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신화와 에덴동산 이야기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1. 수메르인의 에덴 동산 전통

우드에 따르면, 수메르인이 살던 에리두(Eridu) 라는 동산은 지혜의 신, 엔키(Enki)가 살던 곳이요, 이 동산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안에는 신성한 키스카누 (Kiskanu) 나무가 있었는데, 이것은 청금석(lapis lazuli)처럼 빛났다고 한다. 우드는 이것이 창세기의 에덴 동산 이야기의 기원일 것이라 추측한다. (Micheal Wood, Legacy: The Search For Ancient Cultures, New York, Sterling Publishing Company, 1992)

동산 주위에 담이 있었다는 사실은 아마도 동산 주위에 아담의 자손이 아닌 사람들이 그 지역에 살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담은 야만인들로부터 격리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수메르인의 원통형 도장. 기원전 2200-2100년 (대영 박물관).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가 기록되기 훨씬 전에 만든 서판, 신 엔키와 사람이 같이 있는 모습. 뿔 달린 관을 쓴 자가 엔키(enki)이고, 뱀도 엔키를 상징한다. 구약의 바벨탑 이야기는 엔키가 여러 언어를 만들어 인류에 혼란을 가져왔다는 이야기를 베낀 듯.

창세기에는 아담과 이브가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어보았다는 말이 없다. 아담과 이브는 영원히 살 수 있었으나, 선악과를 따먹은 죄로, 에덴에서 쫓겨나서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을 수가 없게 되었고, 그래서 결국은 죽게 된다.

가인이 에덴의 동쪽에 놋의 땅에 거하였고, 가인이 떠날 때 아담 족의 표징을 구한 것으로 보아서 놋 족속은 아마도 아담의 자손이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이 외에도 여러 족속이 메소포타미아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어쨋든 아담의 족과 기타 족속이 이 지역에서 궁극에는 모두 섞였을 터이고, 이것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수메르인의 기원인 듯하다. 아마도 아담의 덕택으로 수메르인은 다른 지역보다도 월등한 문명을 일으킨 듯하다.

수메르인의 인구가 땅에서 늘어나면서 그들은 어디를 가나 도시 국가, 신시(神市)를 건설했고, 거기서 지꾸랏트(ziggurat, 일종의 신전 또는 성)을 쌓았다. 이것은 몇 층의 진흙 건물이었는데 꼭대기가 평평했다. 따라서 신단(神壇)이라는 명칭이 적당하다. 돌로 지은 건물과 달리, 진흙은 오랜 세월이 지나면 비에 씻겨내려, 예전의 형체를 제대로 유지한 지꾸라트는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천사 또는 사나운 짐승이 생명나무를 지키고 있고 오직 사제인 임금이 생명나무의 과일을 먹을 수 있다고 수메르인은 생각했다. 에리두를 떠나서 다른 도시를 세웠을 때 수메르인들은 생명나무를 상징하는 제단, 신단을 쌓았고 거기서 제사드릴 때 그들은 신을 만난다고 생각했다.

2. 단군신화와 에덴 동산 이야기

신단수와 신시(神市)의 이야기는 에덴 동산과 아담이 거기서 쫓겨난다는 이야기와 비슷한 점이 많다. 하느님의 아들은 여럿이 있었고, 그 중에 서자 환웅(아담?)은 처음에 생명나무(신단수)가 있는 에덴(신시)으로 갔다. 곰 토템 부족이 신시에 살던 부족이라고 볼 수는 없다. 웅녀가 신단수 아래에서 기도했다는 말은 신시에 있던 유일한 신단수를 한반도 근처까지 옮겼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신성한 나무 모습을 새긴 제단을 세워서 기도를 드렸다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다.

웅녀가 한반도나 그 근처에서 살았다면, 환웅이 신시를 떠났다는 말이 된다. 단군신화에는 에덴 동산 이야기와 달리 어째서 환웅이 신시를 떠났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어떤 우여곡절에 대한 설명도 없이, 환웅은 신시(에덴)를 떠나 한반도 가까이 간 것이다. 물론 평양이나 아사달에는 생명나무가 없다. 신단수를 아사달로 가지고 갔다는 이야기도 없다. 두 이야기의 비슷한 점을 다음과 같이 열거할 수 있다.

 에덴 동산 이야기

 단군 신화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

 환웅은 하느님의 서자

 아담은 여자에게서 태어나지 않았다

 환웅도 여자에게서 태어나지 않았다

 에덴 동산

 신시(神市)

 에덴 바깥에는 가인이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아담의 자손이 아닌 사람들이 이미 많이 살고 있었다.

 환웅이 내려 가기 전에 인간 세상을 내려다 보니 이미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생명 나무는 아담이 영생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

 신단수(神壇樹)가 있는 곳에 신시를 세운 것은 신단수가 환웅이 영원히 세상을 다스리는 데 필요함을 암시.

 아담은 에덴에서 쫓겨났다. 이것은 원래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환웅이 신시를 떠났다는 암시. 이것은 환웅이 산신(山神)이 될 (사람처럼 죽을) 것을 암시한다.

(동양인은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된다고 믿었다.)

 하늘의 뜻을 어겨 아담은 사람처럼 죽게 된다.

