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기(土器)와 청동기로 본 고대 중국인의 생활

 

정저우는 허난(河南)성에 자리잡은 지급시(地級市)이며, 상나라(기원전 1600 – 1045년) 시절 초기(早商)에 은(殷)으로 옮기기 전에 이곳에 수도가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상나라의 청동기가 많이 발굴되어 있다.

최상급의 청동기 기물은 대만의 고궁 박물원(國立故宮博物院)에 전시되어 있지만, 사진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 글에는 정저우(鄭州)에 있는 허난(河南) 박물관의 토기와 청동기 및 기타 유물 통하여, 고대 중국인이 어떻게 살았는가 살펴본다.


허난(河南) 박물관


허난성의 구석기 시대 유적지 지도.

토기(土器)와 바퀴

물렁한 진흙을 가지고 맨손으로 둥그런 그릇을 만들기는 도구 없이 동그라미를 그리기보다 훨씬 어렵다. 하나는 입체요, 다른 하나는 평방체이기 때문이다.

상대의 토기는 도공(陶工)의 돌림판을 쓴 토기와 그렇지 않은 토기가 있다. 처음에는 손으로 둥그렇게 만들려고 애쓰다가, 머리가 깨여 돌림판을 쓰게 되었으니, 맨손으로 만든 도기가 대체로 더 오래된 것이다.

기원전 4500년 경에, 메소포타미아의 우르(Ur)의 서쪽에 있었던 도시, 우바이드(Ubaid)에서 살던 우바이드 족속이 바퀴를 도공의 돌림판에 먼저 이용하였다.


우바이드 족속이 쓰던 포도주잔.

우바이드의 도기는 그릇 아가리에 수평으로 줄이 나 있어, 돌림판을 쓴 것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채색도 돌림판을 이용한 듯하다.

폴란드의 크라코 지방에서 기원전 3500-3350년에 만든 것으로 추측되는 도자기에 바퀴를 이용한 차량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바퀴를 수송 차량에 이용한 흔적이 이곳에 남아 있지만, 그 지역의 사람들이 수송 차량을 발명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수메메르인이 기원전 3200년에 차량에 바퀴를 사용했다고 한다. 수메르인은 기원전 2300년경까지 여러 차례 유럽과 에집트로 분산되었다.


우르의 군기(軍旗, Standard of Ur), 기원전 약 2500년. 발견자인 울리(Leonard Woolley)가 전투에 쓰이는 군기로 생각하여, 이 이름을 붙였다. 여기에는 군인들이 사용하던 차량이 여러 대가 보인다.

갑골 문자
자후 유적지에서 발견된 거북이 껍질
   
거북이 껍질에 상형 문자를 새겼다. 기원전 6700-4800년.
배리강 문화  
돌림판을 쓰기 이전에 맨손으로 만든 딩(요리용 남비)

신석기 시대:

양샤오 문화 土器

(기원전 5000-3000년)

   

채색한 토기, 앙소 문화, 기원전 6700-4800년. 아마도 앙소문화의 초기 작품인 듯. 돌림판을 쓴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아가리가 넓은 부분에 녹로(轆轤,돌림판)를 쓴 흔적이 보인다.

  

항아리 아가리 안에 수평으로 줄의 흔적이 있는 것은 돌림판을 사용한 증거이다. 이로서 늦어도 기원전 3000년에 중국인은 돌림판을 이용하여 토기를 만든 것이 분명하다.

仰韶文化와 大汶口 지역의 지도

룽산문화의 土器

   

龍山文化는 앙소문화에 뒤이어, 기원전 3000-2000년에 황하 유역에서 발달했다.

용산 문화 유적지 지도

취자링(屈家嶺)文化

 

취자링 문화(기원전 3000-2600년)는 후베이 및 후난성(湖南省) 지역에서 발달했고, 용산 문화 전기에 해당한다.

하(夏) 시대의 토기

  

기원전 2070 – 1600년경.

하(夏) 시대의 청동기(靑銅器)

  

하시대의 술잔, 작(爵)이나 가(斝, 술잔 가)에 두 개의 기둥이 나타나는데, 무슨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상대 전기의 청동기
(기원전 1600-1300년)

   

청동기라하지만, 대체로 구리였는지 붉은 색이 돈다.


청동과(靑銅戈), 창 끝만 청동으로 만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무거울 터이니까.

 

화(盉, 조미할 화), 다리가 셋인 주기. 술 항아리.

상대의 청동기는 군사 목적이든지 아니면 제사를 위한 기물을 청동으로 만들었다. 청동이 비싸서 귀족들도 이런 용도 외에는 청동을 쓰지 않은 듯하다.

안양시 은허(殷墟) 유적지 분포도
상대 후기의 청동기

   
정(鼎, 솥 정)

 

 
증(甑, 시루 증). 떡이나 빵을 찌는 데 쓰였던 듯.

 
제사에 쓰였던 기물

 
壺(호), 제사에 쓰이는 술을 담은 호리병

   
청동 가(斝, 술잔 가)

 
구 (술 담는 잔)

  
작 (술잔, 권커니 작커니)

 
유(술통)

상대의 옥기(玉器)    
서주(西周) 시대의 청동 식기(食器)

 
음식 담는 그릇. 찌개를 끓였던 듯.

 

 
쌀통

 
반찬 및 기타 음식을 담는 그릇

 
곡식을 담는 그릇

  
요리하는 그릇 (남비)

상대의 식기는 보기 드물다. 서주 시대에 와서 소득이 늘어나 귀족의 일상 생활에 쓰이는 식기를 청동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서주 시대의 청동 주기(酒器)

 

굉 (주기), 실례를 범하면 주인이 취할 때까지, 굉으로 술을 따라 주었다고 한다.

 
호 (호리병)

 
유(술통)

   
호 (술 담는 호리병)

 

 
연회에서 손을 씻는 데 쓰인 듯.

맺는 말

선사 시대부터 상나라에 이르기까지, 중국인은 토기를 사용하다가 청동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상 시대가 되어 중국인의 청동 문화가 꽃을 피웠다. 그래도 서민은 청동기를 쓰지 못하고, 귀족이나 임금이 청동기를, 그것도 제사 목적으로 썼으니, 보통 중국인의 경제 상태는 크게 나아지지 않은 듯하다.

상대에 이르러 귀족들이 제사를 지내는 목적으로 술을 마시는 데 제기(祭器)를 쓰고 일반 생활에는 청동을 쓴 예가 드물다. 그만큼 청동이 비싸게 먹혔을 것이다.

서주 시대에 들어와 청동을 식기에 쓰고, 술잔과 술통도 다양화된 것으로 보아, 청동 제품의 기술도 늘어나고 기술자에게 지불한 대가도 싸진 듯하다. 아직 동전이 생기지 않았고, 카우리 조개로 상품의 대가를 지불했을 터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