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의 옛 거리 고문화가(古文化街)

천진 또는 텐진(天津)은 북경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공업 도시이라 구경거리는 많이 없다. 다만 청대(淸代)의 商街를 고문화가에 복원해 놓은 것이 볼 만하다. 우리의 선조들이 1644년부터 (병자호란 이후에) 1911년 신해(辛亥) 혁명이 일어난 사이에 중국을 방문했다면, 이런 모습의 상가를 발견했을 것이다.

고문화 거리 입구

前殿. 三津福主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여기를 지나 천후궁으로 들어간다. 무역으로 도시를 일으켰으므로 선원들의 안전을 천후에게 빌었던 듯.

천후궁(天后宮) 안의 타일 벽화. 텐진의 여름 경치

텐진의 겨울 경치

엄복의 동상 지세화의 <중국문학사>에 따르면, 엄복(嚴復)은 청나라 말기에 중국인을 일깨우려고 애쓴 사상가. 해군 대학에서 졸업한 뒤에 영국의 그리니치 해군대학에서 유학했는데, 동양에서 온 두 유학생, 이토오 히로부미와 엄복이, 가장 성적이 좋았고 서로 친했다고 한다. 엄복보다 성적이 떨어지는 히로부미는 일본으로 돌아가 정치가가 되었으나 엄복은 말단 교직에 머물러 뜻을 펼 수 없었다.

청일 전쟁이 벌어지면서, 청나라의 이홍장은 1885년에 양국이 조선에 파병할 경우 서로 연락한다는 천진조약을 체결하였다. 후일 1895년에 시모노세끼 조약으로 이홍장은 조선이 청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나라임을 인정하였는데, 이것은 또한 이후에 일본의 영향력이 늘어난 것을 의미한다. 조선으로서는 암울했던 시절이었다.

토마스 헉슬리는 <진화와 윤리>라는 책을 천연론(天演論)이라는 이름으로 번역하여 일약 유명해졌으나, 후일에 원세개(袁世凱)의 농간에 놀아나 六君子에 들어갔으나 명망을 잃게 되었다. 어쨋든 텐진에서 제일 유명한 인물.

간판을 왜 거꾸로 글을 썼을까? 눈을 끌기 위하여.

악기점과 길거리에서 파는 돌피리.

거리 표시.

天津文廟 박물관

밖을 나서면 현대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