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2 편,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보내다

 

4월에 예수와 사도들은 예루살렘에서 일했고, 저녁마다 도시 바깥으로 나가서 베다니에서 밤을 지냈다.

예수 자신은 예루살렘에 플라비우스의 집에서 주마다 하루나 이틀 밤을 보냈다. 안나스를 찾아보았는데, 그는 한때 대사제였고, 세배대의 부인 살로메의 친척이었다.

안나스가 냉담한 것을 알아차렸을 때 예수는 즉시 떠나면서 말했다: “두려움은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것 중에 으뜸이요 자만은 사람의 큰 약점이라.”

1. 성전에서 가르치다

예수나 사도들 중에 하나가 성전에서 날마다 가르쳤다.

유월절 군중이 너무 많아서 성전에서 가르치는 곳에 들어갈 수 없을 때, 사도들은 신성한 구역 바깥에서 여러 집단을 운영했다. 말씀의 요점은:

1.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2. 하나님이 아버지임을 믿음으로 너희는 하늘나라에 들어가도 좋으며,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3. 하늘나라 안에서는 사랑이 생활 규칙이다―하나님께 더할 나위 없이 헌신하고 한편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4.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는 것, 곧 사람의 사생활에서 영의 열매 맺는 것이 하늘나라 율법이다.

이 외에도 사도와 기타 신자들은 유월절 군중 사이에서 개인을 상대로 많은 일을 하였다.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로마 제국의 가장 먼 곳까지, 동부에도, 이 소식을 가지고 갔다.


예루살렘 지도

2. 하나님의 진노

유월절 축제에 크레테에서 온, 부유한 유대인 상인 야곱이 있었다.

이튿날 저녁에 플라비우스의 집에서 예수와 비밀 회담을 마련했다. 야곱이 예수에게 말했다:

“하지만 랍비여, 모세와 옛 선지자들은 야웨가 질투하는 하나님, 크게 노여워하고 불 같이 성내는 하나님이라고 우리에게 이르나이다. 선지자들은 야웨가 행악자를 미워하고 그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 복수한다고 말씀하나이다.

당신과 제자들은 하나님이 친절하고 동정심 있는 아버지요, 모든 사람을 무척 사랑하사, 당신은 이 새 하늘나라가 아주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고, 이 새 하늘나라로 저희를 반가이 맞이하리라 우리에게 가르치나이다.”

“야곱아, 너는 옛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잘도 말하였도다…파라다이스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변함이 없느니라. 그러나 그의 성품에 대한 개념은 모세의 시절부터 아모스의 시절을 거쳐 선지자 이사야의 세대에 이르기까지도 확대되고 성장하였느니라.

이제, 새로이 영화로운 아버지를 드러내고 그의 사랑과 자비를 모든 세계의 만민에게 보이려고 내가 육체를 입고 왔노라.

야곱아, 착하고 참된 아버지는 집안 전체를―한 가족으로서―사랑할 뿐 아니라 또한 개별 식구 하나하나를 참으로 사랑하고 애정으로 보살피시느니라.”

예수는 말씀을 이었다: “네 아이들이 아주 어리고 미숙할 때, 아이들을 꾸짖어야 할 때 아이들은 아버지가 성이 나서 격노하고 있다고 돌이켜볼지 모르느니라. 아이들이 미숙하여, 멀리 내다보고 바로잡는 아버지의 사랑을 헤아리기까지, 벌받는 것을 넘어서 앞을 볼 수 없느니라.

그러나 바로 이 아이들이 성장한 남녀가 될 때 아버지에 대하여 옛날에 가졌던 그릇된 개념에 집착하는 것이 어리석지 않겠느냐? 어른으로서 저희는 옛날에 이 모든 징계를 받은 데서 아버지의 사랑을 이제 헤아려야 하느니라.

야곱은 대답했다: “랍비여 내가 믿나이다. 나를 아버지의 나라로 인도해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3. 하나님에 대한 개념

다음에, 주는 더 나아가서, 유대 민족이 발전하는 과정에 걸쳐서 신 개념이 어떻게 발전했는가 사도들에게 가르쳤다.

1. 야웨―시나이 씨족의 신. 이것은 원시 개념의 신이었고 모세가 더 높이,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의 수준으로 올려놓았다.

2. 최고자. 멜기세덱이 하늘에 계신 이 아버지 개념을 아브라함에게 선포했다. 커지고 확대된 이 신 관념을 후일에 믿은 사람들이 이것을 살렘으로부터 멀리 가지고 갔다.

3. 엘 샤다이. 이 초기 시절에 많은 히브리인이 엘 샤다이를 숭배했다. 에집트인이 가졌던 하늘의 하나님 개념이며, 히브리인은 나일강이 흐르는 땅에서 포로 생활을 하는 동안에 이것을 배웠다.

멜기세덱의 시절이 오래 지난 뒤에, 이 세 가지 하나님 개념은 모두 한데 합쳐서 창조자인 신,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의 교리를 이루었다.

