쯔윙거(Zwinger) 궁전의 중국 자기 (瓷器)

중세에 독일 지방에서 성 또는 요새를 지을 때, 바깥 담과 안 쪽 담을 쌓았고, 그 사이를 쯔윙거라고 불렀다. 이 담 사이의 지역은 왕궁에서 동산으로 꾸몄다고 한다. 아우구스트가 폴란드의 왕이 된 이후, 루이 14세가 파리의 베르사이 궁전으로 옮겨가서 사는 것을 구경하고 돌아와서 이 궁전을 드레스덴에 지을 생각을 가졌다. 페펠만(Matthaus Daniel Poppelmann)이 설계하였고, 1710년에 시작하였고 1728년에 내부 치장은 끝났으나, 1733년에 아우구스트가 죽자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2차 대전 중에 건물이 대체로 파괴되었으나, 다행히 자기들을 미리 대피시켜 지금까지 귀중한 그릇들이 보존되었다. 궁전 자체는 1945년부터 복구 공사를 시작하여 1963년에야 예전의 모습을 다시 갖추게 되었다. 쯔윙거 궁전은 중세 화가들의 그림과 중국 자기 수집으로 유명하다. 일본 자기와 마이센 자기도 얼마큼 있다. 궁전의 자기에 대한 설명이 별로 붙어 있지 않아 다음의 분류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  

1. 강희제 시대의 자기

강희제는 아우구스트와 같은 시대에 청나라의 임금이었다. 첫 번에 굽기 전에 유약을 써서 여러 가지 화려한 색깔을 냈다.

청백자 호리병, 강희제 시대(1662-1722년), 청백자는 장시성(江西省)의 징더전(景德鎭)요에서 처음 개발하였다.

분청자

자기는 당나라 이후부터 개발되었는데, 고령토(kaolin)를 1200-1300도에 구워서 만든다. 유럽의 자기보다 중국 자기는 고령토를 적게 써서 투명성이 높다. 굽기 전에 도료를 먼저 칠한다. 진한 청색 아니면 흰색이므로 청백자는 단조로운 느낌이 있다. 중간색을 나타내기 위하여 분청을 쓴 결과로 분청자가 생긴다.

강희제 시대의 분청자 (powder blue). 푸른 유약을 칠하고 그 위에 금은색을 넣었다.

분청자인데 다른 색깔도 집어 넣기 시작했다. 녹자기 (famille verte, green family)

강희제 시대의 녹자기. 녹자기는 백색 바탕에 밝고 엷은 녹색을 많이 썼다.

아마도 부자가 호수에서 고기잡는 장면을 그린 듯. 당시에 배를 어떻게 만들었는가 보여 준다. 중국에는 목공 기술이 발달하여 수평 판자와 수직의 판자를 직각으로 연결하기 위하여 못을 쓰지 않고 수직 판자에 장붓구멍을 내고 수평 판자의 끝에는 장부촉을 만들이 끼웠다. (mortise and tenon)

정교하게 만든 그릇인데 그림 내용은 알 수 없다. 나무로 만든 탁자 위에 붓과 벼루는 있는데 종이가 없다.

고기잡이는 여인들이 한 듯. 여인은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남편은 잡은 물고기를 장에 팔려고 가는 듯하다.

배를 젓는 여인은 아마도 물고기를 잡으러 가는 듯하다. 여인들도 흔히 고기잡는 일을 했는지 모른다.

궁궐 안의 경치. 고관들이 기병들의 훈련을 구경한다.

얇은 그릇에 정교한 동그라미 무늬를 팠다.

강희제 시대 (1700-1720년) 청나라와 일본의 장인들 사이에 교류가 있었을 것이다.

2. 드러군 화병

아우구스트 왕이 수집한 청백자. 강희제가 같은 시대에 청나라 황제였다. 드러군은 경기병 (light cavalry), 곧 말을 탄 보병을 말한다. 보병으로 싸우는 기술을 가진 기병이다. 아우구스트가 프러시아의 빌헬름 1세(Friedrich Wilhelm I) 기병 600명을 바쳤는데, 그 대신에 베르린 가까이 오라니엔버그 궁전에 있던 자기 그릇 151개 받은 데서 “드러군 화병”이라는 이름이 유래한다. 자기 그릇 하나의 값이 경기병 4명과 맞먹었다는 말이다.  

3. 옹정제 시대의 자기

청나라 옹정제(1723-35년) 시대의 작품.

밥그릇.

예수가 세례받는 장면. 처음에는 중국인이 만든 그릇을 유럽에 수출했으나, 나중에는 유럽사람들이 특정한 그림을 넣어 달라고 하여 주문을 받은 듯하다.

궁궐 안뜰의 장면.

유럽의 왕족들이 이런 그릇을 왜 모았는가 이해가 간다.  

4. 명대의 백자기

德化白瓷, 명대(1368-1644년)부터 오늘날까지도 생산된다. 그릇보다는 인물 조각이 많다. 일본에도 수출되었다. 유럽 사람들은 백자를 미완성 작품으로 생각하여 그 위에 색을 칠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작품이 그런 경우이고, 오랜 세월이 지나 페인트가 벗겨진 부분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