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신석기 시대 토기와 옥기(玉器), 2부

 

중국의 신석기는 지역마다 차이가 있을 터이지만, 대략 기원전 7천년에서 2천년이라고 볼 수 있다. 청동기는 대체로 상(商)과 주(周) 시대에 해당된다.

신석기 시대의 토기와 도기를 보면, 큰 정치적 또는 사회적 조직이 없으나 원시적 종교 예식이 있었던 듯하다.

신석기 시대의 토기는 대체로 일상 생활 용품이다. 마시는 데 쓰이는 잔은 돌을 날카로운 칼이나 끌로 파내야 하니 만들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보통, 노동을 절약하기 위하여, 토기로 잔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진흙은 젖었을 때 모양을 잡기 쉬웠고, 모닥불 옆에 우연히 있던 진흙이 단단해지는 것을 보고서 진흙 그릇을 구워볼 생각을 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경험을 얻어 높은 온도에 구울수록 그릇이 단단해지는 것을 원시인이 깨닫는 데는 오랜 세월이 걸린 듯하다.

높은 기술 문명이 아직 발달되지 않아서 신석기 시대의 사람들을 원시인으로 취급해도 될 터이지만, 그들의 예술 감각, 심미안은 현대인에 못지 않다. 대부분의 남아 있는 토기들이 둥그렇고 대칭되는 것들이고, 이따금 비대칭 그릇들도 보인다.

맨손으로 진흙을 동그랗게 빚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처음에는 진흙을 국수처럼 만들어 한 줄 한 줄 둥그렇게 쌓아올려서 토기를 만들었다.

기원전 4500년 경부터 중동에서 돌림판을 써서 암포라를 만들었다고 한다. 중국인이 황하 지역에 정착한 것은 기원전 5000년에서 4000년이었고, 양샤오 문화 지역에서 암포라 비슷한 그릇들을 기원전 4800년에 만들었으니, 중국인은 이때부터 돌림판을 쓴 것으로 보인다. 돌림판을 쓰고, 지우지 않으면 수평으로 둥그런 줄 표시가 난다. 물론 수평으로 둥그런 줄이 없어도, 어느 모로 보아도 완전히 대칭이 되면 돌림판을 썼다고 볼 수 있다.

단조로움을 피하려고 초기에는 겉 면에 단순한 무늬를 넣었고, 시간이 지나자 무늬가 복잡해지고 유약도 바르게 되었다. 굽는 온도에 따라서 진흙 그릇은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토기(土器)는 대체로 유약을 입히지 않아서 물이 묻으면 번진다. 보통 700-1000도의 낮은 온도에서 구워진 선사시대 그릇들을 토기라 할 수 있다.

도기(陶器)는 대개 유약을 입혀서 1000-1100도에 굽는다.

석기(炻器) 또는 사기(沙器) 그릇은 때리면 쇠붙이 소리가 나고 물이 벽에 스며들지 않는다. 1200도의 고온으로 굽는다.

자기(磁器, 瓷器)는 태토의 장석(長石)이 녹아서 유리질이 되고 1300도 이상의 고온에서 구워낸다. 자기 그릇은 도기나 석기와 달리, 대체로 얇게 만들 수 있다. 찰진 고령토를 사용하여 중국에서 처음 만들었다.


기메 박물관의 중국산 암포라

고령토를 개발하기 전에는 도기로 제사용 그릇을 만들기도 했으나 두꺼워서 무딘 느낌이 난다. 옥을 갈아서 제기나 장식용 옥기를 만들었으나, 옥이 단단하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노동이 필요하다. 귀족들이나 얇은 옥패나 기타 장식품을 몸에 걸쳤다. 량주 문화 지역 외에는 옥을 가느라고 다이아몬드를 쓴 곳이 없다.

여기에 있는 토기와 도기는 홍콩역사박물관, 정저우 박물관, 십삼행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들이다.

  1. 배리강(裵李崗) 문화, 기원전 7000-5000년경
 

허난성 정저우(鄭州)시, 배리강과 자후(賈湖)에서 발견된 유적이다. 이 사람들은 조를 경작하고, 잉어를 잡고, 돼지와 닭을 비롯하여 가축을 길렀다고 한다. 또한 사슴과 멧돼지를 사냥하였다. 자후 유적이 제일 오래 되고 다른 70개 지역보다 몇 백년이 앞섰다고 한다. 배리강 문화에 속하는 다른 지역과 달리, 자후 지역에서는 이미 쌀을 재배하였다.

이것은 가장 오래된 식기라고 한다. 돌림판을 쓰지 않고 손으로 주물러 만들었다. 자후(賈湖) 유적지에서 발견되었다.


