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사의 벽화

2차 대전이 시작되기 전에 일본 사람은 타이완(대만) 사람들에게 유화정책을 쓴 때문인지 타이완 사람들은 한국과 달리 일본에 대하여 별로 나쁜 감정이 없다. 그래서 선(禪)불교가 일본에서 들어온 듯하다.

타이완에서 둘째로 큰 도시 까오슝에 있는 불광산에는 세계 최대의 절이라고 하는 불광사가 있다. 1967년에 짓기 시작했으므로 역사가 오래 되지는 않지만, 아시아에서 제일 크다고 하는 부처상을 지어놓았다.

서양에서 기독교가 유명한 화가들을 동원하여 성경 내용의 그림을 그리게 함으로 종교의 세를 확장한 것을 불교신자들도 깨달은 것 같다. 이 불광사에는 교리, 특히 선불교의 가르침을 벽화로 그려 놓았다. 그런 덕인지 대만에는 불교가 성하다. 자기만 옳다고 우기는 것보다 종교들 사이에 서로 비교하고 좋은 점을 배움으로 인류는 진보하는 것 같다.

불광사에는 38폭의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여기에 여섯 그림만 소개한다.  

1. 담넘기

센가이 기본(仙厓義梵, せんがい ぎぼん) 선사(禪師)는 (1750-1837년) 일본에서 그림으로 선불교의 가르침을 대중에게 쉽게 가르쳤다고 한다. 그가 남긴 한 그림에는 네모와 세모와 동그라미(DAO?, 道의 영어 표기)만 적혀 있는데, 흔히 이 그림은 “우주”라는 명칭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영어를 이해했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센가이의 한 제자가 밤마다 절의 담을 넘어서 마을에 나가 세상의 재미를 보고 있었다. 어느날 밤에 센가이가 절 안을 거닐고 있다가 담 어느 모통이에 걸상 하나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당장 누군가가 담을 넘어 도망한 것을 알았다. 그는 의자를 치워 버리고 그 자리에 걸상 높이 만큼 웅크리고 기다렸다. 밤 늦게 기다렸다.

얼마 있다가 젊은 중이 돌아와서 담을 넘고 걸상이 있던 곳에 살며시 발을 뻗어 센가이 선사의 머리를 딛고나서 껑충 뛰어 내렸다. 다음에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지 깨닫고 젊은 중은 놀라서 입을 열 수 없었다. 선사는 말했다. “밤이 늦고 이슬이 많이 맺혔으니, 감기가 걸리지 않도록 하여라. 얼른 돌아가서 따듯한 옷을 더 입거라.” 센가이 선사는 이 일에 대하여 누구에게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그 때부터 1백명이 넘는 중들 중에 아무도 담을 넘어 바깥에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2. 버섯 말리는 스님

나이 들고 허리가 굽은 스님이 뙤약 볕 아래서 버섯을 줄에 매달아 말리느라고 일하고 있는데, 젊은 스님이 와서 물었다. 법사님, 어찌 그리 수고하십니까? 제가 다른 일꾼을 찾아 보겠습니다. 그러자 노승이 당장 대답했다. “다른 사람은 내가 아니지.” 젊은 스님이 또 물었다. “그러면 어째서 오늘처럼 더운 날을 골라서 일을 하십니까?” 그러자 법사가 대답했다. “해가 쨍쨍 쬐는 더운 날에 버섯을 말리지 않으면, 구름 낀 날이나 비오는 날에 말리는 것이 더 좋겠느냐?”

3. 우분 (소똥) 닮은 선사

소동파(蘇東坡, 1037-1101년)는 11세기 북송 시대에 이름난 시인이요 학자요 정치가였다. 어느날 금산사에서 갑자기 같이 선을 하던 포인선사(佛印禪師)에게 물었다. “내가 앉은 자세가 어떻소?” 그 스님은 대답했다. “그 위엄이 부처같소이다.” 소동파는 크게 기뻐했다. 그러자 그 스님이 물었다. “학자님, 내가 앉은 자세는 어떻소?” 소동파는 대답했다. “像牛糞” (한 무더기 소똥 같소이다.) 여기서 “분”자의 뜻이 기가 막히다. 쌀이 달라져 분이 것이다.

소동파는 포인선사에게 오늘은 한 방 먹였다 생각하고, 하루 종일 만나는 사람마다 그 이야기를 해주고 의기양양하게 자기가 그 유명한 스님을 이겼다고 떠벌이고 다녔다. 그러자 여동생 소소매(蘇小妹)가 물었다. “오라버니, 어떻게 그 선사님에게 이겼습니까?” 소동파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여동생은 크게 나무랬다. “오라버니가 졌습니다. 그 선사님은 부처와 같아요. 그러니 오라버니도 부처로 보인답니다. 그러나 오라버니 마음은 소똥으로 차 있으니, 그 법사님이 소똥으로 보이지요.”  

