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9 편, 죄와 희생과 속죄
글쓴이: 네바돈의 한 찬란한 저녁별 1934년 |
원시인은 자신이 영들에게 빚졌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자, 이 개념은 죄와 구원의 교리로 발전되었다.
처음에 사람은 저지른 죄에만 아랑곳했으나, 나중에는 (예식에서 무언가) 빠뜨리는 죄를 걱정하게 되었다. |
1. 금기 |
금기(禁忌)를 지키는 것은 영 귀신들의 기분을 상하지 않으려는 노력이었다.
금기는 처음에 불운을 겪었기 때문에 생겨났다. 나중에는 추장과 샤먼이 금기를 제안했다.
금기의 진화에서 종교가 큰 역할을 하게 되자, 금지된 물건을 더럽다, 나중에는 거룩하지 않다고 여겼다. 히브리인의 십계뿐 아니라, 달라마시아와 에덴의 일곱 계명은 금기였고, 모두가 부정 (하지 말라는)형태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계명은 이전에 있던 수천 가지 금기를 대신했으므로 발전된 것이었다.
먹을 것에 대한 금기는 주물 숭배로부터 생겨났다.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는 에집트인의 금기는 히브리와 이슬람 종교에서 지속되었다. 원시 종교의 지지를 받지 않았더라면, 금기는 지속되지 않았을 것이다. |
2. 죄의 개념 |
우연과 불운을 두려워하는 원시인은 이를 방지하는 수단으로 원시 종교를 발명하게 되었다. 계시된 종교가 미처 나타나기 전에, 세상에서 죄에 대한 개념은 확립되었다.
죄는 금기를 어기는 것이요, 죽음은 죄에 대한 벌이었다. 특별 창조가 있을 때 사람이 기원을 가졌고, 사람은 완전한 상태로 생애를 시작했으나, 금기를 어긴 때문에, 곤경에 빠졌다는 신앙을 표현하였다.
금기를 버릇처럼 어기는 것은 악덕이었다. 원시 율법은 악덕을 범죄로 다루었으나 종교는 악덕을 죄로 만들었다.
죄의 고백과 용서의 관념은 원시 종교에서 일찍부터 나타났다. 고백은 용서하는 의식이었고, 정화(淨化)하는 절차가 뒤따랐다. |
3. 극기와 굴욕 |
종교의 진화에서 극기 단계가 다가왔다.
금식은 보통 관습이었고, 성적(性的) 성질을 가진 쾌락을 그만두는 것이 관습이 되었다. 굶는 의식은 여러 고대 종교에 뿌리 깊이 박혀 있다.
물질의 소유가 영적으로 위험하다는 개념은 빌로와 바울의 시절에 유행하였고, 그 뒤로 유럽의 철학에 두드러지게 영향을 주었다.
자제는 이기적 만족이라는 분자를 늘이려고 애쓰는 대신에, 개인적 요구인 분모를 낮춤으로 인생의 분수(分數)를 높이는 기술을 사람에게 가르쳤다. 바울은 이 개인적 관점을 이렇게 표현했다. “남자가 여자에게 손대지 않는 것이 좋으니라.” “모든 사람이 바로 나와 같기를 바라노라.” “그러므로 결혼하지 않은 자와 과부들에게 내가 이르노니, 나처럼 지내는 것이 저희에게 좋으니라.”
천막을 만드는 그 선생의 조언을 널리 순종한다면, 인류는 갑자기 종말에 이를 것이다. 예수는 추종자들에게 이런 부당한 관점을 가르치지 않았다. |
4. 희생의 기원 |
종교적 의미에서 희생물을 바치는 것은 다른 의식처럼 한 가지 기원을 가지지 않았다.
원시인은 희생의 값을 고통으로 쟀다. 종교 의식으로서 희생물 바치는 관습이 시작되었을 때, 아픔을 낳지 않는 헌물을 고려되지 않았다.
일찍부터 두 가지 희생 개념이 존재했다. 선물 바치는 것은 추수를 감사하는 태도를 암시했고, 희생물을 죄값을 치르려고 바쳤다. 나중에는 (실물 대신에) 대용품 개념이 발전되었다.
최초의 희생 관념은 조상의 영들이 마땅한 세금을 부과한다는 개념이었고, 나중에야 속죄 관념이 개발되었다. 원죄 교리, 곧 종족이 날 때부터 죄가 있다는 교리는 사람마다 영들에게 무거운 빚을 지고 인생을 살게 만들었다.
선물이나 뇌물을 사람들에게 주지만, 신들에게 주었을 때, 그러한 선물을 거룩하게 된다고 이야기했고, 이를 희생물이라고 불렀다.
