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세리의 그림 “이 사람을 보라” (ecce homo)

1. 모데르나 미술관

오래 전에 안토니오 치세리 (Antonio Ciseri)의 “Ecce Homo” (라틴어로 Here is a man!, 이 사람을 보라)라는 그림을 어디선가 보았고, 인상적이어서 원화를 보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그림이 어디 있는지, 누가 그렸는지도 몰라서 잊어 버렸다.

그러다가 어느날 Galerie d’Arte Moderna (모데르나/현대 미술관, 피렌체)에 갔다. 이름 자체가 추상적인 현대 미술가의 작품을 전시한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별로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거기서 문닫는 시간이 가까워질 때, 해가 질 무렵에 이 그림을 발견했다. 이 미술관은 피티 궁전 (Palazzo Pitti)의 2층에 있는데, 18세기 말부터1차 대전 이전의 화가들의 그림을 전시하고 있다. 우피치 미술관 (Galeria degli Uffizi), 아카데미아 미술관 (Accademia)과 함께 20여개의 미술관 또는 궁전을Polo Fiorentino Museale에서 관리한다.

Palazzao Pitti (피티 궁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과 마찬가지로, 모데르나 미술관은 사진을 금하고 있다. 그 그림이 걸려 있는 방을 지키는 여자 가드에게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 말을 걸어 사진을 찍을 수 있는가 물어보니, 물론 대답은 No이다.

실망이 되어 머뭇거리고 그림을 감상하고 있자니, 그 여자 가드 안토넬라(Antonella)가 다가 와서, 학자들한테는 연구 목적으로 사진을 허락하는 수도 있으니, 미술관의 허가 담당 오피스에 가보라고 귀띰을 해 주었다. 이탈리아어 실력이 부족하여 이 말을 겨우 알아듣고, 연구 목적으로 사진을 한 장 찍고 싶다고 말했다.

안토넬라의 안내를 받아서 피티 궁전 바깥의 어느 건물에 있는 담당 감독의 사무실로 갔다. 젊은이들은 영어를 하지만, 나이가 지긋한 모데르나 미술관의 Sovrintendente (Superintendent, 감독)은 물론 영어를 하지 못했다. 안토넬라가 무어라고 설명한 뒤에, 나는 신청 용지를 받았다. 주소와 성명을 적고 사진의 목적은 연구이고, 또한 절대로 대중에게 찍은 사진을 발표하지 않는다고 서명하였다.

그 감독은 그 서류를 가지고 현대 미술관으로 가서 사진을 찍고 난 뒤에, 신청서를 가지고 다시 자기 사무실로 꼭 돌아와야 한다고 못을 박는다. 돌아오겠다고 대답하고 다른 여자 가드를 따라서 치세리의 그림이 걸린 방으로 다시 갔다.

날이 저물 무렵이라 미술관은 이미 문이 닫혀 관람객들은 사라졌고 겨우 사진을 찍을 만큼 빛이 그 방으로 들어 왔다. (말할 필요도 없이, 플래시를 쓸 수 없었다.)

사진을 찍다 보니, 그림 앞 바른 쪽에 흰 대리석 조각상이 있는 것이 눈에 뜨였다. 이 조각상에서 반사되는 빛이 그림에 비쳤다. 조각상도 덩치가 커서 사진 찍으려고 옮겨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집사람이 얼른 전시된 방 창문의 커틴을 내려서, 반사되는 빛을 일부 줄였지만, 어느 정도 반사되는 빛이 남아 있었다.

치세리의 그림 사진을 열 두어장 찍었다. 따라온 사무원이 신청서를 보더니, 무엇인가 기록을 고치고 자기가 그 신청서를 제출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 감독에게 서류를 가지고 돌아가야 한다고 하니, 그 사무원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자기가 처리하겠다고 했다. 그 여자에게 신청서를 맡기고 호텔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고 나서, 오늘은 치세리의 그림을 사진찍게 되어서 참으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사진을 발표할 수 없다면, 아무리 연구하고 글을 썼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모든 연구는 발표가 목적이다.