자후 유적지에서 발견된 그림 문자. 아직 한자 체계가 발명되지 않았지만, 그림 글자를 쓰기 시작한 듯. 눈 목(目)자와 날 일(日)자가 보이지만 그런 뜻으로 이 글자들이 쓰였는지는 모른다. 한자 체계는 상나라의 우딩(武丁) 때에 (기원전 1200년) 갑골 문자에 처음으로 쓰였다.

  2. 마자방(馬家浜) 문화, 기원전 5000-3000년
 

마자방 문화는 양자강 입구, 지금의 상해 지역에 (기원전 5000 – 3300년경) 있던 신석기 시대의 문화이다. 이 사람들은 쌀을 재배했다고 한다. 장사 지방 북쪽의 다원커우(大文口) 문화와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맨손으로 만든 것 같아도 돌림판을 쓴 자국(가는 줄)이 보인다. 둥그런 모체를 만든 뒤에, 발과 손 잡이와 아구리는 따로 붙인다.

  3. 양샤오(仰韶) 문화, 기원전 5000-3000년

 

양샤오 문화는 마자방 문화와 동시대에 존재했다. 황하 지역에 있는 양샤오 촌에서 이 유적이 발굴되었다. 쌀 재배의 흔적이 있으나 주로 조를 먹었던 듯하다. 가축을 길렀으나, 주로 사냥을 하거나 물고기를 잡아서 먹었다. 누에를 치기 시작했다.

후일의 룽산 문화는 돌림판을 썼으나, 이 사람들은 돌림판을 아직 쓰지 않고서 토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남자들은 머리를 묶어서 상투를 틀었다. 모계 사회에서 부계 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문화였다는 설이 있다.


양샤오, 다원커우, 추자링 문화 분포도

양샤오 도기이기는 하지만 이 항아리에는 분명히 돌림판을 쓴 자국이 보인다.

암포라 모양의 앙소 문화 도기

기원전 3500년, 허난 지방의 미아디거우(廟底溝) 유적지에서 출토.

 

  4. 홍산(紅山) 문화 (기원전 4700-2900년)
 

내몽고 자치구 츠펑(赤峰) 지역에서 옥기들이 발견되어 이 지역에서 발견된 유적에 홍산 문화라는 이름이 붙었다. 몽고족이 오래 살던 지역에서 발달된 문화이므로, 근래에 중국인이 몽고를 지배한다고 해서 이것을 중국의 문화로 보기는 어렵다. 고려인이 한반도로 가는 길에 오랫동안 머무른 곳인지도 모른다.


중앙의 작은 구멍들은 실로 꿰기 위한 것. 이런 옥패들을 주렁주렁 달고 신분을 표시한 듯하다.


이 옥벽에도 구멍이 뚤려 있다.

구름 무늬 옥패(玉佩)


대영 박물관

  5. 다원커우(大汶口) 문화, 기원전 4100-2600년
 

다원커우 문화는 주로 산동 지방에, 양샤오 문화와 거의 같은 때에 발달된 문화이다.

이 사람들은 개, 닭, 돼지, 소를 길렀은, 돼지를 선호했던 듯. 물고기는 물론, 조개나 굴 껍질 더미가 있던 것으로 보아, 해산물을 많이 먹은 것 같다. 상류층은 주로 쌀을 먹었고 서민은 주로 조를 먹었다. 말을 길들인 흔적은 없다. 자후 지방 사람들과 관련이 있는 듯.

 


돌도끼

  6. 량주(良渚) 문화. 기원전 3400-2250년경
치장 옥기

량주 문화는 양자강 삼각지, 항저우의 량주에서 있었던 신석기 문화이다. 학자들은 홍수로 인하여 갑자기 이 문화가 사라졌다고 본다. 량주 사람들은 금강석을 사용하여 도끼를 날카롭게 만들었다고 한다. 다른 지역에서 금강석을 이용한 것보다 천년을 앞섰다.

량주에서 살던 사람들은 치장하는 데 쓰이는 얇은 옥패를 만들어 썼고, 이것들은 후일에 줄로 엮어서, 주나라에서 전국 시대까지 신분을 표시하느라고 사용되었다.

 

이 옥황에 새겨진 두 개의 큰 눈과 부리는 여러 옥종에 나타난다.

일종의 神人 모습이 새겨진 옥소(玉梳, 머리빗). 이런 빗을 머리에 꽂았는가 보다.

옥삼차형 (세 갈래로 갈라진) 도구. 이것도 머리에 꼽았는지 모른다.

옥벽을 무슨 용도에 썼는지 알 수 없다. 둥근 옥벽은 하늘을 상징하고 네모난 종은 땅을 상징했다고 한다. 주나라 시대에 전투에 진 쪽의 옥벽을 승자에게 바쳤다고 한다. 그러니 옥벽은 통치권을 의미했을 듯하다. 두텁고 무거우니 몸에 달고 다니는 물건은 아니고 집에 모셔 놓은 물건이었다.


