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편 7장, 운명의 마지막

7분 강의

이것은 유란시아서 106편, 7장, "운명의 마지막"에 대한 해설이다. 원문의 저자는 멜기세덱이다.

이 주제는 우리의 일상생활과 너무 거리가 멀어서, 일종의 철학적 체조를 머리로 연습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해도 그만, 못해도 그만. 우리의 운명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보아도 좋다.

무한 통합 개념의 문제점

실체를 무한히 통합한다는 개념의 문제는 이것이 우주 발전의 최후, 모든 가능한 것이 체험으로 실현된다고 가정하는 사실에 본래부터 있다.

양적 무한을 마지막에 실현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세 잠재 절대자 안에 탐구하지 않은 가능성이 반드시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원의 결실에는 (질적ㆍ양적) 조건을 부과할 수 없고, 따라서 실체의 최종 통합은 실질적으로 실현할 수 없다.

세 절대자와 운명

삼위일체의 의지가 운명을 확정한다.

운명은 세 가지 잠재성(신 절대자ㆍ무제한 절대자ㆍ우주 절대자) 안에서 정해진다. 절대적 잠재성은 모든 미래 발전의 가능성을 포함한다.

우주 운명 종결자의 행위가 아마도 운명을 마무리하고, 운명은 절대 삼자일체 안에서 최상위ㆍ궁극위와 관계된다.

인간은 체험적 운명을 얼마큼 이해할 수 있지만, 무한한 실존자들의 운명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최종 운명은 실존적이자 경험으로 도달하며, 신 절대자가 상관하는 듯하다.

체험 가능성을 지닌 이 세 절대자는 실존적이며 무한하다.

최종 운명

신 절대자의 현실화는 실현이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이론적 가능성으로 남는다.

무제한 절대자가 무한한 우주와 상관하는 것은 영원한 미래까지 계속될지 모르지만, 위의 가설은 타당하다.

필사자ㆍ상물질자ㆍ영ㆍ최후자ㆍ초월자들은 기타 실체들과 함께 잠재적 최종 운명을 가지고 있으나, 어떤 존재나 우주도 그러한 운명을 완벽하게 성취할 것인가 우리는 의심이 든다.

멜기세덱 가라사대, 날이 갈수록 너희가 아버지를 더 이해하게 된다 하더라도, 영원에 이르기까지 너희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언제나 남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유한 수준 뿐이 아니라 초월 수준에서도 그렇다. (초월자들도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다.)

필사자가 하나님을 최종으로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인간은 낙심해서는 안 된다.

멜기세덱 가라사대, 너희는 칠중자ㆍ최상위ㆍ궁극위의 신 수준에 이를 수 있다.

무한한 영과 영원한 아들은 영원의 존재이고 아버지를 무한히 이해한다.

멜기세덱 가라사대, 너희의 이해는 똑같지 않지만 필사자로서 최대한으로 이해하게 된다. 영원까지라도 인격을 개발하고 신과 교제하는 가능성을 확신해야 한다.

세 절대자의 현실화

대우주에 사는 인간에게 총우주 개념은 무한한 듯이 보인다.

그러나 스스로 계신 이 안에서, 초한 건축가들이 총우주와 상관하며, 총우주가 있는 공간 자체도 고요한 중부 공간 지대에 제한을 받는다.

아득한 미래에 총우주가 완성될 때, 의심할 여지 없이, 그 역사 전체를 시작일 뿐이라고 우리 모두가 돌아볼 것이다.

세 가지 절대 잠재성이 완벽히 현실화될 수 있다면, 총실체의 마지막 통합을 상상할 수 있다.

무한한 운명의 달성은 무제한 절대자ㆍ우주 절대자ㆍ신 절대자가 현실화되는 데 기초를 두며, 세 잠재성의 연합은 스스로 계신 이의 잠재력이다.

아무리 신중하게 말해도, 이러한 궁극의 사건들은 아득히 먼 후일의 이야기이다.

세 가지 삼자일체 속에서 스스로 계신 이의 일곱 가지 모습이 다시 통일되는 가능성을 우리는 탐지한다. 이것은 삼위일체와 제1 및 제2 체험적 삼자일체를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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