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타 해양 박물관 (Galata Museo del Mare, Genoa)

제노아(Genoa)는 리구리아(Liguria) 지방의 수도이고, 이탈리아에서 여섯 번째로 큰 도시이다. 수도권 지역에 사는 인구는 1백50만 정도이다.

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로, 명칭상으로는 신성 로마 제국에 제노아가 속했지만, 서기 1100년 이전부터 제노아는 독립된 도시로 자랐다.

1347년에 크리미아의 카파 (Caffa)는 제노아와 무역을 하는 거래항이었는데 여기서부터 1347년에 흑사병이 유럽으로 퍼졌다. 제노아가 중세에 그만큼 무역을 크게 하는 항구였다는 증거이다.

콜럼부스는 제노아 사람이었다. 아메리카 대륙 발견으로부터 들어오는 소득의 10분의 1을 제노아에 기증했다고 한다. 전성기인 16세기에는 루벤스, 카라바지오 등의 대가들이 제노아에 모여들었다.

나폴레옹 밑에서 1805년에 제노아는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었으나 1814년에 독립을 찾았다. 제노아는 나중에 통일된 이탈리아를 건설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1. 제노아 항구

공중에서 본 제노아 사진. 제노아는 중세에 콘스탄티노플, 베니스 다음으로 큰 항구였다.

제노아는 중세부터 국제 무역에 중요한 항구였다. 흑사병이 여기서부터 유럽의 타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Juan de la Cosa는 지도 만드는 사람이었고, 콜럼버스와 처음 두번 아메리카 항해를 함께 하였다. 후안이 탄 배의 모형.

2.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크리스토포로 콜롬보가 제노아 사람이라는 글.

콜럼버스의 초상화

제노아는 해상 무기 공장이었으나 콘스탄티노플, 베니스보다는 규모가 작았던 듯.

제노아에서 만든 배의 파편, 생명나무 꽃 무늬가 있다.

콜럼버스의 동상

3. 콜럼버스가 만든 배 모형

 

배의 표면은 긴 세로 판자들을 이었고, 이를 연결하기 위하여 내부의 가로 틀이 있다. 판자가 아니라 몸둥이가 굵은 나무로 가로 틀은 만들었으나 쉽게 이를 굽힐 수 없으므로 짧은 토막 나무들을 연결하여 틀을 굽혔다.

4. 해전 모습

유럽의 열강들이 해전을 많이 벌였다.

프랑스와 제노아의 해전

제노아의 일부가 포위공격을 받은 적이 있는 듯.

5. 바닷가의 풍경

해변가의 풍경. 제노아는 조선소가 있었다. 바닷가에서 배를 만든 뒤에 이를 여러 통나무 위에 밀어서 바다로 진수시키도록 고안되어 있다.

파선

배 만드는 과정

제노아와 거래하는 섬인 듯.

6. 선박 여행 광고

뉴욕행. 장거리 여행 선박을 안전히 만들게 되자, 해외 선박 여행이 차츰 늘어났다. 제노아도 한 목을 본 듯.

크루저의 식당

여행 선박의 단면. 8층이나 된다. 제일 아래의 두 층은 하물을 싣고, 3, 4층은 침실, 제일 위의 두 층은 식당, 나머지는 부유한 승객들의 침실과 사무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