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3 편, 결혼 제도

 

이 글은 옛날에 결혼 제도가 시작된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결혼은 집단의 난잡한 교배로부터 시작하여, 여러 가지 적응을 거쳐서, 궁극에 부부가 짝으로 결혼하게 만든 결혼 기준이 나타나기까지 진보해 왔다.

부부로 짝짓는 것은 가정을 세우려고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합하는 것이다.

결혼 관습이 지속된 것은 재산과 종교에 상당히 많이 의존했지만, 결혼과 가정을 보호하는 진짜 영향력은 남자와 여자가 혼자 살고 싶어하지 않는 생물학적 사실이다.

marriage
그리스 인의 결혼

성욕 때문에, 이기적인 사람은 동물보다 나은 존재가 되도록 꼬임을 받았다.
자아를 돌보고, 자아를 만족시키는 성관계는 이타적 임무와 종족에 유리한 가정 책임을 맡는 것을 보장한다.

이 성(性) 충동은 사람으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생각하게 만들고 남을 사랑하도록 이끈다.

1. 사회 제도인 결혼

결혼은 하나의 사회 제도로서 두 방향에서 작용한다.

1. 개인의 성관계를 규제한다.
2. 자손ㆍ상속ㆍ계승, 그리고 사회 질서를 규제한다.

결혼으로부터 생겨나는 가족 자체가 결혼 제도를 안정시키는 장치이다.
결혼을 안정시키는 다른 유력한 요소는 자부심ㆍ허영심ㆍ기사도ㆍ의무, 종교적 확신이다.

원시의 결혼은 1차적으로 산업이었다. 현대에도 결혼은 흔히 사업이다.
안드 핏줄의 영향을 통해서, 천천히 결혼에 낭만과 사랑과 윤리가 있게 되고 있다.
옛 시절에 남편과 아내는 별로 같이 있거나 같이 먹지도 않았다.

2. 구혼과 약혼

원시의 결혼은 반드시 소년과 소녀의 부모가 계획하였고, 나중에는 젊은이들이 자유로 상대를 선택하게 되었다.
과도기에는 전문 중매인이 등장한다. 중매인은 처음에 이발사였고, 후일에는 사제였다.

사로 잡아 결혼하는 것이 계약 결혼을 앞섰다.
여자들은 다른 부족에서 온 제 또래의 남자 손에 굴러떨어지는 것을 더 좋아했다.
초기 형태의 결혼식은 탈출하는 흉내, 일종의 도망 연습이었다.


파리스와 헬렌의 사랑


달마시아의 결혼 (신부를 생포했다)

나중에는 생포를 흉내내는 것이 정상 결혼식의 일부가 되었다.


헬렌의 도망

현대의 소녀가 "사로잡히는 데" 저항하는 체하는 것, 결혼에 대하여 말하기 싫어하는 것은 다 옛 관습의 유물이다.
여자에게는 결혼한 동안, 자기 뜻대로 처신하는 자유가 오랫동안 주어지지 않으나, 총명한 여자들은 머리를 써서 이 제한을 피할 수 있었다. 여자는 은밀하게, 또는 공식으로 결혼을 개시하였다.

문명이 진보함에 따라서, 여자는 구혼과 결혼에서 맡는 역할이 늘어났다.

구혼 기간에 사랑과 낭만, 개인의 선택이 늘어난 것은 안드 족속의 공헌이다.
옛 민족들 사이에서 약혼 기간에 성관계를 가지는 것은 관습이었다.

최근에는 종교가 결혼 전의 성관계를 막는 금기를 만들었다.

3. 아내 사들이기와 지참금

옛날 사람들은 사랑과 약속을 믿지 않았다. 오래 가는 결혼은 재산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내 사는 값은 아내를 버릴 경우에 남편이 잃게 되는 보증금으로 여겼다.
신부(新婦) 구경은 신부가 아내로서 더 높은 값을 받을 생각으로 대중에게 전시하기 위하여 딸을 잘 입히고 치장하는 계제이다.

다른 면에서 바람직한 남편이 제 아내의 값을 치를 수 없으면, 여자의 아버지를 위하여 일하고 데릴 사위가 될 수 있었다.
가난한 남자가 욕심 많은 아버지가 달라는 값을 치를 수 없으면, 장로들이 그 아버지에게 바짝 압력을 넣곤 했고, 값을 내리지 않으면, 눈이 맞아 도망치는 일이 생길 수 있었다.

