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9 편, 열두 사도

글쓴이: 중도자 위원회

이 열두 사람은 교육으로 비슷하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갈릴리 어부들의 다수가 이방인의 핏줄을 상당히 지녔다.

알패오 쌍둥이를 제외하고, 모두가 회당 학교를 졸업했고, 히브리 성서와 당시의 기본 지식을 철저히 배웠다. 일곱 사람이 가버나움 회당 학교 졸업생이었고, 온 갈릴리에서 더 좋은 학교가 없었다.

이 사도들이 “무지하고 배우지 못했다”고 너희의 기록들이 언급할 때, 그들이 평범한 사람이라, 랍비의 학문을 배우지 않고 랍비의 성서 해석 방법으로 훈련받지 않았다는 생각을 전하려 한 것이었다.

1. 안드레, 첫 사도

안드레는 가버나움에서 태어났다. 맏아들이었고, 아우 베드로와 누이가 셋 있었다.

벳세다에서 물고기 말리는 사업에서 세베대와 동업자였다.

예수보다 한 살이 많았다.

안드레는 조직과 행정에 유능하였다.

안드레와 베드로는 사이가 좋았다.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서 2천 명이나 복음을 믿게 되었을 때, 안드레는 아우에게 말했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지만 그럴 수 있는 동생이 있어서 기쁘구나.” 이에 베드로는 대답했다: “하지만 형이 나를 주께 데리고 가고 끈질기게 나를 그에게 붙들어두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런 일을 하려고 여기에 있지 않았겠지.”

안드레는 사람을 판단하는 데 뛰어났다. 사람들에게서 숨은 재능을 발견하는 재주가 있었다.

예수가 하늘로 올라간 뒤에, 안드레는 주의 말씀과 행적을 몸소 기록하였고, 후일에 많이 편집된 복사판은 1백 년이 지나서 알렉산드리에서 불에 타버렸다.

안드레는 예수의 진실성에 감명을 받았다.

수천 명에게 전도한 뒤에, 아카이아 지방의 파트라스에서 십자가에 못박혔다.

andrew

2. 시몬 베드로

시몬은 서른 살이었고, 결혼하여 아이가 셋 있었다. 벳세다에 살았다.

베드로는 별명이었다.

생각 없이 말을 계속 뱉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곤경에 빠졌다. 이런 종류의 무분별은 모든 친구와 동료에게 끊임없는 문제를 안겨주었고 이것은 주로부터 여러 번 가볍게 꾸지람을 받은 원인이었다.

베드로가 생각 없는 말로 더 곤란에 빠지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과감히 대중에게 제안을 내놓기 전에, 많은 계획과 설계에 대하여 아주 일찍부터 형 안드레와 상의하였기 때문이다.

유창한 연설가였다. 예수가 잘못한 사람을 여러 번 용서하는 것에 감명을 받았다.

베드로는 박해나 직접 공격을 견딜 수 있었지만, 비웃음 앞에서 오그라들었다.

바울이 이방인에게 전도하는 것을 예수의 사도 중에서 처음으로 변호하였다.

예수가 신의 아들인 것을 처음으로 고백하였다.

예수를 경솔히 부인한 것을 용서받았다는 것을 확신하고 나서, 그는 수천 명에게 구원의 빛이 되었다.

그의 말투는 베드로 전서에 나타나지만, 바울의 제자가 이를 후일에 편집하였다.

베드로의 아내는 그의 모든 선교 여행에 따라다녔고, 남편이 목숨을 바친 날, 로마의 경기장에서 짐승들에게 던져졌다.

시몬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에 못박혔다.

3. 야고보 세베대

예수는 야고보와 요한에게 우뢰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다. 둘은 사이가 좋았다.

야고보는 서른이었고, 결혼하여 아이가 넷 있었다.

모순 덩어리였지만 훌륭한 연설가였다.

야고보는 열두 사도 중에서 처음으로 순교자가 되었다.

야고보를 고발하고 밀고한 사람조차 너무 감동을 받아서, 예수의 제자들과 합세하였다.

4. 요한 세베대

요한은 24살이었고, 사도들 중에 가장 나이가 어렸다.

요한은 예수의 가족을 상대하는 일을 맡았고, 마리아가 살아 있는 한, 이 책임을 계속 맡았다.

요한 복음에 그가 “예수가 사랑한 제자”였다는 것은 과장이다.

예수는 안드레에게 말했다: “나와 함께 있고 내 옆에 남아 있으며, 나를 위로하고 날마다 나의 필요를 보살피기 위하여, 동료들 가운데 두셋을 배치하기를 이제 내가 바라노라.”

그래서 베드로ㆍ야고보ㆍ요한에게 예수와 함께 붙어 다니라고 즉시 지시했다.

요한은 예수의 사랑에 감명을 받았고, 이 “우뢰의 아들”은 “사랑의 사도”가 되었다.

