했다.

이런 의도에서 마리아와 요셉의 족보들도 과장되고 왜곡되었다.

5. 예수의 지상 부모 요셉은 양심적이고 말이 적었다. 민족의 곤경이 요셉을 슬프게 하였다.

마리아는 요셉이 죽기까지 보통은 명랑했으나, 맏아들의 특별한 생애를 통해서 대체로 차분하고 지혜로웠다.

예수는 아버지로부터 이해심을, 어머니로부터 의분을 느끼는 능력을 물려받았다. 어른이 되면서, 마리아의 기질이 예수의 생애를 지배하는 경향이 있었다. 마리아는 믿음과 의심 사이에 오락가락하였다.

요셉이 마리아의 아버지에게, 집에 덧붙인 건물을 짓는 일에 고용되었고, 마리아를 만나게 되었다. 요셉은 스물 한 살 되었을 때, 나사렛 근방에서 마리아의 집에서 결혼했다.

요셉은 두 형제의 도움을 받아서 나사렛에 새 집을 짓고, 여기로 옮기고 여기서 자식 낳기를 기대하였다.

요셉의 집안에서 반 이상이 예수의 가르침을 믿는 사람이 되었으나, 마리아의 집안 사람들은 주가 이 세상을 떠나기까지 거의 아무도 그를 믿지 않았다.

요셉은 메시아가 영적 인물이라는 개념을 고수했고, 마리아의 가족은 정치적 통치자라는 개념을 지지했다.


요셉과 마리아의 결혼

6. 나사렛에 있던 집 예수의 가족은 나사렛의 교외에서 살았다.

예수가 좋아한 산책은 동북 방향으로 산밑 둘레를 도는 좁은 길을 따라서, 세포리스로 가는 길과 만나는 곳까지 걷는 것이었다.

오늘날 나사렛에서 세포리스로 가는 길
세포리스와 연결되는 좁은 산길

요셉과 마리아의 집은, 돌로 지은 단칸방이고 지붕이 평평했다.

가구라고는 낮은 돌 식탁 하나, 토기와 돌 접시, 돌 단지들, 베틀 하나, 등받침 하나, 의자 몇 개, 돌 마루 위에서 자는 데 쓰이는 깔개였다.

인접한 우리 가까이, 아궁이와 오두막이 있었다.

예수는 어머니가 가는 돌을 돌리는 동안, 맷돌에 알곡을 집어 넣었다.

가버나움에서 발견된 맷돌

식사 형태

돌 식탁 둘레에 식구들이 모여서, 웅크려 앉고, 공동 접시나 그릇에서 음식을 덜어 먹었다. 진흙으로 만든 등불이 식탁을 비추었고, 올리브 기름을 이 목적에 썼다.

진흙으로 만든 램프

마르다가 태어난 후에, 요셉은 큰 방 하나를 덧붙여 지었다. 이것은 낮에 목수 작업장으로 쓰이고, 밤에는 침실이 되었다.

7. 베들레헴 여행 요셉과 마리아가 결혼한 달(기원전 8년 3월)에 케자 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제국의 인구를 세어야 한다는 칙령을 내렸다.

요셉과 마리아의 결혼

이 칙령에 따라 이 인구 조사는 기원전 8년에 기록되었고, 팔레스타인에서는 1년 연기되어, 기원전 7년에 실시되었다.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갈 필요는 없었지만, 혼자 있는 동안에 아이를 낳을까 두려워, 마리아는 요셉을 따라가기로 작정했다.

이 부부는 기원전 7년 8월 18일(수요일)에 베들레헴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 첫날에 길보아 산 기슭에서 텐트를 쳤다.

둘째 날에는 예리고에 다달아, 어느 여인숙에서 멈추었다.

셋째 날, 한낮이 되기 전에 예루살렘에 도착했고, 오후에 베들레헴에 도착했다.

여인숙에 사람들이 붐비어, 카라반 손님을 위한 마구간에서 잠자리를 얻었다.

8. 예수가 태어나다 기원전 7년 8월 21일 한낮에, 여인 여행자들의 도움을 받아, 마리아는 사내 아이를 낳았고, 아기는 말구유에 눕혀졌다.