신을 달래는 행위는, 신을 찬송하고 영화롭게 하는 것을 포함하였다.
동물 바치는 것은 원시인에게 중요했다. 시간이 지나자, 사람은 약삭빨라졌고, 일하는 동물 바치기를 그쳤다. |
5. 희생물과 식인 풍습 |
옛적에 사람을 잡아먹던 풍습에 대한 현대의 개념은 틀리다. 식인 풍습은 옛 사회의 도덕 관습의 일부였다. 원시 인간은 식인자였고, 사람의 고기를 즐겼다. 따라서 원시적 신들에게 먹는 선물로서 사람의 고기를 바쳤다. 귀신은 단지 사람의 모습이 변한 것이었고, 사람에게 먹을 것이 가장 큰 필요였기 때문에, 귀신도 먹을 것이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산긱 종족들은 모두 식인종이었으나, 최초에 안돈 족속은 그렇지 않았고, 놋 족속과 아담 족속도 그렇지 않았다. 진화 종족들과 크게 섞이기까지, 안드 족속도 식인종이 아니었다.
사람 고기에 맛을 들이면, 그 입맛은 자란다.
식인 풍습은 대체로 진화 종족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사람의 고기를 먹는 것은 엄숙한 복수 예식의 일부가 되었다. 식인 풍습은 다음 영향으로 차츰 사라지고 있었다.
(i) 식인 풍습이 공동체의 예식이 되었다." 마침내 동물 대용품이 널리 쓰이게 되었고, 뒤처진 부족들 사이에서도 개 잡아먹기는 사람 잡아먹기를 크게 줄였다. |
6. 사람 바치기의 진화 |
어느 때인가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관습에 빠지지 않은 민족은 하나도 없다.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은 거의 보편적이었다. 이 풍습은 중국인ㆍ힌두인ㆍ에집트인ㆍ히브리인ㆍ메소포타미아인ㆍ그리스인ㆍ로마인의 종교 관습에서 지속하였고, 아프리카와 오스트랄리아이 부족들 사이에서 요즘까지도 지속되었다. 약 2천 년 전에, 마음씨 고운 어느 황제는 사람을 잡아 바치는 대신에 진흙 형상을 바치게 하였다. 예붓다와 외동딸에 관한 히브리인의 이야기보다 더 비극인 이야기는 남아 있지 않다. 좋은 의도를 가진 이 사람은 "전쟁의 신"과 협상하였고, 그를 맞이하려고 집에서 처음으로 나오는 자를 바치겠다고 어리석게 서약하였다. 예붓다는 충실한 종 하나가 집에서 나오리라 생각했으나, 알고 보니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이 그를 맞이하려고 나왔다. 문명화되었다고 생각된 민족 사이에서, 두 달 동안 제 운명을 슬퍼한 뒤에 이 아름다운 소녀를 제물로 실제로 바쳤다. 남자와 여자는 바보 같은 맹세를 하는 데 빠지며, 옛날 사람들은 그러한 서약을 무척 거룩하게 여겼다.
옛 시절에는 중요한 건물을 짓기 시작할 때, "기초에 넣는 제물"로서 사람을 죽여 바치는 것이 풍습이었다. 모세는 건물의 기초에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금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가 죽고 나서 이 풍습으로 돌아갔다. 첫 아이를 제물로 바친다는 생각은 페니키아인 사이에서 널리 퍼졌다. 이들은 제물을 바치면서 "목숨 대신에 목숨을"하고 말하곤 했다. 이제는 사람이 죽었을 때, 너희는 "티끌에서 티끌로"하고 말한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바치는 광경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새롭거나 이상한 관념이 아니었다. 드문 일이 생겼을 때 사람을 제물로 바쳐야한다는 관념이 한때 널리 퍼졌다. |
7. 사람 제물의 수정 |
모세는 사람을 바치는 대신에 몸값 내는 관습을 시작하였다.
첫 아이 잡아바치기를 그만둔 무리들은 뒤처진 이웃보다 크게 유리했다. 뒤떨어진 부족들은 아이들을 이렇게 잃었기 때문에, 크게 약화되었다.
사르곤ㆍ모세ㆍ싸이러스ㆍ로물루스의 경우와 같이, 아이가 살아남으면, 신들이 그를 살리려고 간섭했다고 믿었다.
