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8 편, 문명의 시작

글쓴이: 한때 유란시아에 주둔했던 멜기세덱

1934년

이 글은 동물 존재와 비슷한 지위로부터 인류의 고등 민족들 사이에서 문명이 진화한 시절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투쟁한 이야기의 시작이다.

문명은 종족이 얻는 것이요, 생물학적으로 타고나지 않는다. 따라서 아이들을 문화가 있는 환경에서 길러야 한다.

달라마시아 선생들은 협동하는 사회 체제를 개시하였고, 청인은 누구보다도 많이, 홍인은 어느 정도, 흑인은 가장 적게, 이 초기의 교육을 받음으로 이익을 보았다.

1. 사람을 보호하는 사회 생활

원시인은 우정이나 사회적 접촉을 가지고 싶은 욕구가 거의 없었다. 이 초기 종족들은 슬픈 체험을 겪음으로 "뭉치는 가운데 힘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유대 관계는 일찍부터 살아남기 위해 치르는 값이 되었다.

문명은 사람이 비명(非命)에 죽지 않게 하는 보험이 되었다.

이렇게 고립을 두려워한 결과로서, 또 마지못해 협동하는 수단으로, 인간 사회는 진화해 왔다.

원시인은 일찍부터 집단은 개별 구성원의 단순 합계보다 강력하다는 것을 배웠다. 영리하게 협동하는 자들을 조직한 결과로서, 사회가 태어났다.

이렇게 원시 사회로 조직한 민족들은 방어 뿐 아니라, 자연을 이용하는 데도 성공하게 되었다. 사람이 많은 실수를 저질렀어도, 인간의 문명이 파괴되지 않은 것은 사람과 관계를 가짐으로 살아남는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오스트랄리아의 원주민처럼 원시 조건 하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현대의 문화 사회가 최근의 현상인 것을 보여 준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현대의 표현은 망상이다.

2. 사회 발전의 요인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을 피하려고 노력한 결과로 문명화된 사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서로 사랑함을 뜻하지는 않는다.

지능의 수준은 문화가 진보하는 속도를 높이지만, 사회는 개인 생활의 위험 요인을 줄이도록 설계되어 있다. 자아 유지는 사회를 일으키며, 한편 지나친 자아 욕구의 충족은 문명을 파괴한다.

사회는 자아의 영속(永續), 자아 유지, 자아 욕구의 충족에 관심을 가지지만, 인간의 자아 실현은 문화 집단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자연인(自然人)의 군집 본능은 지구에서 사회 조직이 발전한 것을 설명할 수 없다. 배고픔과 성욕은 사람을 사교적 동물로 만든다. 인간들을 한데 모여 살게 만든 다른 두 가지 감정은 허영과 귀신 두려움이었다.

원시인은 배고플 때에야 겨우 생각했다. 그러나 배고픔은 교제의 유일한 동기가 아니었다. 수많은 다른 욕구가 인간들이 가까이 교제하도록 이끌었다.

배고픔, 허영, 귀신 공포증은 계속 사회를 이루도록 압박하였지만, 성욕의 만족은 일시적인 것이었다. 성욕만으로 원시인 남녀가 가정을 이루지는 않았다.

초기의 가정은 성욕의 불만과 여자의 모성애에 기초를 두었다. 아기 때문에 여자는 안정된 거주를 유지해야 했고, 일찍부터 여자가 있는 곳을 집으로 여겼다.

먹을 것의 필요 때문에, 여자는 발달하는 사회에 빠질 수 없는 존재였다.

여자는 자아의 유지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여자는 먹을 것을 마련하고 짐을 싣는 동물이요, 혹사를 견디는 동반자였고, 이 위에 성욕을 만족시키는 수단이었다.

가족은 처음으로 성공한 평화 집단이었다.

결혼은 단지 개인의 행복을 실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종족을 살아남게 만드는 보험이었다.