아침이 되자, 우피치 미술관 옆 건물에 있는 허가 담당 오피스(Uffizi = office)로 다시 찾아 갔다. 이번에는 허가를 얻으려는 것이었다. 감독은 마침 자리에 없었고, 담당 사무원 베라(Vera)를 만났다. 이 여인은 다행히 영어를 했고, 그 감독이 전날 저녁에 신청서를 돌려 오지 않아서 대단히 화가 나 있다고 말했다. 얼른 사과를 드리고, 다른 직원이 내가 다시 그 사무실로 돌아갈 필요가 없고 자기가 처리하겠다고 하여 그리 되었으니, 감독에게 사과를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발표 허가를 얻을 수 있는가 물었다. 베라는 내가 그 전 날에 그 사진을 “pubblicare(publish)”하지 않기로 서약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물론 그런 서약을 했지만, 연구한 결과를 발표하고 싶다고 말했다. 발표할 수 없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연구를 하겠느냐?

베라가 다시 물었다. 도대체 어떤 종류의 글을 쓰느냐? 나는 ecce homo 를 주제로 그린 화가들의 여러 작품을 보았고 (이것은 사실이다), Antonio Ciseri의 그림과 비교하는 글을 쓰고 싶다고 대답했다.

잠시 생각하더니, 베라는 또 다른 신청서를 내밀면서, 직원들이 신청서를 검토한 뒤에, 승인을 받으면 필요한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지불하겠다고 약속했다. 집으로 온 뒤에 며칠 있으니, e-mail로 요금 지불 명세서가 와서, 지시대로 송금했다. 며칠 뒤에 Polo Museale Fiorentino 의 허가 사무소 (ufficio permessi e concessioni)에서 허가서가 왔고,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허가 번호가 적혀 있다.

Ecce Homo permit, 22 Mar 2012 N. ord. 47P Prot. 28.13.10-3289 Galeria d’Arte Moderna  

2. 치세리의 그림, 이 사람을 보라

이 그림의 특징은 구경꾼이 빌라도 (Pilate)의 관정에서 재판받는 예수를 바라보는 방관자의 입장이 아니라, 관정 안에 예수와 함께, 바야흐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을 구경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여기는 성전을 내려다 보는 안토니아 요새 (Antonia Fortress)안이니, 바깥의 건물은 조금 밑에 있어야 한다. 대리석 조각의 빛이 바른 쪽 밑에 조금 보이지만, 인터넷에 있는 치세리 그림 사진들 중에 이것이 제일 나은 축에 속할 것이다.

몇 백년 전의 예루살렘 지도를 보면 안토니아 요새는 큰 바위 위에 지었고, 아치로 된 다리를 건너서 내려 가면 성전이 연결된다.

그림에서 빌라도가 어떻게 생겼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그의 뒷 모습만 보인다. 바른 쪽에 한 숨 쉬는 듯한 여인은 아마도 빌라도의 아내인 듯. 부탁한대로 남편이 일을 처리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서 절망하는 듯한 표정이다.

군중을 내려다 보는 예수의 얼굴은 군중이나 누구를 탓하는 듯한 기색이 전혀 없다. 사람을 사랑하고, 잘못하는 사람도 불쌍히 여기는 듯한 얼굴이지만 자세한 표정은 읽을 수 없다. 신의 경지에 오르면 사람을 그렇게 사랑하는가 보다.

치세리는 1821년에 스위스에서 태어난 화가인데, 1833 년에 플로렌스로 가서 피에트로 벤베누티(Pietro Benvenuti)의 제자가 되었다. 종교적 주제로 그림을 그렸고 초상화 위탁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의 그림의 특징은 사진을 보는 듯한 스타일이다. Ecce Homo외에 Il trasporto di Cristo al sepolcro (The transportation of Christ to the Sepulchre, 예수를 무덤으로 옮기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