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편, 하나님의 속성

글쓴이: 신성한 조언자

낮은 계급의 창조된 지적 존재들도 하나님의 아들들을 똑똑히 알아볼 수 있으며, 따라서 이들은 더 알아보기 어려운 아버지의 불가시성을 보상해 준다.

파라다스 신들이 본래부터 절대적이고 무한하기 때문에, 아버지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신의 성품 중에서 어느 한 특징이 다른 것보다 먼저 있었는지 우리도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만약에 하나가 먼저 있었다면, 신의 창조자 성품이 모든 다른 것보다 우선할 것이다.

1.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심

모든 창조의 총합보다 하나님은 측량할 수 없이 더 크다.
우주는 결코 무한한 하나님 전체를 담을 수 없다.
인간은 하나님 안에 존재할 뿐 아니라, 하나님은 또한 인간 속에서 산다.

너희가 죄를 지을 때, 너희는 깃드는 하나님의 선물을 괴롭힌다.
그가 인간의 지성 속에 갇혀 있고, 함께 생각 조절자가 악한 생각의 결과를 반드시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두루 어디에나 계시고, 공간은 장벽이 되지 않는다.
중앙 우주에서만 남이 알아 볼 수 있게 계신다.

하보나를 도는 여러 우주에서, 하나님이 계신 것을 우리 눈으로 지켜 볼 수 없다.

시공 우주의 창조자 및 통치자들의 특권을 인정하여, 하나님이 거기서 계심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성격 회로와 조절자는 시공 우주에서도 독자적으로 활동한다.

첫째 근원 중심은 무제한 절대자 안에 잠재적으로 계신다.

이 절대자는 영원한 미래 우주, 아직 빚어지지 않은 우주의 저장소이다.

첫째 근원 중심은 무한한 영의 지성 회로에 잠재하시고, 우주 절대자의 긴장 속에 잠재하신다.

인간 서열이 가진 지성은 무한한 영의 딸, 진화 우주에 있는 신성한 봉사자(성령)가 수여한다.

행성이나 별자리나 지역 우주에 하나님이 계신 것은 최상 존재의 진화하는 계심을 재는 척도가 된다.

지역 우주에 하나님의 계심을 보호하기 위하여, (루시퍼 반란처럼) 어떤 행성이나 체계가 암흑에 빠질 때, 상위의 창조 단위와 교제하는 것이 차단된다.

아버지의 계심이 변동하는 것은 하나님이 변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마음 속에서 아버지의 영향을 직접 좌우한다.

2. 하나님의 무한한 힘

신의 성품에 어긋나지 않는 한, "하나님에게 만사가 가능하다."
모든 속성 중에, 사람은 신의 전능을 가장 잘 이해한다.

물질 에너지, 지성 에너지, 영 에너지, 이 세 가지는 아버지와 가까운 곳에서는 구별할 수 없다.

전능한 창조자의 활동은 멋대로인 듯 보이는 때가 있지만, 그렇지 않음을 내(신성한 조언자)가 보장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모두 목적이 있고, 영원히 최선을 고려한다.

시간 시대에는 부분의 복지가 전체의 복지와 다른 듯 보일지 모르지만, 영원에서는 그렇게 명백한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상당히 물질을 중시하는 너희의 관점이 장애가 되기 때문에, 너희는 신의 지혜와 친절을 깨달을 수 없다.

네가 하나님의 동기를 오해하는 것은 인간의 선견이 한정되고, 이해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주의 아버지가 행하지 않는 많은 일이 진화 세계에서 일어난다.

하나님의 힘이 영적으로 나타나는 데 세 가지 조건이 있으니,

(1) 진실하고 아름답고 선한 그의 성품에 따라서,
(2) 우주 성격자들의 아버지이므로 자비를 베풀려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3) 삼위일체의 공정함을 따르는 하나님의 법칙에 따라서.

3.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

"만물이 벌거벗었고" 그의 눈에 열려 있다.
"네가 티끌인 것을 기억하시니라."

그의 성격 회로는 모든 성격자를 포함한다.