문명이 더 진보하자, 아버지들은 딸을 파는 것처럼 보이기 싫었고, 그래서 신부 값을 계속 받는 한편, 그 값과 대충 같은 값으로 그 쌍에게 선물을 주는 관습을 시작했다.

신부 값 치르기가 나중에 중지되자, 이 선물은 신부의 지참금이 되었다.
남자는 지참금을 완전히 돌려주지 않고서 아내와 이혼할 수 없었다.

4. 결혼식

결혼 예식은 두 사람의 결정이 맺은 열매일 뿐 아니라, 결혼이 공동체의 일이었다는 사실에서 생겨났다.


초기의 결혼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재산의 한 요인이었고, 따라서 법적 예식이 필요했다.
원시인은 아무런 기록이 없었다. 따라서 많은 사람이 결혼 예식을 구경해야 했다.
사람들은 아이 낳지 못하는 것을 크게 두려워했고, 불임은 영이 장난치는 때문이라 믿었기 때문에, 다산(多産)을 보장하려는 노력은 또한 결혼을 어떤 요술이나 종교 의식과 관련시키게 되었다.

계약하는 당사자들의 출생 별을 확인하려고 점성가들의 자문도 받았다.
사람들은 행운의 날을 찾았고, 목요일을 가장 유리하게 여겼다.
새로 결혼한 사람에게 곡식을 던지는 것이 근동에서 여러 민족의 관습이었다. 이것은 아이가 많을 것을 보장하는 요술 의식이었다. 어떤 동양 민족들은 쌀을 썼다.

불과 물은 귀신을 방지하는 좋은 수단으로 생각되었다. 따라서 결혼식 때, 제단에 불을 지피고 촛불을 켜곤 했다. 오랫동안 가짜 결혼일을 정하고, 귀신과 영들을 쫓아내려고 감자기 그 행사를 연기하는 것이 관습이었다.

귀신의 질투를 일으키지 않으려고, 귀신의 눈에 불쌍하게 보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되었다.
귀신이 신부을 알아보지 못하고, 아름다운 신부를 못 보게 감추기 위해서 신부를 가장(假裝)하려고 베일을 씌웠다.

신부의 발은 예식이 있기 바로 전에, 땅에 닿아서는 안 되었다.
20 세기에도 차량이 내리는 데서부터 교회의 제단까지 카펫을 까는 것이 아직도 관습이다.

5. 여럿과 결혼하기

결혼의 역사 초기에,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은 부족의 남자들에 속했다.
나중에, 한 여자는 일시에 남편이 오직 하나 있었다.

일시에 한 남자와 사는 이 관습은 그 집단의 난교(亂交)로부터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이것은 무리를 지어 살던 시대에서 짝을 지어 사는 방향으로 가는 첫걸음이었다.

결혼의 진화에서 다음 단계는 집단 결혼이었다. 이 과도기는 부부의 결합을 안정시키기에는 결혼 관습이 튼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가족의 다섯 형제가 다른 가족의 다섯 자매와 결혼하곤 했다.
집단 결혼은 대체로 토템 관습의 지배를 받았고, 이러한 규제가 부족의 생존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일부 다처(一夫多妻)와 일처 다부(一妻多夫)―의 관습이 자리를 잡자 집단 결혼은 차츰 사라졌다. 일처다부는 널리 퍼지지 않았고, 여왕이나 부유한 여인들에게 국한되었다.

카스트와 경제적 이유로, 때때로 여러 남자가 한 아내로 만족해야 했다.

일부다처 제도는 4 종류의 아내를 인정했다:

1. 합법적 아내.
2. 사랑하고 허락된 아내.
3. 첩, 계약한 아내.
4. 노예 아내.

복혼의 경우에도, 신분이 있는 아내가 가정을 지배했다.
신분이 있는 아내는 반드시 사랑하는 아내(애인)가 아니었다.

진화 부족들이 놋 족속과 아담 족속과 섞이기까지, 사랑하는 아내는 등장하지 않았다.

첩 제도는 일부일처에 이르는 디딤돌이요, 복혼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었다.
아이를 배거나 젖을 먹이는 아내와 성관계를 하지 말라는 금기는 일부다처제를 권하는 경향이 컸다.

원시의 여자들은 고된 일과 더불어 자주 임신했기 때문이 일찍 늙었다. 그러한 아내는 지쳤고, 아이 낳는 일과 집안 일을 도울 수 있는 아내를 얻으라고 남편에게 부탁하곤 했다.

