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테르고프 궁전의 분수

페테르고프 궁전의 중앙 계단 폭포

1. 궁전 건축

대북방 전쟁(Great Northern War, 서기 1700 – 1721년)에서 러시아와 스웨덴은 발트해의 주도권을 쥐기 위하여 싸웠다. 1709년에 폴토바(Poltova)에서 표트르 대제는 스웨덴 군대를 무찔렀고, 스웨덴의 칼 12세는(Charles XII) 오토만 제국으로 달아나 버렸다. 이어서 표트르의 해군은 1714년에 항코(Hanko)에서 스웨덴과 해전에 이겼다. 이렇게 발틱해에 거점을 잡고나서, 표트르 대제는 건축가와 기사들을 모아서, 해안가에 몽프라시르(Monplasir) 궁전을 짓기 시작하였다. 여기는 표트르 대제가 유럽으로 오가는 길에 쓰려고 지은 여름 궁전이다.

1717년에 베르사이 궁전을 (Chateau de Versailles) 방문한 뒤에, 표트르 대제는 이에 못지 않을 궁전을 계획하였고, 1721년에 완공하였다. (물론 나중에 여러 가지가 더 첨가되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를 짓고서 러시아는 발틱해에 항구를 가지게 되었고, 표트르 대제는 이것을 축하하는 뜻으로 페테르고프 궁전을 지었다고 한다.

이태리 건축가 라스트렐리(Rastrelli)가 궁전을 설계하였다. 러시아인 건축 기사 투볼코프가 (Tuvolkov) 계단식 폭포를 만들기 위하여 저수지와 수도관을 지었다. 계단식 폭포에서 내리는 물은 운하를 통해서 핀란드만으로 빠진다. 베르사이 궁전은 물의 공급이 어려워 분수가 제대로 작동한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표트르 대제는 이 점을 놓쳤을 리가 없다.

페테르고프 궁전의 큰 장점은 수많은 펌프를 사용하지 않고, 물의 압력을 이용하여 분수를 작동케 한 것이다. 핀란드 만에서 운하를 통해서 배로 들어올 수 있고, 분수에 쓰일 물을 공급할 수 있는 곳에 궁전의 위치를 정한 것 같다. 저수지에서 내려오는 수로(水路)는 4킬로미터가 된다. 궁전의 윗뜰에서 내려오는 물의 압력이 충분히 높아서 아래 뜰의 분수가 20미터나 높이 치솟는다. 표트르 대제는 베르사이를 타산지석으로 삼고, 이 궁전을 과학적, 경제적으로 설계한 것이다.

이에 비하면 베르사이 궁의 뜰은 분수에 쓸 물의 공급이 쉽지 않았으니, 계획에 문제가 있었던 듯하다. 게다가 궁전에 지나치게 화려하게 만들어 국민의 반감을 샀던 것 같다.  

2. 레닌그라드 포위전

2차 대전에 상트 페테르부르크가 포위되었을 때, 독일군은 페테르고프 궁을 본부로 삼았고 떠날 때 다 파괴하였다. 1947년에 주로 자원자들이 동원되어 다시 지었다고 한다. 이것은 표트르 대제가 러시아 국민이 아끼는 황제였다는 것을 보여 준다.

처음에는 이름을 독일식으로 (Peterhof/Петергoф) 페트로고프로 지었으나 독일군이 후퇴하면서 이 궁전을 대체로 파괴하였기 때문에 독일인에 대한 감정이 나빠져, 2차 대전 이후에 페트로보렛츠(페테르 궁전)라고 이름을 고쳤다. 한 때는 레닌그라드라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2003년에 상트 페테르부르크 시 300주년을 맞이하여 다시 옛 이름을 회복하였다.

1941년 9월 8일부터 1943년 1월 13일까지, 872일 동안 포위가 계속되었는데, 이곳에서 자란 어느 러시아인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 페테르부르그에서 백만 명이 넘게 죽었다고 한다. 이 전사자의 대부분은 시민이었고 굶어 죽었다. 히로시마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세계 역사에서 가장 전사자가 많이 난 곳이 레닌그라드이다.

같이 이야기하던 어느 독일인 친구는 아버지가 상트 페테르부르크가 포위되었을 때 여기서 싸웠는데, 나중에 다른 곳에서 포로가 되어 러시아에 잡혀 갔다가, 많은 고생을 견디고도 살아남아서 고향에 돌아가서 자기를 낳았다고 했다.

3. 궁전 윗뜰

궁전 앞의 윗뜰.

윗뜰의 격자(格子) 울타리, 연인들이 즐겨 다니는 길목

궁전 윗뜰의 분수 (Neptune Fountain)

궁전 교회 (Church of Grand Peterhof Palace)

궁전의 아랫뜰

바둑판 무늬의 바닥

여기가 사람들이 모이기 좋아하는 곳.

계단식 폭포 (Grand Cascade),

아프로디테 (Aphrodite)

이 금 조각상들을 사람들이 너무 만져서 금칠을 정기적으로 다시 해야 된다고.

계단 옆의 조각

삼손과 사자 조각 (Mikhail Kozlovsky 작품) 이것이 순금일까? 물론 아니다. 독일군이 왜 이것을 훔쳐갔을까? 사자는 스웨덴 군대의 문장(紋章, coat of arms)이고, 이 조각은 러시아가 스웨덴에 승리한 것을 상징한다. 분수에서 솟아오르는 물의 높이가 20미터나 된다고 한다.

Hermes (신들의 使者). 다른 조각들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 조각의 복사품이다.

밑에서 본 폭포

표트르 궁전과 삼손 조각 사자의 입을 여는 조각상이 분수 한 가운데 있다.

바다로 연결되는 운하에서 이 궁의 아래 뜰로 직접 접근할 수 있다.

베드로와 바울 성당. 궁전 건너편에 있다.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가롯 유다도 자리에 있었을 터이나,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대신에 아마도 막달라 마리아인 듯한 여인이 함꼐 있다.

오순절 성령의 강림

러시아 정교 교회에는 제단을 가리는 병풍에는 이렇게 여러 이콘(Icon)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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