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우주의 아버지

글쓴이: 신성한 조언자

1934년

우주의 아버지는 모든 사물과 존재의 첫째 근원 중심이다.

먼저 하나님을 창조자로 생각하라,

다음에 만물을 통제하는 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물의 무한한 지원자로 생각하라.

온 우주는 하나님의 작품이요, 그의 다채로운 생물이 사는 곳이다. “사람이 살라고 세상을 지으셨도다.”

시간 세계 자녀들의 초월 목표는 영원한 하나님을 찾아내고, 신의 성품을 이해하고, 우주의 아버지를 헤아리는 것이다.

인간의 최고의 포부, 온 몸을 불태우는 열망은 꼭 하나 있으니, 하나님을 닮는 것이다.

영원에 거하는 우주의 아버지로부터 최고의 명령이 떨어졌다, “내가 완전한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

신처럼 완전하게 되도록 애쓰라고 하는, 이 훌륭한 명령은 투쟁하는 모든 인간의 첫째가는 의무, 가장 높은 포부가 되어야 한다.

신처럼 완전하게 되는 이 가능성은, 사람의 마지막이자 확실한 운명이다.

유란시아의 필사자는 무한한 의미에서, 도저히 완전하기를 바랄 수 없다.

그러나 무한한 하나님이 필사(必死) 인간을 위하여 예비한 신성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전적으로 가능하다.

의지가 신답고, 인격자의 동기가 완전하고, 하나님을 의식하는 모든 유한한 면에서 최종이요 완벽하다.

이것이 “내가 완전한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고 신이 내린 명령의 참 뜻이다. 우주들을 만든 하나님을 이렇게 숭고하게 찾는 것은, 모든 시공의 거주민이 겪는 최상의 모험이다.

1. 아버지의 이름

하나님은 온 우주에서 온갖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 첫째 근원 중심이 가장 빈번하다.

그 이름은 인간의 창조자 개념에 달려 있다.

우리가 그의 자녀인 것을 믿으면, 아버지라는 이름은 자연스럽다.

아버지는 형식적 예배나 수고를 강요하지 않는다.

저절로 마음에 우러나서 아버지를 알아보고 자원하여 예배해야 한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겠다는 선택 이외에 사람이 하나님께 드릴 것은 없다.

2. 하나님의 실체

하나님은 영 세계에서 근본적 실체이다.

"사람이 만든 가장 고귀한 작품"이 아니다.

 

조절자는 사람의 필사 지성 속에 살면서, 거기서 영원히 살아남는 불사(不死)의 혼이 생성되는 것을 도우라고, 파라다이스로부터 파송된 영 훈계자이다.

세 가지 현상이 조절자의 계심을 드러낸다.

1. 하나님을 아는 지적 능력―하나님을 의식하는 것.

2. 하나님을 찾으려는 영적 욕구―하나님을 추구하는 것.

3.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 행하기를 바라는 것.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은, 과학적 실험이나 이치를 따지는 순수 논리로 결코 증명할 수 없다.

오로지 인간이 체험하는 영역에서 하나님을 깨달을 수 있다.

3. 하나님은 보편적 영

너희가 “하나님의 자손”이기는 하지만, 아버지의 형태나 모습이 너희와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피와 살이 있지 않더라도, 영 존재들은 실재한다.

하나님을 헤아리기 위해서, 육체의 눈으로 하나님을 볼 필요는 없다.

지성(知性)은 물질에 붙어 있다. 이렇게 물질과 연결된 지성은 사람이 죽은 뒤에 살아남을 수 없다.

인간이 살아남는 것은 인간 의지를 조정하고 지능이 차츰차츰 영의 인도를 받는 데 달려 있다.

물질에 굴종하는 필사자의 지성은 갈수록 더 물질적이 되며, 그 결과로 궁극에 인격이 소멸될 운명을 가진다.

영에게 굴복한 지성은 갈수록 더 영적으로 변화되고, 살아남아서 안내하는 신다운 영과 궁극에 하나가 된다.

나(신성한 조언자)는 영원자로부터 나왔고, 우주의 아버지가 계신 앞에 거듭하여 돌아갔기 때문에, 그가 사실로 계신 것을 알고 있다.

