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님과 예수님의 말씀

 

공자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비교해 봅니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는 공자가 쓴 책, 大學에서 나오는 구절인데, 군자가 지켜야 할 태도를 말합니다. 먼저 자신의 몸을 바르게 가지고 가정을 돌보고 난 후에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태평하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수신제가는 유란시아서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완전한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비교가 됩니다.

치국 평천하는 사도들에게 "하나님이 아버지이고 사람들이 형제인 것을 온 세상에 선포하라"고 부탁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비할 수 있습니다.

  1. 修身齊家
알파고와 이세돌

먼저 수신제가와 바둑을 비교해 봅시다. 알파고(AlphaGo)는 Google DeepMind가 인공 지능으로 개발한 바둑 프로그람인데, 대부분의 프로 바둑 기사를 이겼습니다.

이세돌 알파고 꺾고 첫승. (조선일보)

로보트처럼 손발이 없으니까, 실제로는 상대가 둔 수를 구글 대표가 컴퓨터에 입력하고, 알파고가 선택하는 대로, 구글 대표가 돌을 놓아서 바둑이 진행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바둑판은 가로 19줄, 세로 19줄로 구성되어 있지요. 19 × 19=361. 바둑 기사는 이 361 자리 중에서 이미 돌이 놓여 있지 않은 곳 어디에나 두어도 좋습니다.

알파고는 완전한가?

알파고는 상대가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대여섯 군데를 예상하고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이 중에서 가장 이길 확률이 높은 수를 둡니다. 물론 바둑 기사들도 그렇게 하지만 알파고는 계산이 아주 빠르지요.

알파고는 2016년 3월에는 한국 최고의 바둑 기사, 이세돌 9단과 바둑을 다섯 판 두었는데, 이세돌 기사는 겨우 한 판 이겼지요.

알파고가 흑을 잡고서 한 번 졌으니까, 무엇이 필승의 첫 수인지 알파고가 아직 몰랐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1년 후에는?

이세돌에게 한 판 진 후에, 지난 1년 동안 알파고는 스스로 공부를 계속하여 지금은 거의 완전한 수준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래서 금년 5월에 중국인 기사 커제 9단과 세 판 바둑을 두었는데, 전승하였지요.

마지막 바둑에서 不計敗를 선언하면서, 세계의 1인자인 커제는 눈물을 흘렸는데, “이길 수 있는 희망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불계패는 너무나 형편 없이 져서 집계산을 하지 않는 다는 뜻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비공식 대국에서도 알파고는 Master라는 이름으로 세계 프로 기사들과 60판 바둑을 두었는데 전승하였습니다. 흑이 小目으로, 三三으로, 또는 花點으로 시작하든, 알파고는 언제나 이겼습니다. 이것은 알파고가 항상 최선의 수를 알고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은 알파고가 모든 바둑 기사를 이길 수 있지만 아직까지 완전의 경지에 이르지는 않았지요.

알파고는 더 이상 프로 기사들을 골탕 먹이지 않고 바둑계에서 은퇴했습니다.

세라핌과 알파고

세라핌과 알파고를 비교해 봅니다. 유란시아서에 따르면, 세라핌은 수학의 천재이고, 자동으로 계산을 하며, 계산에 거의 시간을 쓰지 않아요.

그러나 알파고는 계산에 시간을 쓰니까, 세라핌을 따라 갈 수 없습니다. 이세돌과 대국했을 때, 제한 시간은 각자 2시간이었고, 커제와 둘 때는 제한 시간이 3시간이었습니다.

세 가지 수는?

그런데 바둑에는 세 가지 수가 있습니다. 正手가 있고 惡手가 있고, 꼼수 또는 속임수가 있습니다.

유란시아서는 "언제나 최선의 한 수가 있다"고 하고, 이를 정수 또는 "바른 길"이라 합니다. 악수는 생각이 모자라거나 경험 부족에서 생기는 실수이고, 반드시 의도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정수를 두는 자는 이기고 악수를 계속 두는 자는 결국 집니다.

그러나 꼼수에는 나쁜 의도가 담겨 있지요.

