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쉬타르 대문(Ishtar Gate )에 새겨진 생명나무

이쉬타르 대문은 바빌론(Babylon) 사람들이 살던 옛 도시국가 바빌론의 입구에 세워진 대문이다.

메소포타미아 지도.바빌론은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이 지도의 표주박의 윤곽을 따라 흐른다면, 그 표주박의 잘록한 허리에, 바그닷의 밑에 있다.

페르가몬 박물관(Pergamon Museum,Berlin)은 바빌론, 우륵(Uruk, 노아의 홍수가 난 곳), 에집트 등지에서 발굴 작업을 일찍 시작했고, 그곳에서 발굴한 유물들을 이 박물관에 전시했다. 2차 대전 말에 러시아군이 들어와서 대부분 러시아로 가지고 갔다고 한다. 1958년에 이 유물을 많이 돌려보내기는 했으나 아직도 상당수가 러시아에 남아 있다고 한다.

수메르(Sumer)인은 메소포타미아에서 기원전 4, 5천년 전부터 살았다고 한다. 이들은 아누(Anu, 하늘의 신), 닌후르삭(Ninhursag, 땅의 여신), 엔릴(Enlil, 공기의 신), 엔키(Enki, 물의 신)을 섬기었다. 셈족이 차츰차츰 흘러들어와 기원전 2340년에는 셈족의 사르곤(Sargon, 기원전 2334-2279년)왕이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하였고 이때가 수메르인의 큰 인파가 나라를 등지고 떠난 때이다.

이때가 우연인지 상관이 있는지 잘 알 수 없으나, 환웅이 하늘에서 많은 사람을 거느리고 조선 땅에 왔고, 단군조선이 시작된 해라고 한다. 물론 피와 살을 입은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 올 수는 없고 지구의 어느곳인가 떠나서 한반도에 왔을 것이다.

바빌론은 아카드(Akkad) 앞에 사르곤 왕이 세운 도시라고 한다. 바빌론의 구왕조는 아모리족(Amorites)의 수무아범(sumu-abum)이 기원전 1894년에 시작했고, 바비론 제국은 후일에 하무라비 법전(Hammurabi Code)을 기록한 하무라비 왕이 죽고난 뒤에 곧 멸망하였다.

유대인의 시조인 아브라함은 우르에서 살았고, 아버지 테라는 수메르 지역의 여러 신을 믿고 우상을 모시고 있었는데, 아브라함은 우르를 떠나고 나중에 살렘(예루살렘)의 왕 멜기세덱과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이쉬타르(Ishtar) 또는 아스타로트(astarte)는 아누(Anu)의 딸이고, 多産과 전쟁의 여신이었다. 이쉬타르 여신은 길자메시(Gilgamesh)에게 추파를 보냈으나 일축 당하자 하늘의 황소를 보내서 길자메시를 벌 주려하지만, 그는 친구 엔키두(Enkidu)와 함께 이 황소를 죽인다. 이쉬타르 대문을 보면 수메르인 및 바빌로니아인의 다신교를 짐작할 수 있다.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1천년이나 앞서는 길자메시 이야기에서 대체로 베낀 것이다.

페르가몬 박물관  

1. 이쉬타르 대문

1902년에 Robert Koldewey가 발굴을 시작하여 1930년대에 마쳤다고 한다. 이 대문은 2중으로 되어 있는데 페르가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은 작은 앞문이다. 더 높은 둘 째 문은 너무 높아서 페르가몬 박물관 안에 전시할 수 없어서, 저장해 놓기만 했다고 한다.

이쉬타르 대문의 모형.

두 겹의 대문이 보인다. 페르가몬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는 것은 이 앞문이고, 뒷문 부분은 창고에 저장되어 있다고. 다니엘 서에 나오는 느부갓네살 왕 2세(Nebuchadnezzar II)가 기원전 575년에 지었다고 한다.

이 대문을 장식하는 것은 색깔이 있는 타일인데, 기원전 6세기에 바빌론에서 만든 것이다. 중국에는 당나라 시대에 와서야 三彩의 도자기가 발달되었으니, 중국의 도기보다 훨씬 앞선 것이다. 당나라 때에 구리로 녹색, 철로 갈색, 코발트로 청색을 냈다고 한다.

대문의 윗부분.

하무라비 법전.

2. 입구로 이끄는 담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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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무늬

대문 입구의 왼쪽 벽.

바른 쪽 벽의 장식.

앞 대문

궁을 지키는 송아지, 상상의 동물, 사자.

입구. 궁의 벽은 지키는 말과 상상의 동물로 장식되어 있다.

바빌론의 병사들의 모습을 새긴 타일. 생명나무의 꽃이 윗줄과 아랫줄에 있고, 병사들의 옷술에도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