요한은 지나치게 참을성이 없었다. 이런 점에서 그와 야고보는 무척 비슷했다―두 사람 다 무례한 사마리아인들 머리 위에 쏟아지도록 하늘에서 불을 불러내고 싶어했다.

요한은 대담하였고, 예수가 붙잡힌 날 밤에 즉시 그를 따라갔고, 감히 바로 죽음의 문턱까지 주와 함께 간 유일한 사도였다.

야고보가 순교한 뒤에 요한은 형의 부인과 결혼했다.

팟모섬으로 추방되었다.

거기서 계시록을 썼는데, 이것은 후일에 대단히 축소되고 왜곡되었다.

에베소에서 서기 103년에 자연사했다.

무덤으로 달려가는 요한과 베드로

5. 호기심 많은 빌립

빌립은 다섯째로 뽑힌 사도였다. 사도들과 합세했을 때, 27살이었다.

언제나 눈으로 보기를 바랐다.

사도 조직에서 빌립은 식사 담당이었다. 수학 머리가 있고 체계 있게 일을 처리했다.

4년 동안 몇 번만 먹을 것을 마련하지 못했다.

빌립은 예수의 너그러움을 찬미하였다.

어리석게 보이는 질문을 하려고 예수를 멈추게 하곤 했지만, 답답한 질문을 하는 것을 꾸짖으면, 마음을 상하여 다시는 마음 놓고 묻지 않을 것을 예수는 잘 알았다.

공간에는 그가 만든 세계들에 더디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셀 수도 없이 많은 것을 알았다.

개인을 상대로 설득력 있는 일꾼이었다. "오라"하고 말하는 재주를 가졌다.

“오라”―”나를 따라 오라, 내가 길을 보여주리라” 하면서 모든 상황이 일어나는 대로 부딪쳤다.

빌립이 사마리아인을 위하여 수고한 것은 대단한 성공이었다.

그의 아내는 담대한 여자였고, 빌립의 십자가 밑에서서 그를 죽이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소식을 선포하라고 그를 북돋았다. 성난 유대인들이 돌로 쳐죽일 때에야 조용해졌다. 맏딸 레아는 히에라폴리스에서 이름난 선지자가 되었다. 히에라폴리스에서 묻혔다.

6. 정직한 나다니엘

나다니엘은 주가 스스로 고른 여섯째 사도였다.

사도들과 합세했을 때 25살이었고, 부모와 함께 가나에서 살았다.

열두 사도 중에서 나다니엘과 가룟 유다가 가장 교육을 잘 받았다.

그는 “속임수가 없었다.” 이것은 그의 큰 미덕이었고 그는 정직하고도 성실했다.

그의 약점은 자부심이었다. 그의 집안, 그가 살던 도시, 그의 명성과 민족을 아주 자랑스러워하였고, 너무 지나치지 않으면 이 모두가 칭찬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다니엘의 개인적 편견은 극단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었다. 자신의 개인 의견에 따라서 사람들을 미리 판단하는 성향이 있었다. 예수를 만나기도 전에, “나사렛에서 어떤 좋은 것이 나올 수 있느냐?”하고 서슴지 않고 물었다. 그러나 완고하지는 않았다.

열두 사도 중에서 최고의 이야기꾼이었다.

예수는 심각한 것과 쓸데없는 것에 대하여 나다니엘이 길게 연설하는 것을 듣기를 좋아했다.

유다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분별 없이 유다는 예수에게 가서 그에 대하여 불평했다.

나다니엘의 의무는 열두 사도의 가족을 돌보는 일이었다. 그래서 때때로 사도 회의에서 자리를 비웠다.

예수의 관대함을 존경했다. 메소포타미아와 인도에 가서 전도하다가 인도에서 죽었다.

7. 마태 레위

안드레가 마태를 뽑았다. 마태는 징세원 가족에 속했지만, 그가 살던 가버나움에서 세금 걷는 사람이었다. 결혼하고 네 아이가 있었다. 얼마큼의 재산이라도 있는 유일한 사도였다.

사업가요 사회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안드레는 마태를 재무 담당자로 세웠다. 교육받는 동안에 금고를 채우는 일로 자주 자리를 비워야 했다.

마태는 예수의 말씀에 대하여 광범위하게 노트를 적었다. 이 노트는 나중에 예수의 말씀과 행적을 적은 이사돌의 이야기에 기초로 쓰였고, 이것은 마태 복음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마태는 주의 가르침을 직접 듣는 사람들이 자유로 내는 헌금을 받았으나, 드러내놓고 군중에게 돈을 요청하지 않았다. 자기 재산의 거의 전부를 사도들의 일에 바쳤고, 생색을 낼 유혹을 받았지만, 그럭저럭 견디었다. 하늘나라 복음을 전하려고 떠났을 때, 실질적으로 무일푼이 되었다.