성(性)의 문란으로 생긴 특이한 관계는 사람을 바치는 것과 관련하여 기원이 생겼다. 옛날에는, 여자가 머리 사냥꾼을 만났을 때, 몸을 제공함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성전의 매춘은 결국 남부 유럽과 아시아에 두루 퍼졌다. 상급 여인들의 상당수가 성전에서 몸 파는 서비스로 지참금을 모았고,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런 여자를 아내로 가지기를 더 좋아했다. |
8. 되찾기와 약속 |
죄값을 치르기 위한 희생물 바치기와 성전 매춘은 실제로 사람을 제물로 바치기의 변종이었다. 다음에는 딸들을 바치는 예식이 따랐는데, 일생 동안 처녀성을 지키고 방혈(防血)하는 것이 요구되었다. 이것은 이전의 성전 매춘에 대한 도덕적 반작용이었다. 후일에는 처녀들이 성전의 불을 지키는 봉사에 헌신하였다. 사람을 완전히 제물로 바치지 않고 몸의 어떤 부분을 대신 바치는 풍습이 따랐다.
머리카락ㆍ손발톱ㆍ피를 바쳤다. 내시(內侍)를 만드는 것은 처음에,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생각을 고친 것이었다. 코와 입술 뚫기는 아직도 아프리카에서 실행되고 있고, 문신(文身)은 예전에, 상스럽게 몸에 상처를 입히는 풍습이 진화한 것이다.
희생물 바치는 관습은 결국 약속 관념과 연결되었다. 율법, 곧 계약이 운ㆍ두려움ㆍ미신의 자리를 대신한다.
사람이 초기에 가졌던 하나님 관념은 너무 인간을 닮아서, 자신이 비교적 믿을 만하고, 윤리가 있게 될 때까지, 사람은 의지할 수 있는 신을 상상할 수 없었다.
이 모두가 불운에 대비하여 보험을 드는 조치, 아니 번영을 더 확실히 사들이는 기술이었다.
원시 형태의 기도는 영들과 협상하는 것, 신들과 따지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발전하는 상업은 무역 정신을 불러일으켰고, 물물 교환하는 눈치를 개발하였다. 초기의 기도는 건강ㆍ재산ㆍ목숨을 위하여 협상하는 탄원이었다. 여러 면에서, 기도는 시대가 지남에 따라서 별로 바뀌지 않았다. 기도를 아직도 책에서 읽어치우고, 형식으로 외우고, 적어서 바퀴에 붙이고 나무에 걸어 놓으며, 지나가는 바람은 후― 하고 부는 수고를 덜어준다고 생각하였다. |
9. 제물과 성찬 |
유란시아에서 의식(儀式)은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장사로부터 더 높은 상징적 수준으로 발전되었다. 희생물을 바치는 초기의 의식은 후일에 성찬 예식을 낳았다. 멕시코와 기타 장소에서, 사람을 바치는 예식에 있는 피와 살을 대신하여, 케이크와 포도주를 드는 성찬이 이용되었다. 히브리인은 유월절 예식의 일부로서 이 의식을 오랫동안 지켰고, 이로부터 나중에 기독교의 성찬식이 생겼다. 사도 바울은 피와 희생물 이론으로 기독교를 번거롭게 만들기는 했어도, 인간이나 동물을 바쳐서 속죄한다는 교리를 한숨에 끝내버렸다. 바울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마지막 사람 제물이 되었다. 신성한 재판관은 이것으로 영원히 만족한다고 생각되었다. 현대 종교는 사람을 잡아서 바치는 예식과 더 오래된 사람 잡아먹는 의식, 이 두 가지를 정통으로 이어받았다. 많은 사람이 아직도 구원을 받으려고 피에 의존하지만, 적어도 그것은 상징이 되었다. |
10. 죄의 용서 |
옛날 사람은 희생물을 바치고서 겨우 하나님의 은혜를 의식하였다. 죄는 의도하여 신에게 불충하는 것이라고 다시 정의를 내려야 한다.
불충에는 정도 차이가 있다. 죄를 지었다는 느낌은 도덕 관습을 어긴 것을 의식하는 것이요, 그것이 반드시 죄는 아니다. 의식하면서 신에게 불충하지 않을 때 진짜 죄는 없다.
죄책감을 깨닫는 가능성은 인류에게 탁월성이 있다는 표시이다.
그러한 모자란다는 느낌은 시초의 자극이며, 이것은 믿음으로 도덕적으로 고귀한 수준, 영적 생활을 하는 수준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죄의 고백, 죄의 성질을 진지하게 인정하는 것은 종교적 성장에 필수이다. 용서를 찾을 필요는 없다. 용서는 사람과 창조자 사이에 충성스러운 관계가 다시 세워짐을 의식함으로 얻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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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90 편, 주술 신앙 — 주술사와 사제
- 제 88 편, 주물과 부적과 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