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차코프 미술관의 유명한 작품

상트페테르부르그 (또는 레닌그라드)에 있는 에르미타주 박물관이 근대 서양화를 많이 소장한 것으로 이름이 나 있는 데 비하여, 트레차코프 미술관은 주로 러시아 화가들의 이름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트레차코프(Trechakov) 가의 파벨(Pavel)과 세르게이( 형제가 개인적으로 수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르네상스 이전부터도 이콘(Icon)을 많이 만들었고, 이런 작품은 이탈리아의 작품들보다 몇 백년이 앞선다. 아마도 그리스 정교의 전통을 이어받은 듯.

베니스가 선박을 많이 짓고 무역으로 부를 축적하고 플로렌스가 은행업으로 재산을 쌓으면서 자기들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자 많은 화가들을 고용하여 그림을 그리게 했다. 경제 성장의 바탕에 르네상스(14 – 17세기)가 시작된 것이다. 대부분의 교인들이 라틴어를 이해하지 못했으므로, 유럽의 카토릭 교회는 교인들을 교육시키기 위하여 주로 예수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를 주제로 하여 그림 제작을 권장한 것 같다. 따라서 그림의 내용이 다양하다.

러시아의 성화

러시아 화가들의 그림은 대체로 단조롭고 마리아와 아기 예수그림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러시아인이 예술성이 모자란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러시아의 성화(聖畵)는 목적이 다르다는 말이다. 세속적 주제로 그린 그림들은 물론 다양하다. 크렘린 궁전 안에 황제를 위해서 지은 Cathedral of the Annunciation 교회는 러시아인의 예술성을 풍부히 보여 준다.

성경이 귀하여 서민들은 성경을 읽지 못하고 일요일에 교회에 가서 사제의 설교를 듣는 것 으로 때웠던 것 같다. 따라서 교인들이 기도의 목적으로 이콘이 필요했던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 이전부터도 이러한 그림이 많이 있다. 벽화는 거의 없고, 초기에는 나무 판자를 많이 사용했다.

트레차코프 미술관과 Pavel Mikhailovich Tretyakov의 조각상.  

1. 임신 통지(또는 수태 고지, Ustyuzhskoye, 서기 1130-1140)

성화 중에도 화가들이 제일 많이 그림을 그리는 주제는 마리아가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가브리엘이 통지하는 그림이다.

이 그림이 모든 임신 통지 그림의 시조였을지 모른다. 어쨋든 이 주제로 더 일찍 그린 그림은 본 적이 없다. 후일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같은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2. 변모(Transformation)

15-16 세기, 무명 화가 작품. 변모산 또는 변화산도 서양 화가들이 즐겨 그리는 주제이다. 후일에(?) 라파엘이 같은 주제로 그린 그림(모자익)은 로마의 베드로 성당에 걸려 있다. 이 두 그림에서 보다시피, 중세에는 그림 물감 뿐아니라 그림 바탕의 재료도 좋은 것이 없어서 나무 판대기 위에 그림을 그렸다.

한 가지 문제점은 나무는 오래되면, 나무가 마르면서 원상태의 모습으로 돌아가려 하기 때문에, 판대기가 휜다. 이 그림은 세 개의 두꺼운 나무 판자에 그렸고, 판자가 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그림 뒤에 가로 지르는 막대기 몇 줄이 못 박혀 있다. 이러한 노력에도 상관없이 판자들이 휘어 있다. 여전히 나이가 들면, 나무가 휘는 것을 막을 수 없는 듯.  

3. 선생들 사이에 있는 예수

이 그림은 열두 살 때 성전에 가서 소년 예수가 선생들 사이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다.

4. 황야의 예수 (Christ in the Wilderness, Kramsoy, 1872)

이 주제로 그림을 그린 화가들은 많이 없다. 예수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고 난 뒤에 40일 동안 광야에 있었다고 한다. 앞으로 여생에 무슨 일을 할 것인가 궁리하는 예수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5. 돌아오신 예수 (Ivanov, 1806-1858, The Appearance of Christ to the People )

광야에서 40일을 보낸 뒤에 요단강에 진치고 있던 요한에게로 돌아오는 광경이다. 이 요한 의 제자들 중에서 예수는 첫 두 제자 안드레와 베드로를 뽑는다. 마태나 마가 복음에는 자세한 이야기가 없으나 요한 복음에는 세례자 요한이 예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이야기를 드고 안드레가 제일 먼저 예수를 따르기로 결정하고, 승낙을 받자 마자 동생 베드로를 데리고 온다.  

6. 예수에게 인사하는 마리아

아마도 예수가 성전에서 돌아오는 모습을 포착한 것 같다. 복음서 어디에서 예수가 지팡이를 짚었다는 이야기는 없지만, 이 정도의 차이는 예술가의 자유일 것이다. 마리아의 집은 부잣집이었을 터인데 이 집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7. 마지막 만찬 이후 (Nikolai Ghe, 게의 작품)

목요일 마가의 집에서 마지막 만찬을 사도들과 마친 다음에 겟세마네 동산으로 걸어 가는 장면을 포착했다. 제목에는 겟세마네 동산의 광경이라고 써 있으나, 동산에 집 건물이 있을 리 없다. 오히려 배경의 집은 마가의 집일 수도 있다. 제목을 다른 사람이 붙였는지도 모른다. 서서 멀리 하늘을 우러르는 이가 예수인 듯. 아마도 기도하는 듯한 표정이다. 멀리 저녁 하늘을 올려다 보는 모습이 바야흐로 벅찬 사건들이 닥칠 것을 생각하는 것 같다. 나머지 사도들은 유다를 제외하고 가까스로 11명이 되는 듯하다.