허영이 확대되어 자만ㆍ포부ㆍ명예까지 포함한다면, 허영이 어떻게 인간을 단결시키는가 헤아릴 수 있다. 앞에 나서서 뽐내 보일 청중이 없으면 이런 감정이 쓸데 없다. 이러한 감정 때문에, 모든 예술ㆍ의식(儀式), 그리고 온갖 형태의 운동 경기 및 경쟁이 시작된다.

허영심은 사회의 탄생을 가져왔다. 먹고 살기 위한 활동은 사회를 건설하지만, 고삐없이 자아 욕구를 충족하는 것은 어김없이 문명을 파괴한다.

3. 사회를 만드는 귀신 공포증의 영향

귀신을 두려워하는 것은 사회를 단결시켰다.

사회의 진화에서 가장 큰 단일 요인은 귀신 꿈이었다. 이것은 영 세계의 상상하는 위험에 대비하여 사람들이 서로 결합하게 만들었다.

모든 사회는 근본적 필요와 욕구에 기초를 두었지만, 귀신 공포증은 문명의 새로운 요인이었다.

죽은 사람의 영을 무서워하는 것은 초기의 허술한 사회를 잘 통제된 집단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진화로 생긴 두려움은 신을 경외하는 느낌으로 바뀌도록 고안되어 있다. 귀신이 두려워 드리는 초기의 제사는 사회의 단결을 낳았다.

배고픔과 사랑은 사람들이 함께 살도록 만들었으며, 허영심과 귀신 공포증은 사람을 단결시켰다.

초인간 근원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사회의 긴장은 어떤 한계에 이르고 나서 폭발하며, 사회를 동원하는 바로 이 영향―배고픔ㆍ사랑ㆍ허영ㆍ두려움―은 인류를 전쟁과 살육으로 몬다.

인류의 평화 성향은 자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계시된 종교의 가르침으로부터, 특히 평화의 왕, 예수의 가르침으로부터 비롯된다.

4. 도덕 관습의 진화

현대의 모든 사회 제도는 조상의 원시 관습이 진화된 것이다.

도덕 관습은 사람이 집단을 이루어 사는 조건에서 생겨난다. 고통과 치욕을 피하고 동시에 쾌락과 권력을 누리려고 부족이 적응하는 것이다.

귀신 공포증은 원시인으로 하여금 초자연적인 것을 상상하도록 몰았고, 윤리와 종교가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기초가 되었다.

죽은 사람들이 존중했던 규칙을 경시하는 필사자에게 벌이 내릴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그런 규칙을 지키는 도덕 관습이 일찍부터 생겨났다.

이 모두가 황인종의 조상 숭배에서 잘 나타난다.

진보하는 문명은 갈수록 두려움과 미신에서 인류를 해방한다.

원시의 야만인은 끊임없는 예식에 둘러싸였다.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밤에 잘 때까지, 모든 것을 부족 풍습에 따라 행해야 되었다.

초기의 인간은 관습에 노예가 되었다. 그러나 원시인의 타성은 문명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하여 파멸로 갑자기 굴러떨어지는 것을 막는 안전 장치이다.

관습은 진화되어야 하며, 급진적 혁명으로 관습을 수정하는 것은 문명을 붕괴시킬 위험이 있다. 자체의 도덕관을 버린 문명은 지탱하지 못했다.

한 사회가 살아남는 것은 주로 도덕관의 점진적 발달에 달려 있다. 변화가 반드시 나아진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문명이 전진하는 투쟁에 여러 번 후퇴가 있었다.

5. 토지 이용 기술―유지하는 예술

토지는 사회의 무대요, 사람들은 배우이다.

도덕 관습의 진화는 언제나 인구 밀도에 달려 있다.

가장 일찍 있었던, 인간의 문화는 동반구의 강들을 따라서 생겨났다. 문명의 행진에 네 단계가 있었다:

(i) 수집 단계. 배고픔은 산업 조직의 첫 형태가 생기게 하였다. 원시적으로 먹이를 수집하는 줄이 생겼고, 이것은 10킬로미터나 되곤 했다.