4. 엘로힘. 아담의 시절부터 파라다이스 삼위일체에 대한 가르침이 지속되었다. “태초에 하나님들이* 하늘과 땅을 지으시니라” 주장함으로 성서가 어떻게 시작되는가 생각나지 않느냐? 이는 그 기록이 만들어졌을 때, 한 분 속에 계신 세 하나님이라는 삼위일체 개념이 우리 선조의 종교에 들어갔음을 가리킨다.

5. 최고의 야웨. 이사야의 시절이 되자 하나님에 대한 이 관념들은, 전능하고 동시에 온통 자비로운 우주의 창조자 개념으로 확대되었다.

6.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임을 안다. 우리의 가르침이 마련하는 종교에서,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사도들은 이전 세대 유대인의 머리 속에서 하나님의 개념이 성장해 온 것을 하나하나 이야기하는 이 말씀을 듣고서 받은 것보다 더한 충격을 받은 적이 없었다.

야웨의 개념이 확대되어 계시되기 전 시절에, 에집트에서 나왔을 때 이스라엘의 자손은 십계명이 있었고 이것은 바로 시나이 산 앞에서 야영하던 시절 바로 전까지 저희의 율법으로 쓰였느니라. 이 십계명은 다음과 같았는지라:

“1. 주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니, 너희는 아무런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2. 녹여 부은 신들을 만들지 말라.
“3. 효소 없는 빵의 축제를 지키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라.
“4. 사람이나 가축의 모든 수컷 가운데 처음 난 것은 내 것이라, 주가 말씀하시니라.
“5. 너희는 엿새 동안 일해도 좋으나 이렛날에 쉴지니라.
“6. 첫 열매의 축제와 연말에 거두는 축제 지키기를 거르지 말라.
“7. 어떤 희생물의 피도 효소 넣은 빵과 함께 드리지 말라.
“8. 유월절 축제에 바친 희생물을 아침까지 남겨놓지 말라.
“9. 땅에서 얻은 첫 열매 중 처음 것을 주 너희 하나님의 집으로 가져올지니라.
“10. 새끼를 어미의 젖 속에 삶지 말라.

“그리고 나서 시나이 산에서 천둥과 번개가 치는 가운데, 모세는 저희에게 새 십계명을 주었고, 너희는 모두 이것이, 야웨라는 확대되는 신 개념에 어울리게 더 가치 있는 말씀이라 인정하리라.

너희는 이 계명(誡命)들이 성서에 두 번 기록된 것을 한 번도 눈여겨보지 아니하였느냐?

처음 경우에는 에집트로부터 구원받은 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까닭이라고 지정되었고, 한편 후일의 기록에 우리 선조의 진보하는 종교 관념은 창조라는 사실이 안식일을 지키는 이유라 인정하는 것이라고 이를 시정하기를 요구하였느니라.

“다음에―이사야의 시절에 더 크게 영적 깨우침을 받아―이 부정적 십계명이 크고 긍정적인 사랑의 율법으로, 하나님을 더할 나위 없이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으로 바뀌었음을 너희가 다시 한 번 기억하리라.

*엘로힘(Elohim)은 복수. 성서에 단수인 하나님으로 보통 번역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복수로 되어 있다.

4. 플라비우스와 그리스 문화

플라비우스는 그리스계 유대인이요, 할례도 세례도 받지 않고서 문전에서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이었다. 그의 집은 세계를 여행할 때 수집한 보물로 꾸민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예수를 집으로 초대할 때 그가 이른바 이 우상들을 보고 언짢아할까 두려웠다. 그러나 각 작품에 대하여 예수가 식견 있는 질문을 던져서 플라비우스는 기뻤다.

예수는 말했다: “내 아버지가 지으신 것과 사람의 예술적인 손이 빚은 것들의 아름다움을 네가 이해한다고 해서, 너는 어찌하여 꾸지람을 기대하느냐?

이제부터, 총명한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그렇게 물질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파라다이스에 계신 아버지, 만물과 모든 존재의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을 혼동하지 않고서 소중한 예술품을 즐겨도 좋으니라.”

이튿날 요단강 건너에 베다니로 가서 요한의 제자들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렇게 한 것은 예수의 사도들이 믿는 사람들에게 아직 세례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플라비우스는 예수를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었고 친구 60명을 불렀다.

5. 확신에 대한 강연

“하지만 랍비여, 하나님이 당신을 보냈는지, 그리고 당신과 당신의 제자들이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외치는데 거기에 우리가 참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확실히 알 수 있나이까?”

너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받아들이면, 정말로 그리고 진실로 너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가 아들이어든, 영원하고 신다운 아들에 관계되는 어떤 일에도 너희의 위치와 신분은 안전하니라.

너희가 내 말을 믿으면, 믿음으로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요, 이렇게 아버지를 믿음으로 하늘 시민의 지위를 확실하게 만들었느니라.

사도들도 대담해져서 큰 힘을 가지고 하늘나라 복음을 전파하였다.

