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4 편, 예수의 어린 시절 후기

지은이: 중도자 위원회

1935년

알렉산드리아에서 공부할 기회는 더 좋았을지 모르지만, 갈릴리에서는 예수가 최소의 교육을 받고서 자신의 생활 문제를 해결하면서 세상의 여러 종족의 사람들을 만나는 장점이 있었다.

나사렛에서 살면서 예수는 이방인을 이해할 준비가 되었다.


나사렛

1. 예수가 아홉 살 되던 해

예수는 아직도 총애받는 학생이었고, 달마다 한 주 동안 자유로웠다.

예수는 도공의 진흙으로 물건을 빚는 것뿐 아니라, 풍경화 그리기를 좋아했다.

예수가 목탄으로 교실 바닥에 선생을 그리고 있는 것을 다른 생도에게 들켰다.

이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가 학교에 불려갔다.

예수는 말할 기회를 얻고서 자기의 관점을 변호했고, 아버지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선언했다. 장로 위원회는 말없이 떠났다.

그날 이후로, 자기가 한 일이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어도, 어떤 것의 모습도 빚거나 그리지 않았다.

6월 후반에, 예수는 아버지를 따라서 타볼산 꼭대기에 올랐다.

이 해 겨울이 몇십 년 만에 가장 추웠다.

나사렛의 기후는 혹독하지 않았다. 산에서부터 요단강과 사해(死海)에 이르기까지, 팔래스타인의 기후는 기온 차이가 크다. 따라서 유대인은 세계의 어떤 지방에서 살도록 준비가 되어 있다.

팔레스타인은 두 계절, 여름과 겨울, 건조한 철과 비오는 철밖에 없었다. 4월말에 온 땅이 큰 꽃밭이었다.

이 해 5월에, 예수는 삼촌의 농장에서 곡식 거두는 일을 도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대장간에서 몇 달 지냈다.

소년일 때에도 예수는 세포리스를 자주 찾아보았다. 여기는 갈릴리의 수도였다.

나사렛의 소년들 중에서, 새로운 놀이와 신체적 오락을 소개하였다.

오늘날의 세포리스

2. 열 살 되던 해 (서기 4년)

7월 5일, 안식일에 아버지와 함께 시골길을 걷는 동안, 자기의 사명을 의식한다는 느낌을 처음으로 표현했다.

요셉과 마리아는 아무 정보도 자진해서 주지 않았다.

8월에 예수는 상급 학교에 들어갔다.

그의 특성은 권리를 찾으려고 싸우기 싫어 하는 성질이었다.

이웃의 석공의 아들 야곱이 예수의 보호자로 행동했다.

이 해에, 예수는 나이 먹은 사람들과 사귀는 성향을 나타냈다.
문화ㆍ교육ㆍ사회ㆍ경제ㆍ정치ㆍ종교적인 것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를 좋아 했다.

이 해에 늦게, 예수는 갈릴리 바다에서 삼촌과 함께, 두 달 동안 고기잡이 경험을 가졌다. 그는 어른이 되기 전에, 솜씨 좋은 어부가 되었다.

요셉은 일찍부터 예수에게 생계를 잇는 여러 방법을 가르쳤다. 요셉은 공업ㆍ상업보다 농업의 장점을 설명했다.

갈릴리는 예루살렘과 유대 지방보다 생활비가 1/4 쯤 들었다.

갈릴리 호수에 있는 고기잡이 산업을 살펴보려고 아버지와 처음 여행 갔을 때, 예수는 어부가 되려고 마음먹었다.


갈릴리 호수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는 목수가 되었고, 나중에는 종교 선생이 되었다.

3. 열한 살 되던 해 (서기 5년)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에게 편애를 보인 경우에, 예수는 재빨리 물리쳤다.

카라반에게 소모품을 파는 상정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여행자들과 이야기를 나뭄으로, 세계의 동향에 관하여 정보를 쌓았다.

서기 5년, 6월 24일, 유다가 태어났다.

마리아가 몹시 아파서, 예수는 여러 가지 일로 바빴다.

하잔은 예수가 히브리 성서를 통달하도록 도와주었다.

예루살렘에 가서 공부를 계속하라는 제안에 예수는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5월 중순경에, 아버지가 스키토폴리스까지 출장갈 때, 따라갔다.