4. 하나님의 신비

하나님의 신비 중에 가장 신비로운 것은 필사자의 지성 속에 그가 깃드는 현상이다.

필사자의 육체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너는 여기 아래에서 인생이 끝나고, 땅에서 임시 육체를 입은 연습 여행이 끝나고, 필사자의 천막을 구성하는 티끌이 “온 곳으로 되돌아갈 때,” 깃드는 "영은 그 영을 주신 하나님한테로 돌아갈지니라."

믿음의 힘으로, 유한자가 무한자를 인식하는 기적(奇蹟), 시공의 물질 세계에서 진화하는 필사자가 영원한 하나님을 헤아리는 철학적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

5. 우주의 아버지의 성격

하나님은 무한한 성격자이다.

필사자는 하나님의 몸을 볼 수 없더라도, 그가 신격자인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기뻐해야 한다.

우주의 아버지는 (지역 우주의) 창조 아들들 안에 신성하게 계신다.

원시 종교는 인격을 가진 신을 가정했고, 이 신들은 사람의 모습을 따라 만들어졌다.

(섭리 시대에 주는) 계시(啓示)는 하나님이 성격자라는 개념이 타당함을 확인한다.

이 개념은 오직 첫째 근원이 있다고 과학적으로 가정해야 가능하며, 우주의 하나라는 철학 관념 속에 임시로 암시되었을 뿐이다.

오로지 성격자로서 접근함으로 누구나 하나님이 하나임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신을 깊이 생각할 때, 성격자 개념은 형체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벗어나야 한다.

물질인 몸은, 사람이나 하나님의 성격에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 형태가 있다는 잘못은 인간 철학의 두 극단에서 나타난다.

유물론에서는 사람이 죽을 때 몸을 잃어버리니까 사람이 성격자로서 존재하기를 그친다. 범신론에서 하나님은 육체가 없으니까, 따라서 성격자가 아니다.

하나님이 영원ㆍ무한하고 보편ㆍ절대적이니까, 하나님의 지식은 자라거나 지혜가 늘지 않는다.

하나님은 유한한 인간이 추측하거나 이해하는 것처럼 경험을 얻지 않는다.

6. 우주의 성격자

하나님은 과학에 대하여 원인,
철학에 대하여 개념,
종교에 대하여 성격자요, 사랑의 아버지이다.

하나님은 과학자에게 시초의 물력이요,
철학자에게 통일성의 가정이요,
신자에게는 살아 있는 영적 체험이다.

인간은 유한한 자리에서 무한한 것을 바라보면서 성격자를 보고 이해하며, 하나님은 무한한 자리에서 유한을 바라본다.

사람은 가장 낮은 종류의 성격을 소유하고, 하나님은 가장 높은 성격, 아니 최상ㆍ궁극ㆍ절대 성격을 소유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신다운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선된 관념, 특히 창조 아들 미가엘이 유란시아에서 인간답고 신다운 성격을 보여 줄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했다.

하나님과 가지는 체험, 하나님 안에 있는 체험은 지적 논리를 초월하고, 지적 논리로 헤아릴 수 없다.

예수의 일생은 하나님의 성격을 이상적으로 계시한 표본이다. 그 이전이나 이후에 하나님의 성품을 더 낫게 보여준 사람이 없다.

7. 성격 개념의 영적 가치

신의 성품은 진선미로 생각할 수 있으나, 진실이나 아름다움의 개념은 성격과 상관 없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신이 선하다는 관념은 그가 성격자라는 것을 가정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다.

과학이나 철학이나 신학도 하나님이 성격을 가진 것을 입증할 수 없다.

(불교에서는 신에게 기도를 드리지 않는데, 이는 신이 신자와 교통할 수 있는 성격/인격을 가지지 않았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파라다이스의 삼위일체는 신이 하나가 되어 있다는 진리를 파괴하지 않는다. 세 분은 하나와 같다.

삼위가 일체가 되어 있다는 진리는 내 계급(신성한 조언자)에게도 완전히 명백하지는 않다. 너희가 승천하는 동안 이러한 개념은 차차 명료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