 환웅이 하느님의 아들로서 영원히 살거나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산신이 되리라는 (죽으리라는) 암시.

 아담은 오래 살다가 죽었다.

 단군도 오래 살았지만, 결국 죽었다.

 

에덴 동산 바깥에는 생명나무가 없으므로 아담은 오래 살다가 결국 죽어버린다.

신단수가 없이 환웅이 영영토록 살 수 있었을까? 어째서 환웅은 신단수가 있는 곳으로 내려 가서 신시를 세웠는가? 환웅은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가져왔으나, 신단수를 가지고 온 것이 아니다. 그런데 신단수를 버리고 신시를 떠났으니, 환웅은 불멸하지 않고, 결국은 죽은 것이다.

아담은 생명나무의 과일을 먹지 못하도록 에덴에서 쫓겨나고, 환웅도 아무 설명이 없이 신시를 떠난다. 신단수가 없으니, 환웅은 오래 살다가 죽었을 터이지만, 그에 대한 언급은 없다. 물론 이것은 하느님/환인이 뜻한대로 된 것은 아니다.

환인의 뜻은 환웅이 내려 가서 세상을 영원히 다스리는 것이다. 세상에 내려가 잠시 살다가 영원히 죽어 버리라고 환인이 환웅을 보낸 것은 아니다. 환웅도 단군도 신단수가 없는 곳으로 가서, 한반도나 그 근처에서 살았으나, 얼마 후에 죽었다는 말을 굳이 적지 않은 것 뿐이다.

웅녀가 신단수 밑에서 기도하여 단군을 얻었다는 이야기는 신시에 있던 신단수를 아사달로 옮겨 왔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수메르인처럼 나무 우상을 만들어 제단을 쌓고 그 앞에서 기도하여 단군을 낳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면, 단군 신화는 대체로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오래 배기지 못하고 생명나무를 두고 다른 곳에 이주했다는 이야기와 서로 상통한다.

창세기의 에덴 동산 이야기는 유다가 멸망한 뒤에, 유대인이 바빌론에 끌려가 포로생활을 하면서 그들에게서 들은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래서 옛 수메르인의 창조 신화 및 홍수 이야기가 구약의 창세기에 되풀이된다. 수메르인의 신들도 사람에게 화가나서 인류를 홍수로 쓸어버린다.

길가메시 서사시(Epic of Gilgamesh)의 11번째 진흙 서판 (대영 박물관). 여기에 홍수 이야기가 적혀 있는데, 이것은 창세기보다 1천년을 더 앞선다. 여러 가지 다른 판(version)이 있는데,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 2150-2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수메르인의 돌 인장 (대영 박물관). 길자메시 임금(왼쪽)과 엔키두(바른쪽)가 이쉬탈 여신이 보낸 (상상의 동물) 하늘의 황소(또는 그리핀)를 죽이는 그림. 이쉬탈이 말리려 애쓴다. 그리핀은 생명나무를 지키는 동물. (기원전 800-700년) 이 도장은 생명나무가 파괴된 것을 암시하는 듯.

3. 수메르인의 돌 도장과 단군의 천부인(天符印)

단군신화에는 환웅이 천부인 세 개를 환인에게서 받아 가지고 세상으로 내려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천부인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하여는 이론이 많다.

어떤 사람은 천부인은 청동 거울, 청동 방울, 청동검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단군이 청동기 시대에 평양에 왔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한반도에 국한하면 청동기는 기원전 1천년 이상 거슬러 올라 가지 않으니, 이 해석은 단군이 기원전 2333년보다 훨씬 이후의 사람이라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물론, 평양이 한반도 바깥에 있었다고 생각한다면 홍산문화의 청동기는 더 전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

그러나 천부인(天符印)을 글자 그대로 인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수메르인은 청금석(靑金石)으로 돌 도장을 많이 만들었다. 위에 첫째와 둘째 사진은 수메르인이 쓰던 돌 인장이고, 신권(神權)의 상징을 진흙에 새기기 위하여 돌로 만든 도장인 듯하다.

 

수메르인의 돌 인장. 수메르인이 긴 갈대로 항아리에서 맥주를 빨아서 마시는 장면을 보여준다. 우르에서 기원전 2600년, 단군이 한반도에 온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환웅이 받은 천부인은 무엇을 위한 인장이었는가?

고조선 반도에도 중국에도 당시에 아직 종이가 발명되지 않았으니, 도장의 둥그런 표면에 글을 새길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홍산 문화 유적지에서는 옥으로 된 인장이 발견되었다 (박선희 교수).

이러한 도장은 신권, 또는 임금의 권력을 명시하기 위한 것이다. 수메르인은 도장을 옆으로 굴려 무늬를 진흙에 찍었고, 요하 지방에서는 긴 도장의 밑면에 글자나 모양을 넣은 것 같다. 고조선까지 오는 동안에 도장의 옆면이 아니라 밑면을 사용하도록 발전되었는지 모른다.

중국에서는 벽돌이 전국 시대에 이르러서 생산되었다고 하니, 이러한 홍산 문화의 인장은 중국인에게서 배운 것이 아닌 듯하다. 벽돌이 아직 널리 쓰이지 않았으니, 옥 인장이 어디에 쓰였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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