그리스 풍의 도시, 스키토폴리스의 노천극장을 보고 감탄하고, 원형 경기장에서 "이방인"의 전시를 보고 찬미한 것에, 요셉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스 풍 도시


노천 극장

예수가 집으로 돌아가서 원형 경기장을 짓기 위해 일하자고 말하여, 아버지는 성이 났다.


이방인의 경기

유대인 풍습이 허락하는 한, 예수는 열두 사도에게 건전한 오락 관념을 소개하려고 애썼다.

이 해가 저물 때, 예수는 제대로 성장한 명랑한 소년이었다.

어떻게 가족에 대한 책임을 수행하고, 동시에 세상에 사명을 수행할 것인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의 사명이 유대 민족의 지위 향상이 아닌 것을 깨달았다.

4. 열두 살 되던 해 (서기 6년)

학교 공부에 계속 진전이 있었고, 집에 있는 목수 작업장에서 정규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번 돈을 관리하라고 허락받았고, 이것을 비밀로 하는 지혜를 배웠다.

그의 인간 지성은 그가 두 성품을 가진 것을 깨닫지 못했다.

대중 봉사를 할 때까지 동생들과 좋은 사이를 유지했다. 유다는 예외였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가 육신화한 지역 우주 창조자인 것을 모르고 죽었다.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의 사명의 성질에 대하여 다른 의견을 가진 것을 의식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관점으로 기울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차츰 마음을 상하게 되었다.

문설주에 박힌 양피지에 경의를 표하는 것은 우상 숭배의 성질이 있다고 지적한 뒤에, 요셉은 문설주에 박힌 양피지를 없애버렸다.

예수는 가정 기도와 같은 종교 습관을 고치느라고 애썼다.

그의 큰 갈등은 두 계명 사이에 생겼다: "진리와 올바름에 대한 확신이 주는 명령에 충실하라"는 계명과 "네 부모를 존경할지니, 저희가 너에게 생명을 주고 길렀음이라"는 계명이었다.

5. 열세 살 되던 해

이 해에 예수는 목소리가 바뀌기 시작했다.

정신과 육체의 모습이 어른이 되는 증거가 보였다.

서기 7년 1월 9일, 아기 남동생 아모스가 태어났다.

2월 중순에, 사람을 깨우치고 하나님을 드러내는 사명을 확신하게 되었다.

서기 7년, 3월 20일, 나사렛 회당에 부속된 지역 학교에서 과정을 졸업했다.

첫아들이 "계명의 아들"로 선포되는 날이었다.

장로들도 소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이름난 히브리 학원에서 공부하도록 예수를 예루살렘에 보낼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예수는 별로 이에 흥미를 가지지 않았다.

6.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행

회당 학교를 졸업했으니까, 예수는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에 가서, 유월절 축하에 참여할 자격이 있었다.

103명의 무리가, 4월 4일, 월요일에 떠났다.

사마리아인과 상관하기 싫어서, 요단강 유역의 길로 갔다.

아켈라우스는 폐위되었고, 헤롯은 죽은 지 12년이 지났다.

길보아 산 둘레를 지나면서, 이 산 비탈에서 목슴을 끊은 사울 왕과 다윗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키토폴리스(오늘날의 베트 쉬안)의 맞은 편에서 3시간 여행하여, 샘물가 (Valley of Springs)에서 텐트를 쳤다.

둘째 날에 사르타바 산밑 가까이서 텐트를 쳤다.

셋째 날에 예리고에서 묵었다.

넷째 날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도로에는 순례자들이 줄을 이루었다. 올리브산을 처음 구경했다.

베다니라고 부르는 마을에서, 요셉의 가족은 시몬이라는 사람 집 가까이 머물렀는데, 그 집에는 세 아이―마리아ㆍ마르다ㆍ나사로―가 있었다. 그들은 마실 것을 들자고 안으로 이 가족을 초청했다.

목요일 오후에, 계속하여 예루살렘의 성전을 지나치고 숙박 장소에 이르렀다.

금요일 (유월절 준비하는 날), 요셉은 아들을 데리고 어느 학교를 방문하였고, 2년 후에, 열 다섯 살이 되지마자, 교육을 시작하도록 주선이 되어 있었으나, 예수는 거의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임마누엘의 임명을 받은 사자가 구원자별로부터 와서 말했다:

"때가 왔나이다. 당신의 아버지의 일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