(ii) 사냥 단계. 주먹을 다친 어느 안돈 사람이 팔 대신에 긴 막대기, 주먹 대신에 힘줄로 부싯돌 조각을 묶어서 쓰는 생각을 다시 찾아냈다.

청인은 솜씨 있는 사냥꾼, 덫꾼이 되었다.

(iii) 목축 단계. 이 단계는 동물을 길들임으로 가능해졌다.

목축 생활은 식량에 노예가 된 상태로부터 부담을 덜어주었다. 사람은 가축 떼의 증가분으로 사는 것을 배웠고, 이것은 진보를 위하여 여가를 마련해 주었다.

목축 이전의 사회는 남녀가 협동하는 사회였지만, 동물 사육이 퍼지자 여자는 사회에서 노예의 처지로 떨어졌다. 이 시대의 끝에, 여자는 일하고 자식을 낳는 신세로 떨어졌다.

(iv) 농업 단계. 칼리가스티아와 아담은 원예와 농업을 가르치려고 애썼다.

농업이 시작되자 세계의 인구 밀도가 4배가 넘게 들어났다. 사냥, 목축, 농업이 겹칠 때, 남자는 사냥하고 여자는 땅을 경작한다.

목자와 농부 사이에는 언제나 마찰이 있었다. 사냥꾼과 목자는 투사요, 농부는 평화를 사랑했다.

인간 사회는 사냥 단계와 목축 단계를 거쳐서, 농사 짓는 단계로 진화했다. 각 단계에 방랑 생활이 차츰 줄어들었고, 갈수록 더 남자는 집에서 살기 시작했다.

산업이 농업을 보충하고 도시화가 진행되자 비농업 집단이 늘어났다. 사회가 아무리 발달해도 농업의 기초 위에 서야 한다는 것을 지도자들이 깨닫지 못하면, 산업 시대는 살아남을 수 없다.

6. 문화의 진화

사람은 흙에서 생긴 생물이다. 아무리 진지하게 땅을 벗어나려 해도, 끝까지 두고 보면 분명히 실패한다.

사람의 근본적 싸움은 땅을 위한 싸움이었고,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늘 그럴 것이다.

사람은 예술과 과학의 수단으로 땅의 소산을 늘였다. 따라서 문화가 있는 문명을 세우기 위하여 생계와 여가가 마련되었다.

토지가 풍부한 시절에는 사람의 필요가 컸고, 사람 목숨의 값이 높아졌다. 토지가 귀하고 인구가 과잉인 기간에는 사람의 목숨이 값싸졌고, 전쟁ㆍ기근ㆍ유행병에 관심을 덜 쏟았다.

아쉬돗의 역병, 니콜라 푸생

토지의 소산이 줄거나 인구가 늘어날 때, 불가피한 투쟁이 다시 시작되었고, 인간의 나쁜 특성이 표면에 나타났다.

영적 문화와 과학적 진보는 도심이 농업과 산업에 종사하는 인구의 지원을 받을 때, 그런 도심에서 일어난다.

생활 수준이 높을수록 안정된 상태나 사멸하는 점까지 가족이 작아진다.

생활 수준이 복잡하거나 지나치게 사치스럽게 될 때, 그것은 자살이 된다.

원시 부족은 병약한 아이를 죽이고 여자 아기들은 내버려져 빈번히 죽음을 당했다. 이러한 관습은 인구의 증가를 제한하였다.

많은 종족의 유산하는 기술을 배웠으나, 개화된 집단에서 사생아(私生兒)는 소녀의 어머니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20세기에도 인구를 통제하는 원시 방법이 오스트랄리아와 마다가스카에 남아 있다.

과잉 인구는 지난날에 심각한 문제가 된 적이 없다. 그러나 전쟁이 줄어들고 과학이 인간의 병을 통제하면, 과잉 인구는 장래에 심각한 문제가 될지 모른다.

보통 인간이 양육되어야 한다. 보통 사람은 문명의 등뼈요, 돌연 변이로 천재들이 나오는 근원이다.

보통 이하의 사람은 사회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낮은 등급의 노동에 필요한 것보다 더 생산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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