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2 편, 종교적 믿음의 기초

글쓴이: 네바돈의 한 멜기세덱

믿지 않는 유물론자에게 사람은 겨우 진화에서 우연히 생긴 것이다. 아무리 대단히 에너지를 뽐내서 전시해도, 무덤을 지나서 사람을 데려갈 수 없다. 최선의 사람들이 기울이는 노력,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재능도 죽고 나서 사라지도록 운명이 정해졌고, 죽음은 영원히 잊혀지고 혼이 소멸되는 길고도 외로운 밤이다.

그러나 그런 것이 사람의 종말은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믿음으로 손을 뻗으면, 이 캄캄한 죽음이 사라져 버린다.

인간의 가치 기준이 물질인 것으로부터 영적인 것으로, 시간 세계에서 영원으로 옮겨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믿음이 태어난다.

1. 믿음의 확신

어떤 사람이라도 신의 뜻을 행하기를 선택하면, 진리의 길을 알게 된다.

과학의 논리는 시간 세계에서 지켜볼 수 있는 사실에 바탕을 두며, 종교에서 믿음은 영원 세계에 근거를 둔다.

반란으로 고립되었기 때문에, 유란시아에서 진리의 계시는 일시적 우주론과 혼동되어 왔다. 과학을 알수록 너희는 확신이 줄어들지만, 종교는 믿을수록 확신이 늘어난다.

과학에서 확실한 것은 지능에서 출발하지만, 종교에서 확실한 것은 인격의 기초에서 솟아나온다.

어떤 물질적 증명도 하나님이 계신 것을 입증하려고 내놓을 수 없다.

사람에게 깃드는 생각 조절자는 혼 속에서 완전을 찾으려는 갈망을 어김없이 불러일으킨다.

2. 종교와 실체

종교는 정의를 내릴 필요가 없다. 우리는 다 종교의 사회적ㆍ지적ㆍ도덕적ㆍ영적 열매를 알아본다.

종교적 체험에서 인간이 얻은 지혜는 조절자에서 파생되니까, 어딘가 역설(逆說)이다. 참되고 더러워지지 않은 종교에서 나오는 말씀과 행위는 깨우친 필사자에게 강력한 권위를 가지게 된다.

믿는 사람은 마치 불멸을 손아귀에 이미 쥐고 있는 것처럼 이 현세의 생활에 반응한다. 그러한 필사자의 생활에는, 세상의 지혜만 흡수한 동료들의 생활과 영원히 다른 꾸밈없는 표현이 있다.

시간은 지식을 얻는 데 변함없이 들어가는 요소이다. 지식은 영원히 추구하는 것이요, 너희는 언제나 배우고 있지만, 결코 절대 진리를 완전히 아는 데까지 도달할 수 없다.

필사자의 의식은 지성 수준에서 살고, 지성의 눈을 통해서 우주를 파악한다.

철학적 사고(思考) 전체가 늘 물질적 사실 위에 기초를 두어야 하지만, 참된 철학적 활력을 주는 에너지는 필사자의 영적 통찰력이다.

게으른 자는 판에 박힌 교리의 피난처로 물러가서, 종교적 단련을 피하려고 애쓴다. 종교적 개념을 지적으로 구체화하는 것은 영적 죽음과 마찬가지이다. 일단 종교가 하나의 관념으로 격하되면, 이제 더 종교가 아니요, 인간 철학이 된 것이다.

용감하게 인생의 풍파에 대응하도록 사람을 준비시키는 것이 종교의 사명이다. 참된 종교는 행동으로 이끈다. 실제로 사람이 종교를 가졌을 때, 행동은 종교의 결과가 된다. 종교는 생각만 하거나 느낌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종교가 종교답지 않게 행동하는 사실이 있기는 하지만, 종교는 무엇인가 행한다.

3. 지식과 지혜와 통찰력

지능의 부족이나 교육의 빈곤은 상급의 종교적 달성을 불리하게 만든다.

종교적 억측은 해롭다. 논리적 사고를 맑게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한편, 종교가 현세의 기능인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데, 종교는 바로 이 세상과 영원히 대조가 되어야 한다.

인간의 감정은 이기적 행위로 바로 이끈다. 종교적 통찰력은 사회에 봉사하고 이타심으로 베푸는 행위로 바로 이끈다.

한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낼 때, 말할 수 없는 승리에 들뜬 상태를 체험하고, 동료들과 접촉하도록 재촉을 받는다.

