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르트 왕국의 생명나무 기록(Tree of Life in the Kingdom of Urartu/Ararat)

창세기에는 에덴 동산이 어디쯤 있는가 힌트를 주지만 정확히 어느 곳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유프라데스 강 외에 다른 강도 근처에 있었다고 하지만 이런 강들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 오래 된 글이라 착오가 있을 수도 있지만, 대체로 아씨리아 동쪽에, 그리고 유프라데스 강 가까이, 즉 오늘날의 시리아와 이락 지역에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지도에 누런 색으로 표시된 지역).

이곳에 예전부터 살던 사람들은 수메르인이다. 기원전 5000년 경부터 수메르인이 살았고 이들은 생명나무 전통을 간직한 것은 순전히 근처에 에덴동산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수메르인은 대체로 기원전 2334년 전후로 고향을 등지고 떠났고, 남아 있던 사람들은 밀려들어오는 셈족과 결국 섞여서 살고 이들은 생명나무의 전통을 지켰다. 메소포타미아를 등지고 떠난 수메르인의 일부는 에집트로 가서 그들의 문명에 영향을 주었으나 대부분은 아타톨리아(지금의 터키 지역)를 지나서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비롯하여 유럽으로 퍼진 듯하다. 고향을 떠난 수메르인은 어디를 가나 지나친 지역의 사람들과 섞여 순종 수메르인은 남아 있지 않다. 각 지역의 사람들과 섞이면서 그 자손들은 또한 생명나무의 전통을 유지했을 것이다.

미노스 문명의 중심이었던 크레테의 크노소스 궁전의 생명나무에 관하여 일전에 글을 쓴 적이 있으니, 메소포타미아의 생명나무 이야기가 그리스까지 전해지려면, 수메르인은 아나톨리아 지방을 지나가야 한다. 그러면 당연히 이 지방에 생명나무의 전통이 남아 있을 것이라 유추할 수 있다. 아리랑 노래의 유래에 대하여는 세 가지 설이 있다고 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이름을 밝히지 않으니 인용할 수도 없다. 삼국시대에, 또는 대원군 시대에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양주동 박사가 북방에서 한반도로 이주해 오던 우리 조상들이 어느 높은 산을 넘어 오면서 온 세상이 내려다 보이는 고개를 ‘아리嶺’이라 이름지었다고 하는데, 이 설이 어느 정도 근거가 있어 보인다. 그러면 아리령이 어디에 있는가를 규명해야 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이 아리랑 고개가 어디 있었을까? 아리랑 산이라 하지 않고 아리랑 고개라 부른 것은 이 노래가 한자가 중국에서 도입되기 전에 우리의 조상이 아리랑 산을 넘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여기서 십리는 한자가 아니고 우리의 조상이 조선 땅에 가는 길의 어떤 지명일 수도 있다.

아리땁다는 말은 어디에서 왔는가? 아ㄹ+아래아+ㅅ답다→ 아릿답다 →다시 아리땁다로 바뀌었으니, 처음에는 또는 ‘아랏’답다 또는 ‘아라’답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터키의 아라랏 산 북쪽에는 아이라랏 평야가 있는데, 인물이 잘 생긴 아라 임금(Ara the Beautiful)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그러니 아리랑은 아라랏 산에서 유래했을 가능성도 있다.

아라랏 산은 지금 터기에 있고 지금은 잠자고 있는 화산이다. 터기 말로 ‘아르달’이라고 한다. 아르산, 또는 아르 고개라는 뜻이다. 환웅 부족이 수메르 지방에서 왔다면 수메르 부족이 살던 지역에 아라랏 산이 있으므로, 아리랑 고개는 아라랏 산에서 유래했을지도 모른다.

구약의 홍수 이야기에는 노아가 홍수를 겪고 난 뒤에 배를 댄 곳이 아라랏 산이다. 이 이야기는 수메르인이 홍수를 겪은 이야기이고 성경 저자들이 베껴서 창세기에 실은 듯하다.  

1. 지게를 지는 사람들

다른 민족이 전혀 가지지 않은 전통, 수메르인과 한국인이 공통으로 가진 전통은 짐을 나를 때 지게를 사용한 것이다.

길자메시가 우르에서 임금이었을 때 지은 왕실 무덤에서 발견된 우르 군기(Standard of Ur)의 평화 장면, 첫째 줄에는 신하와 악공들이 임금을 즐겁게 해주고, 둘 째 줄에는 동물 사육하는 사람들이 동물을 다루고 있으며, 마지막 줄에는 일꾼들이 짐을 나르고 있는데, 두 사람이 지게를 진 것이 보인다.

2. 우라르트 왕국의 생명나무

이 수메르인이 살던 아라랏 산은 어떤 곳이었을까? 수메르인이 살던 당시의 유물은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기원전 8세기에 우라르트 시의 유적은 지금의 토프라칼레(Toprakkale)에 남아 있다. 수메르인은 기원전 2334년을 마지막으로 떠나고 그 후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던 듯하다. (이 때가 단군이 고조선을 세웠다고 하는 해이다.)

그 이후에는 밀려 들어온 셈 족이 아라랏 산 지역을 차지하고 (그래서 수메르인은 여기를 떠나게 된다) 후일에는 아르메니아인이 우라르트 왕국을 세웠다. 이들도 이곳으로 흘러들어 온 사람들이니 아르메니아인의 전통 중에서 얼마큼은 다른 곳에서 가져온 것이고, 얼마큼은 수메르인에게서 물려 받았을 것이다. 기원전 8세기에도 이 우라르트 왕국에는 수메르인의 흔적이 조금 남아 있는 듯하다.

셈족의 모음은 우리 말과 달리 분명치 않다. 우라르트는 또한 아라라트/아라랏으로 같은 이름을 모음만 조금 다르게 발음한 것이다.

청동 벨트. 이 벨트의 가운데와 바른 쪽 (그리고 맨 왼쪽)의 세로 줄에는 하늘을 나르는 말이 새겨져 있는데, 신라의 천마총에 나오는 천마와 같다. 혹시 하늘을 나르는 천마가 아라랏 산에서 내려온 전통이 아닐까? (기원전 8-7 세기) 왼쪽에서 둘 째 세로줄에는 수메르인의 전통인 생명나무 또는 신단수가 그려져 있다.

신 또는 병사가 활과 화살통을 들고 있고, 이 병사는 청동 단추로 장식된 갑옷을 입고 있고 군기를 들고 있다. 청동 투구 꼭대기에는 상투같은 꼭다리가 있다. 고조선 시대의 병사들도 비슷한 청동 투구를 썼다. 기원전 8-7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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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 허리띠. 이 띠에는 생명나무 또는 신단수가 자세히 새겨져 있다. 기원전 7세기.

귀 가리개가 달린 청동 투구. 꼭대기에 상투같은 꼭다리가 달려 있다.

우라르트인이 모시던 신. 이것이 환인의 동상이 아닐까? 뾰족한 모자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