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이사의 데나리온이었는가?

누가복음 20장에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에, 산헤드린 (유대인의 종교법정)이 정탐꾼을 보내어 예수에게 시비를 거는 이야기가 나온다. (역사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성현에 대한 모든 존칭은 생략한다.)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하니 예수께서 그 간계를 아시고 가라사대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 뉘 화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대답하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여기서 정탐꾼이 내민 돈, 데나리우스(denarius, 복수denarii), 또는 데나리온(denarion, 그리스어)은 은전이다.  

1. 예수가 받은 데나리온에 누구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나?

예수가 살던 당시에 아마도 네 가지 종류의 데나리온이 통용되었던 듯하다. 첫째는 줄리아스 케자(Julius Caesar)의 데나리온, 둘째는 브루터스(Brutus) 데나리온, 셋째는 예수가 태어났을 때 로마의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Augustus)의 데나리온, 그리고 예수가 돌아가실 때에 황제였던 티베리우스(Tiberius)의 데나리온이다.

로마의 집정관 술라(Sulla, 기원전 138-78년)의 모습이 새겨진 데나리온 (기원전 50년 경). 아마도 이 데나리온은 예수가 살던 당시에 거의 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술라는 케자 이전의 사람이다.

줄리어스 케자의 데나리온 은전, 브루터스의 EID MAR데나리온, 아우구스투스의 금전, 아우리우스. (대영박물관) 브루터스는 인기가 곧 떨어졌으므로 그의 데나리온도 마찬가지로 많이 통용되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그 현재 가치는 50만 달라가 된다고.

로마인의 기본 화폐는 금전 아우리우스(aureus, aurei)이고, 이것은 은전 25 데나리온의 가치가 있었다. 다시 한 데나리온은 4 세스터시우스. 정탐꾼이 예수에게 가지고 있던 데나리온을 내밀었는지 어쩐지 누가는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다. 누가는 예수가 이렇게 물었다, 그 정탐꾼이 저렇게 대답했다 일일이 기록하지 않았고, 독자로 하여금 자세한 내용을 짐작하도록 간결하게 글을 썼다. 정탐꾼이 돈 주머니를 뒤져서 은전을 내밀었다는 말은 적혀 있지 않지만, 많은 사람 앞에서 예수가 그에게 데나리우스를 내 보이라 하는데, 내놓지도 않고, 케자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고 대답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러니 그가 데나리온 하나를 예수에게 내밀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예수도 그 은전에 누구의 모습이 있는가 살펴보았을 것이다.

왼쪽에서 처음 두 은전이 아우구스투스의 데나리온. 에집트 정복을 기념하여 찍은 은전. 티베리우스의 데나리온 앞면과 뒷면. Ira and Larry Goldberg의 허락을 받았음 (WildWinds.com)

정탐꾼이 그 데나리온이 케자의 것이라 대답하였으니, 그것은 줄리우스 케자의 은전이었을지 모른다. 또한 예수의 당시에는 케자가 고유 명사가 아니라 뒤를 이은 황제들이 취한 일종의 영예로운 칭호가 되었으니, “티베리우스 황제”라는 대답 대신에 “케자”의 모습이라고 대답했을 수도 있다.  

2. 데나리온의 가치

예수의 포도원 비유 중 하나에, 일꾼들이 하루 종일 일을 시키고 한 데나리온을 지불하는 포도원 주인에게 이의가 없었던 것으로 보아 하루에 한 데나리온을 벌면 괜찮은 소득이었을 것이다.

기원전 100년 경부터, 로마 군인의 일년 봉급은 900 세스터시우스 (sestertius, sestertii) 또는 225 데나리온 정도 되었다. 이 봉급은 도미티안 황제 (치세: 서기81-96년) 때에 1년에 300 데나리온으로 올렸다고 한다. 이 외에도 로마 군인은 소금 배급을 받았다 (주둔지의 막사 주위에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공사로 땀을 많이 흘린 듯하다.) 오늘날의 돈 가치로 따진다면, 한 데나리온은 100 달라 내외가 될 것이다.

갈릴리 호수 근처에서 3천명이 넘는 군중을 먹이려고 했을 때 제자들이 그렇게 하자면 200 데나리온이 더 들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한 데나리온으로 15명에게 간단한 점심이나 저녁을 먹일 수 있는 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