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케네 문명의 영향 (Impacts of Mycenaean Civilization)

미노스 문명 (Minoan civilization)은 크레테 섬을 중심으로 하여 기원전 27세기부터 15세기까지 번성했다. 테라(Thera) 섬이 기원전 1600년 경에 폭발함으로 크레테에서 살던 미노스인들이 많이 떠났고, 약화되었다.

미케네 문명은 미노스 문명을 뒤이어, 고대 (기원전 1600-1100년) 그리스에, 특히 펠로폰네수스(Peloponnesus) 반도의 아르골리스(Argolis)에 있던 옛 미케네 유적지에서 번성했던 문명이다. 테살리(Thesaly)와 크레테의 크노소스(Knossos) 궁전, 그리고 크레테 위쪽에 키클라데스(Cyclades) 諸島도 미케네 문명에 속했다.

미케네 문명은 1100년 경에 도리아인(Dorian)이 침공함으로 청동기 문화가 붕괴되고 멸망하게 되었다.

미케네와 크레테에서 쓰던 선형 B 문자는 미노스 문명의 선형 A 문자에서 진화한 것이고 대체로 풀이가 되어 있다. 선형 A 문자는 아직 解讀이 불가능하다.

이전의 미노스 문명은 무역으로 번영하였으나, 미케네인은 무역보다 군대를 이용하여 이웃을 정복하였다. 기원전 12세기에 이르자 근처의 키클라데스(Cyclades) 제도와 크레테(Crete) 섬은 비교적 자유롭게 발달하였다. 그러나 미케네인은 트로이 전쟁을 일으켜 경쟁하던 도시국가 트로이를 멸망시켰다고 한다. 트로이 전쟁은 이전에 신화로만 생각되었는데, 하인리히 술리만(Heinrich Schliemann)이 트로이 유적지를 발굴하여, 트로이(Troy) 전쟁이 역사적으로 일어난 무역 전쟁임을 보여주었다.

키클라데스 제도.

미케네인 사회에는 두 가지 계급이 있었는데, 임금을 보좌하여 행정을 담당하는 귀족들과 보통 사람들이었다. 후자를 Demo라고 불렀고, 후일에 민주주의라는 말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서민들은 匠人, 농부, 상인이었고, 이들은 여러 가지 의무가 있고 세금을 물었다. 물론 정복으로 잡아온 사람들은 노예가 되었다.  

1. 아가멤논

술리만이 발견한 아가멤논 (Agamemnon)의 死面(death mask), 기원전 16세기. 아가멤논은 미케네의 임금이고 동생 메네라우스는 스파르타의 왕이었다.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2. 남비와 항아리

이런 토기 남비에 무엇을 구워 먹었을까?

기원전 2800-2300년의 토기 남비의 뒷면. 이 남비는 환웅이 조선반도에 도착하기 이전에 쓰이던 토기이다. 한반도에는 조선 사람이 도착하여 정착하기 이전이다.

이 남비에는 손잡이도 달려 있다.

항아리. 기원전 15세기. 문어를 즐겨 먹었던 듯.  

3. 미케네인의 생활

돌로 만든 티린스(Tyrins)의 보좌. 옆면의 나선형 무늬는 크레테 섬에도 널려 있다.

옛날 그리스 병사(hoplite)의 모습이 이 그릇에 그려져 있다.

청동 톱.

토관(진흙으로 만든 관), 기원전 14-12세기.  

4. 미케네인의 글자

선형 B 문자. 미케네 사람들은 미노스 사람들에게서 선형 A문자를 받아서 개조한 듯하다. 이들의 문자는 일본의 문자처럼 음절을 대표하였다. 이런 음절 문자로부터 결국 알파벳이 생겨났다.

선형 B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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