과학은 사실을 의식하게 만들고, 종교는 가치를 의식하게 만든다.

지식은 사람에게 자리를 정해 주며, 사회 계층과 계급 제도를 낳는다. 종교는 봉사하는 길로 이끌고, 윤리와 이타주의를 창조한다. 계시는 사람을 해방하고 영원한 모험을 떠나게 한다.

과학은 사람을 분류하고, 종교는 네 몸과 같이 사람을 사랑한다. 계시는 사람을 돋보이게 만들고, 하나님과 협동할 능력이 있음을 드러낸다.

과학은 문화 단체를 만들려고 헛되이 애쓴다. 종교는 영의 단체를 낳는다. 철학은 지혜의 단체를 위하여 애쓴다. 계시는 영원한 단체(최후 군단)를 묘사한다.

종교는 인격의 가치를 인식하는 체험이요, 계시는 인격이 살아남는 것을 보장한다.

과학은 한 없는 우주의 부분들을 분석하려고 한다. 종교는 우주 전체를 붙잡는다. 스스로 계신이가 지은 우주는 한이 없다. 스스로 계신 이가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인 것을 우리(멜기세덱)는 증언한다.

과학은 신이 하나의 사실임을 가리키고, 철학은 한 절대자가 계신 것, 종교는 하나님이 자애로운 영적 성격자임을 제시한다. 계시(啓示)는 신 이 계신 사실, 절대자 관념, 하나님의 영적 성격이 하나이고, 우리의 아버지인 것을 제시한다.

지식의 추구는 과학이요, 지혜의 탐구는 철학이다.

과학에서 생각은 그 생각이 실현되는 표현보다 앞서며, 종교에서 체험은 생각의 표현보다 앞서 간다.

진화 종교는 흔히 사람이 하나님 개념들을 지어내게 만든다. 진화는 하나님을 사람 모습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계시는 사람을 하나님답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과학은 처음 원인들이 있는 것에 만족하고, 종교는 최상의 성격, 철학은 통일이 있는 것에 만족한다.

4. 체험에 관한 사실

너희의 지성 속에 생각 조절자가 계시니까, 하나님의 지성을 이해하는 것은 다른 자의 지성을 의식하는 것보다 더 신비롭지는 않다.

인간의 체험은 무엇인가? 이는 단지 궁금해하는 자아와 바깥은 다른 실체 사이에 생기는 상호 작용이다.

사람은 아주 일찍부터 그가 세상에서 혼자가 아님을 의식한다. 자연스럽게 자의식이 생겨난다. 믿음은 이 체험을 종교로 바꾸며, 하나님을 인식하도록 이끈다. 하나님이 성격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인격이 얻는 종교적 체험의 일부가 될 수 없다.

인간의 종교적 체험에서 잘못이 생길 요소는 유물론의 내용에 정비례한다.

기도는 인생을 부유하게 만들지만, 신을 예배하는 것은 운명이 보이게 빛을 밝힌다.

계시는 역사를 통일하며, 지리학ㆍ천문학ㆍ물리학ㆍ화학ㆍ생물학ㆍ사회학ㆍ심리학을 조화시킨다.

5. 의도한 잠재성의 우월성

간단한 생명이 인격의 지위까지 진화로 진보하는 것은 처음부터 인격 잠재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시공 우주에서 잠재성은 언제나 사실인 것보다 우월하다. 다가올 무엇은 신이 내린 명령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동물의 원시적 두려움이 하나님 존경심으로 변화될 때, 의도한 우월성은 지성 작용의 진화에서 나타난다.

너희는 진화 종교를 심리학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몸소 체험하는 종교를 그렇게 할 수는 없다. 도덕은 전능한 통제자(신)를 드러내지만, 종교는 모두를 사랑하는 아버지를 드러낸다. 이것은 종교의 영적 잠재성이 진화된 도덕의 의무보다 우선하기 때문이다.

6. 종교적 믿음의 확실성

철학으로 종교적 두려움을 없애고 과학이 꾸준히 진보한 것은 거짓 신들의 사망률을 크게 높인다. 사람이 만든 신들이 이렇게 죽은 것은 영적 시력을 잠시 흐리게 만들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가렸던 무지와 미신을 없애버린다.

살아 있는 하나님은 신성한 빛이요, 빛의 중단은 창조의 그림자를 만든다.

철학으로 도달한 신자는 개인적으로 대하는 하나님을 믿는다.

믿음은 있음직한 철학적 하나님을 확실한, 구원의 하나님으로 변화시킨다.