인간에 관한 지식은 내려오는 신의 아들을 통해서 간접으로, 그리고 생각 조절자를 통해서 직접 보충된다.

하나님은 결코 놀라지 않는다.

4. 하나님은 한계가 없다

한계 없는 우주에 끝없는 물력과 힘을 부여한 뒤에, 무제한 절대자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는다. 하나님은 여전히 똑같이 무한한 잠재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도 마찬가지다.

우주의 수가 늘어나고 높고 낮은 존재들에게 지성을 계속 수여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전적으로 지혜로운 지성을 가지고 계실 것이다.

시간 세계의 필사자에게는 앞날이 있으나 하나님은 영원에 거하신다.

(너희와 같은) 유한한 지성은 아버지의 무한성을 이해할 수 없지만, 무한한 아버지의 사랑을 실제로 느낄 수 있다.

하나님께 다가가는 가장 귀중한 방법은 사랑으로 접근하는 것이니, 하나님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5. 아버지의 최상 통치

하보나 이후에 생긴 창조들과 연락하는 것은 아버지가 직접 하지 않고, 그의 아들 및 하위 성격자들을 통해서 연락한다.

아버지는 아들들을 통해서 다스린다.
이 통치자들은 행성 영주에서 끝난다.

사람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경우에 아버지는 반드시 뜻대로 하지 못한다 (자유 의지 때문에)

그러나 신의 계획이 한 행성의 운영을 지배한다.

진화 인간의 생명은 불가피한 것들에 시달린다.

1. 용기는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용기를 길러주기 위하여, 어려움에 부딪치고 실망을 이기는 것을 요구하는 환경 속에서 사람을 길러야 한다.

2. 이타심은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인간에게 불공평한 상황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3. 희망은 바람직한가? 인간에게 불안하고 확실치 않은 상황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4. 믿음은 바람직한가? 머리가 계산하는 것보다 더 많이 믿을 수 있도록 어려운 곤경을 사람에게 마련해 주어야 한다.

5.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은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잘못의 가능성이 언제나 있는 세상에서 자라야 한다.

6. 이상을 찾는 것은 바람직한가? 항상 더 나은 것을 향하도록 자극하는 환경이 있어야 한다.

7. 충성은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배반 당하고 버림 받는 가능성 속에서 견디어야 한다.

8. 사심(私心) 없는 태도는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인정과 명예를 받으려고 외치는 자아의 소리를 항상 듣고서 이를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9. 기쁨은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기쁨의 맛을 누리기 위하여, 고통의 가능성이 늘 있는 세계에서 살아야 한다.

하보나에 있는 완전한 존재들은 이와 같이 비교가 되는 것들이 없어도 본래부터 완전하기 때문에, 선을 선택할 수 있다.

필사 인간이 얻는 신다운 것은 무엇이나 체험으로 얻는다. 하보나 존재들의 선천적 올바름과 달리, 필사 인간은 피땀흘려 올바름을 얻는다.

하보나의 완전한 인간들은 이상주의자이지만 그렇게 태어났다. (물질적) 유혹을 이기고 이상을 추구하는 인간의 기쁨을 도무지 모른다.

그들은 사욕(私慾)이 없지만, 사욕을 추구하는 자아를 당당하게 정복하는 기쁨을 알지 못한다.

6. 아버지의 수위성

사심없는 마음으로 우주의 아버지는 권력을 넘겨 주지만, 아버지는 수위(제일 먼저)이다.

기계론적 철학자는 우주에 보편적 최고 의지가 있다는 관념을 거부한다. 그러면서 그 최고 의지의 작용(자연 법칙)을 존중하니, 터무니 없는 철학이다.

하나님을 인간처럼 여기는 것은 잘못이다.
첫째 근원 중심을 기계로 보는 기계론자는 어리석다.

하나님이 고통을 받는다면, 어떻게 어떤 성질의 고통을 받는지 모른다.

우주의 아버지의 특성은 미가엘(예수)이 육신화하여 산 일생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고 아들은 사람에게 봉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