설명문에는 용의 모습을 새겼다고 하지만, 용의 모습이 아니라, 두 개의 큰 새 눈과 날카로운 부리가 두 줄의 다이아몬드 형으로 그려져 있다.

옥팔찌

옥패식. 여기에도 두 개의 큰 눈이 있고, 가운데 있는 네모는 새 부리를 어설프게 표현한 듯.

옥조가 무엇에 쓰였는지 알 수 없다. 머리에는 두 개의 큰 눈이 있고 부리는 뾰죽하다. 새를 숭상하는 부족들의 부적이었는지 모른다.

이것도 옥소배. 머리를 높이 보이려는 뜻으로 이것을 꽂았는가 보다.


옥패, 대영 박물관. 神人이 눈이 큰 새를 타고 있는 듯.

둥근 옥벽이지만 톱니처럼 이가 둘 있다.

줄에 꿰어 몸에 장식으로 단 듯.

제사 도구

 


귀메 박물관

 

 

새(부엉이?) 눈과 부리가 잘 보인다. 부엉이가 토템이었을지도 모른다.

은 제사에 쓰이는 그릇. 가운데 둥그런 구멍이 뚤려 있고 겉은 4각이며, 좋은 작품의 경우에는 모서리에 새의 부리와 큰 새 눈의 모양을 볼 수도 있으나, 후기에는 새 부리와 둥근 눈 모양이 점점 단순화된다. 용도는 확실치 않으나 제사를 드릴 때 향을 담았는지 모른다.

산프란시스코 박물관. 이 종에는 모서리에 분명히 새 눈과 부리가 보인다.

 

모서리에 새 부리 흔적이 조금 남아 있다.

 

생활 용품

베틀에 붙이는 장식. 실이 들어가도록 가는 틈이 있다.

 


혀 모양의 도끼, 타이완의 십삼행 박물관

  7. 마자야오(馬家窰) 문화, 기원전 3100-2700년
마자야오형

마자야오 문화는 간쑤성 린타오 현의 마자야오 촌에서 발견된 신석기 문화이다. 출토물의 연대에 따라 스링샤(石嶺下, 기원전 3800 – 3100년), 마자야오(기원전 3100-2700년), 반산(半山, 기원전 2600-2300년), 마창(馬廠, 기원전 2200-2000년)형으로 나뉜다. 다양한 기하학적 무늬를 칠한 채도가 특징이다.

소용돌이 무늬가 있는 채색 도기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다.

반산형

그물과 동그라미 무늬가 있는 채색된 도기.

기하학 무늬가 있는 채색 도기

기하학 무늬가 있는 채색 도기

마창형

만자문(卍字紋)이 있는 채색된 도기

  8. 취자링(屈家岭) 문화, 기원전 3100-2700년
 

마자야오 문화와 같은 시대에, 양자강 중부에서 생긴 문화.

이곳에서 출토되는 도기는 얇았다고 한다. 찰진 진흙을 썻던 듯하다.

(실을 잣는 데 쓰이는) 방추차. 이 지역에 방직 공업이 상당히 발달되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9. 룽산(龍山) 문화 (기원전 2800-2000년경)
 

"귀"는 물이나 술을 끌이는 데 쓰이는 그릇. 돌림판을 쓰지 않고 만든 그릇. 東夷족이 고령토를 써서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 선조들의 솜씨.

대칭되는 것이 지루하여 변화를 구한 그릇. 룽산(龍山) 문화.


룽산 문화 분포도

  10. 툰문(屯問) 지역의 신석기 후기 문화, 기원전 2500-1500년경

 

夏나라는 기원전 2070년 경에서 1600년 경까지 상나라 이전에 존재했다고 하는 나라이지만, 당대에 기록된 문헌이 없다고 한다. 홍콩의 툰문 지역에 유적지가 발견되었으나, 학계에서 이를 독립된 것으로 분류할 것인지 알 수 없다.

새끼줄도 사용하고 칼로 도려내어 무늬를 만들었다.

파도 같은 무늬를 팠다.

무늬를 도려내고 다른 종류의 진흙으로 채운 것이 아니다. 붉은 칠이 된 곳이 여기저기 베껴진 것으로 보아, 우유 빛 그릇에 붉은 도료를 칠한 듯하다.

그릇이 완전히 마르기 전에, 새끼줄을 눌러서 무늬를 만든 듯.

나뭇잎 줄기 무늬를 넣었다


작은 네모 무늬를 넣었다.

나뭇잎의 줄기 무늬를 넣었다.

  11. 하(夏)나라, 기원전 2070-1600년
 

  12. 마차오(马桥) 문화, 기원전 1300 – 1000년경

 

마차오 문화는 량주 문화를 이어받은 듯.

  13. 상나라, 기원전 1600 – 1046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