꼼수는 경험이 적은 자를 골탕먹이기 위하여 두는 수이지만 상대가 정수로 받으면 낭패를 보게 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신기한 것은 알파고는 절대로 꼼수를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실수하는 요행을 바라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졌다고 생각되면 깨끗이 포기하고 돌을 던집니다.

인생과 바둑을 비교하면?

인생은 바둑보다 훨씬 더 복잡하지요. 냉철한 계산보다도 자유 의지와 여러 가지 감정이 작용합니다.

목표를 보면, 바둑에서는 집을 많이 지은 쪽이 이기지만, 돈을 많이 번다고 인생에서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인생에서 추구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富를 추구하고, 어떤 사람은 권력이나 명성을 추구합니다.

하늘 가는 사람에게는 생각 조절자가 있고 인생의 길목마다 무엇이 바른 길인가 가르쳐 줍니다. 알파고는 아직 불완전하지만, 이 조절자는 완벽한 안내자입니다.

알파고의 인간 대표는 항상 알파고가 원하는 대로 바둑판에 돌을 올려 놓기만 하면 이깁니다. 그러나 사람은 조절자가 가르쳐주는 것을 항상 따르지는 않지요.

실천의 종교

왜 그럴까요?

많은 사람이 조절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바른 일을 못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변명도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유란시아서, 특히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이 담긴 제4부는 인생의 길목에서 예수님이 어떻게 행동했을까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예수의 종교는 실천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은 따르는 사람들에게 실천하기를 요구합니다. 많이 안다고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읽고도 실천하지 않을 생각이라면, 구태여 유란시아서에 매달릴 필요가 있을까요?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먹고 마시면서 필사의 인생을 즐기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요?

목적과 방법

그러나 예수님이 가르치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목적과 방법, 어느 쪽이 옳아야 할까요?

목적이 성스럽다고 해도 방법이 나쁘면 그 길은 악의 길이 됩니다. 이것이 아담과 이브의 실수였지요. (75:4.6)

목적과 방법이 모두 옳아야 됩니다. 神의 길은 正道요, 이를 벗어나는 것은 좋은 의도가 있다 하더라도 악의 길이 됩니다.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악의 길이 선으로 변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자비로운 하나님은 북한의 주민들처럼, 굶어죽게 되어 훔치는 사람을 도둑으로 정죄하지 않을 듯합니다.

 

2. 치국 평천하

예수님의 부탁

공자의 치국 평천하 개념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땅끝까지 전하여, 천하를 빛과 생명의 세계로 이끄는 과정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가르침을 믿게 되면 자연히 이를 전도하게 되고 전도하지 않는 자는 믿는다고 착각하는 것이라고(160:5.3) 철학자 로단이 말했습니다.  

그러면 유란시아 독자들은 어떻게 전도해야 할까요?

기독교가 성공한 이유

유란시아서는 기독교가 성공한 다섯 요인 중에서, 바울이 교회들을 세운 것을 첫째로 지적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인들을 가르쳤고, 이들은 로마 세계에 퍼져 나가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바울이 직접ㆍ간접으로 세운 교회들은 각자 독립되고 자치하는 조직이었고, 이들 사이에 상하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3백년 안에 로마 제국의 지성인들이 받아들인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5세기부터 로마의 주교(innocent I)가 로마 교회가 다른 교회들 위에 있다고 주장하였지요. 그 이후로 카톨릭은 교황의 지시를 받는 수직 조직이 되었고, 제도화되고 세속화되어 천년 동안이나 겨울 잠을 잤습니다.

수평 조직

 유란시아서는 기독교처럼 수직 조직인 교회를 세우는 것을 권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치하는 수평 조직으로서 공부하는 그룹들이 모여서 예배를 보거나 성찬식을 행하는 것은 바람직할 것입니다. 예수님도 회당에서 예배를 지도하였습니다.

행성 영주 대리는 1951년에 (유란시아서를 공부하는) 스타디 그룹을 많이 만들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이러한 조직은 연구하는 집단이요, 정치 집단이 아닙니다.

명령을 실행하는 수직 조직이 아니라, 횡으로 연결된 수평 조직, 유란시아서를 연구하는 친목 조직을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