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니키아의 생명나무 기록 (Tree of Life in Phoenicia)

페니키아(Phoenicia)는 이스라엘의 북쪽에, 오늘날의 레바논 지역, 그리고 시리아의 서부의 타르투스(Tartus) 주 지역을 차지하던 땅이었다. 페니키아인이 어디서 왔는가는 확실치 않다. 그리스 역사가 스트라보(Strabo)에 따르면, 두로(Tyre)와 바레인(Bahrain) 섬 사람들이 자기들이 페니키아인의 시조라 주장했다고 한다.

페니키아인은 서양 문명에 기여한 것이 많다. 그 중에도 으뜸은 기원전 1050년 경에 알파벳(알레프를 빼고 모두가 자음)을 발명한 것이다. 페니키아인은 알파벳을 크레테와 그리스에 퍼뜨렸다. 이들은 언어는 셈족 중에서 가나안어 집단에 속한다. 페니키아인은 옛 가나안 땅에 살던 가나안 족속(Canaanites)의 일파였던 듯하다. 유대인은 이 가나안 족속을 얼마큼 죽였지만, 나중에 그들과 교류함으로 이 알파벳을 고쳐서 자기들의 글자를 만들었다. 그래서 히브리어는 주로 자음 글자만 있다. 모세가 에집트에서 기원전 1250년에 나올 때에는 이른바 모세 5경을 기록할 알파벳이 아직 발명되지 않았다. 후일에 그리스어에서 모음으로 시작하는 단어가 많으므로, 그리스인이 모음을 만들었다.

페니키아인은 배를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일찍부터 (기원전 1550 – 300년) 지중해 연안에 여러 도시에 근거를 두고 해상 무역에 종사하였다. 이들은 갤리선(galley)를 건조하였고 또한 2단식 노로 젓는 배(bireme)를 발명하였으며, 이처럼 노예들을 사용하여 전함의 속도를 늘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후일에 로마인은 죄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는 관습을 페니키아인으로부터 배웠다.

1. 페니키아인의 모습
 

 

 

페니키아인의 무덤에 있는 조각들로부터 페니키아인이 어떻게 생겼는가 대강 짐작할 수 있다. 대체로 얼굴이 넓적하고 몸이 건장하게 보인다. 민수기 13장에는 유대인 정탐꾼이, 이 가나안 사람들과 비교하여 자기들은 메뚜기와 같다고 한 말이 틀리지는 않는 듯하다.

페니키아 여인

페니키아인 남자

2. 자주 물감

페니키아인은 또한 자주 장사였고 그들이 만든 자주 물감은 로마의 황제와 귀족들에게 크게 인기가 있었다. 두로의 보라(Turian purple)는 뿔고둥(murex)에서 짜낸 자주 색 물감인데, 이 자주색으로 물들인 옷을 제왕들이 즐겨 입었다고 한다.

라베나(Ravenna)의 San Vitale 성당의 모자익,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두로의 보라색 옷을 걸쳤다.

칼리굴라(Caligula) 황제는 모리타니아(Mauritania) 임금이 자기보다 더 좋은 보라색 옷을 입었다고 하여 그를 죽였고, 네로 황제는 보라색 옷 입는 자를 사형에 처하였다고 한다.

두로의 보라를 1 그람 만드는 데 그 조개가 1만 개나 들고 (비용은 1 그람에 €2,000 또는 1 온스에 €56,000 또는 $73,000, 금 값의 60배), 손수건 하나를 보라색으로 물들이는 데는 40그람이 든다고 하니, 그런 값이면 나라의 임금이나 겨우 보라색 옷을 입었을 것이다.

페니키아 자체는 (피처럼) 붉은 색의 나라라는 뜻이니, 우리는 보라라고 부르는 색을 이들은 붉은 색이라고 불렀다.

3. 전함 건조

어쨌든 이들은 배를 잘 만들어 지중해 연안의 여러 곳에 도시를 세웠다.

아씨리아인의 전함, 기원전 700-692년, 니느베의 남서 궁전 벽의 부조. 아마도 세나케립 임금이 고용한 페니키아인들이 만든 배. 2단식으로 노를 젓는 배이다.

4. 페니키아의 생명나무 기록

페니키아는 인접한 아씨리아와 일찍부터 싫든 좋든 교류가 많았던 듯하다. 때로는 아씨리아의 침공을 받았고, 평화시에는 아씨리아와 무역을 했다.

페니키아의 왕비가 침공하는 아씨리아 군대를 피하여 아기를 안고 도망하는 장면, 니느베의 세나케립 궁전의 부조의 일부. 기원전 700년 경.

니므롯 상아는 대체로 19세기와 20세기에 아씨리아의 옛 도시 니므롯에서 발견된 상아 조각품을 말하는데 이 중에는 생명나무를 새긴 것들이 있다. 이것들은 대체로 기원전 9-7세기의 작품이다. 상아의 출처는 아프리카일 터이지만, 세공한 匠人은 메소포타 바깥 지역 출신, 페니키아인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상아 조각품은 무역을 통해서 니므롯의 부유한 귀족의 손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아 조각품을 니므롯에 사는 아씨리아인의 주문을 받아서 페니키아의 장인이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무역하는 상인들이 페니키아의 세공품을 니므롯까지 전달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페니키아인이 아씨리아인보다 먼저, 생명나무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어쩌면 에덴 동산이 페니키아 지역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니므롯 궁전의 벽에 새겨진 큰 浮彫들과 달리, 이 상아 조각품은 부유한 귀족들의 소장품이었던 듯하다. 페니키아인은 이러한 예술품을 많이 만들었고, 그 외에도 자주 (Tyrian purple) 장사와 무역을 통해서 부강해졌다.

Layard, Loftus, Mallowan 등이 발굴 작업을 추진하여 많은 상아 조각품이 발견되었고 상당수가 이락 박물관에 소장되었으나 지난 번 이락 전쟁으로 인하여 대다수가 소실되었다고 한다. 대영 박물관과 산프란시스코 미술관에 소수가 진열되어 있다.

아씨리아-페니키아 세공인 작품, 기원전 8-7세기, 니므롯 출토. 사람의 등 뒤에 생명나무 꽃이 보인다.

날개 달린 두 보호자가 생명나무를 지킨다.

생명나무에 핀 꽃, 시리아-페니키아인, 니므롯 출토. 기원전 8-7세기.

생명나무. 꽃 송이도 여기저기 보인다. 시리아-페니키아인 작품, 니므롯 출토. 기원전 8-7세기.


위에는 매(falcon)가 있고, 사람이 생명나무에서 과일을 딴다.


니므롯에서 발견되었으나 페니키아인의 작품. 연꽃이라고 적혀 있으나 다른 작품에 나오는 생명나무의 꽃과 잎 모양이 비슷하다.


알스란 타쉬(Arslan Tash, 아씨리아의 한 도시)의 상아. 페니키아인의 작품. 스핑크스 밑에 생명나무 꽃 두 송이가 보인다.

5. 레바논의 돌 조각품

두로(Tyre, Lebanon)에서 발견된 석관. 생명나무와 이를 지키는 스핑크스 두 마리가 새겨져 있다.

페니키아인의 석관 파편. 기원전 10세기. 할라프 언덕에서 출토. 생명나무 꽃과 스핑크스가 새겨져 있다.

6. 유리

페니키아인이 처음으로 유리를 발명했다. 에르콜라노 부근에서 발견된 유리창 (서기 1-70년).

세상 사람들은 얼마나 페니키아인의 덕을 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