아내들의 수는 남자의 경제 능력에 따라서 제한되었다.

6. 참 일부일처제―부부의 결혼

일부일처제는 독점이다. 이 상태에 도달하는 자에게 좋지만, 일부일처제는 그렇지 못한 자에게 생물학적 어려움을 주는 경향이 있다. 아이들에게는 일부일처제가 가장 좋다.

이상적 부부 관계는 독점 성관계와 비슷한 것이며, 혼자 사는 차가움 속에서 외톨이로 남은 자에게 불가피하게 어려움을 안겨 준다.

참된 부부 생활이라는 이상에는 극기가 따르며, 자제력이 모자라서 실패하는 일이 흔하다.
일부일처제는 사회의 문명을 유지하고 계속 발전시키는 데 필수이다.

남편의 사랑을 얻으려는 경쟁에 말려든 동안에 여자는 결코 이상적인 어머니가 될 수 없다.

7. 혼인의 취소

결혼 관습이 초기에 진화할 때, 결혼은 언제나 깨어질 수 있는 허술한 연합이었고, 아이들은 언제나 어머니를 따랐다.
어머니와 아이 사이의 끈은 본능적이고, 도덕의 발전과 상관 없이 작용했다.

원시 민족들 사이에서는 결혼의 약 절반이 지속되었다.

이별의 가장 큰 원인은 아이가 없는 것이고, 이를 언제나 아내의 탓으로 돌렸다.
개인적 사랑의 동기가 오래된 재산 동기를 갑자기 대체한 것은 결혼 제도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어느 사회에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이 큰 집단으로 존재하는 것은 도덕 관습이 붕괴하거나 과도기에 있음을 가리킨다.

허영에 탐닉하고 제멋대로 행하는 두 젊은이는 결혼하고 가정을 일으키는 일에 크게 성공하기를 바랄 수 없다.

사회가 어린아이와 젊은이를 교육하지 못하고 사회가 결혼 전 훈련을 마련하지 못하는 한, 이혼이 유행할 것이다. 그런 경우에 이혼은 사회에 안전 밸브로서 작용해야 하며, 이것은 더욱 나쁜 상황을 방지한다.

현대 사회의 큰 모순은 사랑과 결혼을 이상적으로 생각하면서, 이 두 가지를 철저히 검사하지 않은 것이다.

8. 결혼의 이상화

가정을 만드는 결혼은 사람이 만든 가장 고귀한 제도이지만, 그 본질은 인간적이다.

인간의 관계를 신의 관계와 비교하는 것은 유감스럽다.
남편과 아내의 결합은 진화 세계에서 필사자의 물질적 기능이다.
결혼 생활로 영적 진보가 일어날 수도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결혼이 신성함을 뜻하지 않는다.

결혼이 신의 행위로 맺어졌다고 어떤 집단의 필사자들이 상상한 것도 또한 유감이다.
그런 믿음은 당사자의 상황이나 소망과 상관 없이, 결혼이 취소될 수 없다는 개념으로 이끈다.
그러나 결혼이 취소되는 사실 자체가 신이 그러한 연합에 관련된 당사자가 아니라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두 사람을 일단 합쳐 놓았으면, 그들은 그러한 결혼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다.
어떤 결혼이 하나님의 승인을 받고 어떤 결혼이 승인받지 못한다고 누가 감히 판단을 내리겠는가?

결혼은 언제나 이상적인 현세에 대하여 사람이 가진 최고의 꿈이었고, 아직도 그렇다.

이 아름다운 꿈이 다 실현되는 일이 드물어도, 이 이상은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노력하도록 인류를 늘 유혹한다.

젊은 마음에 이상으로 생각한 것은 어느 정도 결혼 전의 실망으로 현실로 얼마큼 돌아와야 한다.
그러나 젊은이가 결혼을 이상으로 생각하는 것을 나무라서는 안 된다. 그러한 꿈은 가족 생활의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결혼의 이상은 요즈음에 크게 진보했다. 어떤 민족들 사이에서 여자와 남자가 동등한 권한을 누린다.
결혼은 남자와 여자의 사회적 협동 관계이며, 당대의 도덕 관습 밑에서 작용하고, 사회의 법과 규제를 받는다.

여자의 자유가 갑자기 늘어나서 가정 제도가 벅찬 시련을 겪고 있는데도, 20세기의 결혼은 지난 시대에 여자가 오랫동안 누리지 못했던 권리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