마태


마태와 세바스티안

8. 토마스 디디머스

토마스는 여덟째 사도였고, 빌립이 그를 선택하였다.

"의심하는 토마스"로 알려졌지만, 사도들은 늘 의심하는 사람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사도들과 합세했을 때 29살이었다. 결혼하여 네 아이가 있었다.

교육을 거의 받지 않았지만, 날카로운 머리를 가졌다.

아내조차 그가 사도들과 합세한 것을 반가워했다.

베드로도 처음에는 토마스가 언제나 의심한다고 형에게 불평했지만, 사도들은 점점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토마스의 장점은 움츠러들지 않는 용기와 분석하는 머리였다.

토마스는 여행 일정을 관리하였다.

예수가 안정된 인품을 가진 것에 토마스는 주를 존경했다.

토마스는 안전 제일 정책을 주장했지만, 집단의 결정을 망서리지 않고 따랐다.

주가 위험을 택하기로 결정하려 했을 때 “친구들아, 움직여라. 같이 가서 함께 죽자꾸나!”하는 용감한 말로 사도들을 일깨웠다.

속임수가 나타나는 순간에 토마스는 그들 모두를 버렸을 것이다.

오순절 뒤에, 키프러스, 크레테, 북 아프리카 해안, 시실리로 가서 전도하였고, 말타에서 처형되었다.

9-10. 야고보와 유다 알패오

알패오의 두 아들은 아홉째와 열째 사도이다. 야고보와 요한 세베대가 선택하였다.

동료 사도들의 철학 토론이나 신학 논쟁을 거의 알아듣지 못했고, 두 사람의 특성은 거의 동일했다.

안드레는 이 쌍둥이를 군중 정리에 배치했다. 설교 시간에 주요 안내자였다.

사실은 열두 사도 중에서 보통 일을 하는 심부름꾼이었다.

이들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사도들 틈에 낀 것을 보고 많은 소심한 신자들이 하늘나라로 들어왔다. 타대오와 레베오라고도 불렀다. 사도들 중에 가장 "작은 자"들이었고, 이를 알고 기뻐했다.

야고보는 주의 단순한 성품 때문에 예수를 사랑했다. 유다는 예수가 겸손한 데 마음이 끌렸다.

머리는 높은 수준이 아니었으나,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하늘나라의 동료였다.

어떤 부자가 재산을 팔고 가난한 자를 돕지 않으면 전도사로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거절한 그날, 이 두 사람은 얼마나 자랑스러워했는가!

주가 십자가에 못박힌 뒤에, 그들은 고기잡이 그물로 돌아갔고, 일이 끝났다. 더욱 까다로운 싸움에서 버틸 능력이 없었다.

11. 열심당원 시몬

베드로가 열한째 사도 시몬을 택했다.

불 같은 선동자였다. 그는 사도들의 오락과 휴식을 책임지었다.

결심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남자나 여자를 만났을 때, 새 사람이 하늘나라 신자가 되는 것을 보는 데는 보통 15분 정도 걸렸다.

시몬은 예수의 침착성을 찬미했다.

시몬은 토론을 좋아했고, 유대인과 율법을 따지거나 그리스인과 지적 논쟁을 벌이게 되면, 그 과제가 시몬에게 배당되었다.

예수는 사회ㆍ경제ㆍ정치 질서의 개선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시몬에게 자주 이야기했다. 그러나 예수는 늘 이렇게 덧붙이곤 했다:

“그것은 하늘나라의 사업이 아니라. 우리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데 몸을 바쳐야 하느니라. 우리의 할 일은 하늘에 있는 영적 나라의 대사가 되는 것이요…"

시몬은 알렉산드리아로 갔고, 나일강 상류에서 일한 뒤에 아프리카의 심장부로 가서 일하고, 거기서 묻혔다.

12. 가룟 유다

나다니엘이 열두째 사도를 골랐다.

유다의 부모는 사두개인이었고, 아들이 세례자 요한의 제자가 되었을 때 그와 인연을 끊었다.

사도들과 합류했을 때, 서른이고 미혼이었다.

사도들 중에 가장 교육을 많이 받았고, 유일하게 유대 지방 사람이었다.

그는 예수가 자신의 권력을 주장하기를 두려워한다고 생각했다.

유다가 주와 동료들의 돈을 부정하게 사용하지는 않았다.

돈이 예수를 저버린 동기는 아니었다.

그를 잘못 대접했다고 생각된 사람들에게 앙갚음하는 버릇이 있었다.

유다는 예수에게 믿음의 모험이었지만, 그래도 그에게 기회를 주었다.

베다니의 마리아가 비싼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부었을 때 항의했다가 묵살되자, 원한을 가지게 되었다.

은화 서른 잎에 예수를 판 유다는 결국 목숨을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