오로지 믿음으로, 체험을 통해서, 사람은 하나님을 알게 된다.

사리(事理)는 확률을 만들고, 믿음은 가망성을 확실힌 것으로 바꿀 수 있다. 하나님이 진실임을 깨닫는 것과 하나님의 사실을 모르는 무지 사이에는 믿음으로 다리를 놓을 수 있다.

진리는 잘못보다, 체험은 이론보다 장점이 있다.

하나님은 과학에서 하나의 가능성이요, 심리학에서는 바람직한 것이며, 철학에서 있음직 한 것, 종교에서는 체험하는 사실이다. 사람의 지적ㆍ철학적 재산이, 멀리 거슬러 올라갈수록 더욱 낮은 지능에서 생겨났다고, 마침내 전혀 생각이나 느낌이 없는 원시 생명에서 기원을 가진다고 계속 가정하는 한, 과학은 종교적 체험을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

틀림없이 높은 것(예: 혼과 영)이 틀림없이 낮은 것(예: 단세포)에서 나왔다고 현재의 반론을 되풀이할 때, 과학적 유물론은 파산되어 있다. 의도를 가진 창조자의 활동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유기체의 진화는 하나의 사실이요, 의도한 진화는 진실이다. 유물론은 인생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7. 신다운 자의 확실성

우주의 아버지는 스스로 존재하므로 설명이 필요 없다. 그러나 너희가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를 확신할 수 없다.

하나님은 우주에서 스스로 원인이 된, 하나 뿐인 사실이다.

하나님 없는 종교를 발명하려고 하는 자는 부모 없이 아이들을 가지려 하는 자와 같다. 너희는 원인 없이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오로지 스스로 계신 이만 원인이 없다.

사람은 하나님을 부인해도, 선하고 정직할 수도 있고, 인도주의적 성품을 더할 수 있다. 그러한 사람은 이처럼 신이 없는 종교를 증명하는 듯 보일지 모르지만, 그러한 체험에는 살아남는 가치, 곧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체험이 빠져 있다.

종교의 지적(知的) 표시는 확신이요, 그 사회적 열매는 사랑과 봉사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을 반대하는 자들이 영리하기 때문에, 이들의 물음에 대답하는 데는 눈부신 지성이 요구된다. 믿음의 확신이 가장 좋은 기법이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독단적 태도로 대답해야 한다: "아버지의 아들이니까, 나의 경험을 알고 있다." (너희는 이를 보지 못했는데, 어찌 나의 경험을 부정할 수 있느냐?)

오직 한 절대자가 독단을 주장할 수 있다. 독단을 주장하려는 자는 일관성을 추구하자면, 머지 않아 절대자의 품에 끌려간다.

믿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너희 믿음이 도전받는다면, 너희는 마찬가지로, 과학이 다루는 사실도 마찬가지로 증명되지 않은 것을 지적할 수 있다. 이 사실과 관념들이 과학자나 철학자의 의식 속에 있는 체험이기 때문이다 (어느 두 사람의 체험이 같은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없다.)

8. 종교의 증거

종교의 효력을 보여주는 가장 놓은 증거는 인간이 체험하는 사실에 있다. 죽은 뒤에 살아남고 싶은 갈망을 가진 자는 자신을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려 한다. 이것이 모든 종교의 핵심이다. 그러나 구원의 값으로 그 신이 무엇을 요구하는가에 대하여 여러 종교는 의견이 다르다.

세상의 뛰어난 종교 스승은 거의 교육을 받지 않았다.

여러 종교의 차이점은 사람이 현실을 다르게 이해하는 데 온통 의존한다.

사람은 최선 개념과 이상으로 하나님을 생각했다. 역사적 종교도 그 종교가 인정하는 가장 높은 가치 기준으로부터 하나님을 만들어냈다.

종교가 지적 표현 방식으로 격하될 때, 종교는 감히 문명과 진보를 비판해 왔다.

개인적 종교는 도덕의 진화를 앞서지만, 제도화된 종교는 도덕 관습 뒤에 처져 따라갔다.

종교는 결코 기적 같은 것에 호소함으로 향상될 수 없다. 계시된 종교는 권위를 증명하려고 기적을 내세우지 않는다. 종교는 늘 개인의 체험에 뿌리를 내린다.

예수는 육체를 입고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에 하나님을 찾다가 한껏 찾아내는 사람이었고, 사람을 찾다가 완전한 혼이 한껏 만족하기까지 사람을 찾아내는 하나님이 세상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