여드렛날에, 아기는 할례를 받고 요수아(예수)라는 이름을 받았다.


예수의 할례

예수가 태어난 다음 날, 요셉은 등록을 마쳤다.

여인숙에 묵고 있던 어느 부유한 사람이 나사렛 부부와 숙소를 바꾸어 주었고, 이들은 친척 집에서 묵을 곳을 찾기까지 거의 3주 동안 거기서 살았다.

엘리자벳에게 소식을 보냈고, 예루살렘까지 요셉을 초대한다는 회답을 받았다.

다윗의 후계자가 되도록, 다윗의 도시 베들레헴에 남아 있으라고, 사가리아와 엘리자벳은 이 부부를 설득하였다. 따라서 이들은 1년이 넘도록 베들레헴에 남아 있었다.

유란시아의 세라핌들이 예수가 태어날 때 영광의 찬송을 불렀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온 사제들은 어느 종교 선생으로부터 “생명의 빛”이 한 아기로서 태어나려 한다는 말씀을 꿈 속에서 받았기 때문에, 예루살렘까지 왔다가 사가리아를 만났다. 아기 예수가 거의 3주가 되었을 때, 이들이 찾아 왔고 선물을 전해드렸다.


Jericho today


August 21, 7 BC = Satur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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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의 별

이 현자들은 아무 별도 보지 않았다.

예수는 기원전 7년 8월 21일 정오에 태어났다.

기원전 7년 5월 27, 물고기 별자리에서 목성과 토성의 합(合)이 일어났다.

같은 해, 9월 29일, 12월 5일에 합이 또 일어난 것은 천문학에서 드문 사건이다.

열심 있는 사람들이, 점성가들이 말 구유까지 안내받고 갓난아이에게 경배했다는 전설을 만들어 냈다.


목동들의 찬미

9. 성전에서 아기를 보이다


첫 아들을 희생물로 바치는 대신에, 모세는 다섯 세겔을 성전에 바치면 아들이 살아도 좋다고 가르쳤다.

또한 어머니가 정화(淨化)를 받으려고 성전에 와서 정화를 위한 희생물을 바쳐야 한다. 이 두 의식을 한꺼번에 치르는 것이 유대인의 관습이었다.

정화 예식


성전에서 아기를 보인다.

성전에서 일하는 사가리아에게는 시미온과 안나, 두 친구가 있었다.

성전에 예식을 치르려고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데리고 나타날 때, 사가리아는 누가 예수인가 가르쳐 주기로 사전에 약속해 놓았다.

안나는 미리 시(詩)를 써 두었고, 시미온이 그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성전 마당에 모인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그 내용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다윗의 집안에서 구원자를 기른다. 이 약속의 아이가 그의 백성을 구한다. 나는 구원을 보았으니 세상을 평안히 떠나게 해 달라. 당신이 준비한 구원을 나의 눈이 보았다.

이것은 예수가 장차,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구원할 메시아로 본다는 시(詩)였고, 때 이른 선전이었으므로, 요셉은 이를 달가워 하지 않았다.

헤롯의 행동 헤롯은 갈대아인 현자들을 호출했다.

자기도 가서 경배하도록, 현자들에게 돈 자루를 주어 보내면서 그 아기를 찾아내라고 지시했으나, 현자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정탐꾼들이 시미온이 불렀던 노래의 일부의 사본을 가져왔으나, 이들이 나사렛 부부가 어디로 갔는지 일러주지 못했으므로, 헤롯은 화가 났다. 이를 알고서, 사가리아와 엘리자벳은 베들레헴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아기 예수는 친척들에게 옮겨갔다.

1년이 넘도록 수색한 결과 소득이 없게 되자, 헤롯은 베들레헴에서 2살이 안된 남자 아기를 모두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런 이유로 베들레헴에 남자 아기 16명이 이슬로 사라졌다.

아기들의 학살

이 학살은 기원전 6년 10월 중순경에 일어났는데, 헤롯의 궁정 수행원들 중에 한 사람이 이 소식을 듣고 사가리아에게 알렸다.

에집트로 피신 학살이 있기 전날 밤에,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를 데리고 알렉산드리아로 떠났다.

거기서 만 2년을 지내고 헤롯이 죽기까지 베들레헴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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