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토사 디 파비아 (Certosa di Pavia) 수도원

파비아에 있는 체르토사는 이탈리아 북부의 롬바르디 지역에 있는 수도원이다. 1396-1495년에 지었다. 1084년에 성 브루노가 이 수도회를 창설했고, 수도승과 수녀들이 있으며, 성 베네딕트의 규칙 대신에 자체의 규칙을 가지고 있다.

체르토사는 카르투시오 수도회의 이탈리아 발음이고, 성 브루노가 첫 수도원을 프랑스에 속하는 샤트루스 산 (Chartreuse Mountains)에 설립한 데서 유래한다. 각 수도원에 원장(prior)이 있고, 그 밑에 수도승들이 있다. 각 수도승에게는 거할 방이 제공된다. 수도승은 누구나 노동해야 한다.

수도승은 하루에 두 번, 점심과 저녁을 각자 자기 방에서 먹는다. 금식하는 시절에는 하루에 한번씩만 먹는다. 수도승이 필요한 것은 평신도에게 글로 적어서 요청한다. 하루 종일 공부하거나 글을 쓰거나 자기 밭에서 일한다. 한 주에 한 번 시골길을 걸을 수 있고, 일요일이나 절기에 함께 먹지만 대화는 하지 않는다. 일년에 두 번 가족의 방문을 받아도 좋다

이곳의 수도승은 전도나 설교 따위는 하지 않고, 바깥 세상과 연락이 없다.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지만, 일생을 기도하며 지낸다. 수도원에는 이러한 체르토사 수도승을 지원하기 위하여 평신도 형제들(lay brothers)이 있는데, 이들은 기도에 시간을 덜 보내는 수도승이고, 노동을 더 많이 한다. 요리하고 빨래하고 기타 자질구레한 일을 처리한다. 모두가 말없이 지내는 수도승이다. 사람이 어떻게 이러한 수도생활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파비아에 있는 이 수도원은 밀라노의 첫 공작 Gian Galeazzo Visconti가 마르코 솔라리(Marco Solari)에게 건축을 부탁했고, 1396년에 공사가 시작되었다. 수도원은 밀라노와 파비아 중간에 자리잡았다. 수도원의 마지막 건물인 교회는 비스콘티 가족의 시신을 안치하기 위하여 지었다. 기초를 지은 다음에 르네상스가 이탈리아에 급속히 퍼졌기 때문에, 아마데오(Giovanni Antonio Amadeo)가 화려한 건축을 구상하였고, 교회는 1497년에 봉헌되었다.

같은 이름의 기차역에서 내려서 20분 정도 높은 수도원 담을 돌아야 입구가 나온다.

수도원 입구

입구의 내부. 벽화들이 많이 훼손되었다.

녹이 쓴 철문.

안뜰

수도원 정면.

정면의 세부

옆 건물

수도원 측면.

비스콘이 공작이 마르코 솔라리를 건축가로 임명하고 초석을 놓는 장면을 부조로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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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수도원이 열려 있었더라면, 세미노(Ottavio Seminor)의 최후의 만찬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Last Sup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