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의 구경거리

마카오(Macau/Macao)는 홍콩처럼 중국의 특별행정구이다.
남송(서기 960-1279년) 말기에 몽고의 침공을 피하려고 어부들이 마카오에 정착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1557년에 포르투갈은 1년에 은 20킬로그람을 임대료로 지불하는 조건으로 마카오에 영구히 정착할 권리를 얻었다. 이렇게 포르투갈에 임대되어 포르투갈이 마카오를 관리하다가, 1차 아편전쟁(1839-1842년)이 일어난 뒤에, 포르투갈은 타이파와 콜로안 섬을 장악하였고, 1887년에 포르투갈은 중국과 친선 및 상업 조약을 맺어 마카오는 영구히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러나 1911년에 신해(辛亥) 혁명 후에 중국의 국민당(國民黨) 정부는 이 조약을 일방적으로 취소하였다.
포르투갈이 마카오를 중국에 여러 번 돌려주려 했으나 중국 정부는 받지 않고 있다가,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되돌려 받은 뒤, 2년 후에 마카오를 되돌려 받았다. 그래도 2049년까지 마카오는 대체로 독립성을 유지하리라 한다.
마카오는 4 지역, 마카오 반도, 타이파섬, 콜로안섬, 그리고 이 두 섬 사이를 메꾸어 생긴 코타이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고, 여기에 카지노를 많이 지었다.

1. 기아 요새 (Guia Fortress)

여기에는 중국 최초의 등대가 설치되어 있다. 1622년에 네델란드인이 포르투갈인으로부터 마카오를 빼앗으려고 이 요새를 세웠다고 한다. 날씨가 좋으면 20마일 바깥에서도 이 등대의 불빛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등대는 마카오의 상징이다.

기아 요새

요새를 지키던 화포.

중국 최초의 등대. 이 등대는 마카오의 상징이 되었다.

사도바울 교회의 유적 예수회(Jesuit) 선교사들이 20년 동안 지어 1602년에 완공된 교회. 홍콩이 아시아에서 유력한 항구로 성장하자 마카오는 빛을 잃기 시작하였고, 사도 바울 교회의 위세도 따라서 줄어들었다. 1835년에 태풍으로 인한 화재로 다 타버렸고, 돌로 지은 교회의 앞면만 남아 있다.

예수회가 북경에 설치한 천문대를 보여주는 그림.

마태오 리치(Mateus Ricci)가 1601년에 도착하여 중국과 서양의 교류를 촉진하였고, 이어서 예수회는 북경의 중심지에 천문 관측대를 세워 주었다.

리치의 동상  

2. 옛 타이파 마을 (vila da Taipa)

타이파 마을 입구

타이파 마을의 옛 거리

타일로 된 벽화

배타는 사람들은 위험을 많이 겪기 때문에 신과 조상에게 많이 기도한다.

마카오의 옛 지도. 지금은 타이파와 콜로안 사이가 땅으로 메꾸어져 있고, 이 지역을 코타이라 부른다.

마을 중심의 공공 건물

옛날의 폭죽 상표. 중국은 지금도 폭죽을 수출한다.

사면불(四面佛). 사면불은 세계에서 3개밖에 없다고. 아마도 과장이겠지.  

3. 카지노

여기저기 카지노가 널려 있다.

갤럭시 카지노

카지노 앞의 연못. 봄이면 연꽃이 많이 피겠지.

베네시안 카지노의 내부.

아무리 기다려도 하늘은 어두워지지 않는다. 그림이니까.

베니스에 있는 종각(carillon)과 도제(doge)의 궁전(palazzo)을 조금 축소하여 지었다.