4. 방비(放尸+比)

소동파는 포인선사를 친구는 아니더라도 적수로 여긴 모양이다. 어느 날 선을 하다가 도가 날로 통하는 듯하는 기분이 나서, 소동파는 포인선사에게 한 줄의 시를 적어서 보냈다.

稽首天中天 (계수천중천),

毫光照大千;(호광조대천)

八風吹不動,(팔풍취부동)

端坐紫金蓮.(단좌자금련)

가장 높은 하늘에 머리를 숙이니

내 머리털의 빛살이 온 우주를 비추네.

여덟 가지 바람이 불어도 꼼짝하지 않고

자금색 연꽃위에 단좌하고 있네.

쉽게 말하면, 내가 머리를 숙이고 가장 높은 부처/신에게 기도하니 밝은 빛이 나에게서 나와 우주를 비춰 주는 듯 하네 (도를 통한 듯 하이). 팔풍이 불어도 나는 꼼짝 않고 반듯이 아름다운 연꽃 위에서 좌선을 하네.)

여기서 팔풍이란 稱(칭찬과 나무라기), 榮毁(영예와 훼손), 得失 (득실), 苦樂(고락)을 의미한다.

소식을 전하는 사람으로부터 이 시를 보고 나서 포인 선사는 방비(放尸+比) 두 자를 적어서 보냈다. “방귀 뀌었군 (헛 소리)!”

칭찬을 기대하고 있던 소동파는 소스라치게 놀랐고 너무 화가 치밀어 당장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서 포인선사를 만나서 따졌다. 선사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八風吹不動 (팔풍취부동)

一尸+比彈過江 (일비탄과강).

팔풍이 불어도 꼼짝 않는다더니, (어찌하여)

방귀 하나에 불려 강을 건너왔구나.

“放尸+比(한국에서 안 쓰는 한자)”는 일전의 “우분”에 대한 대답이다. 소동파가 겸손했다면 포인의 평가를 보고 반성했을 것이고, 포인 법사는 졌을 것이다. 물론 포인 선사는 소동파가 올 것을 알았고, 그가 깨달음을 얻기를 바랐을 것이다. 과연 그의 바람대로 자신의 영적 수준이 변변치 못함을 깨달은 소동파는 그 뒤에 많이 겸손해졌다고 한다.

당장 앞에서 표현은 하지 않았어도 우분이라는 평가는 포인 선사의 머리 속에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포인선사는 소동파와 머리 싸움, 도토리 키재는 식으로 경쟁을 하여 핀잔을 주었다고 볼 수도 있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소동파라는 인물을 설득하지 못하여, 소동파는 결국 정계에 남았고 불교에 전념하지는 않았다.  

5. 재산 모으기(도둑님, 문을 잘 닫으세요)

중국의 쓰촨성(四川城)에는 신라 성덕왕의 셋째 왕자 출신인 무상(無想)선사 (서기 684-762년)가 당나라 선불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조우석 기자에 따르면, 그는 중국 불교의 성자인 오백나한 중에 455번째 인물이요, 물론 첫째는 석가모니, 달마대사는 307번째라고 한다. 이 그림은 아마도 그 무상선사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어느 날 절에 도둑이 들었는데, 도둑이 아무리 찾아 보아도 훔쳐 갈 것이 없었다. 그가 막 떠나려고 할때, 무상선사가 잠이 깨어 말했다. “여보게, 나갈 때 문을 잘 닫게나!” 그러자 도둑이 놀라서 말했다. “깜짝이야, 게으른 중 같으니라구! 너는 왜 못 닫느냐? 훔칠 것도 하나도 없이 가난한 것이 싸다!”

그러자 무상선사가 대답했다. “자네는 너무하군! 그러면 나더러 열심히 일해서 네가 훔쳐갈 물건을 사오란 말이냐?”

이 가르침은 재산 모으는 것이 무익함을 가르치며,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는 예수의 가르침과 흡사한 곳이 있다.  

6. 양무제

양무제(梁武帝, 서기 464-549년)는 다리도 짓고 길도 고치고 절도 많이 지어서 불교 전파에 크게 힘썼다고 한다. 어느 날 인도에서 보리달마가 법(Dharma)을 가르치려고 도착했다. 양무제는 그를 초대하여 물었다.

“나는 절을 많이 지었습니다. 나에게 무슨 공이 있습니까?” 보리달마가 대답했다, “아무 공도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 설명도 없이 보리달마는 떠났다고 한다.

이 가르침도 기독교의 가르침,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가르침과 상통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