이렇게 엄청난 군중과 접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6. 니고데모와 이야기하다

니고데모는 이날 밤에 은밀하게 예수와 만나기로 주선하였다.

“진실로 진실로 너 니고데모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하늘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그러자 니고데모가 대답했다:

“그러나 나이 든 사람이 어찌 다시 태어날 수 있나이까? 사람은 태어나려고 또 다시 어머니 자궁 속으로 들어갈 수 없나이다.”

예수는 말했다: "육체에게서 태어난 것은 육체요 영에게서 태어난 것은 영이라. 그러나 네가 하늘로부터 나야 한다고 내가 말한 것에 놀라지 말아야 하느니라."

니고데모는 말했다: “그러나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준비로서 나를 다시 만들 이 영을 어떻게 내가 비로소 붙잡을 수 있나이까?” 예수가 대답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영이 이미 네 안에 깃드시느니라. 네가 하늘로부터 온 이 영의 인도함을 받고자 하면, 오래지 않아 너는 비로소 영의 눈으로 보리라.

나중에 대부분의 제자들이 주가 마지막으로 고통받고 죽는 장면에서 무서워 달아났을 때에도,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신앙을 용감하게 인정하고 예수의 시체를 요청했다.

7. 가족에 대한 교훈

토마스가 말했다: "하늘나라가 더 분명히 온 뒤에 이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리이까?

예수는 하늘나라가 여기 땅에서 시작하여, 연달아 생명의 여러 정거장을 거쳐 파라다이스까지 진보하는, 점진적 체험이라고 아주 뚜렷이 설명했다.

하늘나라를 가족 관계로 보는 것이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가족에 관하여 얼마큼 길게 강론(講論)하고, 두 가지 근본 생활 법칙을 다시 표현하였다: 아버지, 곧 집안의 우두머리를 사랑하는 첫째 계명, 그리고 아이들끼리 서로 사랑하라, 형제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둘째 계명이다.

그리고 나서 그러한 성질의 형제 사랑은 항상, 사심없이 사랑으로 사회에 봉사함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하였다.

참된 가족은 다음 일곱 가지 사실에 바탕을 둔다.

1. 존재에 관한 사실: 아이들은 부모의 특성을 물려받는다.
2. 안전과 쾌락: 아버지는 아이들이 필요한 것을 마련해주기를 기뻐한다.
3. 교육과 훈련: 아이들을 잘 교육시켜 후일에 큰 책임을 맡게 한다.
4. 규율과 자제: 필요한 징계 또는 금지 조치를 마련한다.
5. 교제와 충성: 아버지는 자식의 복지에 흥미를 가진다.
6. 사랑과 자비: 아버지는 아낌없이 용서한다.
7. 미래를 위한 준비: 개인은 죽어도 가족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유산을 남겨준다.

토마스가 물었다: “그러나 주여, 우리가 보아하니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우리를 언제나 친절하고 자비롭게 다루시지는 아니하나이다.

여러 번 우리는 땅에서 가혹하게 고생하고, 우리의 기도가 언제나 응답받지는 못하나이다. 어느 부분에서 우리가 당신의 가르침의 뜻을 깨닫지 못하나이까?”

머리 속에서 하늘나라의 영적 실체들과 당대의 물질ㆍ사회ㆍ경제ㆍ정치 문제를 분리할 수 없느냐? 내가 영의 언어(言語)로 말할 때, 예를 들 목적으로 평범하고 글자 그대로의 관계를 감히 쓴다고 해서, 어찌하여 내가 의미한 것을 육체의 언어로 풀이하기를 고집하느냐?

아이들아 부탁하건대, 너희는 영의 나라의 가르침을 노예 제도, 빈곤, 집, 토지와 같은 더러운 일에, 그리고 인간의 공평과 응보라는 물질적 문제에 적용하기를 그만두어라.

8. 남쪽 유대 땅에서

4월 말이 되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반대가 커져서 주와 사도들은 예루살렘을 떠나기로 작정했다.

베들레헴과 헤브론에서 일하려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예수와 아브너는 이 기간의 일부를 엥게디에서 지내면서 나지르인의 거류지를 찾아보았다.

이 고행자들의 대다수는 예수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는데, 금식이나 금욕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6월초가 되자 예수를 반대하는 소동이 잠잠해져서 예수와 사도들은 예루살렘이나 그 근처, 겟세마네에 텐트를 치고 예루살렘을 드나들었다.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어도 대중을 가르치지 않는 것을 지켜보고, 유대인 권력자들은 예수가 사사로운 방법으로 가르치는 것을 버려두기로 결정했다.

이때 어떤 시몬이라는 산헤드린 회원이 예수의 가르침을 드러내놓고 지지하였고, 이미 유대인 권력자들 앞에서 그렇게 선언하였다.

당장에 예수를 체포하려는 새로운 소란이 벌어졌고, 너무나 시끄러워서 주는 사마리아와 데카폴리스 지방의 여러 도시로 물러가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