8. 산헤드린 법정 (게의 작품 )

이 그림은 산헤드린(Sanhedrin, 유대인의 종교 법정)에서 회의를 마치고 나가기 전에 회원들이 예수를 조롱하는 장면이다. 말이 일치하는 증인 두 사람을 찾지 못하고 재판이 오리 무중에 빠지자, 대제사장 가야바가 예수에게 그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한 뒤에 예수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혼란에 빠져 해산되었다고 한다. 왼쪽 벽에 몰려 있는 사람은 아마도 예수이고, 턱을 내밀고 그에게 따지는 사람은 그가 죽어야 한다고 말하는 가야바인 것 같다. 여기는 종교 법정이므로 여인들은 없었을 듯.  

9. 골고다 (Nikolai Ghe, 게의 작품)

이 작품은 제목 외에 전혀 설명이 없지만, 앞에 붉은 색의 예복을 입은 이가 예수인 듯하다. 뒤에 있는 두 사람은 강도일 것이다. 신약에 따르면, 붉은 예복은 헤롯이 입혀준 옷이고, 나중에 로마 군인들이 이 귀한 옷을 나누지 않고 한 사람이 가지도록 제비를 뽑았다고 한다. 한 도둑은 겁에 질려 있고 다른 도둑은 따분한 표정이다.  

10. 무엇이 진리이냐? (Quod Est Veritas? Что есть истина?, 게의 작품)

예수가 자신은 진리를 증거하려고 이 세상에 왔다고 하자 빌라도가 “무엇이 진리이냐?” (요한복음 18) 비꼬며 대꾸하는 장면이다. 예수는 붉은 옷을 걸치고 있다. 빌라도는 아마도 아람어나 히브리어를 말했을 리는 없다. 아마도 그리스어나 라틴어로 물었을 터이고 예수도 같은 언어로 대답했을 것이다.  

11. 시체 내리기

무명 화가의 그림. 두 개의 나무 판자에 그림, (아마도)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빌라도의 허락을 얻고서 예수의 시체를 내리는 그림이다.

12. 마리아와 부활하신 예수 (Ivanov, 이바노프의 작품)

부활한 뒤에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처음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13. 부활의 전령(게의 작품)

예수가 부활했다는 소식을 처음으로 가지고 가는 여인은 막달라 마리아일 것이다. 동이 터오고 있고, 길에는 아마도 로마의 군병들이 희희덕거리며 지나간다.  

14. 마리아의 죽음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잠이 든 (돌아가신) 모습도 화가들이 즐겨 그리는 그림 제목이다. 이 그림은 13세기에 두 개의 나무 판자 위에 그렸으나, 뒤편에 막대기를 가로 질러 붙였는데도, 여전히 결 따라 양쪽 판자가 갈라졌다. 예수가 공생애를 시작할 때 약 설흔이었고, 사도들과 한 3년을 보냈으니까, 돌아가실 때 연세가 약 설흔 셋이나 넷쯤 되었을 것이다. 마리아가 첫 아들을 낳을 때 18세였다고 하면, 마리아는 돌아가실 때 50이 한참 넘은 여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항상 젊은 여인으로 나온다.  

15. 아그리파 임금 앞에 나타난 바울 (Surikov, 수리코프 작품)

이것은 서기 58년에, 바닷가에 있는 케자리아의 헤롯 궁으로 가서 바울이 헤롯 아그리파 임금 앞에 변론하는 그림이다. 여기서 바울은 황제에게 상소하여 결국은 로마로 가게 된다.

케자리아의 헤롯 궁의 남은 유적. 여기서 바울은 황제에게 상소했다.  

16. 표트르 대제(Пётр Великий, 표트르 벨리키)가 아들을 심문하다

이것도 게의 작품. 알렉세이 페트로비치는 (Алексей Петрович) 표트르 대제(Пётр Алексе?евич, Peter the Great)의 아들. St. Petersburg의 Peterhof 궁전에서 아들을 심문하는 장면이다. 이 아들은 표트르 대제에게 반역한 죄목으로 채찍질을 25대 맞고 얼마 후에 또 다시 15대를 더 맞았다. 그는 상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나서 이틀 뒤에 죽었다.  

17. 추방당한 멘시코프

수리코프의 작품. 멘시코프는 (Алекса?ндр Дани?лович Ме?ншиков) 표트르 대제와 친구로 성장했고, 표트르가 죽고 난 뒤에 2년 동안 정권을 잡았으나, 후일에 모든 권력을 빼앗기도 시베리아에 추방당했다. 이 그림은 베리오조보의 통나무 집에서 누추하게 사는 모습을 그린 것. 손으로 나무로 된 교회를 지었다 한다.  

18. 폭군 이반과 아들 레핀

폭군 이반은 (Иван IV Васильевич, Ivan the Terrible) 1581년 어느 날, 임신한 며느리의 옷차림을 시비하여 때려서 유산시켰다. 투덜거리는 바실리 왕자를 패서 죽게 만든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아들을 부등켜 안고 울었으나, 사흘 후에 아들은 죽었다고 한다.

 

19. 1861년의 농노 해방 선언 (Grigoriy Myasoyedov, 1835-1911)

1861년 2월 17일에 러시아 황제 알렉산더 2세는 농노 해방을 선언하였다. 이 칙령으로 농노가 2천 3백만이 자유를 얻었고, 지주들한테서 땅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새로 자유를 얻은 농노들이 해방이 무엇인가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조선에서는 동학란이 시작될 무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