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 시대의 청동기(靑銅器), 1부

중국에서 청동이 사용된 시기는 상(商, 기원전 1600년경 -1046년) 나라 때부터 전국시대까지 계속된다. 철광석이 이전에 발견되기는 하였으나 철 야금 기술은 중국에 기원전 6세기에 개발되었고, 전국시대부터는 강철의 제련법을 개발되어 철기를 대량으로 군대를 무장시키는 데 사용되었다.

따라서 상대에 꽃을 피웠던 청동기 문화는 서주 시대에도 계속되었으나 전국시대 이후부터 청동기의 중요성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구리는 단단하지 않은 금속이므로 구리로 만든 도관은 손으로도 쉽게 구부릴 수 있다. 구리와 주석(tin)을 9:1의 비율로 섞으면 단단해져서 제기 뿐 아니라, 청동검이나 창의 머리 부분을 만드는 데 쓸 수 있다. 청동검은 적어도 초기에, 형태가 잡힌 거푸집에 액체인 청동을 부어서 형태를 만든 다음 갈아서 검을 날카롭게 만들었던 듯하다. 청동검은 쇠로 만든 검보다 대체로 두터워서, 실제로 사람이나 물건을 베는 데 쓰인 것이 아니라 찌르는 데 유용하고, 또 귀족들의 장신구로 쓰이고 실전에는 많이 사용되지 않았던 듯하다.

거푸집을 이용하여 청동방패도 만들 수 있기는 하지만 두텁고 무거워서 실전보다는 장식용으로 쓰인 듯하다. 청동기를 얇고 가볍게 만드는 기술이 개발되기 (기원전 1세기) 전에는 전투용으로 쓸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시대에는 또한 담금질하여 얇고 더 가볍게 만드는 철기가 널리 보급되어, 청동 무기가 필요 없게 되었다.

우라르트 왕국의 청동투구 (기원전 9-8 세기), 대영 박물관.

켈트족의 청동방패 (기원전 300-50년)  

1. 금은착 방법

전국 시대에 들어와 청동 병기의 중요성이 줄어들고 청동이 사치스러운 제기와 생활 용품을 생산하는 데 이용되었다. 청동이 많이 보급됨에 따라서 제작 기술이 더 발달된 듯하다. 특히 전국시대에 금은착 청동기가 많이 늘어났다. 금은착(金銀錯)은 금이나 은을 청동에 칠하거나 입히는 것을 말한다. 청동기에 금은으로 무늬를 두 가지 단계가 있다. (금은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여기에 있습니다: http://www.loveantique.com/).

상감(象嵌) 단계: (가) 다른 물질로 돋음 무늬를 넣기 위하여 모범(母范, 기물을 주조하기 위하여 만든 주조용 틀)에 오목한 홈을 만든다.

(나) 홈을 새기기. 주조 틀은 정확히 직각을 만들기가 힘들다. 직각이어야 할 곳이 둥그렇게 되므로, 주조한 뒤에 선을 정확히 직각으로 날카롭게 가는 수공이 들어간다.

(다) 상감, 곧 金絲나 金片을 홈에 넣는다. 이 과정의 어려움은 푸마푼쿠( )의 십자 또는 H-자 무늬를 판 돌 유적에서 볼 수 있다. (라) 상감한 뒤에 표면 전체가 평평해지도록 갈아야 한다. 이 과정은 후일에 상감 청자같은 도자기를 만드는 데도 쓰인다.

도화(塗畵) 단계: (가) 금을 400도까지 가열한 뒤에 수은을 더하여 액체 상태의 니금(泥金)을 만든다.

(나) 니금을 표면에 칠하고 나서,

(다) 무연탄으로 그릇을 가열하면, 수은이 증발하고 금은 표면에 부착된다. 이 때 증발되는 수은이 몸에 해로움으로 통풍이 잘 된 야외 작업장에서 하는 것이 좋다.  

2. 춘추 시대의 청동기

춘추시대 술담는 병. 스미소니안 박물관 날카로운 도구를 이용하여 그릇에 선이나 무늬를 넣은 듯하다.

청동박, 동주 (기원전 5 세기), 박은 횡단면이 타원형이고 밑이 평평하며, 걸어 놓고 두드리는 종이다.

춘추시대 제사용 남비. 무늬가 돋아나 있다.

술 담는 호리병. 춘추시대, 북방의 유목민이 쓰던 가죽 부대 모양의 술병을 닮았다.

춘추 시대의 제사에 쓰이던 술 항아리.

시베리아의 화폐 (기원전 8-5 세기). 중국의 칼 돈은 이것을 본따서 만들었다고 한다.  

3. 전국시대의 청동기

전국시대 동전을 주조하는 틀.

壺(호, 호리병) 전국 시대, 제사 때 술담는 그릇. 대영 박물관

오나라도 왕 부차가 노(魯)와 제(齊)를 무찌르고, 기원전 482년에는기(杞) 땅의 황지(黃池)에 제후들을 모아 놓고 진(晋)과 회맹(會盟)의 주도권을 다투어 일시나마 맹주가 되었다. 회맹하느라고 자리를 비운 동안에, 수년간 와신상담(臥薪嘗膽)하고 있던 월왕 구천은 군사를 이끌고 오나라로 쳐들어갔다.

전국 시대 종

술 담는 호리병, 동주(東周).

鼎, 아마도 전국시대에 제사 음식 담는 그릇, 그릇 자체에는 돋음 무늬로 추상적인 동물 모습을 새겨 넣었고, 다리에는 상감 방법을 써서 홈을 파고 다른 재료를 넣었다.

壺, 터기석과 구리로 상감하여 무늬를 집어넣은 것이 보인다. 세월이 지나서 일부가 떨어져 나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